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색 계열 땅 = 잉글랜드 국왕 헨리 2세의 영토
푸른색 계열 땅 = 헨리 2세 영토를 제외한 프랑스 국왕과 프랑스 봉신들의 영토
푸른색 굵은 테두리 = 프랑스 국왕의 지배권이 적용되는 영토의 범위
*파란색 테두리 안에 있는 영토들은 잉글랜드 국왕 소유 영토일지라도
실질적으로 프랑스 봉신 영토에 해당되기 때문에 프랑스 국왕의 지배를 받았음
(잉글랜드 국왕이자 동시에 프랑스 국왕의 봉신이였던 헨리 2세)
당시 잉글랜드 왕국 위상은 지금처럼 좋지않았고 유럽 변방의 시골 국가라는 인식이 강해서
헨리 2세는 자신을 잉글랜드 국왕이라고 내세우는것보다 프랑스 앙주 가문의 노르망디 공작인것을 먼저 내세웠음
그래서 훗날 자신이 가르치고 보좌했던 프랑스 국왕(필리프2세)의 계략에 휘말리기 전까지 충성을 다하는 모습을 보여줌
그리고 애초에 헨리 2세가 잉글랜드 왕위를 얻기 전에도 그랬고 즉위하고 난 다음에도
프랑스어를 사용했고 일생 대부분을 노르망디에 거주했기 때문에 프랑스 왕에 충성하는게 더 익숙한것도 있는듯
프랑스 지형지도를 보면 잉글랜드 국왕 헨리 2세가 소유한 영토가 얼마나 꿀땅인지 알 수 있다.
특히, 여기서 프랑스 최고의 사기땅 중 하나로 꼽히는 좌하단에 있는 아키텐이 핵심인데
문명6 해본사람들은 알겠지만 프랑스,영국 지도자로 선택할 수 있는 엘레오노르가 당시 아키텐 여공작으로써 지배권을 갖고있었음
근데 엘레오노르가 프랑스 북부 소유권을 갖고있는 잉글랜드 국왕 헨리 2세와 결혼함으로써 잉글랜드 국왕 지배권으로 넘어가게됨
그래서 헨리 2세 소유 프랑스 영토가 엄청나게 넓어진것
(문명6에서의 엘레오노르. 좌측 프랑스 지도자 버전, 우측 영국 지도자 버전)
하지만 반세기가 지나기도 전에 정치력 만렙, 권모술수의 신 프랑스 국왕 필리프 2세에 의해
헨리 2세와 아들(리처드 1세, 존왕, 등)들이 서로 치고 박고 싸우게 되고
결국, 프랑스 내 잉글랜드 영토를 모조리 털려버리며, 오늘날 프랑스 영토 틀이 만들어짐
그걸 잊지 않고 미국이랑 힘을 합쳐서 대규모 상륙작전으로 이어지는 거지?
브르따뉴!!!
백년전쟁보다 조금 앞이네
영국이랑 프랑스가 앙숙인 이유
카스티용 이후 영국에 대한 업보청산 끝냈는데, 그 이후 근현대는 알자스, 로렌 두 곳때문에 독일이랑 난장판이었음 결국 프랑스가 이겼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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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아위키
그걸 잊지 않고 미국이랑 힘을 합쳐서 대규모 상륙작전으로 이어지는 거지?
그리고 마지막 남은 남서쪽 끄트머리 가스코뉴 때문에 백년전쟁이 시작되었으니...
참고로 저 시기는 3차십자군이 있었던 사자심왕 리처드와 실지왕 존 의 시기이다 개꿀잼 이벤트로 가득했던 시기였음ㅋㅋ
프로이센 주도의 독일계 부상 이전에는 프랑스 제1숙적은 영국이었다지
크킹 그랜드시나리오 1066년하면 결단으로 저거 흉내낼수있음 근데 그러면 클레임 ㅈㄴ걸리면서 암살이랑 전쟁 존나들어온다
섬형성: 이대로 유럽대륙에ㅐ서 쫒겨날수없다! 영끌해서 한타싸움! 유럽ㅉㄱ:뭐여 다 끝난거 아니야? 또 싸우자고? 그래서 저 이후로 가스코뉴부터 백년전쟁 시작되었던거 같은데
존 왕 때 저렇게 프랑스 영토를 빼앗겼어도 남은 영토에서 거두는 세금이 영국 전체의 세금보다 많았다.
ㄴㄴ 가스코뉴 수입이 전체 세금이 아니라 잉글랜드 '관세' 수입과 맞먹었고 그것도 100년 동안 개발딸 열심히 쳐서 14세기초에나 그정도에 이른 것
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469/0000602896?sid=103 근거자료 부탁드립니다.
뭔 와인 칼럼을 가져오냐
차라리 꺼무위키를 보샘
https://m.news.nate.com/view/20181019n04997 와인 칼럼이 맘에 안 드신다니 다른 걸 드리죠. 그리고 아무나 수정할 수 있는 위키를 믿는 게 더 이상하지 않습니까?
위키가 더 정확한데? 위에 인용된 Jonathan Sumption의 The Hundred Years War 1: Trial by Battle 서술은 안 보임? 국내 ↗문가들이 가스코뉴 조세가 잉글랜드 전체 조세보다 많았다도르 어쩌고 하는 것은 전쟁의 진짜 원인도 모르고 걍 그정도나 되니까 전쟁했겠지~ 하고 지래짐작해서 퍼나르는 헛소리고
Over the whole war, the English government raised nearly £9.3 million pounds from direct taxes on surplus income and indirect taxation on exports and imports.17 On average, therefore, the extraordinary tax burden was over £79,400 per annum. This can be compared to a gross income of around £20,000–£30,000 from the crown’s ordinary (or domain) revenues 전쟁 기간 동안 잉글랜드 정부는 잉여소득에 대한 직접세와 수출입에 대한 간접세로 거의 930만 파운드를 조달했다. [[[따라서 전쟁세 수입은 연간 79400파운드가 넘었다.]]] 이는 [[[왕실의 통상적인 수입 (또는 왕령지 수입)에서 발생하는 약 2~3만 파운드]]] 규모의 수입과 비교할 수 있다. -Tony K. Moore and Adrian R. Bell, 'Financing the Hundred Years War'
14세기 잉글랜드 평시 정부 수입은 양모 등 관세 수입 연 1.3만 파운드 + 왕령지 수입(지대+법정수입 등) 2~3만 파운드로 평균 3~4만파운드였고, 전시에는 의회의 동의를 얻어서 관세 몇 배로 늘리고 추가 세금 걷어서 평균 8만 파운드에 달했음
상세한 출처를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