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 반포때 최만리가 반대 상소하고 정창손이 급발진 하면서 세종이 극심한 반대에 부딛혔다고 보는 이미지가 있는데.
사실 저정도면 평소 조선의 문화에서 굉장히 온건하게 반대한거임.
진짜 조선 사대부들이 빡쳤을때 나오는 그 행사가 나왔다는 기록이 없거든.
도끼들고 차라리 날 죽여라 왕놈아 .하는 지부상소도 없었고
유생들의 집단 연판장이자 이 분야의 최고 레벨이라고 할 수 있는 만인소도 없었음.
정말 한글 반포가 명나라와의 관계에 큰 장애가 되고 유생들의 기득권을 위협하는 중대한 사건이라고 인식했다면.
정창손이 급발진으로 안끝남.
실제로 기록을 봐도 최만리의 상소와 정창손의 급발진 이후에 딱히 더 이상의 반발이 없었음.
지부상소나 만인소는 사림 활성화 이후에나 나오는거 아님? 저 시대는 사대부라고 해봐야 관료들이 대부분이고 바로 전 왕 시절 기억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인데 대놓고 덤빌순 없지
지부상소나 만인소는 사림 활성화 이후에나 나오는거 아님? 저 시대는 사대부라고 해봐야 관료들이 대부분이고 바로 전 왕 시절 기억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인데 대놓고 덤빌순 없지
나중일이긴하지만 결국에는 오히려 관리들이 너무 언문(한글)만 써서 정작 중국과의 외교문서를 작성할 관리가 없다고 푸념 아닌 푸념이 기록에도 나오지
반포자이
저때 반포가 성공해서 반포자이가 비싼거지
정창손 집에 화포를 쐈어야 하는 건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