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또 영국에서 시작하는 이야기
지금의 아프리카 케냐가 영국의 식민지였던 시절,
영국은 물자와 노동력의 원활한 공급을 위해 철도를 건설하려 했고,
다른 식민지인 인도인들과 케냐인들을 동원해
차보강 이라는 작은 강에 다리를 건설하는 공사를 진행했다.
1898년 3월부터
수천명에 가까운 케냐인과 인도인이 공사에 동원됐는데
공사가 진행중이던 어느날 밤,
작업자들이 하나 둘씩 비명을 지르며 사라지기 시작했다.
범인, 아니 범사는 바로 인근을 떠돌던
갈기 없는 수사자, "두마리"
당시 노동자들은 사자를 내쫓으려 밤에 휘파람을 불거나
모닥불을 피우거나, 임시로 가벽을 만드는 등의 행위로 막아보려 했지만
그 어떤 방어도 통하지 않았고 사자에 의한 살인은 계속됐다.
결국 도망쳐 죽으나 사자에게 먹혀 죽으나
뭐든 다를바 없던 식민지 노동자들 다수가 도주를 택했고
당시 식민지 관리인이었던 영국인은 그깟 사자 따위가 하며 무시하다가
조수가 살해당하고, 본인도 등에 커다란 상처를 입고 간신히 도주해
공사는 임시적으로 중단,
결국 영국은 식민지 인도에서
군인이자 사냥꾼인 세포이를 투입했고
현장 지휘관이자 군인인 존 헨리 패터슨과 함께 사자 사냥에 나섰다.
결국 1898년 12월 말에야 두마리의 사자를 모두 사냥하는데 성공했고
패터슨은 자신의 성공적인 사냥감의 가죽을 벗겨 장식용으로 사용으며
이 사자의 이야기로 자서전도 쓰면서 크게 유명해지고,
이 사자를 주제로 영화나 소설 등 다양한 미디어 컨텐츠가 만들어진다.
두 마리의 사자는 "차보 맨이터" 로 불리며
25년이 지난 1924년
시카고 필드 자연사 박물관이 당시 5천달러,
현재가치로 1억 2500만원에 가죽과 두개골을 패터슨에게 구입해 전시중으로
최근 연구가들이 차보 맨이터 두마리의 이빨자국에 남은 DNA를 조사한 결과
이들은 실제로 사람을 잡아먹었으며,
패터슨이 말한 130명이 넘는 숫자는 과장됐지만
(아마 패터슨은 사자가 무서워 도망친 사람도 포함했을 것)
그래도 70여명은 잡아먹혔을 것이라고 하는데
이들이 사람을 잡아먹었던 이유는
1890년대 아프리카에 퍼진 들소 감염병으로 먹잇감이 사라졌고,
게다가 이 두마리는 모두 이가 썩어 큰 먹잇감을 사냥하기 힘든데
반대로 낮동안 일하다가 밤에 지쳐 쉬는 사람들이 여기저기 널려있어서
사람을 먹잇감으로 삼았을 것이라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