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이 성리학을 메인으로 밀긴 했지만 조선 내에선 유학이란 바운더리에 속하기만 하면 허용해줌.
가령 성리학 기반의 이황, 이이 학파나 성리학에 불교, 도교 테이스티를 첨가한 서경덕, 조식 학파가 공존했고.
지방의 산림들은 지네들끼리 알아서 연구하고 공부하는 경우도 제법이라 다양한 유교 이론이 존재하던 사회임.
이황 아래서도 윤근수 같은 사람은 스승님이 가르치시던 성리학 좋지, 근데 고전 유학은 더 좋다는 식으로 월정학파를 구축하거나
강화도에는 사파소리 듣던 양명학을 메인으로 삼은 정제두의 강화학파 같은 경우도 있었음.
예컨대 순애물 빠는 사람들끼리 모여서 순애물 좋지, 근데 피폐순애물도 괜찮은 것 같고, 좀 당혹스럽지만 ntr 순애도 괜찮은거 같다는 씹덕 모임체 같은 것임.
그래서 성리학을 모르는 선비는 있을 수 있음. 단, 유학을 모르는 선비는 존재할 수 없었음.
성리학이 메인스트림일 뿐 다른 학파들도 허용됐다는거?
성리학이 메인스트림일 뿐 다른 학파들도 허용됐다는거?
ㅇㅇ
실질적으로 동양에서 기독교가 시작했으면 다 허용되었을거임!
그래서 받아들이면서 왕권신수설같은것도 같이 유입되었으면 많이 다르긴했을듯
사실 성리학의 다음 목표는 민주주의 였음
이건 현대에서 성리학=유교로 인식해서 생긴 오류에 가깝지
너 윤근수 문집 읽어보고 입터는건 맞냐 ㅋ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