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동 봉정사에 남아있는 창호지 사용 전의 우리나라 창문틀 덧창을 덧대고 창살만 있는 구조 15세기 즈음 와야 창호지가 널리 쓰임.
종이도 한때 사치품이었으니
한때가 아니라 계속 비싼 물건이었음. 괜히 국가 문서는 세초해서 씻어서 재사용한 게 아님
생각해보니 지금도 아주 막 쓰진 못하는구나
조선초에 소빙하기 온거랑 관련있으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