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름 사이로 청명한 보름달이 얼굴을 내밀고 서늘한 바람이 불어오는 가을밤의 산해경.
현룡문의 문주 키사키는 여타 다른 지도자급 학생들처럼 늦게까지 서류에 파묻혀 학교업무를 하고있다.
미나나 사야는 키사키의 몸을 걱정하며 늦게까지 일하지 말라며 당부했건만 작은 소녀에게 깃든 큰 책임감은 이를 쉽사리 허락하지 않는다.
업무는 끝날 줄 모르고, 밤이 깊어 달빛은 구름 속에 몸을 숨기고 부엉이와 벌레들의 울음 소리가 합주곡이 되어 울려퍼질 때즈음이야 자리에서 일어나 기지개를 켜는 작은 몸집의 소녀.
순간, 문주는 본인의 재빠르게 총을 꺼내며 몸을 훽 돌려 창가를 겨냥한다.
"...비무장 상태의 사람을 쏘진 않겠지?"
"본녀가 못할 것이라 생각하느냐? 신타니 카이."
어느샌가 창틀에 앉아있는 신타니 카이는 빈 양손을 들어보이며 너스레를 떨지마 키사키는 평소처럼 무뚝뚝한 표정으로 총구를 향할 뿐이다.
"...뭐 됐어. 그보다 사야의 치료제가 꽤 효과가 있나보네? 아직 살아있는거 보면."
"본녀가 죽음을 두려워할꺼라 생각하느냐?"
카이는 도발하려는 듯 비릿한 미소를 지으며 이죽거리지만 키사키는 콧방구도 끼지 않은 체 대답할 뿐이다.
"....뭐, 예전부터 그랬지. 너는."
도발이 실패해서 그런걸까? 카이는 씁쓸한듯한 미소를 지으며 창틀에서 내려오고는 현룡문 학생들이 문주를 위해 준비한 차를 따라 한모금 마신다.
"...하지만 완전한 치료가 가능하다면 어떨까?"
"그딴걸로 협상이 통할꺼라 생각하느냐? 본녀는 같은 말을 하지 않는다."
여전히 키사키의 총구는 카이를 향하지만 카이는 개의치않으며 키사키에게 다가와 손가락으로 키사키의 턱을 들어올리며 눈을 마주한다.
그리곤 허리를 숙여 키사키의 귓가에 조용히 속삭이고는 들어왔던 창문으로 향한다.
"오늘은 그냥 왔을 뿐이야. 궁금해할지는 모르겠지만 병명 정도는 알려주려고."
"다음에 또 보자고."
"살아있다면."
카이는 말을 마치고 홀연히 창문을 통해 사라지고, 이제야 모습을 드러낸 달 빛은 초연히 서있는 현룡문의 검은 군주를 밝혀준다.
------------
하이스카이 팻호스의 계절에 걸맞게 창밖으로는 구름 한점 없이 푸르고 높은 하늘이 펼쳐진 가을, 무더위가 한풀 꺽여 선선해진 날씨만큼 밖에 돌아다니기에 좋은 날씨이지만 선생은 샬레에 갇혀 쌓인 업무를 치루고 있다.
"....게임 좀 적당히 할껄..."
유우카가 들으면 한 시간은 잔소리할 혼잣말을 하는 가운데에 스마트폰이 진동하며 전화가 왔음을 알린다.
"어~사야, 어쩐 일이야? 산해경으로 와줄 수 있냐고?"
"언제? 오늘? 지금 바로? 급하다고?"
"응 알겠어, 바로 출발할께."
"....?"
"사야가 이렇게 다급한 목소리로 말하는건 오랜만이네."
"......."
"또 이상한 약물을 만들었나?"
전화기 속 사야의 다급한 목소리에 선생은 의문을 품으며 하던 업무를 정리하고는 샬레 밖으로 향한다.
---------
"뭐야, 다들 그렇게 심각한 표정을 짓고?"
마치 외부로부터 단절이라도 하겠단듯이 연단방을 둘러쌓은 현룡문 학생들의 안내를 받아 안에 들어온 선생이 본건 심각한 표정으로 서로에게 언성을 높이는 미나와 사야.
그리고 조용히 눈을 감고 앉아있는 키사키.
"후우....사야, 이게 장난이라면 난 널 용서치 않겠다."
"....장난따위가 아닌것이다!"
"지금 문주의 증상과 이 책에 가록되어 있는거랑 증상은 일맥상통 하는것이다!!"
"그러니깐!! 그 책을 믿을 수 있겠냐고?! 애초에 말도 안되는 치료법이지 않나?!?!"
"워~워~얘들아 진정해."
선생은 둘 사이를 가로막으며 아이들을 진정시키려 한다.
"무슨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서로 언성 높여 봐야 기분만 나빠."
"이 아저씨가 이야기 들어볼테니깐 침착하게 얘기하자. 침착하게."
"응?"
선생의 중재에도 불구하고 미나는 분을 참을 수 없는지 문을 쾅 닫고는 밖으로 나간다.
"하아....."
사야는 지쳤는지 깊은 한숨을 내쉬고는
"키사키....내가 말하는 것이냐? 아니면...."
"본녀가 말하겠느니라."
"....사야. 미안하지만 자리를 비켜줄 수 있겠느냐?"
"....알겠다는 것이다."
키사키의 말에 사야는 자리에서 일어나 터벅터벅 가운없는 발걸음으로 문 밖으로 향하고 무거운 침묵이 이어지는 연단방.
선생은 멋쩍게 머리를 긁고는 무슨 일이 물어보려 입을 열려는 순간, 키사키가 먼저 침묵을 깬다.
"...선생. 본녀가 불치병에 걸렸다는 것은 알고 있는가?"
"....알고있지. 키사키가 힘들게 참고 있단것도."
키사키의 물음에 선생은 자신의 죄도 아니건만 미안한 표정을 짓고 대답한다.
"몇일 전, 카이가 나를 찾아왔느니라."
"...뭐?!"
현룡문의 검은 군주는 자리에서 일어나 현룡문 학생들이 지키고 있는 창 밖을 내다본다.
마치 말이 세어나가는지 확인이라도 하듯이.
"카이가 내게 알려줬느니라."
"구음절맥...본녀가 걸린 병명이니라."
"구음절맥?"
익숙한듯하면서도 낯선 단어에 선생은 언제 어디서 들어본건지 기억을 헤집어 보지만 쉽사리 떠오르지 않는다.
분명 어디선가 들어본거 같은데
"....사야의 말로는 몸안의 음기가 가득하여 진기가 돌지 않을 때 생기는 난치병이라고 하느니라."
음기니 진기니 하는 단어를 듣고 나서야 선생은 학창시절 읽었던 무협 소설에서 나온 병명이란걸 생각해낸다.
소설에서나 나오는 병이 실재한다고?! 선생은 납득이 되지 않는 이야기에 뭐라 말을 할려다가, 여기가 신비가 가득한 키보토스란걸 상기하면 다시 입을 닫는다.
실제로 밀레니엄의 폐허에서 다룬 차원의 학생이 넘어오고, 하늘이 붉어지던 날 선생 자신 또한 평행세계의 자신을 만나지 않았던가?
"...허나 몇번이나 말했듯이 본녀는 죽음 따위 두렵지 않느니라."
"...키사키."
선생은 키사키에 다가가 검은 군주의 작고 차가운 손을 꼬옥 잡고는
"아직 포기해선 안돼."
"......"
이어서 선생은 한쪽 무릅을 꿇어 앉으며 고개를 숙인 키사키와 눈을 마주하며 말을 이어간다.
"자세히 설명해주지 않겠니?"
-----------
음양합일 파트는 있다가 써야징
성유게에 올리는 나을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