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르베어는 나와 함께 사람들 사이를 헤치고 본성의 복도를 거닐며 어깨 한 번 으쓱이는 걸로 감정을 표현했다.
"솔직히 올 것이 왔다는 생각만 들더구나."
펜라드 공국에 닥쳐온 위기보다 더 경악해야 할 사실이 달리 있었다.
"최근 수 년간 이교도 무리가 등장하는 횟수가 뜸해지긴 했었지. 평화 동맹의 성립이 어떤 식으로든 이교도들의 경계를 샀다는 게 분명하다. 어쩌면 펜라드 공국을 향한 이번 이교도들의 습격은 동맹의 결속을 확인하기 위한 정찰일 수도 있겠구나."
"테, 테르베어 경..."
"응?"
"제가 안 보는 새에 공부하신 겁니까?"
나는 펜라드 공국의 구원 요청에 대해 골똘히 고심하는 테르베어를 보며 놀랄 수 밖에 없었다. 뇌가 뉴런 대신 근섬유로 이어진 듯했던 우리 테르베어가 저렇게 유익한 의견을 내놓을 수 있다니?
내 순수한 경악을 눈치챈 테르베어는 입꼬리를 씨익 끌어올리며 특유의 호리호리한 눈빛을 반짝이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기사의 돌격이 아무 사전 판단없이 무차별적으로 이뤄진다 여기지."
"..."
"허나 기사는 피비린내와 함성, 부딪히는 칼날들 속에서 다른 걸 보는 자들이다. 기억해라, 나르바.
상대의 호흡, 발놀림, 무기를 움켜쥔 자세, 그리고 표정에 깃든 전의를 면밀히 파악한 뒤에야 비로소 말에 박차를 가하는 것이다."
순간, 울컥하는 마음이 들었다.
항상 단순무식한 줄 알았던 우리 테르베어가 이토록 깊은 생각의 소유자라는 사실이.
혹시 내가 단편적인 부분만 보고 기사라는 인종을 너무 하찮게 여긴 것이 아닐까.
나는 뒤늦게 벅차오르는 감동을 억지로 숨기며 테르베어 형님의 말씀을 마저 경청하기로 했다.
"그럼 싸움이 유리할 때 돌격하는 겁니까?"
"그렇지. 기사는 아군의 승기가 뒤집히는 일이 없도록 쐐기를 박기 위해 돌격한다."
"불리해질 때는 어떡하죠?"
"그럴 땐 아군이 재집결하고 역전할 발판을 만들기 위해 돌격한다."
"과연..."
...?
뭔가 이상한데.
"대치 중일 때느..."
"싸움은 기세다, 나르바. 기사는 그럴때 아군에게 기세를 싣기 위해 평생의 수행과 갈고 닦은 장비를 믿고 가장 앞서 돌격해야 한다."
....
생각은 하는 것 같은데, 결론은 돌격 일변도냐...ㅋㅋㅋ
기사가 할게 그거밖에없잖아 말탁 농성할까?
무슨 소설이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