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가 고구려와 연합해 요동을 공격한 이후, 원정군은 안성에 주둔하고, 그와 동시에 옛 백제 영토에 대한 공격을 감행합니다. 특히 이 공격은 웅진도독부가 있던 웅진과 사비 지역에 집중됩니다.
그 와중에 탁발선비의 따까리인 설인귀가 문무왕에게 편지를 보내 적당히 하고 꿇어라고 통보합니다.
글을 보면 사마상여나 정철 같은 사람들이 쓴 것처럼 장황하기만 하고 실질적인 내용은 거의 없습니다. 실로 야만인들답다 하겠습니다.
이에 대해 문무왕은 설인귀에게 다시 회신해 신라의 입장을 밝힙니다.
이것을 답당설총관인귀서答唐薛摠管仁貴書 또는 답설인귀서答薛仁貴書라고 합니다.
문장이 아주 명료하고, 들어가야 할 말들이 들어가고, 안 들어가도 될 말은 안 들어가 있습니다.
말은 점잖은데, 답설인귀서의 내용은 대충 다음과 같습니다.
1. 웅진도독부 물자 대 준 거 우리.
2. 니들 백제, 고구려하고 전쟁할 때 군량 대 준 거 우리.
3. 3차 고구려 당 전쟁에서 우리 군공 많다.
4. 백강에서 우리 공 많다.
5. 복신이 난 일으켰을 때 웅진도독부 살려준 거 우리.
6. 우리 공 많은데 이세적이가 밑장 뺐고, 짝눈이 새끼도 밑장 뺐다.
7. 짝눈이하고 무열왕하고 평양 이남 신라한테 준다고 약속해 놨는데 왜 밑장 빼고 지랄?
8. 비열홀 우리 땅인데 왜 갑자기 안동도호부한테 돌리고 지랄?
9. 김흠순이 탈출할 때 보고 왔는데, 옛날 백제 땅 다 되돌려 주려고 하더라, 호쌍새야?
10. 근데 우리가 이러는 건 니들 탁발선비가 약속 어겨서 그런 거고, 실제로는 우리 약속한 이상 가져갈 생각 없다. 앞으로 너희 형님 해 줄 테니까 짝눈이 약속 지키고 끝내자?
10에서 알 수 있듯, 신라는 탁발선비의 국제적인 입지를 인정하고 있고, 따라서 무열왕과 짝눈이의 약속을 지키는 것으로 전쟁의 전략적 목표를 확실히 해 놓았습니다.
이것은 탁발선비의 입장에서, 나당전쟁이 전략적으로 총력전으로 옮아갈 필요까지는 없다고 인식하게 해 주었을 것입니다. 문무왕은 이후 석문전투 뒤에도 꾸준히 짝눈이 새끼에게 사신을 보내 용서와 사과를 구하는데, 신라의 전략적 목표와 자세가 기벌포 이후 나당전쟁이 흐지부지된 것에 영향을 아마 크게 주었을 것이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