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시대엔 양자가
아예 피가 1도 안섞인 남도 입양하지만
옛날 조선시대엔 가문의 예비수단 이란 느낌이 강했는데
우선 법적 서열이 적자=양자 >> 서얼로
서얼은 과거시험자체를 볼수없지만
정실부인이 남자를 못낳아 서자밖에 가문을 못이을경우
다른 가까운 친척들 중에서도 입양할 남자애가 없다면
최후의 수단으로 서자를 정실부인 밑으로 입양시켰는데
왕실에서도 서자출신이 왕위에 오를때마다 호적정리로
선왕과 중전마마의 양자로 입양시키는 절차가 필수라
양자 입적이 현대와 달리 매우 무거운 느낌이었다.
물론 그런거 얽메일거없는 평민층에서야
불쌍한 고아 주워다 입양해서 키우는건 꽤 있긴했다.
오늘부터 니 이름은 춘식이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