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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은 체면을 중시하는 나라라 조공-책봉 형식이 아니면 교역을 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중국의 황제의 가오를 과시하기 위해 받는 진상품보다 황제가 답례로 주는 회사품의 양이 더 많았습니다. 북방 유목민족에게 개털리던 송나라 때를 포함해서, 심지어 아편전쟁에서 개박살난 다음에도 원하는거 다 들어줄테니 조공의 형식만 취해달라고 요구했던게 청나라입니다.
교루가 없다가 이루어지면 놀랄 수 있죠. 일본에서 수양제에게 동천자, 서천자 운운했을 때는 또 얼마나 황당하고 (어이가 없어서) 놀랐겠습니다. 간혹 모든 조공 관계를 실질적인 상하 관계로 오해를 하는 사람들이 있더라구요.
수양제 하니 생각나는건데 수양제도 로마 제국과 접촉시도했다더군요
금이 부족하다면 악화를 많이 찍어내면 된다는 그 기적의 발상으로 내치를 엉망으로 한 미하일 7세 시기 기록이로군요. 이래서 제가 로마노스 4세-미하일 7세로 이어지는 시기야말로 동로마 최악의 흑역사 투톱에 든다고 생각합니다(다른 하나는 팔레올로고스 내전). 두카스 황조 시기가 팔레올로고스 시기에 묻혀서 그렇지, 제 생각에는 두카스 황조 시기야말로 로마를 거꾸러뜨린 시대라고 생각합니다. 콤니노스 3현제가 노력해도 마케도니아 황조 시절의 기세를 되돌릴 순 없었으니까요.
콤니노스 3현제가 괜히 대제 취급 받는게 아니더라고요 어떻게든 멱살잡고 살려낸 공로...
구당서가 기록된게 저 시점으로 백년도 전 일인데 조공을 바친 전례가 없다고 한거 보면 당나라 시기 입조한것도 형식적인 조공이었다는걸 알았던 모양입니다. 아마 뭔가 더 일이 있어서 놀라고 의심한것 같은데...
원래 저 동네는 타국과 물자 교역을 하면 다 명목상 조공이라고 퉁치는 곳이라 저는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해요. 존재 자체는 몇백년 전부터 알던 서방의 강대국과 드디어 물적 '교역'을 한게 의미깊어서 기록한게 아닐까요?
금이 부족하다면 악화를 많이 찍어내면 된다는 그 기적의 발상으로 내치를 엉망으로 한 미하일 7세 시기 기록이로군요. 이래서 제가 로마노스 4세-미하일 7세로 이어지는 시기야말로 동로마 최악의 흑역사 투톱에 든다고 생각합니다(다른 하나는 팔레올로고스 내전). 두카스 황조 시기가 팔레올로고스 시기에 묻혀서 그렇지, 제 생각에는 두카스 황조 시기야말로 로마를 거꾸러뜨린 시대라고 생각합니다. 콤니노스 3현제가 노력해도 마케도니아 황조 시절의 기세를 되돌릴 순 없었으니까요.
콤니노스 3현제가 괜히 대제 취급 받는게 아니더라고요 어떻게든 멱살잡고 살려낸 공로...
네, 그렇죠 ㅇㅇ 한데 그 3현제의 노력이 콤니노스 황조 후반기 및 앙겔로스 황조 시기에 도로아미타불이 된 걸 생각하니 참...
중국은 체면을 중시하는 나라라 조공-책봉 형식이 아니면 교역을 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중국의 황제의 가오를 과시하기 위해 받는 진상품보다 황제가 답례로 주는 회사품의 양이 더 많았습니다. 북방 유목민족에게 개털리던 송나라 때를 포함해서, 심지어 아편전쟁에서 개박살난 다음에도 원하는거 다 들어줄테니 조공의 형식만 취해달라고 요구했던게 청나라입니다.
구당서가 기록된게 저 시점으로 백년도 전 일인데 조공을 바친 전례가 없다고 한거 보면 당나라 시기 입조한것도 형식적인 조공이었다는걸 알았던 모양입니다. 아마 뭔가 더 일이 있어서 놀라고 의심한것 같은데...
털보네국밥
교루가 없다가 이루어지면 놀랄 수 있죠. 일본에서 수양제에게 동천자, 서천자 운운했을 때는 또 얼마나 황당하고 (어이가 없어서) 놀랐겠습니다. 간혹 모든 조공 관계를 실질적인 상하 관계로 오해를 하는 사람들이 있더라구요.
수양제 하니 생각나는건데 수양제도 로마 제국과 접촉시도했다더군요
원래 저 동네는 타국과 물자 교역을 하면 다 명목상 조공이라고 퉁치는 곳이라 저는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해요. 존재 자체는 몇백년 전부터 알던 서방의 강대국과 드디어 물적 '교역'을 한게 의미깊어서 기록한게 아닐까요?
구당서에 이미 수차례 조공 무역과 사신 교류를 했었단 기록이 있습니다 명사에서도 송사의 이 기록을 로마에서 보낸것에 대한 진위여부를 의심한것이라고 기록한거 보면 아마 모종의 일이 더 있었던 모양인듯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