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위장군(비관)은 재간이 있고, 문무(文武)는 감탄할 만하다.
관직에 있을 때 임무를 잘 수행하였고, 당당하고 말을 잘 하여 자주 거론되었다.
재산 증식을 꾀하고 많이 배풀었으며, 인의와 공덕이 지극했다.
비빈백(賓伯)의 이름은 비관(費觀)이며 강하군(江夏) 맹현(鄳) 사람이다.
유장(劉璋)의 모친은 비관의 재당고모이며, 유장은 또 딸을 비관에게 시집보냈다.
비관은 건안 18년(213년)에 이엄의 군대에 참가하여 면죽에서 선주에게 저항하다가 이엄과 함께 항복했다.
선주는 익주를 평정한 후 비관을 비장군(裨將軍)으로 임명했으며, 후에 파군태수ㆍ강주도독으로 임명했다.
건흥(建興) 원년(223), 도정후(都亭侯)에 봉해졌으며 진위장군(振威將軍)을 더했다.
비관은 사람과의 교제에 뛰어났다.
도호(都護) 이엄(李嚴)은 천성이 자존심이 강해 호군(護軍) 보광(輔匡)과 나이와 지위가 서로 비슷했지만, 이엄은 그들과 교류하지 않았다.
비관은 이엄보다 20여 세 적었지만, 이엄과 마치 동년배인 양 친밀하게 왕래했다.
비관은 37세에 죽었다.
그의 사적은 산실되었기 때문에 전을 만들지 못했다.
-계한보신찬
정남장군(조운)은 성정이 후덕하고, 정서장군(진도)은 충성스럽고 강직하다.
당시 선발된 병사를 지휘하여 맹장으로써 공훈을 날렸다.
진숙지(叔至)는 이름이 진도(陳到)이고 여남군(汝南) 사람이다.
예주(豫州)에서 선주(先主)를 수행하여 명망과 관위는 항상 조운(趙雲)의 뒤였다.
그들은 함께 충성과 용맹으로 칭송되었다.
건흥(建興) 초, 영안도독(永安都督)ㆍ정서장군(征西將軍)에까지 관직이 올랐고, 정후(亭侯)로 봉해졌다.
-계한보신찬
제갈양은 한중으로 출병하려고 하면서 이엄이 반드쉬 뒷일을 맡아 줄 것으로 생각하고 강주(江州)로 옮겨 주둔시키고,
호군(護軍) 진도(陳到)를 남겨 영안에 주둔시켜 모두 이엄의 통솔하에 두었다.
-제갈량전
일 잘하는 능력있는 인싸였던 비관, 조운 다음이었다던 진도
분명 평은 좋은데 기록이 없음
그런데 보면 둘 다 이엄과 엮여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오서 쪽에서는 상대 당파라 기록 뺐다는 애기가 있어서 저기도 그러지 않았으리란 보장이 없고 전란 중에 소실됐을 가능성도 있고 현존하는 기록이 없다는 거 말곤 따져봐야 의미가 없음
둘다 코에이 삼국지에는 나옴
보통 상급자가 탄핵당하면 하급자는 기록이 묻히나?
진리는 라면
오서 쪽에서는 상대 당파라 기록 뺐다는 애기가 있어서 저기도 그러지 않았으리란 보장이 없고 전란 중에 소실됐을 가능성도 있고 현존하는 기록이 없다는 거 말곤 따져봐야 의미가 없음
하긴 이궁의 변도 막상 디테일 한면 다 빠져있긴 하지
나도 삼국지 게임하고 알았던 인물
진도는 예주 시절부터 유비 따라다닌 고참급에 정서장군까지 오른 현장직인데 기록이 아예 없는 게 안타깝더라
역으로 그러다보니 삼국지 관련 창작물에서 주인공으로 써먹을 수 있지 않을까 싶긴 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