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 전쟁의 유명한 전투 하면 보통 한국에서는 낙동강 전투 랑 인천상륙작전정도가 유명하고 좀 더 파본 사람들은 장진호 전투랑 현리 전투정도 까지 언급을함.
그런데 진짜 중요한 전투 2개를꼽으라고 하면 '인천상륙작전'이랑 '청천강전투'를 언급한다고 한다.
국내에는 밀덕들도 잘 아는 사람이 많지 않은 전투고 국군에서도 청천강 전투는 그냥 은근슬쩍 넘어가고 그랬음. 국군은 625최대의 흑역사라는 현리 전투에 대한 분석은 많으면서도 저 전투에 대해서는 언급을 대충 넘어가려고 했거든. 그럼 저기서 무슨일이 있었길래 언급조차 싫어할까?
간략하게 전투과정에 대해 설명하면. 맥가 양반의 닥달로 유엔군이 압록강까지 도달하고 두만강을 향해서 달려가던 1950년 10월 이쯤에 이미 중공군은 상당한 숫자가 북한영토내에 매복해 잇던 상태였고, 팽덕회는 유엔군을 더 깊숙히 끓어들여서 포위섬멸하는 작전을 세웠어. 그런데 11월 말이 되자 유엔군이 충분히 함정에 빠졌다고 판단한 중공군은 총공세를 감행했고 11월 24일부터 30일까지의 말그대로 유엔군을 개패듯이 두들겨팼음. 약 2~3만명의 유엔군이 전사하거나 실종당했고 유엔군은 평택-원주선까지 그대로 밀려나버림.
이 충격으로 '맥가놈'은 방안에 쳐박해서 술만 빨아대고 있었고, 8군 사령관인 '워커 중장'은 전선을 수습하기 위해 시찰을 나갔다가 교통사고로 순직했으며, 청천강 전투에서 9군단을 지휘했던 '콜터 소장'의 모가지가 날라갔고, 2사단장인 '카이저 소장'은 보직해임 당하고 본국으로 바로 소환당했어. 유일하게 10군단장이던 '알몬드 소장'만 맥가놈의 체면을 봐서 처벌받지 않았음. 특히 가장 많은 피해를 입은 2사단은 아예 사단을 해체하고 새로 만드는게 낫겠다는 평을 들었어.
이 사태를 수습하기 위해 미국은 일단 8군사령관에 '리지웨이 중장'을 임명했고 그는 신임 사령관에 부임하자 마자 1차 칼바람에서 살아남은 사단장들을 대거 숙청하는 결단을 감행함.
그렇게 리지웨이가 일단 사태를 수습했고 4월에 맥가놈이 잘린 자리에 리지웨이가 사령관으로 부임하면서 베글에 올라온 벤플리트 탄약고 이벤트로 이어짐.
맥아더 인천상륙은 대단하지만 솔직히 뽀록이었다고 봐야될듯 진짜 유능했으면 평양 원산에서 진작 막았지
맥아더 인천상륙은 대단하지만 솔직히 뽀록이었다고 봐야될듯 진짜 유능했으면 평양 원산에서 진작 막았지
인천상륙작전 직전에도 존버의 결과물로 병력 물자 등 전력이 모두 북한군보다 우월했음 전황을 뒤집을 무언가가 필요했는데 인천상륙은 너무 무모하긴 했지 성공해서 대박났지만
알몬드가 제일 폐급 아니었나
제일 무능한 양반은 맞는데. 인맥관리는 잘했나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