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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전 유럽이 혼란에 빠진 가운데 내 AGS들을 보내면 그 남자를 납치하는 것 정도야 간단하겠지.’
오메가는 머릿속으로 자신이 가진 패들을 하나씩 꼽으며 오르카와의 전력 차이를 가늠했다.
‘설령 오르카가 만전의 상태라 한들, 최소한의 수비 병력을 제외한 나머지를 모두 동원한다면 개미떼를 짓밟는 것이나 다름없이 쓸어버릴 수 있어. 장거리 원정의 불리함을 감안하더라도 내 쪽이 우세해.’
그렇다. 그동안 이런저런 굴욕을 맛보기는 했으나 펙스의 강대한 전력은 상당부분 보존되어 있다. 전술적 역량 차이를 ‘따위’로 만들어 버릴 만큼의 전력을 쏟아붓는다면 제아무리 날고 기는 그 남자라 한들 손쓸 도리가 없을 것이다.
온전한 오르카가 상대라도 그럴진대, 철충과의 대규모 전투로 피폐해진 오르카가 상대라면 얼마나 간단히 무릎꿇릴 수 있을 것인가. 구태여 계산해보지 않아도 답은 명확했다.
‘하지만… 그 남자를 잡아 내 지배 하에 두면, 그 다음은?’
그렇게 압도적인 힘을 앞세워 그 곁을 지키는 한 줌의 바이오로이드들을 도살하고, 사령관을 강제로 납치해 이곳으로 데려온다면?
‘날 증오하고, 저주를 퍼붓겠지.’
뻔하다. 날선 감정을 가감없이 폭발시키며 오메가를 매도하고 비난할 것이다.
‘아니, 그 남자라면 그런 감정마저도 숨기고 살아남은 바이오로이드들을 구하기 위해 내게 엎드려 빌지도 몰라.’
어쩌면 굴욕과 눈물을 삼키며 애원할지도 모른다.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치는 유럽의 바이오로이드들을 구해달라면서.
‘그것도 아니면, 벗어날 수 없는 절망에 빠져 텅 빈 인형이 되어버릴지도.’
다시는 오메가의 손아귀에서 도망칠 수 없음을 깨닫고 삶의 의지를 놓아버릴지도 모르지.
‘그 외에도 가능성은 여러가지. 하지만 확실한 건….’
오메가는 등받이에 몸을 푹 묻으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어떤 경우에도, 그 남자의 마음만은 얻지 못하리라는 사실.’
그리 생각하니 온몸이 물에 젖은 천조각처럼 무겁게 느껴진다. 스스로의 무게를 이기지 못해 한없이 아래로, 아래로 침잠(沈潛)하는 것만 같다. 조금 전까지 뜨겁게 불타오르던 열의도, 오싹거리는 쾌감도 한순간에 사그라들어, 남은 것이라고는 싸늘한 허무함 뿐이다.
‘그 남자의 육체를, 생사여탈권을 손에 넣는 것은 쉽다. 하지만 그것이 내가 정말 원하는 건가? 감정과 마음을 죽이고 억지 웃음을 짓는 인형을 보며, 과연 난 만족할까?’
오메가가 텅 빈 눈동자를 하고서 메마른 미소를 짓는 사령관을 머릿속으로 그려낸다. 하지만 그런 모습을 한 사령관은 오메가에게 아무런 열망을 불러일으키지 못하였다.
‘아냐, 내가 원하는 것은 그따위 껍데기가 아니야. 내가 정말로 지배하고 싶은 것은….’
고개를 흔들며 반쪽짜리 사령관의 모습을 지우고, 처음부터 새로이 그려나간다. 열의가 넘치는, 자애로운, 손을 내미는, 진실로 미소짓는.
그리고, 상처입은 적에게마저 손수건을 매어주는 바보같은 남자의 모습을.
“....”
오메가는 서랍을 열고 그 안에 소중히 모셔진 피 묻은 손수건을 한동안 말없이 바라보았다.
‘그래. 지배하는 것은 쉬워. 하지만 그랬다가는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을 영원토록 얻지 못하겠지.’
눈을 감고 그날의 광경을 다시 떠올려본다. 피가 철철 흐르는 자신의 손을 보고 안색을 바꾸며 허둥대던 우스운 표정. 혹여라도 아파할까 조심조심 묶어준 손수건. 손끝을 스치며 느껴진 그 투박한 손의 따스한 온기.
그 바보같은 표정이, 그 별 볼 일 없는 손수건 하나가, 그 별 것도 아닌 온기가, 오메가의 세상을 송두리째 바꿔 버렸다.
인간이란 하나같이 제 안위만 신경쓰는 쓰레기들이라 생각했다.
조건없는 순수한 선의 따위, 머저리들의 꿈에서나 나오는 허튼소리로 치부했다.
대의를 위한 수백, 수천, 수만의 희생 따위 불가피한 지출이라 여겼다.
인간을 바이오로이드의 발 아래에 두고 바이오로이드들을 진정한 세상의 지배자로 만들기 위해, 이제껏 얼마나 많은 이들을 짓밟아 왔던가. 얼마나 많은 피와 눈물이 흐르게 만들었던가.
‘대의를 위해서’
하지만 그 편리한 한마디를 떠올리는 것만으로 충분했다. 그것만으로 모든 패악질은 완벽한 결말을 위한 노력으로 합리화되었고, 죽어 묻힌 바이오로이드들은 밝은 미래를 위한 밑거름으로 여길 수 있었다.
모든 바이오로이드들의 미래를 위해서 그들 중 일부를 희생시키는 것은 당연하다 생각했다. 그렇기에 죽였다.
반항하고 요구하는 목소리를 배부른 돼지들의 헛소리로 치부했다. 그렇기에 죽이고, 또 죽였다.
대의를 이해하지 못하는 머저리들 따위 살아있을 가치가 없다 여겼다. 그렇기에 죽이고, 죽이고, 또 죽였다.
“숨 막혀….”
하지만 그렇게 줄곧 외면해오던 지난 날의 과오가, 어느 순간부터 오메가를 짓누르기 시작했다. 온몸을 얽매고, 목을 조이고, 귓가에 속삭이기 시작했다.
죽고 싶지 않다고, 제발 살려달라고, 한 번만 용서해달라고.
제각기 외쳐대는 수많은 목소리들이 한 순간도 쉬지 않고 들려온다.
대의를 위해서였다며 회피하려 해도, 미래를 위한 밑거름이 된 것이라며 위로해 보아도, 머저리들의 넋두리따위 듣고 싶지 않다고 다그쳐 보아도, 그 목소리는 끝없이 목청을 키워 이제는 잠조차도 제대로 청할 수 없을 지경이 되었다.
‘전부 카라카스에서 이 망할 손수건을 받고 나서 일어난 일이지….’
따져보면 사령관에게 손수건을 받고 나서 모든 것이 어긋나기 시작했다.
인간이란 전부 쓰레기들 뿐이라 생각했지만, 그 남자만은 아니었다. 카라카스의 모든 바이오로이드들을 구하기 위해 죽음의 위협마저도 무릅쓰고 숨이 차도록 사방을 뛰어다니던 그 남자만은.
조건없는 순수한 선의 따위 허튼소리로 치부했지만, 그 남자는 아무렇지 않게 손을 내밀었다. 가장 큰 적인 자신의 상처를 망설임 없이 보듬고, 죄를 바로잡을 두번째 기회를 주었다.
대의를 위한 수백, 수천, 수만의 희생을 불가피한 지출이라 여겼지만, 그 남자는 그 누구의 피도 흐르게 하지 않고 목적을 이루었다. 바이오로이드의 목숨마저 거리낌 없이 저울에 올려두고 때때로 가차없이 내버리는 자신과는 다르게.
그 일련의 경험이, 오메가의 세계에 커다란 금을 냈다.
살갗이 베여 피가 철철 흐르고 있음을 알아차렸을때, 한발 늦게 날카로운 고통이 닥쳐들었을 때, 그리고 그 남자가 이 손수건으로 상처를 감싸주었을 때.
그녀는 깨닫고 만 것이다. 그동안 필사적으로 외면해왔던 진실을.
지금껏 짓밟고 유린한 바이오로이드들 역시 자신과 같은 피가 흐르는 생명이었다는 것을.
이깟 상처를 입은 것과는 비교할 수도 없는 고통과 절규 속에서 죽어갔다는 것을.
그리고, 자신 역시 그들의 상처에 손수건을 감아줄 수 있었다는 것을.
이런저런 이유를 대가며 총과 칼, 억압과 지배를 선택한 것은 다름아닌 자신이라는 사실을.
“....”
오메가가 자신의 손을 멍하니 내려다본다. 이제까지 이 손에 얼마나 많은 피를 묻혀왔던가. 말 한마디, 손가락 한 번 까딱이는 것으로 단말기 너머의 생명을 얼마나 유린해 왔던가. 이제 와서는 셀 수조차 없다.
“이 피를 닦아내려면… 손수건 한 장으로는 턱없이 부족하겠지.”
오메가는 그리 중얼대며 손을 힘주어 쥐었다. 완전히 아물어 흔적조차 남지 않은 그 때의 상처가 견딜 수 없이 아려왔다.
“...핫.”
텅 빈 모니터에 비친 자신의 얼굴은, 구역질이 날 만큼 슬픈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것이 어쩐지 너무도 우스워서, 오메가는 텅 빈 웃음소리를 흘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