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이한 로그라이크 속 특출한 액션, ‘젠레스 존 제로’ CBT 체험기
요 근래 중국 게임, 특히 호요버스(또는 미호요) 작품을 향한 대중의 인식과 반응은 몰라보게 달라졌다. 일찍이 ‘붕괴3rd’로 두각을 드러내던 개발사였으나 작금의 독보적 입지를 쌓은 건 역시 2020년작 ‘원신’부터. 초창기 불거진 타 게임과 유사성 논란이 무색할 만큼 벌써 3년째 큰 사랑을 받으며 견조한 성과를 이어가는 중이다. 올림픽 공원서 대규모 이벤트를 여는가 하면 홍대 건물 한 채 통으로 상설 카페를 운영하는 대출혈 서비스까지. 본지 ‘원신’과 ‘붕괴: 스타레일’ 체험기를 모두 필자가 썼는데, 이제와 다시 보니 그야말로 괄목상대라 하겠다.
호요버스의 위상이 높아진 만큼 그 차기작 ‘젠레스 존 제로(Zenless Zone Zero)’ 역시 첫 공개부터 비상한 관심을 모아왔다. 짤막한 소식조차 여러 커뮤니티에 회자되고 작년 지스타 시연의 경우 엄청난 인파가 몰렸던 일이 떠오른다. 물론 아직 개발 단계인지라 불편한 UI/UX가 걸리고 팬덤이 주력으로 삼는 ‘원신’, ‘붕괴’와 사뭇 다른 컨셉에 불호를 표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과연 호요버스다운 말끔한 만듦새라는 데 반론을 펴는 이는 거의 없었다. 지난 수개월간 얼마나 더 완성도를 끌어올렸을까. 2차 CBT에 해당하는 이퀄라이징 테스트를 통해 살펴봤다.
어느덧 세계적인 블루칩이 된 호요버스의 차기작 '젠레스 존 제로'
작년 지스타에 이어 이퀄라이징 테스트를 통해 그 면면을 살펴봤다
로프꾼이 이끄는, 본격 공동 탐사 로그라이크
앞서 ‘붕괴: 스타레일’로 드러났듯 호요버스는 자기잠식의 위험을 감수하기보다 여러 장르에 걸쳐 라인업을 확장하는 중이다. 따라서 ‘젠레스 존 제로’ 역시 ‘원신’ 아류가 아니라 독자노선을 택했다. 우선 세계관을 위시한 겉모습부터 다르다. 작중 배경은 근미래 어느 나라로 갑작스레 발생한 초자연 현상 탓에 구도심이 이세계로 집어삼켜진 상황이다. 현실과 닮은 이세계, 즉 공동(空洞)에는 그 나름의 보물과 이권이 존재하는 터라 허가된 조사 길드와 무법자인 레이더가 난립한다. 지스타 시연서 조작 가능했던 흥신소, 교활한 토끼굴도 일종의 레이더다.
다만 공동 내부는 시시각각 지형이 변화하는데다 에테르란 원소에 장시간 노출될 경우 지성 없는 괴물이 되어버릴 위험이 상존한다. 이에 공동 바깥서 정보 수집 및 경로 탐색을 보조하는 전문가가 일명 밧줄잡이, 로프꾼으로서 바로 본작의 주인공이다. 뭇 유저의 분신이 되어줄 주인공 남매는 마치 평범한 비디오 가게 점주인 듯 생활하지만 그 정체는 전설적인 로프꾼 파에톤. 초반 챕터는 대체로 이들이 교활한 토끼굴처럼 공동에 볼일이 있는 누군가(보통은 플레이어블 캐릭터)로부터 의뢰를 받아 길잡이로 나섰다 더 큰 사건에 휘말리는 흐름이다.
구도심 일대를 집어삼키며 형성된 위험하고 변화무쌍한 이세계, 공동
유저는 전설의 로프꾼 파에톤으로서 공동에 진입하는 이들을 돕는다
변화무쌍한 이세계서 한 칸, 두 칸 동료들을 이끄는 길잡이라. 머릿속에 어떠한 장르가 떠오르지 않는가? 그렇다. ‘젠레스 존 제로’는 공동 탐사라는 로그라이크(~의 요소를 가볍게 빌려왔으므로 로크라이’트’라고도 한다) 콘텐츠를 기반으로 한 액션 RPG다. 탐사 시 공동은 로프꾼의 시점, 즉 수많은 모니터가 연결되어 출력하는 지도로 나타난다. 그러다 전투가 발생했을 때만 스테이지를 통해 잠시나마 공동의 풍광이 보인다. 대다수 스테이지는 오직 전투를 위한 구성이라 짧고 선형적이다. 의뢰에 따라선 아예 싸울 일이 없는 공동 탐사 역시 존재한다.
즉 ‘젠레스 존 제로’서 내세운 공동 탐사는 전작의 여행이나 개척과는 자못 다르다. 화면 속 토끼 아이콘이 한 칸씩 움직일 때마다 실제로는 여러 캐릭터가 공동을 가로지르는 중이라지만, 어쨌든 눈에 들어오는 건 줄지어 연결된 모니터들이다. 드넓은 공동은 설정으로 존재할 뿐 필드라는 형태로 구현된 콘텐츠가 아니다. ‘붕괴’ IP를 이은 쪽은 ‘붕괴: 스타레일’이지만 짧은 스테이지 위주의 실시간 액션 RPG라는 측면에선 되려 본작과 더 닮은 셈이다. 혹시 ‘붕괴: 스타레일’이 턴제라서 실망한 시리즈 팬이 있다면 ‘젠레스 존 제로’에 기대를 걸어 봄직하다.
비디오 가게 사무실에 앉은 로프꾼 시점에서 공동은 이렇게 보인다
뱅부(토끼 아이콘)가 움직이다 전투 발생 시 스테이지로 전환되는 것
셋이서 한 몸처럼, 쉼 없이 몰아치는 콤보 액션
그러면 공동 내 여러 콘텐츠 소개에 앞서 ‘젠레스 존 제로’의 또다른 축, 액션부터 짚고 넘어가자. 한때 ‘붕괴3rd’로 “모바일서 이정도 액션을!”하고 크게 호평(…독창성과 별개로) 받은 호요버스지만 ‘원신’은 오픈월드, ‘붕괴: 스타레일’은 턴제 전투 시스템 구축에 보다 전념한 게 사실이다. 본작 또한 로그라이크 콘텐츠를 공들여 제작하긴 했으나 그보다 돋보이는 쪽은 역시 빠르고 호쾌한 액션. 간편한 조작 체계와 세 캐릭터를 기민하게 교체하며 싸우도록 고안된 콤보 스킬 및 극한 지원, 무엇보다 발군의 연출 덕분에 손과 눈이 모두 즐겁다. 바쁘되 신난다.
공동에 투입되는 일개 파티는 총 3인. 모든 캐릭터는 베기, 타격, 관통 공격과 불, 전기, 얼음, 물리, 에테르 속성 가운데 하나를 갖는다. 베기는 칼이나 낫 같은 날붙이를 든 대다수 캐릭터, 타격은 격투가 본과 가방으로 패는 니콜 등, 그리고 관통은 당연히 총기류에 해당하다. 다만 파일 벙커를 사용하는 앤톤처럼 근접형 관통 공격도 없진 않다. 속성에 따라 여러 번 타격했을 때 각기 다른 상태이상을 거는데 특히 불은 생물, 전기는 기계, 에테르는 에테리얼에게 효과적이다. 끝으로 호요버스 전작들의 성(★)과 비슷하게 태생 등급이 A와 S로 나뉜다.
모든 캐릭터는 저마다 속성, 공격 방식이 다르며 A, S등급으로 나뉜다
적을 수차례 타격하면 속성치가 누적되어 각기 다른 상태이상을 건다
전투 시 조작 체계는 평타(마우스 좌클릭), 회피(마우스 우클릭). 강타(E), 궁극기(Q), 교체(스페이스)가 전부지만 지나치게 가볍거나 얕지 않다. ‘젠레스 존 제로’서 자랑하는 액션의 요체는 물 흐르듯 이어지는 연계기에 있으므로. 적 HP바 아래 표시되는 그로기 수치가 가득 찼을 때 강타를 날리면 곧장 콤보 스킬이 발동한다. 일순간 슬로모가 걸리며 추가타를 이어갈 캐릭터를 선택하면 멋들어진 교체 연출과 함께 바통 터치. 이외에 금색 빛으로 경고하는 일부 큰 공격은 교체를 통해 패링 혹은 회피하고, 얻어맞고 날아갈 경우 피격 지원을 부르는 것도 가능하다.
이렇게 콤보 스킬, 지원 돌격 등으로 화면 좌측 데시벨이 3,000pts까지 상승하면 궁극기 작렬, 거기서부터 다시금 쉼 없이 몰아친다. 물론 캐릭터 호출, 교체할 때 원호 발동이야 타 게임에서도 흔하다. ‘젠레스 존 제로’가 특별한 건 캐릭터 교체를 그저 선택지 중 하나가 아니라 전투의 근간이자 핵심으로 끌어왔다는 점이다. 싸워가며 계속 캐릭터를 바꾸는 게 자연스럽고 또 그래야만 딜사이클이 돌아간다. 강제라면 강제인데 불편치 않다. 파티 전원이 한 몸처럼 연계되는 전투 시스템이 캐릭터 수집을 주된 BM으로 삼는 게임과 얼마나 잘 어울리는가.
그로기 수치가 가득 찬 적에게 강공격을 날리면 곧장 콤보가 발동한다
큰 공격은 교체를 통해 패링이나 회피가 된다. 피격 지원도 가능하다
원신, 스타레일과 다른 ‘젠레스 존 제로’의 세계
수집형 RPG 전성시대라 할만한 작금에 흠이라 지적하기도 미묘하지만, 이런 류의 게임이 다 그렇듯 캐릭터 머릿수가 재미를 좌우하는 건 맞다. 일개 캐릭터에게 부여된 역할과 능력이 제한되므로 그만큼 선택지가 다양해야 놀기 좋다. 캐릭터 수집 방식은 변조라 부르는 뽑기(ガチャ)고 서포터 혹은 펫에 해당하는 뱅부, 장비인 W-엔진이 한데 섞여 나온다. 아직 개발 단계라 확언하기 조심스러우나 BM 구조나 강도는 기존 호요버스 작품과 비슷하지 싶다. 배터리, 즉 행동력이 빠듯한지라 막상 오래 붙잡으면 과금 압박보다 육성 부담이 적잖을 모양새다.
육성 재료를 비롯한 각종 자원은 공동 내 콘텐츠로 얻는다. 여기서 ‘젠레스 존 제로’ 중심 내용은 스토리 의뢰, 파에톤 남매를 둘러싼 자잘한 사건사고는 서브 의뢰로 분류된다. 서브 의뢰 가운데 몇몇은 전투가 없는 완전한 퍼즐 구성이며 나름대로 여러 기믹을 넣고자 고민한 흔적이 보인다. 또한 앞서 공동 탐사가 로그라이크 콘텐츠라 소개했는데, 사실 일반적인 의뢰에선 그 향만 좀 나는 수준이다. 대신 로그라이크 장르 문법을 본격적으로 차용한 제로 공동이 있다. 반대로 탐색 과정은 건너뛰고 액션만 즐기고픈 이들을 위한 랠리 의뢰란 것도 존재한다.
공동 탐사라는 큰 구조 안에서 상당히 다양한 방식의 의뢰를 제공한다
특히 제로 공동은 로그라이크 장르 문법을 본격적으로 차용한 콘텐츠
캐릭터든 액션이든 디자인이든 여러모로 전도유망한 ‘젠레스 존 제로’서 이 로그라이크 콘텐츠만은 다소 평이하다. 평이한 게 꼭 나쁘다고 볼 순 없으나 특출한 액션과의 비중 배분은 문제다. 필자가 누군가에게 본작을 추천한다면 8할 이상이 액션 때문일 터이다. 반면 실제 게임에서의 비중은 로그라이크가 6할, 아니 7할가량이다. 특출한 액션을 만끽하려면 반드시 평이한 로그라이크를 선행해야 하는 구조다. 곧장 전투에 돌입하는 랠리 의뢰와 VR 훈련이 있지만 주력이 못된다. 퍼즐의 경우, 무작위 생성이 아닌 바에야 인터넷 검색 한 번에 끝날 콘텐츠다.
이외에 뉴 에리두 6번지서 비디오 가게 운영과 이런저런 활동이 가능하다. 상점 이용, 과제 체크, 서브 의뢰, 미니게임 플레이 등 몇 가지 기본 기능을 흩어뒀을 뿐이지만 꽤 구경할 맛이 난다. 필시 일본 동네서 모티프를 얻은(공동에선 도쿄 타워 같은 것도 보인다) 거리는 서브컬처 팬덤이 좋아할 법하다. 특히 디자인 전반에 깔린 비디오물 위주의 80년대 팝컬처 코드가 다른 호요버스 작품과 차별화된 ‘젠레스 존 제로’ 스타일을 빚어낸다. 장점이자 단점은 6번지가 무척 좁다는 건데, 괜히 돌아다니느라 지칠 일은 없겠으나 갑갑하다는 느낌을 받기도 한다.
정감이 가는 뉴 에리두 6단지. 아쉽게도 5분이면 다 돌아볼 규모지만
비디오물 위주의 80년대 팝컬처 코드는 본작에 개성을 부여하는 요소
자기잠식 없이 여러 장르를 아우르는 호요버스
금번 이퀄라이징 테스트로 재차 살펴본 ‘젠레스 존 제로’는 확실히 매력적인 컨셉과 디자인을 겸비한 기대작이다. 높은 퀄리티로 정평이 난 호요버스의 캐릭터 애니메이션은 더욱 발전했고 스토리 전개를 이끄는 일러스트 컷신 역시 미려한 작화가 돋보인다. 벌써부터 한국어 음성까지 수록하여 몰입감이 배가되기도. 최적화의 경우, PC와 모바일(갤럭시 S23+)를 병행하는 내내 팝인이나 끊김이 전혀 없었다. 모바일 플레이 시 순간적인 회피 및 교체가 좀 힘들기는 한데, 터치 조작의 한계이지 게임 자체가 지닌 결함은 아니다. 그래도 웬만하면 PC로 즐기자.
액션에 비하여 로그라이크가 호불호 갈리는 건 이제와 장르를 갈아엎지 않는 한 어쩔 수 없다. 다양한 장르의 라인업을 보유하려는 호요버스로선 이쪽이 옳은 선택일 터다. ‘붕괴: 스타레일’이 비록 ‘원신’ 같이 큰 반향을 일으키진 못했어도 서브게임으로 준수한 평가를 받았듯 ‘젠레스 존 제로’도 앞으로 나름의 위치를 점하지 않을까. MMORPG가 잘 팔린다고 주야장천 찍어내는 어느 나라 모 개발사보다야 백 번 낫다. 다만 일부 디자인이 편의성을 잡아먹은 기능과 살짝 우려스러운 콘텐츠 수급 등은 앞으로 정식 서비스를 준비하며 보강해가기 바란다.
호요버스가 자랑하는 캐릭터성 구축과 발군의 연출은 여전히 수준급
최적화도 훌륭하다. 갤럭시 S23+로 플레이하는 내내 무척 쾌적했다
김영훈 기자 grazzy@ruliweb.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