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2년 어느 날, 일을 마치고 귀가했더니 아내가 식탁에 전지가위를 놓고 앉아 있었다. 미소 띤 표정이라 별 큰일은 아니다 싶었지만 지갑을 내놓으라는 지시엔 어딘가 께름칙한 구석이 있었다.
어쨌든 난 시키는 대로 지갑을 건넸다. 아내는 텍사코 주유 신용 카드를 꺼내 듬성듬성 세 조각으로 잘랐다. 당시만 해도 젊은 부부에게 수시로 발급되던 카드였다.
나는 카드가 매우 유용한 데다 리볼빙 서비스*까지 받는다고 따졌으나 아내는 고개를 저으며 우리 빈약한 가계로는 이자를 감당하기도 힘들다고 잘라 말했다.
“유혹의 근원을 없애는 게 나아. 나도 벌써 잘랐어.”
아내의 선언이었다.
그것으로 끝이었다. 그 후 2년간 우리는 신용 카드 하나 없이 지냈다.
사실 잘한 일이었다. 정말로. 20대 초반의 나이에 키워야 할 아이가 둘이나 되는 부부라 생활이 여간 빡빡한 게 아니었기 때문이다.
<해가 저문 이후> (스티븐 킹 지음, 조영학 옮김) 중에서
요약
아이 둘 키우는 20대 부부라는 빡빡한 경제 상황에서 스티븐 킹 아내가 철부지 남편에게서 리볼빙*되는 신용카드를 제거함.
*리볼빙. 정식 명칭은 '일부결제금액이월약정'. 신용카드 결제금액의 일부만 먼저 갚고, 나머지는 나중으로 미뤄서 갚을 수 있는 서비스
리볼빙으로 이월한 금액 뿐 아니라 다달이 추가되는 카드값의 일부도 계속 이월되기 때문에 갚아야할 원금은 시간이 지날수록 커진다. 원금이 커지니 원금에 붙는 이자도 불어난다.
리볼빙하라는 전화 좀 그만 받았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