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 영상은 오징어 게임 시즌 2 홍보영상 양복남(or 딱지남) 버전.
본 글에는 오징어 게임 시즌 2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어제 저녁에 오징어 게임 시즌 2를 다 봤어. 스포 당할까봐 유게 들어오지도 않고 지냈는데, 이제는 속 편하게 들어올 수 있네. 그래놓고는 내가 스포일러가 포함된 글을 쓰려고 하는군.
시즌 2에 대한 전체적인 평가들은 많으니 딱히 더할 말은 없고, 난 다들 극찬하는 시즌 2 1화에 대해 써보려고.
1화는 지난 시즌에 대한 짧은 리뷰와 함께 양복남/딱지남을 찾으려는 성기훈의 이야기가 나와. 모두가 예상했듯이 돈이 많아서 행복한 건 아니고 강박에 가깝게 주최측을 찾아 복수하려는 광기로 성기훈은 지내고 있지. 중간중간 시즌 1에서의 인연인 상우 어머니나 새벽이 동생을 돌보기는 하는데, 여전히 죽은 사람들에 대한 악몽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고.
성기훈은 돈으로 사람을 사서 쓰는데, 단순히 용역을 구한 게 아니라 시즌 1 때 자기 때리고 신체포기각서 쓰게 만들었던 사채업자를 데려다 일을 시키고 있어. 그런데 재미있는게, 이 사람은 어느 정도 성기훈과 공감을 하고 있어. 그래서 단순한 캐릭터에서 감정을 이입할 수 있는 입체성을 가지지.
그렇지만 1화의 주인공은 공유가 연기한 양복남이야. 그냥 나오는 장면도 많고, 그 장면마다 관객에게 한 방씩 날리거든.
양복남은 게임 참가자를 모으는 행동 외에도 개인적인 행동을 하는데, 빵과 즉석복권을 잔뜩 사서는 공원 노숙자들에게 주는 게임을 하고 있어. 그러니까 빵과 복권을 내밀고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하라고 하는 거지. 1화의 소제목 '빵과 복권'이 바로 이거라고 할 수 있지. 참고로 이 제목은 고대 로마의 정책인 '빵과 서커스'에서 따온 거 같은데, 이건 당시 복지정책이면서 동시에 우민화를 위한 수단으로도 해석되거든. 아무튼 이 빵과 복권의 선택은 이렇게 볼 수 있어. 당장의 생존과 더 큰 미래의 기대가치. 삶의 여유가 있는 사람들이야 빵 대신 복권을 선택하는 게 나쁠 거 없지만, 노숙자들의 경우 한 끼 한 끼가 소중하니 확률이 낮은 복권과 당장의 허기를 해결할 수 있는 빵 중에서 고민할 수밖에 없지. 하지만 거기 나온 노숙자들은 단 한 명을 제외하고는 모두 복권을 골라. 그리고 결과는 꽝.
여기까지만 보면 욕심 때문에 한 끼를 잃었구나... 라며 놀리는 정도겠지만, 그 뒤에 양복남은 사람들이 고르지 않은 빵을 바닥에 쏟아놓고 발로 밟아. 사실 양복남 캐릭터를 생각하면 우아하게 버린 뒤에 못 먹게 태우거나 약을 뿌리던지 할 거 같은데, 정말 광기어리게 빵을 짓밟거든. 여기서 바로 느껴지지. 이 놈은 미친 놈이구나.
사실 양복남 캐릭터는 공유의 멀쩡한 외모와 정장 때문에 '냉정한 전문가' 또는 '소시오패스'라는 느낌이 있었거든. 그런데 그 장면에서 미친 듯이 빵을 밟고, 그 뒤부터는 맛이 간 표정으로 계속 나와.
그 다음에 나오는 거야 직접 보면 '와 공유 대단하구나' 싶은 게 느껴지니까 아무리 시즌 2 평이 안 좋아도 1화는 꼭 보길 추천할께.
뭐 근사하게 연기 잘 하는 배우 데려다가 인상적인 1화를 찍었구나... 싶을 수도 있는데, 이 '빵과 복권'이라는 테마는 시즌 2의 핵심주제라고 생각해. 시즌 2 내내 나오는 게 바로 지금이라도 게임을 멈추고 나가느냐, 좀 더 돈을 벌고 나가느냐의 갈등이거든. 빵처럼 당장의 상금(최초 투표 시 상금이 7천만 원 정도 나옴)을 갖고 살아서 나가느냐, 아니면 좀 더 게임을 해서 더 많은 상금을 챙기느냐로 게임에 참가한 사람들이 고민을 하지. 그리고 당연하지만 복권이 당첨 안 된 거와는 비교할 수도 없는 죽음이라는 '꽝'이 기다리고 있고.
'개똥 밭에 굴러도 이승이 낫다'라는 속담이 있잖아. 사실 아무리 큰 돈이라도 죽으면 아무 소용 없고. 거기다 오징어 게임은 그러다 죽는다고 유족에게 돈이 전달되지도 않아. 그냥 시체로 태워지는 거 뿐이지. 다시 말해서 꽝이 나온 즉석복권 마냥 아무 짝에도 쓸모 없어 지는 거야. 마치 양복남이 공원의 노숙자들에게 주지 않은 빵을 짓밟듯이, 탈락자들에게는 '실패한 쓰레기'라는 멸시만 남는 거지.
양복남은 자신에 대한 짧은 서사도 들려주는데, 이게 아주 강렬해. 시즌 1 때 다들 예상했던 것처럼 양복남도 일반 핑크 병정 중 하나였어. 사람을 죽이는데 무감각해져가고 있는데, 어느 날 탈락자 중에 자기 아버지가 있던 거지. 아버지는 가면 뒤의 아들을 알아보지 못한 채 살려달라고 빌었지만, 양복남은 그냥 아버지를 죽여. 그런데 이건 이 사람이 타락해서가 아니라 거기서 안 죽이면 자기가 죽는 세계라서야. 그렇지만 결국 그 순간에 양복남의 정신세계는 박살이 나고, 그 오징어 게임의 규칙만이 삶의 의미를 대체하게 되지. 상식의 정의나 생명에 대한 존중 대신 규칙에 따라 죽이고, 살아남으면 성과를 가져가는.
마지막 러시안 룰렛에서 격발될 게 분명한 리볼버를 자기에게 쏘고 양복남은 죽어. 이게 그냥 이 사람이 미쳐서 그랬다고 보는 것 보다는, 이미 양복남의 사람으로써의 모든 것은 아버지를 쏘는 순간 죽었다고 생각해. 그 뒤에 남은 오징어 게임의 규칙 뿐이고. 그 규칙에 따라 양복남은 실행하는 거 뿐이지.
이건 내 해석인데, 공유가 연기한 양복남의 상황은 이병헌이 연기한 프론트맨과 같은 유형이라고 생각해. 프론트맨 역시 아내가 큰 병(간경화였던가)에 걸린 상태에서 임신을 했고, 아내와 아이를 살리기 위해 프론트맨은 오징어 게임에 참가하거든. 그래서 결국 1등을 해서 큰 돈을 가져가지만 이미 아내와 아이 모두 세상을 떠난 거야. 그 순간 프론트맨은 죽어버린 거지. 그 뒤에 남은 건 자신의 행동을 정당화하기 위한 게임의 규칙만 남은 거고. 프론트 맨은 시즌 2 내내 완벽한 표정과 태도로 성기훈을 비롯한 주인공들을 속이는데, 단 한 번 감정을 못 추스리고 폭발하는 장면이 나와. 타노스랑 그 일당이 프론트맨의 가족에 대해 욕할 때지. (솔직히 욕 까지는 아니고 '아저씨 애나 챙겨' 느낌이었지만)
프론트맨이 시즌 1의 '오일남'처럼 001번으로 나오고 이름도 '오영일'이라고 가명을 쓰는 건 오일남의 후계자라는 느낌을 주거든. 그리고 실제로 오일남처럼 직접 참여해서 성기훈과 같이 '놀아'. 시즌 1의 오일남이 엄청난 돈과 권력을 지녔지만 침대에서 쓸쓸히 죽어간 거 보면 이 사람의 삶도 알 수는 없지만 프론트맨처럼 어떤 계기로 망가졌을 거야. 그래서 남은 건 광기어린 규칙 뿐이고, 거기에 매달려서 지냈겠지.
결국 양복남이나, 프론트맨, 그리고 오일남까지 모두 사람으로서의 삶과 정신은 이미 죽었고, 그들의 규칙만 남은 존재라고 생각해.
뭐 1화는 이렇게 생각할 거리도 많고, 배우들의 연기도 미치도록 멋지지만 아무래도 시즌 2 전체가 아쉬운 건 맞아. 대놓고 시즌 3 때문에 중간에 잘라먹은 느낌이거든. 어쩌면 그냥 시즌 2 10화로 끊으려는데 '어른의 사정'으로 조금씩 늘려서 7화+7화로 구성한 건지도 모르지. 원래 미드에서 잘 하는 거잖아. 떡밥 던지고 잘라먹기.
아무튼 오징어 게임에 대한 평가는 시즌 3를 마저 봐야 내릴 수 있을 거 같고. 난 시즌 2 1화가 근사해서 몇 번씩 다시 봤네. 끝.
ps. 그러고 보니 공유가 이런 악역으로 나온 적이 있었나... 싶어서 찾아봤거든. 그랬더니 아주 신인 시절에 '동갑내기 과외하기'라는 영화에서 주인공 권상우에게 깝치다가 처맞는 악역으로 나온 게 있었어. 그런데 이 코믹영화라 악역이라기 보다는 그냥 찌질캐릭터기는 하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