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본문] 장안의 화제 ‘팰월드’ 는 2024년의 시작에서 가장 입소문을 많이 탄 게임이 되었다. 판매 실적은 경이롭다. 어느덧 8백만장 이상을 판매한 이 게임은 재미있게도 소문 초창기에는 좋은 이미지보다는 나쁜 이미지가 더 컸었다.

본래 샌드박스 게임은 어느정도 왕도가 정해진, 큰 흐름에서는 트렌드가 고착된 장르이기에 서로간의 유사성은 피할 수 없는 문제이긴 했다. 그러나 ‘팰월드’ 는 그런 샌드박스로서의 기본 구조 외에 팰이라는 시스템, 팰의 외형적인 디자인, 그리고 건플레이의 감각 등에서 다른 수많은 게임들, 그것도 기라성 같은 라인업을 끌어내는 기염을 토했다. 그렇게 시작은 분명 안좋은 의미의 입소문이었는데, 어느새 모두가 플레이하는 트렌드 게임이 되어있었다.

일단 표절 의혹에 대해서는 어느정도 해소가 되어가는 모양새이지만, 그 사실과 이 게임의 열풍은 크게 연관이 있지는 않은 것 같다. 그렇다면 대체 이 게임이 왜, 어떻게 재미있어서 대흥행을 달린걸까. 얼핏 보기엔 적당히 포켓몬을 열화 카피한 게임처럼 보이는데 말이다.

팰들로 포디즘을 구현하는 사회 게임

게임의 기본은 샌드박스다. 기지를 짓고, 채집하고, 자원을 써서 제작하고 활용하여 더 높은 단계로 성장한 뒤 더 많은 콘텐츠를 플레이한다. 이 게임이 여타 샌드박스와 다른…? 다른 점… 아무튼 특징이라면 팰을 포획해 노동력이자 전투력으로 쓴다는 것이다. 물론 이 자체는 ‘아크 서바이벌’ 같은 게임에 있던 요소이지만, 이걸 포켓몬 특유의 도감식 구성과 감성으로 바꾸어 넣었다. 이 팰과 더불어 플레이어는 총을 쏘고, 전기로 문명을 일구며, 나중에는 대포까지 쏘게 된다.

수많은 게임이 나오고 동시에 묻히는 샌드박스류 게임에서 이 게임이 유독 부각되고 인기를 끈 요인을 곰곰히 생각해보자면 결국 포인트는 ‘팰’ 이다. 야생동물을 포획해 동료로 쓴다는 발상과 포켓몬식 도감 체계는 이 게임에서 가장 중요한 시스템이기도 하고, 상징이기도 하다. 좋은 샌드박스 게임은 플레이 흐름이 막히거나 다음에 무얼해야할지 막막할 때 항상 다시 추진력을 얻게 해주는 중심이 있기 마련인데, 이 게임에서는 단연 팰 관련 시스템들이 그 중심을 만든다.

팰들 덕분에 샌드박스 게임을 혼자할 때 생기는 고질적인 문제, '외로움' 도 좀 해소되는 편

팰은 이 게임에서 모든 부분에 관여한다. 주된 적이기도 하고, 파밍과 루팅의 대상이며, 주된 수집요소이고, 동시에 샌드박스의 생산과 경영의 핵심이다. 게임의 끝을 보는 것도, 그리고 돌아돌아 다시 시작을 잡아주는 것도 팰이다. 물론 몇몇 자원과 인프라가 머리를 싸매게 만들지만 그 과정에서도 항상 팰은 관여하고 있으며, 일단 팰 관련한 기틀을 단단히 다져두고(탈만한 윈드디어를 파밍하거나, 엄선한 직공 팰들로 거점을 채우거나) 나면 다른 과정들은 그 영향을 받아 가속을 크게 받는다.

결국 키 포인트는 팰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 게임은 오직 그것 하나만으로 만들어져 있지 않다. 팰이 할 수 있는 것-생산, 전투, 관리 등-을 더 잘하고, 가장 의도대로 할 수 있는게 플레이어이며, 이 플레이어가 가진 능력들은 팰 시스템이 채워주지 못하는 디테일을 충족시키면서 게임을 전체적으로 풍성하게 만든다.

예를 들어 전투에서도 팰은 굉장히 좋은 데미지원이자 탱커로 기용 가능하지만 결국 스피어를 맞춰 수렵할 피를 맞추는 건 플레이어의 몫이며, 생산에서도 충분히 능력에 투자한 플레이어의 속도를 팰들은 따라오지 못한다. 물론 오직 팰만이 가능한 생산이 몇가지 있기는 하지만 이 명제를 해칠 정도로 지대하진 않다. 결국 플레이어가 가진 능력들은 팰과 함께 이 게임을 꾸려나가는 중요한 축이다.

플레이어의 능력은 팰과는 굉장히 이질적이다. 총을 쏘고, 글라이딩을 하며, 벽을 탄다. 이 게임에서 자기의지대로 고저차를 극복할 수 있는 건 오직 플레이어 뿐이라고 봐도 좋다. 어디까지나 거점을 중심으로 활동할 수 밖에 없는 팰의 특성상 3개의 거점 밖의 희귀 자원들을 모아오는 건 플레이어의 몫이고, 좋은 팰들을 수렵하고 관리하는 것도 플레이어의 몫이며, 물류를 책임지는 것도 현재로선 플레이어 뿐이다. 물론 물류는 좀 문제가 있지만 말이다.

테크트리는 플레이어 캐릭터에게 종속되어 있다

샌드박스 게임에서 생기는 흔한 문제는, 초반에 만들어진 자원 채집-생산의 구조가 좋다 하더라도 그 수치상의 밸런스가 플레이어의 상승을 제대로 따라가지 못하는 경우다. 수요와 생산의 곡선이 같은 기울기를 가지지 못한다고 할까. 과거의 ‘노 맨즈 스카이’ 를 비롯해 이 분야의 터줏대감인 ‘마인크래프트’ 도 바닐라로는 극복하지 못한 부분이다. 하지만 ‘팰월드’ 는 생산시설이 전기를 이용하는 체계로 넘어가고, 생산라인이 생기고, 또 생산과 채집에 관여하는 팰들의 능력이 증대하면서 이 수요와 생산의 곡선을 잘 맞추어 나간다.

그만큼 이 게임은 샌드박스로서의 기본기를 풍족하지는 않더라도 잘 갖추고 있다. 한참 부족한 건축 관련 옵션, 습격의 밸런스, 버려지는 몇몇 장비들, 수작업에 의존하는 물류, 팰들의 멍청한 AI 등등 수많은 디테일 상의 문제가 산적해 있음에도 이 게임은 일단 구조를 짜 놓으면 그럴듯하게 돌아간다. 바로 게임 전체의 채집-생산-활용의 구조가 잘 짜여져 있고, 성장 곡선에 따라 이 셋도 고루고루 따라오기 때문이다. 정말이지 디테일은 한참 부족하지만 큰 그림만큼은 잘 그려놓은, 말그대로 블루프린트 같은 게임이다.

탐험하는 재미도 썩 나쁘지 않다.
다만 필드가 엄청나게 넓은 것도 아닌데 낭비되는 느낌이 있을 뿐

액션 어드벤처로서도 그렇다. 게임의 그래픽 자체는 그리 뛰어난 편은 아니지만 시야거리만큼은 타협하지 않았고, 덕분에 멀리 보이는 원경의 거대한 지형지물과 상징적인 존재들이 플레이어를 이끈다. 수집요소도 마찬가지다. 코롤리스 상은 밤에 수색을 나서는게 훨씬 잘 보이고 편하다. 지형지물을 감상하고, 바뀌는 환경에 따라 나름의 적응도 필요하다.

물론, 샌드박스도 액션 어드벤처도 미친듯이 플레이해온 사람들에게는 성에 차지 않은 수준인 부분이 많다. 그러나 평가 기준에 어떤 선이 있다면 이 게임의 대부분의 요소는 하한선 이상에는 걸쳐있다. 건축이라고는 박스 짓기 뿐이긴 하지만 어쨌든 그 안에서 멋진 집을 구성할 수는 있고, 나름의 심미성도 있다. 팰은 걸핏하면 말을 안듣고 지맘대로 행동하지만 단일 행동 팰 편성, 임무 부여 같은 방식으로 제어할 수 있다. 자원의 밸런스도 플레이어 개인이 충분히 수작업으로 극복할 수 있는 수준이다. 그래서, 말그대로 다른 모든 부분이 그래도 기본은 하기에 팰 시스템과 건슈팅을 앞세운 이 게임의 코어 플레이가 빛을 발할 수 있는 것.

‘팰월드’ 는 현대 게임계에서 액션 어드벤처라는 장르 자체가 얼마나 성숙했는지 보여주는 느낌이다. 즉, 이 게임에 들어있는 모든 요소는 이미 다른 게임이 한 번 씩 선보였던, 그리고 단순히 선보였던 것을 넘어서서 그걸 일정 시기동안 트렌드로 만들었던 요소들이다.

그리고 이는 처음 ‘팰월드’ 가 커뮤니티에서 회자될 때부터 지금까지 언급되는 디자인 표절 같은 예민한 화두를 넘어서서 직접 플레이하는 트렌드 게임이 될 수 있었던 건, 단순히 어디서 따온 것들을 아무렇게나 섞어놓은 게임이 아니라, 샌드박스라는 장르 자체를 이해하고 그 위에 여러 액션, 어드벤처, 슈팅에서 각부를 따와 붙인 덕분이다. 물론 그래서 이 게임이 최고의 게임, 독창적인 재미라고 말할 수는 없겠으나, 분명 꽤나 적당히 깊은 맛을 내는 만찬이라는 것은 인정할 수 밖에 없다.

기자가 좋아하는 것처럼 음식에 비유하자면, 이 게임은 쿠우쿠우 같은 식당이다. 최고급 뷔페도 아니고 고급 식재료로 차려진 메뉴들도 아니지만 여기저기서 다 맛있는 메뉴를 가져온, 그러면서 훈제 연어나 스시, 튀김류 같은 있을 건 다 있어서 누구나 적당한 값에 맛있게 한끼를 하고 나갈 수 있는 그런 식당 같은 존재다. 샌드박스와 액션 어드벤처의 결합 덕분에 굉장히 폭넓은 플레이어들을 포용할 수 있었고, 동시에 각 부가 게임을 완전히 지배하고 있는건 아니라서 비록 개개인 플레이어가 좋아하지 않는 부분이 있더라도 종합적으로 플레이하기엔 부담없고 재미있는 게임이 되었다.

이런걸 보면 슈팅 감각도 꽤 괜찮은 편이다

물론, 현시점에서 이 게임의 한계나 문제점은 정말 명확하게 보인다. 전반적으로 멍청한 AI, 지극히 부족한 건축 옵션, 세세한 설정이 불가능해 주기적으로 손을 봐야하는 인프라, 다채롭지 못한 캐릭터 성장 요소, 그리고 최종 테크 달성 이후에 존재하지 않는 엔드 콘텐츠 등등. 버그도 굉장히 많아 잡고 있던 보스가 벽 뒤로 사라지거나 하는 경우는 다반사며, 필드도 그 크기에 비해 확실히 덜 채워진 느낌이 든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이 게임은 3만원 짜리 얼리액세스 게임이기에 이런 부분을 지금 지적하는 건 다소 걸맞지 않은게 사실이다. 솔직하게 지금 보이는 문제들, 또 더 채울 수 있는 여백을 보면 이 게임의 완성까지는 지금까지 게임을 만든 만큼의 시간, 혹은 그보다 더 긴 시간이 필요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완성된 모습이 굉장히 재미있을거라는 확신은 생겼다.

초반의 표절 의혹을 딛고… 아니, 적당히 넘기고 게임의 재미가 부각되는 순간부터 ‘팰월드’ 는 좋은, 최소한 썩 괜찮은 게임이 된다. 비록 근본은 좀 없지만 (법적인 문제가 없다는 전제 하에)재미가 있으면 빛을 보는게 게임이고, 그게 게임이라는 매체가 가진 장점이 아닐까. 물론 재미와 별개로, 이런 디자인의 유사성 자체를 옹호하고 싶은 마음은 없으며, 가급적이면 팰 특유의 정감가는 스타일은 유지하면서 독자적인 형태로 다시 리디자인했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개인적으로는 예전 대학생 시절 개강일 새벽까지 지하철도를 짓고 있게 만들었던 ‘마인크래프트’ 이후로 수많은 샌드박스를 플레이해 왔지만, 가장 열심히, 밤을 새워가며 플레이한 게임이었던 것 같다. 얼리액세스 동안 완성의 과정을 거쳐 정식 출시를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