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구체적인 피해 숫자가 적혀있지 않다,
->맞는 말이다, 다만 묘사상으로는 상당한 몰살이란걸 짐작할 수 있다.
2. 서술자의 중립성
->서주대학살의 피해 묘사는 조만전에서 상세히 묘사되는데
이게 조조에게 당해서 오나라로 피난 온 사람의 입장에서 서술된지라 객관적이진 않을 수도 있다.
3. 당시의 영향력과 주목도
->원소가 조조까려는 구문격주에서도 조조가 연주, 예주 백성을 괴롭혔다고 했지
서주 이야기는 적혀있지 않다, 또한 서주의 호족이 다시 조조에게 흘러들어갔다는 걸 생각하면
지도자층의 입장에선 그다지 와닿지 않거나, 피해규모에 의혹이 들만한 대목이기도 하다.
하지만 조조를 피해 도망친 오나라 피난민이 기록한 '조만전'의 존재가 있으며
유비를 따라 도망친 10만 백성 등
조조에 대한 민심변동은 영향이 컸다고 보인다.
4. 전략적으로
->냉정하게 말해서 진짜 X똥볼
전략론이 옹호하는 거냐고 묻혔는데 덕분에 이 대학살 때문에
연주가 뒤집혀서 조조의 본거지가 날라갈 뻔한 트롤링이 묻혔다는 거 아이러니할 정도
뭐 당시 인권도 그렇고 옛날의 전쟁의 참상도 지금보다 더 심하면 심했지 덜하진 않았기에
전략적으로 민간인과 생산수단을 박살내서 적을 약화시키는 전략은 존재한다.
다만 필자는 결국 그러한 작전을 시행한 본인이 악명을 감당해야하는 건 어쩔 수 없다고 본다.
물론 서주대학살은 전략적으로 딱히 행동한 것 같진 않지만
재밌는건 조조가 이 사건으로 지도자로서 실격인 점과 대단한 점을 둘 다 보여준다는 것이다.
다만 서주대학살을 이야기하는 시점에서 적어봐야 설득력은 없으니 다음에 연주반란 제압에 대한 글을 적을 때
서술하겠다.
촉나라 중신 제갈량, 미축 원래 서주 출신. 오나라 중신 노숙, 보즐, 장소 등등 서주 출신 서주 대학살 없었으면 저 만한 인재가 적 진형에 안 갔음. 조조가 천하통일 못한 이유중 하나 대학살임.
제갈량, 미축은 그렇게 추측할 수 있는 기록이 있긴한데... 노숙은 원술한테 갔다가 어휴 노답ㅉㅉ 하고 손권한테 갔을껄 보즐, 장소가 삼국성립에 큰 영향을 줬다고 생각은 안들긴 하고..
또 시작됐다 wwe
아까 빼먹었는데 제갈량 형 제갈근도 서주 출신
도착했을때 손책 죽었다 이런거있으면 그냥출신만 가지고 이러는것같은데 한말에 난을 피해 강동으로 왔다. 마침 손책이 죽었는데 제갈근전 손책 죽었을땐 200년 서주대학살이 193~194년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