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직장 가지게되면 선배들한테 가장 먼저듣는 소리가 뭔줄암? 시간을 돈으로 산다임. 실제로도 그렇고, 공감이 안가면 졸업후에 일해보면 절실히 느낌.
만약 수도권 거주자면서 사회경험없는 학생이라면 이렇게 설명하는게 좋겠네. 같은 서울에 있는 직장을 다녀도 집이 서울 밖에 있는것과 서울 안에 있는 것. 그게 과연 시간적으로 공정한 상황이 될까? 인간에게 시간이란 것은 의미 있게 쓰이는 시간을 말하는것이지 허무하게 지내는 시간이 아니란 말이지
시간을 돈으로 산다. 그걸 누가 모를까?
이미 대학원 다닐때도 느끼고 있었고, 이후 직장다니고 있는 와중에는 더 체감이 심한데 말야.
근데 내가 위에 말했잖아.
다른 불공정한 예시를 모르는거 같은데, 모든 사람은 하루 24시간을 산다. 이건 그나마 공정한 축에 드는거라니까?
물론 네 말마따나 일일히 따지자면 불공정한거 맞지.
근데 이 마저도 불공정하다고 여긴다면, 세상엔 공정한것 채 하나 없을뿐이며, 공정해지도록 점차 바뀌는것 조차 무의미하게 만드는일이다.
그렇게 말한다면 구조적으로 오는 빈곤에 대해 무시하겠단 소린데 그야 말로 파리의 다리만 보는 수준의 판단임. 실질적인 것이 무엇인가를 봐야하며 그것이 해결이 어렵더라도 문제임을 인지하고 있어야 사회가 더 발전하게 됨. 왜 신도시를 개발하며 이미 개발된 도시의 교통 시스템을 여러뮤로 혁신하려 하는지 그걸 이해 못하는 애라면 사회성이 떨어지면서 자기 전공에만 매몰된 석박이랑 다를게 뭘까. 전공이 뭔지 모르겠지만 시간의 흐름은 같더라도 부의 유무에 따라 시간의 가치는 달라짐. 그것도 부의 차이를 생각하거라도 심할정도로 극단적으로
시간의 절대적인 공정함은 누구든지 24시간만 가질 수 있다는거고
그렇기에 되려 나의 24시간과 누군가의 24시간은 같을 수 없다는 불공정이 오죠
사람마다 시간을 쓰는 효율이 다르니까요
윗글에선 이동시간이 나왔지만
무언가를 배우는데 걸리는 시간
무언가를 하는데 걸리는 시간은 모두 다르고
일상의 모든일은 한정된 24시간 안에서 나눠써야 하죠.
문제임을 인지하는건 맞는 소리야.
근데, 문제랍시고 그저 우에엥 불공정해요 이것도 저것도 불공정 해요 하며 주저리주저리 늘어놓는건 문제를 인지할지 언정, 개선시키고자 하는건 채 1도 없지. 그건 녹음기도 가능해.
문제를 해결하려면, 인지하고, 개선시키고자 하는게 필요하며, 개선시키기 위해선 필연적으로 무언가를 적용했을때 전후의 비교가 들어가기 마련이다.
네가 이미 써놨듯이 신도시건 교통 시스템의 확장 등등의 방법은 그것들을 적용하기 전후의 상황을 비교하며, 적용했을때가 더 공정하다고 생각했고, 그걸로 남들을 설득했기 때문이지.
비교 없이 문제만 인식한채로 시간이 흐르면 어느순간 해결법이 뿅하고 튀어나올수 있냐라고 물으면 사회물 이전에 학생이라도 아니라고 할거다.
맞지.
근데 난 그걸 부정한 적이 없다.
비교적 공정한 축에 드는것이라고 했지.
학연 지연 혈연들과 그로인해 발생하는 수많은 불공정에 비하면 하루 24시간은 공정하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로 공정한 편에 속한다.
근데 그마저도 불공정하다고 한다면, 엄밀히 따졌을 땐 맞을지 언정, 묻고 싶은데 있지.
본인들에게 있어 공정한건 무엇이며,
그 주장으로 내고자 하는 결론은 세상은 암튼 불공정해. 꼴랑 하나인가?
ㅇㅇ 그저 불공정해만 외치면 뭐가 해결되나?
그게 ㅈ같으면 벗어나거나 치우려고 뭔가라도 해봐야지.
그냥 불공정해만 말해봤자 해결되는건 없다.
그래서 물어본거야.
너도 인지했지만, 모든게 불공정하다고 했지. 그러면 거기서 벗어나거나 치우기 위해 뭘 해봤냐고.
근데 본인도 할말이 없는지 그렇게 나온다면야 나도 더 할말 없어.
내 할말은 이미 위에서 마쳤으나, 거기에 추가해서 니가 한말로 되돌려 줄게.
어떤 삶을 사는지 모르겠지만, 니 인생이니 그저 불공정해만 외치면서 살아봐.
그리고 가난은 대물림되지
몇몇 예외케이스는 있지만, 보편적으로는
부자 부모가 마음에 여유가 있어 자식에게 더 잘 대해주고
가난한 부모와 일에 시달리는 부모는 스트레스 때문에 정서적으로 애를 못 케어해줌
물질적으로 가면 걍 확고부동하게 부자 부모가 더 많은 지원을 해줄 수 있고
자식을 서울에 못낳았다? 그럼 서울태생과 달리 내 자식은 나중에 통학이든 취업이든 추가비용이 발생함
가난한 사람 혹은 힘없는 사람을 돕자고 하는데
도와서 해결이 되는 사람도 있지만
도와도 해결이 안되고 상태유지가 최선인 사람도 있음.
정말 현실적으로 답없는 - 현대의학으로 해결할 수 없는 질병, 장애, 복지로 해결할 수 없는 무능력 - 사람들을 위해서
희망자는 고통없이 편안한 죽음을 제공하는게 좋다고 봄.
무상의료 실행해도 진짜 가난한 사람들은 생활비가 없어 치료 못받음.
안락사는 의사가 결정하는거라 위험하고
환자가 직접 실행하는 조력자살을 복지화해야 함.
그냥 허용만하면 돈이 없어 못죽음.
불가능성은 그것이 이루어지기 전까지의 불가능성이지
민주주의라는건 정말로 '가능한' 체제라서 세계에 퍼진줄 아시는지?
자유의 이념마저도 현실적 제약을 통해 이야기하자면 오늘날과 같은 형식적 수준에서도 불가능한데 무슨 이상주의를 비판합니까
타협과 배제는 다른 말이 아니고 포기와 소외도 다른 말이 아닙니다
죽어야만 하는 자를 선별하는 사회는 다름아닌 선별을 통하여 죽어야만 하는 자를 만드는 사회입니다
모든 가능성에 대한 재고라는 환상 자체가 형이상학인데 무슨 현실성을 따집니까?
진정한 현실이란 늘 인식의 비정합성 속에 있는 순수 잠재태에 대한 목도입니다
상징적 질서 속에서는 이 잠재태를 살해함으로써만 정합성을 지닌 것처럼 행위할 뿐이지요
참고로 양친 가계 모두 신체적으로든 정신적으로든 안좋은 가족력이 있고 거기서 평생 헤어나오지 못할 것이라는걸 심신으로 체감하고 있습니다
가끔은 이 고통을 견디는 것보다 죽는게 낫지 않은가? 하는 되도않는 헛소리가 머릿속을 맴도는 것도 사실이고요
하지만 앞서 말했듯 모든 가능성은 재고된 것이 아닙니다. 그렇기에 철저한 절망 속에서 절망이라는 정합성에 균열을 내는 불가능성을 보고 악착같이 살아갈 뿐이지요
사회는 자신의 무능력한 부분을 인정하는게 아니라 도려냄으로써 없애려는 것일 뿐입니다
나치가 유대인을 없애듯이요
그게 정말로 '희망자'인지
아니면 희망자로 몰리게 된 '희생양'일지는 모르겠습니다
정말로 순수하게 개인의 선택이라는게 존재하며, 인간의 행동원리가 사회적 관계나 중압과 무관하게 이루어지는거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까? 그런 세상에서 가망없는 인간이 악착같이 살아남는다는 것은 죄악이나 우둔함처럼 여겨진다면? 혹은 그 이상으로 실천적인 문제가 된다면? 그걸 온전히 계산하거나 감수할 수 있으리란 생각이야말로 순진한 것 아닙니까?
앞서 말했듯 상징적 질서는 잠재태를 살해함으로써만 정합성을 갖춘다고 말했습니다
불가능성으로 낙인찍고 단념함으로써 그것을 더 이상 문제삼지도, 풀어내려는 노고를 견디려고도 하지 않으려는 술책이 될 수도 있죠
물론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소비가 미덕이지요
고치는 것보다는 버리는 것이 싸게 먹히니까요
인간도 다릅니까?
그것은 마치 저의 선천적인 질병이 나을 수 있는 방법을 묻는 것과 같습니다
없습니다 절대로
제가 살아가는 것은 단지 이러한 확고한 절망의 믿음을 깨부술 수 있는 체계의 내속적 결함에 도박수를 던지는 것일 뿐이지요
어차피 죽을 삶이라면 시험은 해보고 죽어야만 하지 않습니까
연속된 실패로 학습된 무기력에 빠진 이들에게
조력자살은 또한 가장 손쉬운 해결책이 될 것입니다
그렇기에 저는 자살에 대해서는 니체의 말에 동의하는만큼 반대합니다
모든 이가 초인이 될 수는 없지만, 모든 이가 초인이 될 수 없는 것에 그친다면 그것은 초인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정작 니체가 쉬운 길을 택했다면 초인은 심연 속에서 걸어나오지 못했을테니까 말입니다
그러므로 언젠가 죽어야하는 삶이고 어떠한 고통에도 의미가 없을지언정 저는 더 어려운 길을, 그럼에도 삶을 살아가기를 촉구하겠습니다
그 이유란 삶이 있어야만 삶의 문제도 있고 그렇기에 삶의 해결이 있다는 사실에 있습니다
푸쉬킨의 말처럼 고뇌란 삶의 특혜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저는 소망합니다 절망에 의해 죽음에 이르는 자들이 희망을 얻기를
대지가 그들을 회복시키고 축복하기를.
PS.하나 제가 오류를 저지른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대안이 없다는 말입니다
대안은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것은 무엇일까요?
'불가능성에 직면하는 것'입니다
단지 그것을 이루기 위해 우리가 포기해야하는 것은 개인적인 특혜나 자신의 정체성 등의 자잘한 것들이지요
그러므로 여기서 '진정으로' 불가능한 것은 이상을 이루려는 행위가 아닙니다
우리의 나르시시즘과 상징적 지위(상징적 삶)를 포기하는 것입니다
PS.하나 제가 오류를 저지른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대안이 없다는 말입니다
대안은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것은 무엇일까요?
'불가능성에 직면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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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몫까지 남을 도와주세요.
그런 능력이 많아지시기를 바랍니다.
예전에 의대생이 술 쳐마시고 지 혼자 자빠져 죽은건 연예인들까지 나서서 무고한 사람 살인자로 몰아갔지만 항만 노동자 죽은건 입 싹닫았잖아
가난에는 이자가 붙는다는 말이 참 와닿는다
부자놈들이나 돈있는 놈들이 죽으면 뉴스가 나오지만 가난은 뉴스조차도 안나온다
그래서 가난한 사람들끼리 모여서 유일하게 부자들이랑 동등한 힘인 투표를 좀 하자고..... 왜 다들 갈라지고 난리야.....
저번 슈퍼볼 끝나고 라스베이거스를 떠나는 셀럽들 전용기.
🏐Wilson🏐
가난에는 이자가 붙는다는 말이 참 와닿는다
가끔 씹부자들이 새벽같이 일어나서 하루를 시작하니까 니들도 그렇게 해라라는 말에 반박하는짤로도 유명하지
첫번째는 별로. 그렇게 따지자면, 세상에 공정한건 없지.
🏐Wilson🏐
저번 슈퍼볼 끝나고 라스베이거스를 떠나는 셀럽들 전용기.
ㅇㅇ 완전히 공정한건 없지. 그런데 그걸 꼬아서 우리는 공정해!!라고 티배깅하는 더러운짓은 하지말란 말이지
아니지. 그럼 공정해지자는 모든게 무의미해질뿐이지. 모든게 불공정하지만 그래도 그나마 그중에서 공정한 축에 드는게 모든 사람은 하루 24시간을 살아간다야. 그 조차 따져서 불공정하다고 한다면, 애초 공정해지자를 정의할 방도가 없지.
첫직장 가지게되면 선배들한테 가장 먼저듣는 소리가 뭔줄암? 시간을 돈으로 산다임. 실제로도 그렇고, 공감이 안가면 졸업후에 일해보면 절실히 느낌. 만약 수도권 거주자면서 사회경험없는 학생이라면 이렇게 설명하는게 좋겠네. 같은 서울에 있는 직장을 다녀도 집이 서울 밖에 있는것과 서울 안에 있는 것. 그게 과연 시간적으로 공정한 상황이 될까? 인간에게 시간이란 것은 의미 있게 쓰이는 시간을 말하는것이지 허무하게 지내는 시간이 아니란 말이지
이미 직장자체가 노동자의 시간을 돈으로 사는거임. 돈이 있으면 다른사람의 시간을 그만큼 쓸 수 있지.
시간을 돈으로 산다. 그걸 누가 모를까? 이미 대학원 다닐때도 느끼고 있었고, 이후 직장다니고 있는 와중에는 더 체감이 심한데 말야. 근데 내가 위에 말했잖아. 다른 불공정한 예시를 모르는거 같은데, 모든 사람은 하루 24시간을 산다. 이건 그나마 공정한 축에 드는거라니까? 물론 네 말마따나 일일히 따지자면 불공정한거 맞지. 근데 이 마저도 불공정하다고 여긴다면, 세상엔 공정한것 채 하나 없을뿐이며, 공정해지도록 점차 바뀌는것 조차 무의미하게 만드는일이다.
이거보고 바닥깔개 사러 다이소 간다
그렇게 말한다면 구조적으로 오는 빈곤에 대해 무시하겠단 소린데 그야 말로 파리의 다리만 보는 수준의 판단임. 실질적인 것이 무엇인가를 봐야하며 그것이 해결이 어렵더라도 문제임을 인지하고 있어야 사회가 더 발전하게 됨. 왜 신도시를 개발하며 이미 개발된 도시의 교통 시스템을 여러뮤로 혁신하려 하는지 그걸 이해 못하는 애라면 사회성이 떨어지면서 자기 전공에만 매몰된 석박이랑 다를게 뭘까. 전공이 뭔지 모르겠지만 시간의 흐름은 같더라도 부의 유무에 따라 시간의 가치는 달라짐. 그것도 부의 차이를 생각하거라도 심할정도로 극단적으로
시간의 절대적인 공정함은 누구든지 24시간만 가질 수 있다는거고 그렇기에 되려 나의 24시간과 누군가의 24시간은 같을 수 없다는 불공정이 오죠 사람마다 시간을 쓰는 효율이 다르니까요 윗글에선 이동시간이 나왔지만 무언가를 배우는데 걸리는 시간 무언가를 하는데 걸리는 시간은 모두 다르고 일상의 모든일은 한정된 24시간 안에서 나눠써야 하죠.
문제임을 인지하는건 맞는 소리야. 근데, 문제랍시고 그저 우에엥 불공정해요 이것도 저것도 불공정 해요 하며 주저리주저리 늘어놓는건 문제를 인지할지 언정, 개선시키고자 하는건 채 1도 없지. 그건 녹음기도 가능해. 문제를 해결하려면, 인지하고, 개선시키고자 하는게 필요하며, 개선시키기 위해선 필연적으로 무언가를 적용했을때 전후의 비교가 들어가기 마련이다. 네가 이미 써놨듯이 신도시건 교통 시스템의 확장 등등의 방법은 그것들을 적용하기 전후의 상황을 비교하며, 적용했을때가 더 공정하다고 생각했고, 그걸로 남들을 설득했기 때문이지. 비교 없이 문제만 인식한채로 시간이 흐르면 어느순간 해결법이 뿅하고 튀어나올수 있냐라고 물으면 사회물 이전에 학생이라도 아니라고 할거다.
네네 그렇게 인지하고 사세요..
맞지. 근데 난 그걸 부정한 적이 없다. 비교적 공정한 축에 드는것이라고 했지. 학연 지연 혈연들과 그로인해 발생하는 수많은 불공정에 비하면 하루 24시간은 공정하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로 공정한 편에 속한다. 근데 그마저도 불공정하다고 한다면, 엄밀히 따졌을 땐 맞을지 언정, 묻고 싶은데 있지. 본인들에게 있어 공정한건 무엇이며, 그 주장으로 내고자 하는 결론은 세상은 암튼 불공정해. 꼴랑 하나인가?
그리 답한다면야 뭐 나도 같은 의미로 밖에 받아쳐줄수 밖에 없어. 아무튼 세상 불공정해. 만 인지하고 살아봐라. 그것만 생각해봤자 개선되는게 있을진 모르겠지만 말야.
ㅋㅋㅋㅋㅋ 그러니까 다른 것들보다 덜 불공정하니까 닥치고 만족 안하면 만족안한사람은 그냥 불만종자라는 논리잖아 ㅋㅋㅋ 아니라고하자면 본인의 논리가 지리멸렬한걸 인정해야하니 힘들겠지만 ㅋㅋㅋㅋㅋ 세상에 ㅋㅋㅋㅋ
그냥 이까지만하고 말랍니다 ㅋㅋㅋㅋ 혼자서 불만없이 사세요 ㅋㅋㅋ 얼마나 우화등선처럼 사시는지 조금 궁금하긴합니다만 뭐 ㅋㅋ 본인 인생이니
ㅇㅇ 그저 불공정해만 외치면 뭐가 해결되나? 그게 ㅈ같으면 벗어나거나 치우려고 뭔가라도 해봐야지. 그냥 불공정해만 말해봤자 해결되는건 없다. 그래서 물어본거야. 너도 인지했지만, 모든게 불공정하다고 했지. 그러면 거기서 벗어나거나 치우기 위해 뭘 해봤냐고. 근데 본인도 할말이 없는지 그렇게 나온다면야 나도 더 할말 없어. 내 할말은 이미 위에서 마쳤으나, 거기에 추가해서 니가 한말로 되돌려 줄게. 어떤 삶을 사는지 모르겠지만, 니 인생이니 그저 불공정해만 외치면서 살아봐.
부자놈들이나 돈있는 놈들이 죽으면 뉴스가 나오지만 가난은 뉴스조차도 안나온다
루리웹-0296870379
노동현장에서 죽은 대학생보다 술마시다 강에 빠져죽은 의대생이, 배가 가라앉아 바다에 빠져죽은 난민들보다 잠수함 타다 수중폭발로 죽은 부자들이 더 주목받았지.
요즘도 인턴 돈안주나
가난을 거꾸로하면 난가?
어흑 ㅠ
난가?
씁쓸하군
예전에 의대생이 술 쳐마시고 지 혼자 자빠져 죽은건 연예인들까지 나서서 무고한 사람 살인자로 몰아갔지만 항만 노동자 죽은건 입 싹닫았잖아
헉
후자는 친누나가 2주동안 울고불고 언론사에 계속 자기 동생 죽은거 알아달라고 해서야 겨우 나왔다
예전도 아님 2020년대 일임 ㅋㅋ
의대생 건에 대해 언론이고 여론이고 과몰입하는 꼬라지가 레알 유머였음
사실 연예인도 몇몇 그랬음
조국 사태에 이은 레알 광기 그 자체였음;;
그래서 가난한 사람들끼리 모여서 유일하게 부자들이랑 동등한 힘인 투표를 좀 하자고..... 왜 다들 갈라지고 난리야.....
가난한 이 스스로조차 가난을 멸시하고 조금만 더 잘풀리면 확 살아날 수 있다는 꿈에 떠다니길 원하기 때문이다...본문에 적혀있는 대로
그 가난한 사람들이 가스라이팅 당해서 부자들 편을 든다
비뚤어진 원영적 사고방식인 듯?
실제로 마태효과라는 말이 있음. 마태복음에서 예수가 한말을 인용해서 이름붙은건데 가만 내버려두면 가난한 자는 갈수록 가난해지고 부유한 자는 갈수록 부유해진다는 효과임
모두가 낙인을 두려워하지 않고 연대하길 선택할 수 있는 강한사람으로 살 수 있다면 참 좋을텐데
열심히 일하고 열심히 살면되지
주택을 소유하는게 주거비가 제일 싸다는 첫줄부터 방지턱 너무 쎈데 주택사는데 들어간 돈이랑 대출은 생각을 안하나
대부분 주택 사는 이유는 그 대출 이자가 전월세 비용보다 저렴하다는 판단이 섯기 때문에 사는거임
가난하면 집을 살 정도의 돈을 모을 수가 없고 집 사는데 필요한 고액대출도 받을 수가 없음
안정적으로 거주하고싶어서 사는거지 같은집에 살거면 무조건 전세가 더 쌈
요즘 계속 증명되고 있듯이 전세는 하이퍼수퍼킹갓리스크 도박이잖아요.
출발선상의 불공평을 얘기한 거겠지
대신 사기 리스크 비용을 안는거지
우리집 화장실 타일 부서졌는데 전체 시공비 300드니까 방치했거든 130깨짐 ㅅㅂ
돈으로 행복울 살 수는 없는건 맞지만, 행복을 추구할 시간은 살 수 있지 돈 없으면 시간을 살 돈을 버느라 시간을 소비해야 하고
가난도 이제 지쳐 벗어나고 싶은데 그래서 노력하고 악착같이 아끼는데도 어디서 돈이 새는지 나라는 좋아진다면서 물가는 천정부지로만 올라가지 어쩌라는걸까
몇개는 맞지만 몇개는 그냥 꼬아서 보는것같은데
하지만 가난한 사람을 경멸하지는 말자. 요새 그런 분위기가 심해지는 것 같음.
솔직히 태어나고 싶지 않았다
세상은 더 좋아지고 있는건 확실함 옛날의 가난한 사람보다 현재 가난한 사람이 더 살기 좋은 것처럼 이런건 말해봤자, 알아봤자 바뀔 수 없음 사회가 가진 본질인걸 해결방법은 과학발전밖에 없다 과학만세
가난은 대신 세금 안내잖아~
난 내 대에서 끝나야 한다고 생각함 이짖거릴 자식에게 물려줄순 없어
ㅇㅇ 내가 아이를 낳는건 그 아이에게 죄를 짓는거..
시간은 누구에게나 공평하지 않다.
그리고 가난은 대물림되지 몇몇 예외케이스는 있지만, 보편적으로는 부자 부모가 마음에 여유가 있어 자식에게 더 잘 대해주고 가난한 부모와 일에 시달리는 부모는 스트레스 때문에 정서적으로 애를 못 케어해줌 물질적으로 가면 걍 확고부동하게 부자 부모가 더 많은 지원을 해줄 수 있고 자식을 서울에 못낳았다? 그럼 서울태생과 달리 내 자식은 나중에 통학이든 취업이든 추가비용이 발생함
솔직히 미래를 위해서 돈안받고 일하라는게 제일 개소리인게 당장 돈이 없어서 굶어죽을판에 미래를 위하란다. 미래생각할 시간에 뒤지는데.
그럼 우리들이 할수있는건 없구나 ㅠㅠ
난 소시민이고,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서 내 행복을 찾을거야.
인간이 문명을 이룬 지성체니 신의 모사품이니 지들끼리 딸쳐봤자 실제로는 그냥 동물일 뿐이라 더 좋은 환경일수록 생존하고 번식하기 쉬워지는건 똑같지
그럼 안태어나는데 정답이구나
그게 최고겠지만 그건 선택할 수 없으니 살게 되어버린 이상 아둥바둥 거리면서 기어 올라가려고는 해봐야지. 똥통에 찌그러져 있는다고 아무도 나를 구해주지 않을테니.
가난은 고통스러운 늪이다...
맞말이지
킹쩔 수 없지 내가 더 잘하는 것 뿐
의학의 발전으로 예전에는 부자던 가난하던 비슷하게 죽었는데 이제는 부자랑 가난한 사람도 수명까지 달라짐
부자는 슬퍼도 밴츠에 앉아서 마음을 가라 앉힐 수 있지만 가난한 자는 밴치에 주저 앉을 수 밖에 없다.
택배기사님 돈 많이 버셔…
가난한 사람 혹은 힘없는 사람을 돕자고 하는데 도와서 해결이 되는 사람도 있지만 도와도 해결이 안되고 상태유지가 최선인 사람도 있음. 정말 현실적으로 답없는 - 현대의학으로 해결할 수 없는 질병, 장애, 복지로 해결할 수 없는 무능력 - 사람들을 위해서 희망자는 고통없이 편안한 죽음을 제공하는게 좋다고 봄. 무상의료 실행해도 진짜 가난한 사람들은 생활비가 없어 치료 못받음. 안락사는 의사가 결정하는거라 위험하고 환자가 직접 실행하는 조력자살을 복지화해야 함. 그냥 허용만하면 돈이 없어 못죽음.
상징적 죽음에 있는 인간은 실제로도 죽을 수 있도록 장려하다니 이제 가망없는 사람을 죽일 수 있는 시스템마저 갖춰지는구나
당연히 해결책이 있다면 그게 최선이죠. 가령 실생활이 가능한 기본소득과 무상의료이 동시에 진행된다면 ... 하지만 그건 현실성이 너무 떨어지는 이상주의죠. 최악의 경우를 상상하지 못하는 방관적 복지나 사회보장으로는 한계가 있습니다.
이건 당장 힘든 사람 죽게 내버려 두자는 글이 아닙니다. 우리가 직면한 인구폭발 후 노령화와 4차혁명으로 인한 일자리 감소. 이를 직시한 주장입니다.
불가능성은 그것이 이루어지기 전까지의 불가능성이지 민주주의라는건 정말로 '가능한' 체제라서 세계에 퍼진줄 아시는지? 자유의 이념마저도 현실적 제약을 통해 이야기하자면 오늘날과 같은 형식적 수준에서도 불가능한데 무슨 이상주의를 비판합니까 타협과 배제는 다른 말이 아니고 포기와 소외도 다른 말이 아닙니다 죽어야만 하는 자를 선별하는 사회는 다름아닌 선별을 통하여 죽어야만 하는 자를 만드는 사회입니다 모든 가능성에 대한 재고라는 환상 자체가 형이상학인데 무슨 현실성을 따집니까? 진정한 현실이란 늘 인식의 비정합성 속에 있는 순수 잠재태에 대한 목도입니다 상징적 질서 속에서는 이 잠재태를 살해함으로써만 정합성을 지닌 것처럼 행위할 뿐이지요
애초에 직면한 문제라는 것들 또한 한 때 사회가 불가능성으로 낙인찍고 배제했던 것들이 회귀한 양상과 다름 아니지 않습니까
싸우자는건 아니고 질문입니다. 그럼 대안을 가지고 계신지요? 현대의학으로 해결 못하는 질병, 선천적 유전적 한계로 인한 무능력자. 이런 이들의 고통이나 통증을 줄여줄 수 있는 방법이요.
그 방법이 우회적이고 친화적인 방식의 사회적 타살일 필요는 없을 뿐입니다 이 세상에는 대처할 방법이 없는 무의미한 고통의 연쇄들이 존재한다? 사실입니다 하지만 또한 유일한 방법은 죽음을 내리는것이다? 그러면 저부터 죽어야겠네요 저도 선천적 한계로 고통받으니까요
참고로 양친 가계 모두 신체적으로든 정신적으로든 안좋은 가족력이 있고 거기서 평생 헤어나오지 못할 것이라는걸 심신으로 체감하고 있습니다 가끔은 이 고통을 견디는 것보다 죽는게 낫지 않은가? 하는 되도않는 헛소리가 머릿속을 맴도는 것도 사실이고요 하지만 앞서 말했듯 모든 가능성은 재고된 것이 아닙니다. 그렇기에 철저한 절망 속에서 절망이라는 정합성에 균열을 내는 불가능성을 보고 악착같이 살아갈 뿐이지요 사회는 자신의 무능력한 부분을 인정하는게 아니라 도려냄으로써 없애려는 것일 뿐입니다 나치가 유대인을 없애듯이요
저의 첫 댓글에 '희망자' 라고 명시해두었습니다. 물론 악용될 위험도 있겠죠. 하지만 악용되지 않은 제도는 없습니다. 그걸 보완해 나갈 뿐이죠.
그게 정말로 '희망자'인지 아니면 희망자로 몰리게 된 '희생양'일지는 모르겠습니다 정말로 순수하게 개인의 선택이라는게 존재하며, 인간의 행동원리가 사회적 관계나 중압과 무관하게 이루어지는거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까? 그런 세상에서 가망없는 인간이 악착같이 살아남는다는 것은 죄악이나 우둔함처럼 여겨진다면? 혹은 그 이상으로 실천적인 문제가 된다면? 그걸 온전히 계산하거나 감수할 수 있으리란 생각이야말로 순진한 것 아닙니까? 앞서 말했듯 상징적 질서는 잠재태를 살해함으로써만 정합성을 갖춘다고 말했습니다 불가능성으로 낙인찍고 단념함으로써 그것을 더 이상 문제삼지도, 풀어내려는 노고를 견디려고도 하지 않으려는 술책이 될 수도 있죠 물론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소비가 미덕이지요 고치는 것보다는 버리는 것이 싸게 먹히니까요 인간도 다릅니까?
제 주장의 부족함을 지적하시는 건 좋은데 정작 대안은 말씀 안하시네요. 그냥 방치하는게 최선일까요?
대안이 없다는 것 만이 답입니다 없는 대안을 억지로 만드려고 하는 것은 강박증적 전략이지요 1차 대전 이후 독일의 상황에도 답은 없었지만 없는 답을 만들기 위해 나치를 창조했듯이요
그것은 마치 저의 선천적인 질병이 나을 수 있는 방법을 묻는 것과 같습니다 없습니다 절대로 제가 살아가는 것은 단지 이러한 확고한 절망의 믿음을 깨부술 수 있는 체계의 내속적 결함에 도박수를 던지는 것일 뿐이지요 어차피 죽을 삶이라면 시험은 해보고 죽어야만 하지 않습니까
저도 동의합니다. 하지만 연속된 실패로 학습된 무기력에 빠진이들에게 조력자살은 마지막 손길이 될 것 입니다.
그리고 스스로 죽음을 원하는 사람 외에도 세상에는 사회 일반으로 '저런 놈은 죽어야 한다.' 라는 평가를 받는 사이코패스 범죄자도 있다는 것을 기억해주세요.
연속된 실패로 학습된 무기력에 빠진 이들에게 조력자살은 또한 가장 손쉬운 해결책이 될 것입니다 그렇기에 저는 자살에 대해서는 니체의 말에 동의하는만큼 반대합니다 모든 이가 초인이 될 수는 없지만, 모든 이가 초인이 될 수 없는 것에 그친다면 그것은 초인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정작 니체가 쉬운 길을 택했다면 초인은 심연 속에서 걸어나오지 못했을테니까 말입니다 그러므로 언젠가 죽어야하는 삶이고 어떠한 고통에도 의미가 없을지언정 저는 더 어려운 길을, 그럼에도 삶을 살아가기를 촉구하겠습니다 그 이유란 삶이 있어야만 삶의 문제도 있고 그렇기에 삶의 해결이 있다는 사실에 있습니다 푸쉬킨의 말처럼 고뇌란 삶의 특혜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저는 소망합니다 절망에 의해 죽음에 이르는 자들이 희망을 얻기를 대지가 그들을 회복시키고 축복하기를. PS.하나 제가 오류를 저지른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대안이 없다는 말입니다 대안은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것은 무엇일까요? '불가능성에 직면하는 것'입니다 단지 그것을 이루기 위해 우리가 포기해야하는 것은 개인적인 특혜나 자신의 정체성 등의 자잘한 것들이지요 그러므로 여기서 '진정으로' 불가능한 것은 이상을 이루려는 행위가 아닙니다 우리의 나르시시즘과 상징적 지위(상징적 삶)를 포기하는 것입니다
PS2. '죽어야 할 인간', 그걸 호모 사케르라고 부릅니다
PS.하나 제가 오류를 저지른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대안이 없다는 말입니다 대안은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것은 무엇일까요? '불가능성에 직면하는 것'입니다 ================================================ 제 몫까지 남을 도와주세요. 그런 능력이 많아지시기를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하지만 자신이 지는 몫은 공제할 수 없습니다 능력이 없는 저도 마찬가지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