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속 혁명 게르
여기는 ‘컨티뉴어스 레볼루션 게르’
텔레폰 성냥의 불꽃으로 전화하세요
혁명은 계속됩니다
어떤 종류의 혁명이냐구요
그건 당신이 정하세요
혁명의 주체는 당신이니까요
당신이 혁명을 꿈꾸는 한 혁명은 계속됩니다
별들이 밤하늘에 빛나는 한
말들이 대초원을 계속 달려가는 한
한 생애의 눈발들을 다 맞고 난 뒤에도
여전히 당신을 위한 겨울은 준비되어 있으니까요
꿈? 꿈이라뇨
이건 혁명에 관한 이야기죠
당신이 그토록 오랫동안 꿈꾸던
바로 그 혁명에 관한 레시피
리스본의 벼룩시장인 ‘여자 도둑 시장’에서
당신이 진짜로 여자 도둑을 보았다고 생각한다면
당신은 여전히 혁명을 꿈꾸고 있는 거죠
뭐라구요
리스본엔 가본 적이 없다구요
아예 여권도 없다구요
지금 당장 만들어드리죠
텔레폰 성냥의 불꽃으로 전화하세요
폭설에 의해 고립된 당신의 밤을
확실히 해제해줄 여권을 만들어드리죠
여권을 열면 무슨 노래가 흘러나오게 해드릴까요
수아드 마시?
프랑수아즈 아르디?
아말리아 로드리게스?
그건 당신 취향대로 하세요
당신의 여권에서 흘러나오는 노래에 따라
출입국이 통제될 수도 있을 테니까요
가령 당신의 여권에서 파두가 흘러나온다면
리스본의 높은 언덕 바이루 알투의
‘클루브 데 파두’로 당신을 안내해드리지요
28번 전차를 타고 가면 돼요
붉은 지붕들 사이로 난 작은 골목을 따라
빨래들이 나부끼는 방향으로 가면
밤의 파두 클럽들이 나오지요
파두는 바다의 노래
파두는 밤의 노래
파두는 어쩌면 당신 여권에서 흘러나오는 노래
여기는 ‘계속 혁명 게르’
텔레폰 성냥의 불꽃으로 전화하세요
혁명은 계속됩니다
가령 당신이 오지 않는 밤이면
나는 천문관측소 계단에 앉아
탕헤르로 떠난 배의 안부를
별들에게 물어보기도 하지요
카시오페이아는 더블유
큰곰자리는 세븐
아임 미싱 유니까요
황도십이궁을 따라가며
새들은 계절의 혁명을 노래하죠
리스본에서 블라디보스토크까지
톡톡, 이야기는 계속 이어지죠
그런 얘기 하나 들려드릴까요
아주 긴 이야기
당신이 내 이야길 듣다
고요히 잠들 수 있는 이야기
끊임없이 이어지는 밤의 이야기
당신은 어떤 이야길 좋아하나요
당신의 취향을 알아야 이야기를 계속할 텐데
밤은 참 짧아요
그리고 이젠 나도 잠들어야 하니까요
그래요, 오늘 못한 이야기는 다음에 하지요
다음 이 시간엔
‘진부 필름 스튜디오’
창설사에 관한 이야기를 해드릴까요
아니면 블라디보스토크 역 근처에 있는
‘타오르는 마음의 혁명 호텔’ 이야길 들려드릴까요
당신이 선택하세요
혁명의 주체는 당신이니까요
텔레폰 성냥의 불꽃으로 전화하세요
혁명은 계속됩니다
그래요, 지금까지 여기는
라디오 ‘계속 혁명 게르’였어요
잘 자요, 당신
EL CHE VIVE!
삶이라는 직업
박정대, 문학과지성 시인선 39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