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세에 이르러서는 우리나라의 일을 중조(中朝 중국을 이름)에서 따르지 않은 것이 없다. 그러나 요심(遼瀋) 지방에서 조선 황제(朝鮮皇帝)라고 일컬은 말은 그 유래가 오래되었다. 우리 종조(從祖) 두봉공(斗峯公)이 만력(萬曆 명 신종의 연호) 말기에 주청사(奏請使)로 연경(燕京)에 간바, 주청에 대하여 특지(特旨)로 비준(批準)을 받았으며, 후에 집으로 보내 온 편지 가운데 모두 “조선 황제라 칭한다.” 하였으니, 대개 상국(上國)의 은혜는 우리나라에 대해 그와 같이 후했던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어찌 임진(壬辰, 1592)년 동정(東征) 때 중토(中土 중국을 가리킨 말)의 피폐(疲弊)를 불고하고 후원해 주었겠으며, 또 어찌 인력(人力)으로서 그렇게 되었겠는가? 거기에는 반드시 그만한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주-D001] 조선황제(朝鮮皇帝) :
중국서 조선 황제라고 불렀다는 설. 《類選》 卷9下 經史篇8 論史門.
[주-D002] 두봉공(斗峯公) :
이조(李朝) 광해군(光海君) 때 문신 이지완(李志完)의 호.
성호 이익의 개인 문집의 기록에 의하면 17~18세기 요동과 심양 지역에서는 조선 국왕을 가리켜 조선황제라고 호칭하였는데
요동과 심양에서 조선국왕을 황제로 호칭한 유래가 오래되었다고 한다
이익의 말에 따르면 만력제 말년 부터 명나라 정부에서 조선 국왕을 가리켜 조선 황제로 호칭하였다고 한다.
대 대 대
300년 제삿밥 얻어먹을 자격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