박문수 암행어사 했을 걸
1727년(영조 3) 정미환국으로 다시 등용되어 그해 10월 1차 영남별견어사(嶺南別遣御史)로 나가 흉년 중 구휼과 탐관오리에 대한 징계 등을 아뢰었다.
이듬해인 1728년(영조 4) 3월에 2차 영남별견어사로 복명하여 자인현감, 대구판관, 울산부사, 용인현감 등을 모두 파직시켰다.
물론 "암행" 을 했느냐 여부 인데
『기문총화(記聞叢話)』 2편, 『계서야담(溪西野談)』 1편, 『청구야담(靑邱野談)』 3편, 『선언편(選言篇)』 2편, 『동야휘집(東野彙輯)』 2편, 『대동기문(大東奇聞)』·『실사총담(實事叢譚)』 등에 민담과 설화로 존재 하는데
받아 들이는건 각자 자유니까 ㅋ
뜌땨는 씹발 예상을 못했네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뜌땨ㅕ 뜌땨 우유 초고수가 댈거야~
유명한 일화긴 해 박문수가 실존 인물이기도 하고 단지 해당 이야기를 포함 몇몇 민담은 박문수 사후에 만들어진 이야기 일 확률이 매우 높음
여긴 우리 젖이다 그래 당장 꺼져
어제 본 미리아 착유 쩡 생각나내 후 ㅅㅂ
야 이 양반들아 눈깔 돌릴 시간에 애기가 젖 빨게해야지!!!!!!!!!
다음 순서 눈치 보는중인거임
뜌땨ㅕ 뜌땨 우유 초고수가 댈거야~
뭔가이상한데
여긴 우리 젖이다 그래 당장 꺼져
뜌땨는 씹발 예상을 못했네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니 거기서 뜌땨가? ㅋㅋㅋ
이거 친근인가요라는 질문이 뇌리에 박힌다
뜌땨
실화는 아니겠지?
츤데레라
유명한 일화긴 해 박문수가 실존 인물이기도 하고 단지 해당 이야기를 포함 몇몇 민담은 박문수 사후에 만들어진 이야기 일 확률이 매우 높음
저거 어디까지나 박문수에 대한 민담임. 전해져오는 이야기일 뿐 실제는 아님.
야사임. ... '야'가 야하다 그 야가 아니고!
애초에 박문수는 암행어사를 한적이 없어
사실 내용만 생각해봐도 말이 안 되긴 함 젖몸살 난 여인이 근처에 있다면 민가가 엄청 가까이 있다는 얘기인데 굶어 죽을 지경이면 젖동냥을 할 게 아니라 사람들 불러달라고 부탁해서 밥을 얻어먹으러 갔겠지 조선시대판 야설이라고 보면 됨
박문수 암행어사 했을 걸 1727년(영조 3) 정미환국으로 다시 등용되어 그해 10월 1차 영남별견어사(嶺南別遣御史)로 나가 흉년 중 구휼과 탐관오리에 대한 징계 등을 아뢰었다. 이듬해인 1728년(영조 4) 3월에 2차 영남별견어사로 복명하여 자인현감, 대구판관, 울산부사, 용인현감 등을 모두 파직시켰다.
1728년 민심 수습을 위한 영남안무사(嶺南安撫使)로 나아갔다가 바로 경상도관찰사에 임명되었다. 1731년(영조 7) 영남 감진어사(嶺南監賑御史)로 나가 기민(饑民) 구제에 힘썼다.
野史 뜻은 들야, 역사사 野의경우 들 야, 야생 야, 촌스럽다 야,야당할때 야자도 이 야자로 씀.. 비슷한 단어로 패사(稗史)가 있음.. 반대되는 단어로는 정사(正史)가있음..
물론 "암행" 을 했느냐 여부 인데 『기문총화(記聞叢話)』 2편, 『계서야담(溪西野談)』 1편, 『청구야담(靑邱野談)』 3편, 『선언편(選言篇)』 2편, 『동야휘집(東野彙輯)』 2편, 『대동기문(大東奇聞)』·『실사총담(實事叢譚)』 등에 민담과 설화로 존재 하는데 받아 들이는건 각자 자유니까 ㅋ
뭔소리여.... 암행어사중에서는 전설중에 전설인 인물이구만.. KBS 역사저널 그날 - 박문수는 왜 암행어사의 전설이 됐나 https://www.youtube.com/watch?v=8gvv1TTIZs4
박문수가 당시 민중의 영웅 이 었던건 맞는 듯 마치 유비 관우 장비 민담 설화가 전 중국에 있는 것처럼 민담과 설화가 붙어서 점점 커진듯
박문수가 워낙 유명하고 암행어사의 대명사가 되어버리다보니 다른 사람들 이야기도 박문수가 죄다 흡수했다 카더라
이새낀 그냥 가슴을 사랑함
내가 선비가 될게
착유 고수가 될거야!
어제 본 미리아 착유 쩡 생각나내 후 ㅅㅂ
아니 거기서 뜌따가 ㅋㅋㅋㅋㅋㅋㅋ
갑분 뜌땨?!
유사 친근 망가로군
캬 그렇네. '장성한 아들이 어미의 젖을 물었다.'
뜌따이 드리프트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