뛰고. 소리치고. 구르고.
기어이 나선 촌장에게 티그가 먼지가 날 때까지 처맞으면 하루가 끝난다.
“난 베니야.”
그리고 베니는 베니다.
***
그러면 구체적인 하루일과는 어떨까.
판은 티그가 기획한다고 하나, 실제로 매일 그런 건 아니었다.
“하핫! 점치는 유령이 오늘은 촌장이 제일 약해지는 날이랬어! 오늘이야 말로 촌장 눈을 감기겠다!”
“아침은 눈을 감는 게 아니라 뜨는 시간이란다.”
드물지만 티그가 아침부터 촌장의 심기를 건드리는 날도 있기 때문이다.
“에헤이. 오늘 아침 일정부터 조진 것이다.”
솥에 솥발을 셋 세우면 본체만 쏙 털어먹는 책략가.
사료스탕스의 두뇌인 루포의 선견은 정확했다.
촌장은 요통으로 약해져도 촌장.
아직 미숙한 촌장 후보인 티그는 촌장을 촌/장으로 만들 수 없었고.
“크윽. 어째서지. 싸울 때를 완벽하게 잡았는데!”
“늘 말하잖니. 싸움은 때와 상대를 모두 보고 걸어야 한단다.”
촌장의 하복부에 깔린 채 완전한 마운트 자세를 줘버렸다.
칼도 놓친 티그가 할 수 있는 일은, 뒷통수가 땅에 박힐 때까지 펀치를 허용하는 것밖에 없었다.
칼을 놓친 티그는 몸도 머리도 허접에 불과했으니까.
루포는 마침 놀러 온 버터가 내어준 사료를 나눠 먹으며 상황을 분석하고, 결론을 내렸다.
“어쩔 수 없는 것이다. 했던 거나 하면서 노는 수밖에.”
“난 베니야.”
“알겠다는 것이다. 오늘은 문 소품 대역 안 시키는 것이다. 대신 버터한테 시킬 것이다.”
“어……?”
예상치 못한 인선.
버터는 놀란 나머지 들고 있던 사료를 떨어트렸다.
***
뭐, 대충 그리하여.
티그가 빠진 사료스탕스는 이런 식으로 예전에 저지른 일을 다시 일으키며 놀았다.
“아~아! 거기 수인들!”
“난 베니야.”
“알까보냐! 차단기 고장나니까 그만 밀어!”
위로 올리면 열린다는 걸 알게 된 모나티엄의 차단기를 굳이 밀어서 열려고 하거나.
***
“예? 수소 커틀릿은 소로 만든 돈까스가 아니라고요? 거짓말! 거짓말이야!”
돈까스라는 미지의 음식을 기다리던 엘프에게 잔혹한 현실을 알려주거나.
베니는 아무리 엘프라도 꿈을 너무 잔인하게 부쉈다 생각했는지 그녀의 등을 토닥여줬다.
***
“꺄아아악! 양갱이야! 양갱 비가 내려! 누구야! 누가 폭탄 들고 양갱 창고에 들어간 거야!”
“난 베니야!”
“베니! 부른다고 답하면 안 되는 것이다! 빨리 달리기나 하는 것이다!”
일주일에 한 번 정도 터지지 않으면 이상한 요정왕국 왕궁을 조금 터트리거나.
요정여왕의 비명은 오늘도 엘리아스에 드높이 울렸다.
오후 3시 31분에 어울리는 비명이었다.
한편, 크레페와 함께 분리수거 중이던 교주는 비명을 듣고 생각했다.
저녁은 카레가 좋겠다고.
***
사료스탕스의 놀이는 해가 뉘엿뉘엿 저물어갈 무렵에 끝난다.
하루종일 뛰어다녀서이기도 하지만, 보통 그즈음에 사태를 수습하러 나온 촌장에게 붙잡히기 때문이다.
왕궁이 폭발할 즈음에 촌장에게 이실직고하러 간 버터를 제외한 사료스탕스 전원은 머리에 혹을 단 채 해산하기로 했다.
“그럼 내일 보는 것이다!”
“씌이……. 난 종일 혼났는데 니들만 놀았어?”
“난 베니야.”
“시끄러! 내일 훈련에서 넌 무조건 문 역할이야! 점심까진 뒤집고 있어!”
내일은 좀 힘들겠다는 생각에 베니의 동글동글한 곰 귀가 조금 처졌다.
동시에, 생각했다.
힘든 하루가 시작되기 전에 꿀을 충분히 준비해둬야겠다고 말이다.
***
“오, 베니 왔나.”
“난 베니야.”
“알아 알아. 늘 마시던 거면 된다는 거지.”
촌장의 집에서 조금 떨어진 수인 부락의 식당.
교주가 운영하는 연회장을 보고 영향받은 너구리 수인이 흉내내는 가게다.
정작 요리할 줄은 몰라서 메뉴는 한정적이다.
식사는 호숫가 흙으로 빚은 진흙 주먹밥과 모나티엄 사료. 중간중간 밤을 꽂은 양갱.
드링크는 코미에게서 공급받는 코미 주스와 마녀왕국산 불법 두유.
메뉴에는 없었으나, 너구리 수인은 호수에서 낮에 낚아올린 연어와 코미주스 한 잔을 내어줬다.
“큰 놈이야. 오늘은 낚시가 잘 되더군.”
그 말대로 나쁘지 않은 크기다. 배를 채우기에 적합하다.
하지만 내일을 대비해야 하는 더 큰 걸 원한다는 눈빛을 보냈다.
“훌륭한 사냥꾼의 눈이로군.”
베니는 호응해주지 않았다.
원하는 답이 아니었으니까.
그저 코미 주스를 한 모금 했을 뿐이다.
코미주스 특유의 쿰쿰하면서 시큼한, 시트러스의 노스텔직한 향이 베니의 목을 알맞게 축였다.
“…그런가. 겨울잠을 자는 곰의 인내심은 대단하다지. 내가 졌네.”
이내 패배를 인정한 식당 주인은 메모지에 약도를 그려줬다.
“얼마 전에 발견한 벌집일세. 규모는 촌장 집 두 채 정도. 안에는 쥬비와 꿀이 가득하겠지.”
실로 좋은 정보.
그제야 베니의 입가에 미소가 걸렸다.
“그냥 걱정해서 하는 말인데. 벌집을 찾으러 가서 벌집이 될지도 몰라. 괜찮겠나? 사료스탕스하고 같이 가는 건 어때?”
식사를 위해 사료스탕스가 벌침에 찔리는 위기를 겪어도 되는가?
둘을 잠시 저울질한 베니의 고개는 좌우로 천천히 움직였다.
꿀은 달콤하나, 동료를 팔아 얻을 만큼 매력적이지는 않았으니까.
힘든 길을 선택한 베니는 주먹으로 자기 가슴을 툭툭 쳐 보이며 답했다.
“난 베니야.”
어깨에 도끼가 짊어졌다.
당당한 걸음이 향하는 곳은 땅거미 진 숲의 깊은 곳.
오늘 밤, 곰의 내장은 달달한 꿀로 채워지리라.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