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크리틱 10점 만점을 역대 최다로 받은 수작. 젤다 최신 시리즈인 <젤다의 전설: 브레스 오브 더 와일드>, 국내 유저들이 편히 부르는 이름대로는 '야숨(야생의 숨결 준말)'에 붙는 수식어다. 가감 없이 그대로 사실이며, 출시와 동시에 엄청난 호평을 받았다. 스위치는 곧 젤다 머신이라고 불리기도 할 만큼, 스위치의 발매 타이틀이 되어 준 야숨은 이제껏 젤다 시리즈는 물론 그 어떤 게임이 받은 찬사 이상의 찬사를 받고 있다.
내 나이 서른. 젤다도 30주년을 맞았다. 젤다 시리즈의 팬은 아니지만, "초록옷 입은 애가 젤다죠?"를 진심으로 믿을 정도로 무관심하진 않다. 젤다 시리즈 중 명작으로 꼽히는 <황혼의 공주>와 <시간의 오카리나>를 플레이하진 않았어도, WiiU 버전으로 리마스터된 <바람의 택트(바람의 지휘봉)>는 성실히 플레이했다. 사실 <바람의 택트>는 첫 번째이자 마지막 작품이 될 줄 알았다. 아무리 유명 시리즈라 해도 노가다성 짙은 JRPG의 특징을 배제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특히 바람의 택트에서의 반복되는 배타기와 무슨 의미가 있나 싶은 미니게임들은 정말 적성에 안 맞았다.
이번엔 다를 거란 생각이 들었다. 전 세계가 입을 모았다. 이걸 안 해보면 안 된다고 목 놓아 외치고들 있었다. 출시일은 마침 생일이었고, 아이러니하긴 하지만 WiiU의 장례식을 치러주겠다며 WiiU 버전 야숨을 호기롭게 구입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스위치를 구매해버렸고, 반나절 정도를 고민하다 스위치 버전의 야숨을 구입했다. 초반에는 사실 이게 왜 이렇게 인기일까 시큰둥했지만, 새로운 지역을 두 어개쯤 발견하고 나니 어느새 빠져들어 있었다.
사원 위치와 공략, 파츠별 구입법, 퀘스트 공략 등이 담긴 가이드북은 필구 상품일 수밖에 없었다. 콜렉터스 에디션은 하드커버 양장본이라 책장 장식에도 아주 훌륭하고, 사원과 코록씨앗 위치가 담긴 대형 지도라든지 게임에 없어선 안 될 소중한 정보가 많다. 인터넷으로 검색해서 찾는 것보다는 훨씬 보기에도 좋고 친절하다. 영어로 되어 있긴 하지만 그림이 워낙 자세해서 게임 플레이를 할 정도면 아무런 문제가 없다.
하나만 사야지 하고 골랐던 울프링크 아미보도 야무지게 썼지만, 게임에 대한 애정도가 짙어질수록 이번 작품의 콘셉트로 제작된 아미보를 추가 구입했다. 아미보 얘기를 좀 길게 해보자면, 닌텐도 게임들에서 아미보는 단순한 피규어 이상의 기능을 한다. 각 게임별로 특수하게 대응하는 아미보들이 있지만, 그렇지 않은 보통의 아미보도 자잘한 보상을 주기도 한다. 야숨에서는 젤다 시리즈 관련한 아미보들마다 고유한 기능을 다양하게 제공한다. 하루에 한 번씩 각각의 아미보를 연동하면 효과가 발동된다.
울프링크는 옛 시리즈의 아미보지만 효용이 꽤 특별해서 인기가 좋은 편. 일부 제한된 지역이 아닌 곳에서 대응하면 울프링크가 나타나 함께 전투를 해준다. 이번 시리즈의 아미보에 속하는 야숨젤다와 야숨링크는 각각 보석류와 궁수무기류를 제공한다. 아미보를 대응하면 박스가 하늘에서 떨어지는데, 발로 시크하게 차주면 열려서 보상이 짜잔. 네 가지 등급으로 최고 등급은 거의 나타나지 않지만 늘 유용한 무기와 식량을 얻을 수 있다. (게다가 그냥 두어도 너무 예뻐서 산다면 이것을 사세요.) 마리오나 요시 같은 관련성 1도 없는 아미보들도 식량을 주기 때문에 꼬박꼬박 아미보 혜택을 받으며 플레이했다. 물론 시스템 시간을 돌려 어뷰징 할 수도 있겠지만 뭐 그렇게까지는...
동화 같은 선에 따뜻한 색감. 나뭇가지를 흔드는 바람소리며, 차분한 음악은 플레이하는 유저의 마음을 평화롭게 만든다. 배경인 하이랄은 침통한 상황이고 젤다와 네 지역의 챔피언들은 목숨 걸고 싸웠지만 그래도 아름답다. 예쁜 게 그렇게도 중요하냐고 묻는다면, 다 좋은데 예쁘기까지 하니 훌륭하다고 말할 수 있는 것 아닐까. 재미도 없고 지치기만 한다면 예뻐봐야 소용없을 테니까. 조금 더 보고 싶고, 조금 더 새로운 곳에 가고 싶은 마음이 들게 만드는 건 게임으로 만드는 마법이라고 할 만하다.
퀘스트를 얻고 해결하는 과정에서 백여 개의 사원을 공략해서 체력과 스태미나를 높이는 과정은 분명 엄청난 노가다. 하지만 사원은 기발한 퍼즐로 가득하고, 사원을 발견하는 것 또한 새로운 발상이 필요한 곳이 많다. 사원은 물론 인벤토리를 넓혀주는 데 필요한 코록씨앗을 찾는 일은 마치 보물찾기를 하는 재미를 준다. 찾았을 때 만족할 만한 보상이 있는 흥미진진한 보물찾기 말이다. 링크의 기억 찾기는 또 어떤가. 배경 정보가 거의 없이 시작하는 유저는 100년 동안 잠들었다 깨어난 링크의 마음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런 링크의 기억을 되찾아가는 과정은, 링크에게도 플레이어에게도 젤다 공주에 대한 애정을 모락모락 피어나게 한다.
이 모든 건 게임에 빠져들게 하는 이 게임의 완성도에 기인한다. 동일한 시스템을 다른 게임에 누군가 녹여냈다고 해도, 이런 감성과 연출로 표현하지 못한다면 이만큼 매력적으로 느껴지지 않을 것 같다. 오픈월드이기 때문에 유저는 마음 내키는 대로 세상을 돌아다닐 수 있고, 진행하고 싶은 퀘스트를 마음 내킬 때 진행할 수 있다. 시작은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는 상황에 놓일 수 있지만, 그 아무것도 모르는 상황에 마주하는 이벤트들은 깨알같이 귀엽다. 보통의 복붙 퀘스트들과는 차원이 다르다. 이 또한 반복하다 보면 패턴이 있긴 하지만, 다른 게임에서 겪어 온 것보다는 훨씬 신선하다. 특히 퀘스트들이 게임 분위기와 맥락에 너무 잘 어우러져서 제대로 된 오픈월드를 경험하는 느낌을 준다.
UI/UX도 정말 훌륭하다. 메인 퀘스트인 신수 획득과 수집 요소 및 체력 정보의 진행 내용을 로딩 화면에서 보여주는 것도 마음에 들고, 지도에 마킹하면 인게임에서도 나침반처럼 확인할 수 있어 굉장히 편리하다. 인벤토리와 스탯 정보도 직관적이다. 야숨은 날씨의 영향도 많이 받고 요리를 통해 무수한 재료를 더 많은 수의 음식으로 섭취할 수 있기 때문에 생존게임이라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닌데, 생존에 필요한 정보를 잘 보여준다. 추운 지역이나 온도가 낮은 고산지대로 가면 링크가 오들오들 떨고, 뜨거운 사막이나 용암지대를 가면 더위로 힘들어한다. 게다가 나무 무기는 불에 타버리고, 비 오는 날 번개가 치면 쇠로 된 무기는 링크를 번개 통구이로 만들어버린다. 지금껏 다른 게임들을 하며 게임이니까 그런 건 괜찮겠지 싶었던 것들이 얼마나 많았는지, 야숨을 통해 깨달을 수 있었다. 모든 게 게임이어도 현실처럼 일어나버리는 리얼 오픈월드.
링크의 기억을 모두 찾고 막보스인 가논을 물리치면 진엔딩을 볼 수 있다. 맨날 간절한 목소리로 울던 젤다 공주가 말갛게 웃어주는 건 내가 링크인 것마냥 너무 흐뭇하다. 솔직히 권선징악 빼면 내용이라곤 거의 없고, 어차피 이럴 줄 알았던 엔딩인데 괜히 눈물 날 것 같았던 엔딩. 끝이 다가올 때 집으로 돌아가는 비행기를 타러 가는 기분과 비슷했으니, 정말 하이랄 여행을 했다고 해도 좋지 않을까.
이런 좋은 짜임새로 디테일하게 만들어 낸 개발자들의 아이디어와 제작 능력은 스포트라이트를 받기에 충분하다. 누가 말했다. 이 게임이 있어 고맙다고. 또 다른 누군가도 말했다. 이 게임에 끝이 있다는 게 유일한 단점이라고. 그들의 말에 공감한다. 비루한 체력과 모자란 무기로나마 꽤 달렸는데 엔딩 보고 지도 열면 나오는 진행률은 고작 26%였다. 여긴 얼마나 넓었던 걸까. 한글화 업데이트되면 신규 다운로드 콘텐츠도 플레이할 겸, 다시 떠나야 할 것 같다.
※ 개인 블로그에 작성했던 글입니다.
https://realkkan.blog.me/221108221456 (2017. 9. 29.)
글을 되게 잘 쓰시네요.
앗.. 감사합니다.
젤다 야숨... 언젠가 꼭 해보고 싶은 게임이예요.
최고의 게임이라고 단언하진 못하겠지만, 특별한 게임인 건 확실한 것 같아요. 꼭 경험해보면 좋을 게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