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2년 4월 29일. 상하이 홍커우 공원에서 윤봉길 의사가 의거를 행한 날이다. 이 날의 의거로 일본 제국의 고위급 인물 여럿이 죽거나 부상을 입었는데 부상자들 중에 눈여겨볼 이가 둘이 있다
(오른쪽 눈을 잃은 노무라 기치사부로)
일본 제국 해군 중장 노무라 기치사부로, 오른쪽 눈 실명
주중 일본 공사 시게미쓰 마모루, 오른쪽 다리 절단
노무라의 이후 행보부터 살펴보자. 그는 1937년 해군에서 퇴역한 후 가쿠슈인 귀족학교 교장, 외무대신을 거쳐 1940년 11월 27일에 주미 일본 대사로 보내졌다.
그리고 이듬해인 1941년 12월 7일, 일본 제국은 선전포고 없이 진주만 해군 기지를 공격하면서 태평양 전쟁이 시작되었다. 노무라 대사는 공습 개시 1시간 후에서야 선전포고문을 미 국무장관 코델 헐에게 전달하였다. (그마저도 내용이 엉망이라 제대로 된 선전포고라 볼 수 없었다.)
(팬들을 위한 친필 사인회에 참석한 연 시게미쓰 외무대신)
이번에는 시게미쓰의 행보를 살펴보자. 그는 1943년 외무대신으로 임명되었고 1945년 9월 2일 미주리 함 갑판 위에서 열린 항복 문서 조인식에서 일본 측 전권 대사의 자격으로 서명을 한다.
항복문서 조인식은 영상으로 촬영되어 뉴스로 보도되었는데 이때 미국 측 아나운서는 위의 멘트로 보도한다. 시게미쓰의 다리를 날려버린 것이 한국인 애국자(윤봉길 의사)에 의한 것임을 명확히 인지하고 있었다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렇게 해서 윤봉길 의사의 의거가 역사에 어떤 흔적을 남겼는지 알아보았다. 몇몇 고위급 인사들이 죽지 않고 부상으로 끝난 것이 스노우볼이 되어 역사에 흔적을 남긴 것이다.
미국 : 뭐? 어떤 원종이가 한국이 가만히 앉아서 독립'당했다'고 지껄이대?
윤봉길의 의거 덕분에 중국이 임시정부를 지원하게 됐지 그전엔 조선인이 일본 앞잡이라는 인식이 강했지 중국 땅에 밀입국해서 마음대로 살지를 않나 평양에선 화교 학살이 일어나질 않나 근데 그 인식을 바꿔준거임
안중근 의사 진짜 사람보는 눈부터 천재였네 몇년앞을 내다본거여 대체 그처럼 살려면 어떻게 해야하는거냐
저항조차 없었으면 아직도 일본땅이었겠지
아니 윤봉길의사 잘못씀 ㅋㅋ
미국 : 뭐? 어떤 원종이가 한국이 가만히 앉아서 독립'당했다'고 지껄이대?
윤봉길의 의거 덕분에 중국이 임시정부를 지원하게 됐지 그전엔 조선인이 일본 앞잡이라는 인식이 강했지 중국 땅에 밀입국해서 마음대로 살지를 않나 평양에선 화교 학살이 일어나질 않나 근데 그 인식을 바꿔준거임
안중근 의사 진짜 사람보는 눈부터 천재였네 몇년앞을 내다본거여 대체 그처럼 살려면 어떻게 해야하는거냐
월드클라스변태
아니 윤봉길의사 잘못씀 ㅋㅋ
수십년간 하자있는 불량품을 제조했다는 음해에 시달려온 폭탄제조자에게 묵념
저항조차 없었으면 아직도 일본땅이었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