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전: 회색의 잔영, 단순 이식 넘어서 완전판으로
‘창세기전(The War of Genesis)’… 90년대 국산 패키지 게임 시대를 거쳐온 게이머라면 누구든 가슴 설렐 제목이다. 하지만 한편으로 MMO로 선회한 후속작의 실패와 개발사 소프트맥스 폐업, IP만 가져다 쓴 어설픈 모바일 게임화 등 고전의 씁쓸한 말로를 적나라하게 보여주기도 했다.
다 꺼져가던 ‘창세기전’의 불씨를 이어받은 것은 라인게임즈 김민규 대표였다. ‘창세기전’ 시리즈의 열렬한 팬으로 알려진 그는 2016년 ESA(구 소프트맥스)로부터 관련 IP 일체를 인수했다. 또한 ‘창세기전 2’를 리메이크하여 콘솔 플랫폼으로 출시한다는 야심 찬 계획에 필자를 비롯한 수많은 게이머가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기대 반 걱정 반의 심정으로 기다리길 4년 여, 드디어 지난 6월 24일 신작 어드벤처 SRPG ‘창세기전: 회색의 잔영’ 브랜드 페이지와 PV가 공개됐다. 언리얼 4 엔진에 힘입은 고품질 3D 그래픽과 일신된 게임 시스템, 유려하면서도 원형을 잘 살린 일러스트, ‘창세기전 3’ OST를 작업한 바 있는 퀘스트로 사운드 장성운 대표의 음악까지. 그야말로 기대를 뛰어넘는 결과물이었다.
과연 ‘창세기전: 회색의 잔영’은 지난 4년간 어떻게 개발되었으며, 다가올 2022년 출시까지 어떠한 방향성을 견지하고 있을까. 이에 라인게임즈는 28일, 온라인 미디어데이를 개최하고 ‘창세기전: 회색의 잔영’에 대한 여러 궁금증을 해소하는 시간을 가졌다. 질의응답에는 레그 스튜디오 이세민 디렉터, 이경진 IP 디렉터, 라인게임즈 김정교 사업 담당이 참여했다.
본격적인 행사에 앞서 라인게임즈 김민규 대표는 “PV를 공개한 후 게이머 여러분이 남긴 의견을 하나하나 꼼꼼히 읽었다. 정말로 많은 분들이 ‘창세기전’에 대한 애정을 가지고 있음을 다시 한번 느낄 수 있는 시간이었다. 나 역시 ‘창세기전 2’ 엔딩과 ‘창세기전 3’ 피리 연주를 잊지 못하는 한 사람의 팬이다”라며 리메이크의 소회를 밝혔다.
아울러 “때문에 금번 리메이크를 준비하며 정말로 많은 고민이 따랐다. 그리고 그 고민의 끝에, 지금의 레그 스튜디오가 만들어졌다. 지금의 레그 스튜디오와 멤버들이라면 누구보다 ‘창세기전다운 창세기전’을 만들 수 있다고 믿는다. ‘창세기전’은 지나 25년 동안 정말로 큰 애정을 쌓아온 시리즈다. 나는 이 애정을 지킴과 동시에 전세계에서 사랑받는 ‘창세기전’을 만들고 싶다. 앞으로 레그 스튜디오는 어려운 도전에 나서게 된다. 부디 이 도전을 지켜봐주고 응원해주고, 또 부족한 부분은 질책해주면 좋겠다. 앞으로도 많은 관심 부탁드린다”고 인사를 전했다.
다음은 ‘창세기전: 회색의 잔영’ 온라인 미디어데이에서 이루어진 QnA를 정리한 것이다.
● 발표 시점과 출시예정일을 따지면 개발 기간만 약 6년이다. 왜 이렇게 오래 걸리나
이경진 디렉터: 처음 개발을 시작했을 때만해도 지금보다 훨씬 소규모 팀으로 리메이크를 빠르게 완료하는데 중점을 뒀다. 당시에는 닌텐도 3DS와 PS VITA로 출시할 계획이었으니까. 그런데 이 리메이크를 좀 더 제대로 만들어야 된다는 생각이 진짜 많이 들었다. 아무래도 ‘창세기전’이라는 IP가 갖는 상징성도 있었기에 일종의 사명감까지 느껴지더라. 그런 와중에 라인게임즈 김민규 대표가 결단을 내려주어 처음부터 모든 걸 다시 검토했고, 전반적인 기술 등을 정리할 수 있는 R&D 기간을 확보할 수 있었다. 이 부분에서 시간이 굉장히 오래 걸렸다.
● 상당히 개발이 진척되었다가 갈아 엎었다는 이야기로 들린다
이경진 디렉터: 그렇다. 여러가지 시행착오를 겪었는데, 그 중에는 많은 분들이 생각하는 리마스터에 가까운 버전도 있었다. 그러다 든 생각이, 우리가 ‘창세기전’ 리메이크를 빠르게 제공하는 것도 물론 중요하겠지만 가능하면 우리나라를 대표할 수 있는 IP로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전반적으로 R&D를 다시 하고 시스템도 재구축했다.
● 현재 개발을 담당하는 레그 스튜디오의 규모가 어느 정도인지
이세민 디렉터: 레그 스튜디오는 다섯 명으로 출발하여 현재도 40명이 조금 안되는 소규모다. 내가 합류했을 즈음에는 한 20명 정도 있었던가. 확실히 이 인원으로는 역부족인지라 올해 대규모 채용 계획을 갖고 있다. 이번에 PV와 함께 우리가 어떤 프로젝트를 진행 중인지 공개했으니까, 국내 게임 개발자들 가운데 ‘창세기전’ IP에 관심이 있거나 콘솔 게임을 개발하고 싶어하는 분들이 있으리라 본다. 그런 분들이 많이 지원해주었으면 한다.
● 리메이크에서 새롭게 들어가는 오리지널 콘텐츠가 있다면 소개해달라
이경진 디렉터: ‘창세기전’ 같은 경우 원작을 향한 팬덤의 애정이 굉장히 크다. 내부 개발자가 원작 대본을 정리할 때 글자 하나도 안 바꾸려 할 정도다. 그런데 사실 워낙 오래된 게임이라 문장에 잘 쓰이지 않는 표현도 많고 예스러운 느낌이 강하다. 그래서 이런 대본 하나를 정리하더라도 논의를 많이 하고 어떤 방향이 맞는지 논쟁도 벌였다. 이러한 과정을 거치면서 나름대로 우리가 생각하는 리메이크의 방향성을 잡을 수 있었다.
단순히 원작을 재현하는데 그치면 완성도나 여러 측면에서 아쉬울 수밖에 없다. 오랜 팬분들에게는 좋은 느낌을 줄 수도 있겠지만 새로운 게이머층과 잘 어울리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원작을 어느 정도 계승 및 발전시키되 현재의 기준으로 봐도 나쁘지 않은, 정말 충분히 어필할 수 있는 좋은 게임으로 완성시키는 게 중요하다. 그만큼 새로운 재미 요소가 필요하는 주의다.
‘창세기전’은 전체 이야기로 봤을 때 번외편이 상당히 많은 시리즈다. 특히 우리가 만드는 ‘회색의 잔영’의 경우 동시기를 다룬 게임이 생각보다 여럿 있더라. 피쳐폰 시절 출시된 ‘창세기전 외전 크로우’라거나 ‘낭천편’ 같은 작품들. 말하자면 그저 ‘창세기전’ 1, 2편 합본을 재현하는데 그치지 않고 동시기에 일어난 모든 일을 종합하여 하나의 완전판을 만드는 것이다.
예전에는 게임을 굉장히 빠르게 만들었다. 거의 1년에 게임 한 편을 만들던 시절이라 시간 관계상 배제된 이야기가 존재한다. 아마 원작을 즐겼던 분들이라면 뭔가 중간에 건너뛰는 듯한, 너무 빠르게 전개되는 부분을 느꼈을 것이다. 이런 부분을 꼼꼼히 확인하여 ‘창세기전’을 새로운 게이머가 느끼기에도 이야기가 잘 이어지는, 전달력이 좋은 게임으로 만들고 싶다. 대본 분량이 정말 많다. 재미있는 게임으로 완성시키고자 노력하겠다.
● 소프트맥스 출신의 최연규 이사를 영입하여 이슈가 되었는데, 구체적으로 어떤 역할을 수행하는지
이경진 디렉터: 최연규님은 ‘창세기전’ 원작자로서 시리즈의 전체적인 틀과 대본을 전부 작성한 바 있다. 그래서 우리가 리메이크를 위한 세계관 자료와 대본을 정리할 때 원작에 담긴 의도를 헤치지 않도록, 너무 다른 느낌이 나지 않도록 감수를 해주었다. 다만 그렇다고 레그 스튜디오의 일원이라는 것은 아니고, 정확히는 라인게임즈에서 게임을 개발하고 있다. ‘창세기전’ 리메이크의 감수 역할은 어디까지나 선의로서 우리를 도와주는 것이다.
● ‘창세기전 2’와 ‘창세기전 3: 파트 2’간 설정이 어긋나는데, 이런 부분도 바로잡았나
이경진 디렉터: 많은 팬들이 ‘창세기전 2’와 ‘창세기전 3: 파트 2’가 제대로 연결되는가에 의문을 품는 것으로 안다. 원작자에게 물어보니, 사실 처음부터 완전한 계획을 갖고 개발한 게 아니라 조금씩 설정이 어긋났다더라. 금번 리메이크를 통해 전체적으로 다듬을 기회가 생긴 만큼, 개발 의도와 다르게 읽히거나 시리즈 내에서 설정이 맞지 않는 부분을 최대한 수정하고자 했다.
● ‘창세기전’ 원작 시나리오의 경우 표절 논란에 휩싸인 바 있다
이경진 디렉터: 우리도 익히 알고 있으며 그런 부분도 전부 원작자에게 문의했다. 일단 ‘창세기전’ 표절과 관련하여 가장 많이 거론되는 작품은 외전 ‘서풍의 광시곡’이다. 알렉상드르 뒤마 ‘몽테크리스토 백작’이 원작이라지만 사건의 순서가 다르다던지 주인공의 탈출을 도와준 인물이 있다던지, 이런 부분은 용대운 작가의 무협 소설 ‘탈명검’과 상당히 유사하다. 특정 스킬은 아예 이름까지 같아서 이걸 두고 표절 논란이 불거진 것으로 안다.
그런데 관련 내용을 확인해보니, 원작자 최연규님이 ‘창세기전’을 개발하기 앞서 PC통신을 하다 그 용대운 작가와 알게 되어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고 한다. 용대운 작가의 연배가 훨씬 높았기 때문에 최연규님이 2년여간 자주 연락을 드리며 작법에 대해 배웠다고. 즉 최연규님에게는 자신의 정신적인 면이나 작법적인 면에서 스승이라 여기는, 정말 존경하는 작기이기에 ‘서풍의 광시곡’을 만들 때 뭔가 오마주를 넣고 싶었던 것이다. 그래서 일부러 스킬명도 그대로 쓴 것인데 이런 의도가 잘못 전달되지 않았나.
실제로 표절에 지적이 나오고 최연규님이 수차례 인터뷰로 해명하기도 했다. 그런데 아무래도 말이란 게 활자화 되면 단순하게 다루어지니까, 소프트맥스와 최연규 이사가 표절을 부정했다!는 식으로 기사가 나가며 논란이 제대로 해소되지 못했다. 당시에는 최연규님도 너무 젊었던 터라 대응을 잘 못했는데 그렇게 세월이 흘러 지금까지 오게 된 것이고. 물론 표절로 오해할 소지가 충분히 있다지만 당시 원작자의 의도는 어디까지나 오마주였다. 우리 역시 이번에 ‘창세기전’을 리메이크하며 뭔가 논란이 될 부분이 있다면 미리 다 양해를 구하거나 수정할 계획이다.
● 베라모드는 ‘창세기전 3 파트 2’와 ‘창세기전 2’의 외형이 상당히 다른 편이라, 고민이 많았을 듯하다
이경진 디렉터: 베라모드의 경우 ‘창세기전 2’에서 베라딘이라는 이름으로 등장했는데 ‘창세기전 3 파트 2’로 넘어오며 여성적인 성향이 강한 중성적인 외모로 묘사가 되었다. 나이도 태어난 지 얼마 안된 느낌이었고. 반면 ‘창세기전 2’ 베라딘은 외모도 한 30대 정도에 굉장히 원숙하면서도 무서운 인상을 풍긴다. 등장인물 가운데 칼스가 직접적으로 그렇게 언급하기도 한다. 그래서 금번 리메이크에서는 ‘창세기전 2’ 시점의 베라딘을 충실히 재현하고자 했다. 그러면 여전히 ‘창세기전 3 파트 2’와 제대로 연결되지 않는 것 아니냐고 생각할 텐데, 이 부분에 대해 나름대로 고민하여 마련한 방안이 있다. 그게 무엇인지는 게임 본편에서 확인하기 바란다.
● 팬들에게는 각 캐릭터에 어울리는 성우 선정도 중요한 요소다. 어떠한 기준으로 캐스팅했나
이경진 디렉터: ‘창세기전’ 시리즈는 외전 ‘템페스트’부터 조금씩 보이스를 지원하여 ‘창세기전 3 파트 2’는 거의 풀더빙이 이루어졌다. 그래서 특정 캐릭터를 쭉 연기해온 성우와 그걸 좋아해주는 분들이 많은 것으로 안다. 다만 워낙 오래된 시리즈인만큼 해당 성우가 다시금 배역을 맡기 힘든 사정도 있어서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이 커졌다.
그리고 이건 좀 다른 문제인데 어떤 성우는 여러 작품에 걸쳐 중요 배역을 너무 많이 맡았더라. 이런 경우 그 배역 가운데 어떤 캐릭터를 배정해야 가장 좋을지, 우리가 이번에 성우를 선택하면 앞으로 굉장히 오래 해주어야 하는데 가능할지, 이런저런 논의가 이루어졌다. 원자에 참여했던 이래연 작가가 성우 캐스팅에도 직접 참여하는데, 작중 시덤에서 각 캐릭터의 성격과 가장 어울리는 성우를 선정하고자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 출시 플랫폼을 닌텐도 스위치로 고른 특별한 이유가 있는지
이세민 디렉터: 우선 대전제는 콘솔 플랫폼에 도전하자는 것이었다. 그래서 당시 나와있던 여러 기종을 검토하는 와중에 마침 닌텐도 스위치가 출시되었고, 성능이 괜찮으면서도 우리 팀 규모에서 개발하기에 적합하다는 판단이 섰다. 또한 SRPG 특성상 액션 게임보다 들고 다니며 즐기기에 용이하다는 측면도 있어서 결정하게 됐다.
● 향후에도 닌텐도 스위치 외 플랫폼으로는 출시하지 않는 건가
김정교 사업 담당: 금번 PV를 보면 실제 전투 장면 등이 나오지만 닌텐도 스위치나 PS, XBOX 버튼 같은 UI는 보여주지 않았다. 일단은 닌텐도 스위치를 기반으로 개발하고 있지만 추후 다른 거치형 콘솔로의 확장도 충분히 가능하기 때문이다. 개발 리소스 단계에서는 닌텐도 스위치 스펙보다 상위의 품질로 제작하고 있기 때문에 추후 얼마든지 대응할 수 있다.
● 2022년 출시 예정인데, 그때면 이미 9세대 콘솔이 자리를 잡은 시점이다
김정교 사업 담당: 여기서 확실하게 스펙을 밝힐 수는 없지만, 개발 리소스 자체는 차세대기까지 포용할 수 있도록 제작 중이다.
● 콘솔 게임인만큼 DLC 판매를 통한 추가 수익화에 대해서도 듣고 싶다
김정교 사업 담당: DLC 정책에 대해서는 아직 고민 중이다. 나중에 보다 자세한 내용이 정해지면 공유하도록 하겠다. 당장은 일단 시나리오를 다 클리어한 후 도전하는 초고난이도 던전과 추가 시나리오 정도를 고려하는 단계다.
이세민 디렉터: 조금 더 설명하자면 여기서 말하는 초고난이도 던전이 바로 용자의 무덤이다. ‘창세기전’ 시리즈를 좋아하는 분들이라면 용자의 무덤이 어떤 의미인지 아시지 않나. 그 본래 컨셉에 맞게 SRPG를 보다 하드하게 즐기고픈 분들을 위한 콘텐츠로 기획하고 있다.
● ‘서풍의 광시곡’ 등 몇몇 작품이 해외에 출시되기도 했지만, 여전히 ‘창세기전’은 내수용 IP라는 인식이 강하다
이경진 디렉터: 전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국내에서 워낙 인기가 있었으니 그렇게 느껴질 뿐이지 실제로는 아주 초창기부터 해외로 진출한 시리즈다. 익히 아는 것처럼 ‘서풍의 광시곡’은 일본에서 팔콤이 유통했고 PS2로 발매된 적도 있다. 중국의 경우 간체, 번체로 다 현지화가 되었다. 따라서 금번 리메이크도 국내 게이머만을 바라보고 만드는 것이 아니고, 해외 어느 누구라도 충분히 어필할 수 있는 좋은 작품이 될 것이다. 원작부터 그런 결과를 많이 낸 시리즈이고 우리 역시 ‘창세기전’이 옛 명성을 회복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
| 김영훈 기자 grazzy@ruliweb.com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