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더운 여름밤, 내가 사는 원룸 오피스텔은 서늘했다.
빵빵하게 틀어 놓은 에어컨 때문이 아니라 처음 보는 괴생명체 때문에.
시커먼 모니터에는 계속되는 패배에 일그러진 내 얼굴이 비쳤다. 순간 뭔가 지나갔다.
분명히 뭔가 지나갔다. 여름철 벌레는 흔한 터라 대수롭지 않게 고개를 돌렸는데 괴생명체가 벽면에 붙어 있었다.
잘 익은 순대처럼 거무튀튀한 생명체는 이질적인 질감에 전공 서적 정도 크기였다.
벌레라고 하기에는 너무 컸다. 벌레는 확실히 아니었지만, 그것은 무수히 많은 다리가 달려있었다.
사실 다리인지 더듬이인지 어떤 부위인지 잘은 모르겠지만.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너무 놀라 소리조차 나오지도 않았다. 1초 정도 응시했나? 그것이 내 시선을 느낀 모양이었다.
순간적으로 몸을 내 쪽으로 틀었다. 미지의 생명체에 대한 공포감이 엄습했다.
짧은 시간 동안 머릿속에 온갖 SF 괴생명체들이 스쳐 지나갔다.
정체를 알 수 없고, 외관은 징그럽고, 주인공 일행의 목숨을 하나씩 앗아가는 그런 괴생명체.
왠지 첫 번째 희생자는 내가 될 거 같은 느낌.
두려움에 몸이 굳어 움직이지 않았다. 내 쪽으로 몸을 돌린 그것이 조금씩 떨려왔다.
핸드폰 울리듯 진동하던 그것의 껍데기가 반쯤 갈라져 핑크빛 속살이 드러났을 때 비로소 발바닥이 장판에서 떨어졌다.
갈라진 틈으로는 특이한 소리가 새어 나왔다.
"슈르치치치치치 슈르치치치치치"
여름철 매미 소리와 책을 빨리 넘길 때 나는 소리를 적절히 섞은 느낌의 소음이었다.
천천히 뒷걸음질 치며 현관으로 향했다. 작은 원룸이라 몇 걸음이면 문밖으로 나갈 수 있었다.
시선은 그것에 고정했다.
그 괴생명체 역시 섣불리 움직이지 않고, 나를 경계하는 듯했다.
혹시라도 눈 깜빡할 새에 무슨 일이 일어날까 봐 눈도 깜빡일 수 없었다.
눈을 부릅뜬 채, 그것을 응시하며 한 걸음 뒤로 물러섰다. 다행히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자극이 될까 봐 최대한 소리를 내지 않으며 반대쪽 발을 뒤로 옮겼다.
순간 발바닥에 축축한 느낌이 들었다.
불쾌한 느낌에 시선이 발아래로 향했다.
다행히 축축한 것의 정체는 아까 샤워할 때 사용했던 수건이었다.
안도감과 함께 그 생명체를 시야에서 놓쳤다는 생각에 얼른 괴생명체 쪽을 바라봤다.
그 괴생명체는 어느 틈에 내가 앉아있던 컴퓨터 모니터 쪽에 있었다. 여전히 불쾌한 소리를 내면서 말이다.
한 걸음 더 뒤로 옮겼다. 그리고 한 걸음 더.
왼쪽 팔을 뒤로 쭉 뻗자 손끝에 문이 닿았고, 손으로 더듬더듬 손잡이를 찾았다. 조심스럽게 손가락으로 잠금쇠를 돌렸다.
"찰칵"
작은 소리가 나자 그것은 움찔거렸다. 소리에 반응하는 듯했다.
그것은 흡사 뱀처럼 미끄러지듯 서서히 다가왔다.
심호흡을 한 번 크게 하고, 문고리를 돌렸다.
박차고 나가려는데 문이 열리다 말았다.
돌아보니 안전고리에 문이 걸려 있었다.
"철컹!!"
뒤를 다급하게 돌아봤다.
쇠붙이가 일으키는 큰 소리에 자극을 받았는지 그것은 벽면을 타고 빠르게 현관 쪽으로 다가왔다.
너무 당황한 나는 어쩔 수 없이 현관 옆에 있는 화장실로 들어가 문을 닫았다. 그리고 잠갔다.
가까스로 몸을 피했지만, 안도감보다는 공포감이 훨씬 컸다.
심장이 미친 듯이 뛰었다.
피가 빨리 돌아가는지 뇌는 제멋대로 작동했다.
'저건 뭐지? 벌레인가? 외계생명체? 어디서 들어왔지? 위험한가?'
하지만 나의 두뇌활동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왈! 왈!"
개 짖는 소리가 울려 퍼진다.
가슴을 죄어 올 정도의 하이톤으로.
독립한 후 나와 2년을 함께 한 크림푸들 '버디'였다. 자고 있었는데 깬 모양이다.
"왈! 왈!"
"슈르치치치치치 슈르치치치치치"
그것의 소리가 더욱 크게 공명했다.
버디가 위험했다.
나는 화장실에서 그나마 쓸만한 도구를 찾았다.
칫솔? 치약? 샴푸? 수건?
그나마 가장 쓸만해 보인 것은 다이소에서 구매한 5,000원짜리 플라스틱 세숫대야였다.
나는 세숫대야를 무슨 무기 뽑듯 집어 들고 문을 열었다.
버디는 요리조리 좁은 방안을 휘젓고 다니며 짖고 있었고, 그것은 껍데기가 갈라진 틈에서 뱀 꼬리 같은 것이 튀어나와 휘젓고 있었다.
"버디 여기야!"
버디가 내 쪽을 바라보는 순간 약간의 틈이 생겼고, 그 생명체는 잠시 경직된 버디를 향해 뱀 꼬리 같은 촉수를 휘둘렀다.
나는 재빠르게 손을 뻗어 세숫대야로 그것을 막아 버디를 보호했다.
"퍽!!"
둔탁한 충돌음에 놀란 버디가 내 쪽으로 왔고, 나는 버디를 데리고 얼른 화장실로 돌아가 문을 닫았다.
잠깐의 시간 동안 움직였는데도 긴장을 많이 해서 그런지 숨이 가빠졌다.
버디 역시 방안을 이리저리 뛰어다녀 힘이 들었는지 혀를 내밀고 숨을 헐떡였다.
나는 버디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조용히 속삭였다.
"버디, 짖으면 안 돼"
버디는 동그란 눈으로 나를 올려다봤다.
'그나저나 생각보다 해볼 만한데?'
라는 생각이 잠깐 스쳤지만, 손에 들린 세숫대야를 보고는 이내 수그러들었다.
세숫대야 바닥은 종이처럼 찢겨 있었다.
그 참혹한 광경을 보고 놀라 세숫대야를 놓쳤고, 화장실에 큰 소리가 울렸다.
문밖에 있는 그것은 소리에 즉각 반응했다.
"쩍! 쩍!"
화장실 문짝이 서서히 갈라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파괴력을 봤을 때 화장실 문이 부서지는 건 시간문제였다.
나는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샤워 호스를 들고 문에 조준했다.
뭐라도 해야 했다.
순간 소리가 멈췄다.
내가 켜놨던 컴퓨터 게임 소리에 반응한 모양이었다.
그것 덕분에 화장실 문은 무사했다.
혹시나 들릴까 안도의 한숨도 내뱉지 못했다.
조심스레 다가가 화장실 문에 귀를 가져가니 여전히 녀석의 기묘한 울음소리가 들렸다.
아직 화장실 문 근처에 있는 게 분명했다.
학교 다닐 때, 갑작스레 반에 벌이 들어왔었을 때가 생각났다.
그때 반 전체를 공포로 몰아넣었던 벌은 알아서 창문으로 나가줬었는데, 이 녀석은 안 그러겠지.
한차례 폭풍이 지나가고, 불쾌한 정적이 흘렀다.
나는 생각해내야 했다.
여타 괴생명체가 그러하듯 녀석은 소리에 반응한다.
버디를 공격했을 때 움직임으로 봐서 엄청 빠른 속도를 지니기도 했다.
나와 버디를 먹이로 생각하는지 아니면 단순 위협대상으로 봤는지도 확실치 않았다.
불안했다. 녀석의 공격이 멈췄다 해도 무한정 화장실에 숨어있을 수만은 없었다.
도움 요청을 해야 했다. 하지만 핸드폰은 컴퓨터 옆에 둔 상태였다.
'후다닥 밖으로 뛰쳐나갈까?'
냉정하게 생각해보니 밖으로 나가기엔 너무나 리스크가 컸다.
아까 버디와 대치 상황으로 봐서 녀석의 사거리는 꽤 긴 편이었다.
파괴력도 엄청나 다리를 맞았다가는 달려서 도망가지 못할 게 뻔했다.
게다가 오래돼서 삐걱거리는 안전고리를 빠르게 열 자신이 없었다.
방금도 안전고리만 아니었다면 밖으로 나갈 수 있었던 상황이었다.
진작 좋은 거로 바꿀걸.
돈 아낀다고 전에 거주했던 사람 걸 그대로 써서 이 사달이 났다.
'큰 소리를 내서 이웃을 부를까?'
이것도 문제가 좀 있었다.
가끔 버디가 짖을 때도 오피스텔 경비 아저씨를 통해서 민원을 보냈지, 직접 집으로 찾아온 경우는 드물었다.
게다가 소리를 냈다가는 이웃이 오는 시간보다 문이 부서지는 게 더 빠를 거 같았다.
'잠깐만 경비 아저씨?'
경비아저씨를 호출하는 인터폰이 현관 측면, 즉 화장실 문 바로 옆에 있었다.
화장실 안에서 손만 뻗으면 버튼을 누를 수가 있었다.
관건은 얼마나 소리를 내지 않고 움직이느냐였다.
일단 버디에게 속삭이며 말했다.
"버디 절대 짖으면 안 돼"
버디는 알아들었다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버디 네가 치와와가 아니라 정말 다행이야.'
조심히 화장실 문으로 향했다. 일단 소리를 내지 않고 화장실 문을 열어야 했다.
이것은 나름 쌓인 노하우가 있어 가능했다. 소리를 내지 않고 문을 여닫는 것쯤이야.
몰컴으로 단련된 나의 특기였다.
화장실 문고리를 잡고 끝까지 돌린 상태에서 잠금을 풀고 천천히 문고리를 돌렸다.
잠금이 풀리며 문이 열리자 묘한 쾌감이 느껴졌다.
살짝 열린 문틈으로 손을 뻗었다. 그리고 경비실 호출 버튼을 눌렀다.
"삑- 따라라"
요란한 알람이 들렸다.
처음 사용해본 터라 이런 깜찍한 멜로디가 나는지도 몰랐다.
황급히 문을 닫으려는데 녀석의 촉수가 스윽 하고 들어왔다.
촉수의 끝은 가시처럼 얇고 뾰족했다.
촉수는 문틈에 10cm 정도가 낀 채 파닥거렸다.
놀란 나는 문을 힘차게 당기며 닫았다.
"슈르치치치에에에에!!!"
아까보다 훨씬 격한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다급해진 나는 온 힘을 다해 재차 문을 닫았다.
"쾅!!!!"
큰 소리가 나며 문이 닫혔고, 발 옆으로 잘려 나간 녀석의 촉수가 떨어졌다.
연노랑 빛 가래를 연상시키는 체액이 튀었고, 그것은 잘려 나간 도마뱀 꼬리처럼 미친 듯이 날뛰었다.
나는 황급히 뒤로 빠졌다. 다행히 체액에 닿지는 않았다.
괴생명체는 데미지를 입었는지 아까처럼 문을 격하게 두드리지는 않았다.
하지만 더욱 큰 소리로 소리를 내며 울었다.
"슈르치치치이이이이이!!!"
녀석의 소리에 공명이라도 하듯 촉수 쪼가리는 팔딱거렸다.
그것도 나름 위협적이라 처분해야 했다. 수건을 하나 꺼내 그것을 덮었다.
그것의 실루엣이 춤추듯 들썩거렸다. 수건을 하나 더 꺼내 그 위에 또 덮었다. 혹시 몰라 하나 더 덮었다. 그리고 손으로 그것을 움켜쥐었다.
수건을 겹겹이 덮었음에도 그것의 끔찍한 온기가 느껴졌다.
미꾸라지처럼 꿈틀거리는 그것을 꽉 잡은 채, 바닥에 묻은 녀석의 체액을 닦아 냈다.
그리고 변기에 버리고, 물을 내렸다. 팔딱거리며 내려간 것을 확인하고 뚜껑을 덮었다.
"여보세요? 여보세요?"
순간 화장실 문 옆에서 희미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경비 아저씨가 인터폰 호출에 응답한 모양이었다.
나는 차마 문은 열지 못하고, 문에 바싹 붙어 말했다.
"살려주세요, 신고 좀 해주세요!!"
"술 드셨어요? 안 그래도 민원이 여기저기서 들어왔어요. 소음이 심하다고"
"슈르치치치치치 슈르치치치치치"
순간 문 옆에서 들리는 소름 끼치는 소리에 문에서 몸을 뗐다.
인터폰 너머로 소리가 들려왔지만, 괴생명체가 내는 소음 때문에 자세히 들리지 않았다.
"팍!! 팍!! 치치치치"
그것이 인터폰을 부수는 모양이었다.
잠시 잠잠해졌다가 그것의 소리가 화장실 문 앞까지 가까워졌다.
버디와 함께 숨죽이며 화장실 문만 바라볼 뿐이었다.
기분 탓인지 문손잡이가 살짝 돌아가는 거처럼 느껴졌다.
'에이, 설마'
문손잡이가 천천히 꺾이고 있었다.
'내가 문을 잠갔었나?'
뇌보다 몸이 더 빠르게 반응했다.
후다닥 몸을 날려 화장실 문을 잠갔다.
그러자마자 문손잡이가 미친 듯이 움직였다.
"철컥철컥 철컥철컥 철컥철컥"
철컥거리는 소리를 내며 움직이는 문손잡이를 멍하니 바라보며 생각했다.
'문이 열릴 때 문손잡이가 돌아가는 걸 보고 학습한 건가?'
그렇다면 녀석에게 꽤 준수한 수준의 지능이 있다는 것이었다.
덧붙여 청각 말고 시각도 존재한다는 뜻이기도 했다.
눈으로 보이는 신체 기관은 없었다.
그다지 시각에 의존하는 거처럼 보이지도 않았었다.
혹시 그사이에 진화라도 한 걸까? 머릿속이 복잡했다.
문손잡이는 계속해서 흔들렸고, 나는 문이 열리지 않도록 필사적으로 막았다.
"띵-동"
초인종 소리가 울렸다. 어느 때보다 맑은소리로.
"경비실에서 왔습니다. 계시죠? 빨리 문 열어보세요."
경비 아저씨가 온 모양이었다.
뒤이어 조금은 과격한 노크 소리까지 들려왔다.
"쿵쿵쿵!!!"
"슈르치치치치치치"
흔들리던 문손잡이가 멈추었다. 괴생명체가 현관 소리에 반응한 모양이었다.
나는 필사적으로 소리쳤다.
"여기 이상한 괴물이 있어요!! 신고 좀 해주세요!!!"
내 울부짖음에 버디 놀랐는지 함께 짖기 시작했다.
"왈! 왈! 왈!"
"지금 밤이에요, 조용히 좀 하세요! 다 같이 사는 거 아닙니까"
"철컥"
현관문 손잡이가 돌아가는 소리가 들렸다.
'뭐지? 갑자기 현관문이 왜 열리지?'
아차 싶었다.
답은 간단했다.
그 녀석이 문을 여는 게 분명했다.
현관문의 잠금쇠는 내가 아까 열어놓은 상태였다.
안전고리만 걸려있을 뿐.
"쾅"
"아이고!! 문을 그렇게 갑자기 여시면, 이게 뭐야? 으아악!!!"
경비 아저씨의 비명이 오피스텔 전체에 울려 퍼졌다.
화장실 문을 살짝 열고 현관 쪽을 봤다.
안전고리 때문에 손바닥만큼 열린 현관 틈으로 경비 아저씨가 고통스러워하는 얼굴이 보였다.
두 눈은 시뻘겋게 충혈되어 있었고, 입에서는 더 이상 비명이 새어 나오지 않았다.
내 시선은 경비 아저씨의 얼굴에서 서서히 내려갔다.
녀석의 촉수가 복부를 뚫은 상태였고, 파란 유니폼은 뻘겋게 물들고 있었다.
"괜찮으세요? 무슨 일입니까?"
옆집에 사는 청년이 경비 아저씨의 비명을 듣고 나온 모양이었다.
지금이 기회였다.
경비 아저씨에 박혀 있는 녀석의 촉수를 따라 시선을 옮기니 괴생명체가 벽에 붙은 채, 호흡이라도 하는 듯 꿀렁거리고만 있을 뿐이었다.
나는 눈치를 본 뒤 문을 열려고 했다.
하지만 안전고리를 열기 위해서는 문을 닫아야 했다.
하지만 경비 아저씨와 연결된 저 팽팽한 촉수 때문에 문을 닫을 수가 없었다.
나는 되는대로 식칼을 꺼내 들었다.
독립 초기에 카레를 만들어 먹는다고 감자랑 양파 썰 때 쓰고 처음 꺼내 보는 식칼이었다.
이를 악물고, 칼로 촉수를 베었다.
연노랑 빛 액체가 튀며 녀석의 팽팽하던 촉수가 고무줄 잘리듯 뚝 끊겼다.
"슈르치에에에에에!!!"
가만히 있던 괴생명체가 고통스러운지 촉수를 돌돌 말며 움찔거렸다.
나는 재빨리 현관을 향했다.
순간 현관 문틈 사이로 옆집에 사는 청년과 눈이 마주쳤다.
그는 경비 아저씨를 부축하고 있었다.
밖에서 담배 피울 때 종종 마주쳤고, 시시한 대화도 몇 번 나눴었다.
인사를 먼저 건넬 정도로 성격 좋아 보이던 그 청년의 눈빛은 당황함으로 가득했다.
내 손에는 식칼이 들려있었고, 현관 바로 앞에는 복부가 뚫린 채 피를 흘리고 있는 경비 아저씨가 있었다.
촉수가 빠져나간 틈을 타서 문을 닫고, 안전고리를 풀었다.
하지만 현관문은 열리지 않았다.
그 청년이, 아니 그 새끼가 막고 있었다.
입장바꿔 생각해 보면 나라도 그랬을 것이다.
그래도 이건 너무 하잖아. 우리 담배도 나눠 피던 사이였잖아. 이 ㅆㅂ놈아!
나는 목이 터져라 소리쳤다.
"문 열어!! 나 좀 살려 달라고!! 여기 괴물 있어!! ㅆㅂ!!"
"여기 살인자 있어요!! 신고 좀 해주세요!!"
청년은 절규하듯 소리쳤다. 이 새끼 헬스한다더니 진짜 힘세네.
청년이 온 힘을 다해 막고 있는 문은 꿈쩍도 안 했다.
나도 운동 좀 할걸.
"왈! 왈!"
뒤에서 버디가 다급하게 짖었다.
괴생명체가 촉수에서 누런 액체를 뚝뚝 흘리며 벽을 타고 다가왔다.
나름 피해가 있었는지 움직임이 굼떴다.
나는 다시 화장실로 도망쳤다.
원점으로 돌아왔다.
불행 중 다행으로 괴생명체는 소란스러운 현관문을 열려고 했다.
확실히 바깥쪽은 소란스러웠다.
건장한 청년의 절규와 이름 모를 이웃의 비명 그리고 불특정 다수의 발소리가 뒤섞였다.
혼란했다.
"철컥철컥"
"무슨 일이에요?"
"여기 살인자가 나오려고 해요. 같이 문 좀 막아주세요."
"알겠습니다!"
"제가 신고할게요!"
"괜찮으세요?"
현관 밖은 단합이 잘 되는 모양이었다.
순간 오른쪽 팔이 가려워졌다.
팔에는 누런 뭔가가 덕지덕지 붙어있었고, 벌겋게 부어오르고 있었다.
아까 식칼로 촉수를 자를 때 체액이 닿은 모양이었다.
나는 재빨리 물을 틀어 팔을 씻었다.
"끄윽"
너무 따가워 조그만 비명이 새어 나왔다. 하지만 물로 씻겨 나가지 않았다.
자세히 보니 팔에 묻은 누런 액체에서 조그마한 무언가가 꿈틀거리고 있었다.
기생충? 진드기? 그것들은 체액이 묻은 내 피부 표면을 헤집고 다녔다.
나는 재빨리 주변을 돌아보다가 변기 뒤에 놓아두었던 담뱃갑에서 라이터를 꺼냈다.
굉장히 위험하다는 걸 알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지금 상황에서는 이것들을 제거하기 위해 뭐라도 해야 했다.
나는 라이터 불을 켜서 오른팔에 가져가 그것들을 지졌다.
괴생명체의 체액은 불이 엄청 잘 붙었다.
불은 기름에 붙기라도 한 듯 체액이 묻은 내 팔을 뒤덮었다.
괴물의 체액과 함께 내 살갗도 같이 지져졌다.
타는 고통이란 이런 거구나. 눈물이 핑 돌았다.
도저히 참을 수가 없어 물로 씻었다.
더 큰 고통이 밀려왔다.
"으아아아악!!"
비명을 참을 수가 없었다.
다시 팔을 확인하니, 노란 체액은 모두 벗겨졌다.
물론 내 피부도 같이 벗겨졌다. 다행히 그 조그만 벌레들도 타버렸는지 사라져 있었다.
아까 잘려 나간 촉수에서 흘러나와 바닥에 묻었던 찌꺼기도 전부 라이터로 지져놨다.
"삐용-삐용-"
우렁찬 사이렌 소리가 들려왔다. 경찰이 신고를 받고 출동을 한 모양이다.
오히려 좋았다.
경찰이 오면 문이 열리고, 저 괴생명체를 처리해 주겠지.
잠시 후 대치 중이던 현관에서 소리가 들렸다.
"경찰입니다. 이제 문 열건데, 흉기 버리십시오. 아니면 쏩니다."
"조심해요, 괴물 있어요!!"
나는 밖으로 소리쳤다.
"쿵! 쿵!"
괴생명체는 촉수로 현관문을 두들겼다.
"어허! 뒤로 물러나세요"
"철컥"
현관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나 역시 바깥 동태를 살피기 위해 화장실 문을 살짝 열었다.
밖에서 막고 있던 현관문이 열리고 경찰들이 들어왔다.
"괴물있어요. 조심하세요!"
내 목소리를 들은 경찰은 화장실 문을 열더니 나를 끌어다가 바닥에 강제로 눕혔다.
"꼼짝 마!! 움직이지 마!"
경찰이 나를 짓누르며 말했다. 그리고는 수갑을 채우려 했다.
나는 필사적으로 저항하며 소리쳤지만 경찰 두 명의 파워에 간단히 제압당했다.
"아니, 지금 이럴 때가 아니라 괴물 있다고요!!"
"괴물 같은 소리하고 있네"
"슈르치치치치 슈르치치치치"
무력으로 제압당한 상태로 기괴한 소리가 들려오는 위를 올려다봤다.
경찰들도 들은 모양이었다.
천장에는 괴생명체가 붙어있었다.
너무나 괴기스럽게 껍데기를 활짝 열고 바르르 떨고 있었다.
"이건 뭐야?"
순간 나를 제압하고 있던 경찰의 얼굴이 찢겨 나갔다.
피가 사방에 퍼졌다.
경찰은 일격에 쓰러졌고, 다른 동료 경찰은 놀라서 테이저건을 쐈다.
경찰이 놀라서 쏜 테이저건은 명중했다.
천장에 붙어 있던 괴생명체는 잠깐 부르르 떨다 경직되더니 바닥으로 떨어졌다.
바로 내 얼굴 옆으로.
거무죽죽한 색에 셀 수 없을 만큼 가느다란 다리, 겉 껍데기는 반쯤 갈라졌고, 그 내피는 선홍빛이었다.
그리고 내부는 너무나 시커매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코앞에서 그것을 목격해서 숨조차 쉬어지지 않았다.
순간 그것이 꿈틀거렸다.
나는 미친 듯이 일어나 뒤로 물러났다.
테이저건을 쐈던 경찰 역시 놀랐는지 바닥에 들러붙은 괴생명체를 지켜볼 뿐이었다.
"뭡니까? 저거"
"제가 괴물이 있댔잖아요! 빨리 저거 확인 사살해요. 보셨잖아요! 얼마나 위험한지"
경찰은 잠시 망설였다.
"얼른 죽여요!"
두 발의 총성이 오피스텔에 울렸다.
총성에 놀란 버디가 쪼르르 달려 나왔다.
영특한 녀석.
버디의 입에는 나를 위한 담뱃갑이 물려있었다.
"박 순경이 이상한 괴생명체한테 당해서 의식을 잃었습니다. 부상이 꽤 심합니다. 빠른 지원 바랍니다. 일단 괴생명체는 발포해서 사살했습니다."
경찰은 지원 요청을 한 뒤 괴생명체의 동태를 살폈다.
총에 맞은 그것은 꿈쩍도 안 했다.
경찰은 확인차 그것을 발로 툭 건드렸다. 그리고는 괴생명체에게 공격당한 경찰 곁으로 다가가 부상 정도를 살폈다.
담배 하나를 꺼내 물고, 불을 붙였다.
니코틴이 필요했다.
"후우"
한 모금 맛있게 빨면서 그것을 지켜봤다. 금방이라도 다시 슈르치치치 소리를 내며 촉수를 휘두를 거 같았다.
담뱃갑을 열었다.
담배 한 개비가 남아있었다.
안심하며 최대한 깊게 한 모금 빨았다.
그리고 그것을 향해 천천히 다가갔다.
팔딱거리는 촉수는 축 늘어졌고, 꾸물거리는 다리도 멈춰있었다.
벌어진 껍데기 사이로 담배를 던졌다.
"화르륵"
역시나 불이 잘 붙었다.
녀석의 세포 하나하나가 정성스럽게 타들어 가는 게 느껴졌다.
"담배 하나만 피고 오겠습니다."
황당해하는 경찰을 뒤로하고, 터벅터벅 현관을 걸어 나왔다.
순간 뒤에서 뭔가 섬뜩한 느낌이 들었다.
"슈르치치치치"
희미하게 소리가 들려왔다.
깜짝 놀라서 뒤를 돌아봤다.
괴생명체는 불타오르고 있었고, 내 뒤에는 귀여운 버디가 쪼르르 따라오고 있었다.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긴장이 풀려서 그런지 화상을 입은 오른쪽 팔이 욱신거렸다.
갑자기 몸에 안 좋은 음식을 식도에 잔뜩 때려 넣고 싶었다.
내가 걸어 나가자 사람들은 웅성거리며 길을 터줬다.
밖에는 앰뷸런스가 있었고, 경비 아저씨가 실리고 있었다.
다른 구급대원들도 위로 올라가고 있었다.
그들은 모두 방역복을 입고 있었다.
나는 오피스텔 밖에서 담배를 피웠다.
방역복을 입은 대원들이 경찰과 함께 내 곁으로 왔다.
"아까 집에 계셨던 분이죠? 신원 조회 좀 하겠습니다. 성함이 어떻게 되시죠?"
"권기범입니다."
간단한 신원조회를 마치고 방역대원의 안내가 이어졌다.
혹시 알려지지 않은 병균이나 바이러스의 위험이 있으니 격리를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나뿐만이 아니었다. 버디, 경찰, 이웃 주민들도 격리 대상이라고 했다.
격리실로 곧장 옮겨졌고, 그곳에서 들은 소식은 충격적이었다.
복부를 공격당한 경비 아저씨는 복부에서 괴생명체가 튀어나왔다고 했다.
수술 중에 조그마한 괴생명체가 나타나 소리 지르고 기절하고 난리도 아니었다고 했다.
그리고 촉수 공격에 턱뼈가 날아간 경찰 역시 입에서 괴생명체의 변태 전 상태로 보이는 기생충이 튀어나왔다고 했다.
다행히 나와 버디에게는 그런 증상이 없었다.
"기범씨는 검사 결과 정상이십니다. 진짜 대단하시네요. 어떻게 그 상황에서 자기 팔을 지질 생각을 하셨는지, 덕분에 감염되지 않으셨습니다."
"저도 살려고 그랬죠. 근데 이게 감염이 되는 건가 봐요?"
"정확히 말하면 감염은 아니죠. 경비 아저씨 체내에서 나온 개체를 생포해서 분석한 결과, 촉수에서 자기 세포를 뿌리더라구요. 그걸로 증식하는 걸로 보입니다. 뭐, 연구가 더 필요하지만"
만약 거기서 불로 처리하지 않았다면 내 팔에서도 괴생명체가 튀어 나왔겠지?
순간 머릿속에 뭔가 떠올랐다.
팔딱거리며 변기 물로 내려간 녀석의 촉수.
"슈르치치치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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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http://web.humoruniv.com/board/humor/read.html?table=fear&number=811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