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 수호!”
잠시 후
금목걸이와 금팔찌, 금반지를 주렁주렁 단
중년사내가 들어와
일본어로 이야기하면서
쿠도 신이치를 끌어안았다.
누가 보면
십 수 년 만에 상봉하는 이산가족이라고 착각할 정도로
정겨운 말투와 표정을 지었다.
이름은 라파엘,
성은 아무도 모른다.
라파엘이란 이름이 본명인지도 확실치 않았다.
“ 그놈의 금사랑은 여전하구먼.
라파.”
“ 사람은 변해도
금은 변하지 않아.”
“ 변하지 않는 건
다이아 아닌가?”
“ 쯧쯧!”
라파엘은
금가락지로 치장한 검지를 좌우로 까딱거리며
혀를 찼다.
“ 다이아몬드의 비정상적인 가격은
비열한 더치놈들이 만들어놓은 환상이니
언젠가는
거품이 훅 꺼질 날이 올 거야.”
그의 혈관 속에 흐르는 피 ¼은
독일패망을 직감하고
유럽을 탈출한 게르만선조로부터 물려받았으니
네덜란드인Dutch에 대한 감정이 좋을 수가 없었다.
20세기 이후
남미에서 새 삶을 일군
독일계 이민자는 아주 많았는데
따지고 보면
이탈리아도
독일 못지않게
남미로 보낸 이주민이 많았다.
미국만이
이민대국은 아니었다.
술 한 잔씩 주고받은 둘 중
먼저
본론을 꺼낸 건
역시 라파엘이다.
“ 안식년이라고 들었는데 여긴 어쩐 일인가?
누군가
수호,
자넬 찾아가 닦달할 만큼 급한 일이라면...
상파울로?”
“ 맞아.”
라파엘은
처음 만났을 때부터
쭉 이어오던 미소를 거뒀다.
“ 충고 하나 해도 될까?
친구.”
신이치는
어서 해보란 듯 어깨를 으쓱했다.
“ 관둬.”
“ 왜?”
“ 깊숙이 들어가면 돈과는 관련이 없거든.
이건...
말 그대로
자존심싸움이니까.”
사람들이
크게 착각하는 게 하나 있는데
남미를 대표하는 2강인
브라질과 아르헨티나는 백인국가였다.
여기만이 아니다.
칠레도 우루과이도 페루도
심지어는
콜롬비아도
권력을 잡은 이들은
대부분
백인계층이다.
막말로
중남미 대부분의 국가권력이
백인 손에 있었다.
백인보다
원주민과 혼혈, 황인지도자를 세는 게
더 빠를 것이다.
펠레를
브라질의 국보니 뭐니 자랑스러워해도
축구선수는 축구선수일 뿐이고
텔레비전에 등장하는 스타플레이어의 피부색으로
그 나라의 기득권을 판단해선 곤란했다.
미국이
마약과의 전쟁이든 범죄와의 전쟁이든
뭐든 핑계를 대고
어떻게든
중남미에 관여하려고 기를 쓰는 이유는
팍스아메리카와는
또 다른 기준을 가진
백인연합의 준동을
사전에 차단하기 위해서였다.
“ 독일인 전원이
무조건 과거사를 반성하고 미안해 할 거라고 생각하지 마.
스킨헤드가 아니라도
분명 누군가는
히틀러를 경배하고 나치즘을 신봉해.
물론
겉으론 티내지 않겠지.
그....스펙터 조차도
완벽하게 자신들을 숨겼으니까.
양키들이 무서운 건
그걸 본능적으로 느끼는 거야.
독일에서 미군을 빼지 못하는 게
정말.....
러시아 때문이라고 생각해?
아니거든.”
대다수의
순진한 사람들은
냉전이
소련과 미국의 이념, 공산주의와 자본주의의 대결이라고
굳게 믿지만
국제질서의
진실한 민낯을 본 사상가들은
그 본질을 꿰뚫어봤다.
‘광신적인 애국의 말로.’
오늘날
국경을 나누는 행위는
더는 무의미했다.
음모론에 심취한 이들은
세계를 막후에서 조종하는
막강한 비밀조직이 있다고 믿었다.
아니,
굳이 음모론자가 아니라도
각계각층의 권력자와 실력자끼리 만나
미래를 논의하는
비밀스런 사교모임 한두 개쯤은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어차피
세상은
끼리끼리 모이는 게 당연하니까.
거기다
실제적으로
쿠도 신이치 (올림푸스), 린 (아틀라스), 키리가야 카즈토 (콜로서스) 가 중심이 된
세계정부이자
딥 스테이트 (심연정부) 의 핵심이자
지도자들인
삼인위가 실제로 존재도 하고
그들과
거의 대적할만한
네오나치의 진정한 후계자들이자
제 4제국을 꿈꾸는
히틀러의 진정한 추종자들의 비밀조직인
스펙터 말고는
쿠도 신이치가 아는 한
세계정복을 노리는 비밀조직은 없었다.
그러나
그 또한
만들어내고 조작하려면
얼마든지 가능한 세상이다.
세계를 아우르는
엄청난 규모는 아니지만
적당한 영향력과 자금력을 지닌 모임만 해도
세계정부와 스펙터만은 훨씬 못하지만
당장 예닐곱 곳이 떠올랐다.
라파엘은
그답지 않게
진지한 목소리로 말했다.
“ 누구
혹은
어떤 이들이
남미를 중동처럼 바꾸고 싶나봐.”
세계무역기구 (WTO)
1. 개요
2. 역사
2.1. 국제무역기구(ITO) 구상과 설립 실패(1944~1947)
2.2. GATT체제
2.2.1. WTO 설립 이전(1947~1995)
2.2.2. WTO 설립 이후(1995~현재)
3. 조직
4. 규범
4.1. 다자간 무역협정
5. 주요 원칙
6. 회원국
7. 비판
8. 대한민국 관련
1. 개요[편집]
世界貿易機構 / World Trade Organization[1]
세계무역기구. 이 기구는 전 세계의 모든 무역 규제들을 철폐하거나 줄여나가며 궁극적으로는 세계단일경제블록을 달성하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다.
본부는 스위스 제네바에 소재.
2. 역사[편집]
2.1. 국제무역기구(ITO) 구상과 설립 실패(1944~1947)[편집]
2차 세계대전이 막바지로 접어들던 1944년 7월, 새로운 세계 경제 질서를 만들기 위해 미국을 중심으로 한 연합국 44개국이 미국 뉴햄프셔 주의 휴양지인 브레튼 우즈(Bretton Woods)에 모여 회의를 열었다.
이 브레튼 우즈 회의(Bretton Woods Conference)에서 연합국은 미국을 중심으로 한 국제 금융·통화·무역의 3주 체제의 출범에 합의했고, 이 회의를 통해 국제통화체제를 조율하는 국제통화기금(IMF)과 개발도상국의 재건·부흥을 돕는 국제부흥개발은행(IBRD)을 출범하는 데 합의했다. 한편, 국제무역을 담당하는 기구로 국제무역기구(International Trade Organization. 이하 ITO)를 출범하기로 약속을 하고, 이후 53개국이 ITO의 설립조약인 1948년 3월 24일에 아바나 헌장(Havana Charter)에 서명을 했다. 그러나 미국 상원의회에서 아바나 헌장의 비준 동의를 거부하면서 ITO는 결국 출범도 못 하고 만다.
2.2. GATT체제[편집]
2.2.1. WTO 설립 이전(1947~1995)[편집]
ITO 설립이 실패하면서 1947년에 합의한 관세 및 무역에 관한 일반협정(General Agreement on Tariffs and Trade. GATT 1947)협정문을 기준으로, 국가간 협상인 '라운드(Round)'에서 무역 전반에 관해 합의된 내용을 추가[2]하며 세계무역체제의 질서를 잡기 시작했다.
그러나 '1947년 GATT 체제'는 국가에 강제성·구속성을 부여하는 국제기구가 부재한 상황에서 GATT협정하에 국가 간의 회의를 통한 합의를 통해 이뤄졌던지라 합의 내용의 발전 속도는 지지부진 했다. 이렇게 된 원인에는 1960년대 이후 프랑스, 독일, 일본, 이탈리아 등을 위시한 당시 신흥공업국들이 부상으로 각 국가 경제의 상호 의존도가 심화되기 시작, 1970년대에 두 차례의 오일 쇼크의 원인으로 주요 공업국들이 보호주의 무역체제로 적극 선회했던 게 주요한 원인이었다. 국가들의 첨예한 이해관계 속에서 더 발전적인 합의사항은 나올 수가 없었던 것이었다. 특히 1960년대의 신흥 공업국 중 일본의 경우 국제무역체제에서 유리한 지위를 더 빨리 얻기 위해 대장성을 위시한 국가주도의 경제성장을 기조로 삼고 수출을 지원하였으며, 일본에 뿌리를 둔 다국적 기업의 독점을 지원하기도 했다.
한편, 미국은 베트남 전쟁 이후 트리핀 딜레마(Triffin's Dilemma)[3][4]가 일어나 금융·통화 체제에서 기존의 브레튼 우즈 체제(Bretton Woods System)를 수정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이르렀다. 무역 쪽 역시 신흥공업국의 부상으로 무역적자가 발생하자 결국 1971년에 리처드 닉슨 대통령이 신경제정책을 발표하고, 닉슨 사퇴 이후인 1974년에 타국의 불공정 무역을 제재하는 통상법 301조(Section 301 of the 1974 Trade Act)를 발효하기에 이르렀다.
결국 보호주의가 한창 일었던 1970년대에 세계무역체제에 대한 합의 진전이 없었다. 그러나 1980년대에 들어 영미권의 신자유주의의 대두, 세계경제의 의존성이 점점 심화되면서 이전 시대의 보호주의가 확산되는 것을 우려한 국가들은 1986년에 우루과이에 모여 8차 라운드인 우루과이 라운드 협상을 개시했다. 우루과이 라운드에서는 '1947년 GATT 체제'를 대체할 세계무역기구의 창설, 관세 및 수출보조금 감소, 수입 제한 및 수입 상한의 감소, 특허·상표·저작권 강행 협정, 국제무역법의 서비스 부문 확장-일반협정 합의, 그리고 외국 자본의 개방을 선언 등 이전의 라운드에서는 다루지 않았던 많은 내용을 다룬 획기적으로 논의했다. 결국 이 논의가 결실을 맺어 1994년 4월 WTO의 설립조약인 마라케시 협정(Marrakesh Agreement)을 맺었고, 1995년 1월 1일자로 과거 '1947년 GATT 체제'를 대신할 '1994년 GATT 체제'의 출범과 WTO의 설립이 이뤄졌다.
2.2.2. WTO 설립 이후(1995~현재)[편집]
1995년 1월 1일을 기해 WTO 설립, '1994년 GATT 체제'가 출범했고, 이후 2001년에 우루과이 라운드의 내용을 더 확장할 제9차 도하 개발 라운드(Doha Development Round)가 시작됐다. 그러나 개발도상국가들이 'Round'라는 명칭에 반발하여 'Round' 대신 'Agenda'로 바꿔 약칭 DDA로 부르기 시작했다. 그러나 우루과이 라운드에서 결론을 내지 못했던 이슈 중 하나인 농업 분야의 합의가 진전되지 못하고, 환경 관련 어젠다 등 새로운 어젠다들이 강대국의 무관심 속에 처하는 등 DDA 자체가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
2015년 현재 DDA 회의 체제가 지속되고는 있으나, WTO 회원국들의 의견이 한데 모이기 어려운 상황이며, 결국 선진국 간 자유무역협정(FTA) 체결이 활발해지는 원인을 제공하고 말았다. 2015년 세계 무역량 중에서 50% 이상이 FTA또는 그 이상의 경제통합(관세동맹, 공동시장, 완전경제통합)협정 체결국 사이의 교역량, 즉 역내무역이다. FTA를 하지 않거나 하지 못하는 개발도상국들, 즉 역'외'무역을 하는 케이스는 점점 무역시장에서 밀려나고 있다.
2018년에는 WTO 사무총장이 WTO가 사실상 무력화되고 있다는 발언을 해 충격과 공포를 몰고 왔다. 사실상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막을 수 없다는 것. 기사 심지어 도널드 트럼프는 미국의 WTO 탈퇴까지 거론할 정도로 강경한 인사라, WTO에 백날 제소해봤자 미국과 같은 초강대국이 WTO를 무시하면 막을 수 없다고 언급한 것이다.
미국이 상소위원 공석이 생길 때마다 신규선임에 반대해와서 2018년 9월부터 분쟁조정기구(DSB)의 기능이 사실상 정지될 예정이다.기사
2019년 12월 10일 정말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모든 상소위원 임명동의를 거부하면서, WTO의 상소 중재재판소가 완전히 셧다운(기능정지) 상태에 빠졌다. 기사 재판관이 2명 미만으로 남으면 WTO 상소 중재재판소는 재판을 할 수 없는데, 트럼프가 계속 거부권을 날려대니 2019년 12월 정말로 재판관이 단 1명만 남았고 그나마도 2020년에 퇴직하기 때문이다.
미국의 대중국 관세부과 조치에 대응해 중국이 WTO에 미국을 제소한 무역분쟁에서 WTO의 1차 심의에서 중국이 승소하였지만 사실상 의미가 없다. 기사 60일 이내에 미국이 불복하여 상소를 내면 2심으로 넘어가는데, 사실상 2심이 무용지물화 되었기 때문에[5] 1심의 승소에 따른 시정조치가 불가능해지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한국이 일본의 수출규제에 대응해 WTO에 제소한 경우 역시 1심의 결과에 상관없이 일본의 시정조치는 기대할 수 없다. 이때문에 일본에 대한 한국의 WTO제소가 국내정치용 대책이라는 일각의 지적도 나오고 있는 것이다.
여러모로 2020년 미국 대선에서 누가 대통령이 되냐에 따라서 WTO도 큰 영향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2021년 장상천[6], 앤절라 엘러드[7], 장-마리 포강[8], 이나벨 곤살레스[9]가 신임 사무차장으로, 우야마 도모치카[10]가 사무총장 선임보좌관으로 임명되었다.
3. 조직[편집]
각료회의
최소한 2년에 한 번씩은 개최되는 비상설기구로, 최고 의결기구. 모든 회원국의 대표[11]가 참석하며, 어떤 문제든 의제로 다룰 수 있다.
일반이사회
제네바의 정기 상설기구로, 각료회의 아래의 최고 의결기구. 각료회의의 결정을 집행하며, 각료회의가 열리지 않을 때는 최고 의결기구의 역할을 수행한다. 일반이사회 산하에는 부문별 이사회와 위원회를 둔다. 부문별 이사회는 다음과 같다.
상품이사회: WTO 부속서 1A 관련 이사회
서비스이사회: WTO 부속서 1B 관련 이사회
무역관련 지적재산권이사회: WTO 부속서 1C 관련 이사회[12]
분쟁해결기구(Dispute Settlement Body, 약칭 DSB)
회원국 간의 무역 분쟁을 담당한다.
무역정책검토기구(Trade Policy Review Mechanism, 약칭 TPRM)
회원국들의 무역 정책이 얼마나 투명하고 공정한지를 평가한다.
이하 개별 부문별로 위원회와 이사회가 있다.
4. 규범[편집]
기본적으로 WTO의 규범이란 WTO의 협정을 의미한다. 회원국은 이들 협정을 반드시 비준해야 하며 모든 협정은 국제법과 동등하다. WTO 협정은 다음과 같이 구성된다.
WTO 설립 협정에 관한 마라케시 협정(Marrakesh Agreement)
다자간 무역협정(Multilateral Trade Agreements, 약칭 MTA) [13]
복수간 무역협정(Plurilateral Trade Agreements, 약칭 PTA)Trade Agreements[14]
4.1. 다자간 무역협정[편집]
사실상 WTO의 본체라고 볼 수 있는 중요한 협정으로, 기본적으로 WTO 협정의 부속서로 되어있다. 부속서는 각각 1A, 1B, 1C, 2, 3이 있다.[15]
부속서 1A: 일반적으로 상품에 적용된다.
GATT 1994: 우루과이 라운드 때 체결. WTO의 창립을 회원국들의 의무 중 하나로 지정하고 있다.
WTO로 복귀하는 협정: 농산물과 섬유에 대한 협정[16][17]
도쿄 라운드에서 다자간 무역협정 중 다자화된 협정: 기술 장벽, 반덤핑, 관세, 수입 허가절차, 보조금 지급 등에 대한 협정
우루과이 라운드에서 새로 도입된 다자간 협정 : 위생, 검역, 투자, 선적검사, 원산지 표기, 긴급수입제한조치 등에 대한 협정
부속서 1B: 서비스 교역에 관한 일반 협정(GATS)
부속서 1C: GATT 때 다루지 않은 지적재산권에 대한 규범(TRIPS) 설정. 이 이후 지적재산권은 국제적 규범에 의해 다뤄지게 된다.
부속서 2: 분쟁해결의 규칙과 절차(DSU): WTO설립협정, 부속서 1A, 1B, 1C, 2, 4 관련 국가 간 분쟁을 해결하는 절차가 마련된 협정이다.
부속서 3: 무역정책 검토 제도(TPRM)
5. 주요 원칙[편집]
차별 없는 무역을 추구한다.
최혜국 대우(Most Favoured Nations)[18], 내국민 대우 원칙(National Treatment)[19], 양허관세
예측이 가능하며[20], 시장에 언제나 접근이 가능한 무역을 추구한다.
시장의 안정과 자유로운 무역을 위해 최소한의 무역장벽은 존치한다.
공정한 경쟁을 장려한다.
후진국과 개발도상국의 순조로운 경제 개발을 돕는다.[21]
6. 회원국[편집]
164개 국가가 회원국으로 참여하며, 30개 국가는 회의에 참여할 수 있으나 영향력이 없는 옵저버 자격을 가지고 있다. 회원국 목록은 이곳을 참조.
사우디아라비아는 가입과정에서 뒷정치거래가 오고갔다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대한민국의 경우, 우루과이 라운드로 쌀개방을 약속했으나 농민들의 반발로 매우 곤란한 상태였다. 필리핀과 함께 쌀개방이 유예되어 있는 둘뿐인 나라였으나, 필리핀이 대한민국에 앞서 쌀개방을 했고, 대한민국 역시 2015년부터 강제로 관세화 개방을 하게 된다. 2015년 이후로 쭈욱 적용되는 관세율은 무려 513%.
한편, 국가가 아니더라도 독자적인 개별관세영역도 WTO에 가입할 수 있다. 유럽연합의 경우 과거의 유럽공동체(European Communities) 시절에 가입했다. 특이하게도 EU는 EU회원국 수만큼 투표권이 부여된다. 유럽연합 가입국은 WTO 회의를 참관하고 의견을 개진할 수는 있지만, WTO 회의에서 투표권이 없어지기 때문이다. 즉, 투표권은 유럽연합이 EU 가입국을 대신해서 행사한다.
중국의 압력으로 국제적인 고립을 면치 못하는 대만 역시 WTO에 가입해 있다. 2001년에 중국과 동시에 가입할 때 중국과 미국의 빅딜로 대만의 가입국명이 정해졌다.(...) '타이완, 펑후, 진먼, 마쭈 개별관세영역'(Separate Customs Territory of Taiwan, Penghu, Kinmen, and Matsu)으로 가입했다.
러시아는 1993년부터 가입을 신청했으나 남오세티야, 압하지야를 둘러싼 조지아와의 분쟁 때문에 한동안 가입하지 못했다. 하지만 2012년에 러시아와 조지아 간의 이익대표국 역할을 하는 스위스의 중재를 통해 가입했다.
7. 비판[편집]
NGO 등 비정부기구에게는 세계의 불평등을 조장하는 원흉으로 비난받는 존재. 물론 국가간에 공평한 무역을 하자는 취지로 창립된 것은 좋지만 미국과 유럽 등 선진국에게 유리하게 조약을 만든 면이 있어서 주위에서 많은 비판을 받기도 한다. 그래도 관세로 인한 무역마찰을 줄이는 데 큰 공을 세운 긍정적인 측면도 있긴하다.
그러나 상기했듯, WTO 내부에서도 도하개발어젠다(DDA)가 지지부진하는 등 여러가지 문제가 나타나자 강대국들은 'WTO는 제쳐두고 국가 대 국가로 무역협상하는 것이 낫다'라는 결론을 내리게 된다. 양자적 혹은 지역적 자유무역협정/관세동맹/공동시장이나 TPP가 대두하게 된 것도 이 때문이다.
8. 대한민국 관련[편집]
출범 당시 초대 사무총장으로 김철수 통상산업부 장관이 도전했으나 무산되었다. 대신 초대 사무차장으로 4년 동안 재직했다. 이후 2012년에 박태호 전 통상교섭본부장이 도전하나 불발하였다. 2020년 6월 유명희 통상교섭본부장이 다시 도전하여, 3번째 한국의 도전이 성사되었다.
미국은 2013년부터 한국산 세탁기에 대해 9~13%의 반덤핑 관세를 부과했고 이를 부당하다고 판단한 정부는 WTO에 제소해 2016년 9월 최종 승소했다. 미국은 판정 이행기간인 2017년 12월까지 끝내 관세를 철회하지 않았고 한국은 2018년 1월 미국을 상대로 연간 7억 1,100만 달러(한화 약 7천 990억 원)의 양허정지[22]를 하겠다고 WTO에 신청했다. 2019년 2월 미국산 수입품에 대해 한국이 연간 약 950억 원의 양허정지를 할 수 있다는 결정을 내렸다.
일본은 후쿠시마와 주변 8개 현의 수산물 수입을 금지하고 방사성물질 세슘이 나올 경우 추가 검사를 요구한 우리나라의 조치에 대해 일본은 과도한 차별이라고 지난 2015년 WTO에 제소했다. 2018년 1심에선 일본이 승소했지만[23], 2019년 4월 11일 최종심[24]에서 우리나라가 승소하면서 최종적으로 후쿠시마 등 8개 현의 수산물 불허를 유지할 수 있게 됐다.# 자세한 것은 한국의 후쿠시마 수산물 수입금지 조치와 관련한 WTO 분쟁 참고.
2019년 7월 23일과 24일 이틀간 열리는 회의에서 한국 측의 안건으로 한일 무역 분쟁에 대해 의논할 예정이다.
2019년 9월 10일 한일 공기압 밸브 관세 관련 판결이 내려졌다. 국내 언론들은 9개의 쟁점 중에 8개에서 한국의 주장이 지지받았다며 한국이 승소했다고 주장했지만 일본의 언론들은 관세에 대해선 관세 철폐를 권고했다며 자신들이 승소했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국제 통상법 전문가인 이재민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 '철폐'는 곧 '한국의 완패'를 뜻하는데 그게 아니다. 핵심 이슈의 결과가 관건인데, 이번 역시 '부분 승소·패소'가 나왔다. 한국의 세금 부과에 일부 문제점(흠결)이 있으니 이걸 시정해 다시 부과하라는 판정이다. 특별한 것도 없다. WTO의 전형적인 판정 범위 안에 든다. '철폐 요구'는 일본의 '과잉 해석'이다."라고 분석했다. WTO 분쟁 서로 이겼다는 한일…대체 누가 이긴 거야?(KBS 뉴스)
다수의 서양 유력 언론사들이 WTO가 일본을 지지해줬다고 하면서 세금 부과를 원래대로 되돌려야 한다는 식으로 보도했기 때문에 세금 부과 정도를 시정해서 다시 부과하라는 판정이라고 해석한 이재민 교수의 주장은 어느정도 걸러들을 필요가 있다.로이터
대한민국에서는 일본 측에 유리한 판정이 잇따라 나오면서 (도널드 트럼프 재임 당시의 미국 만큼은 아니지만) WTO를 매우 부정적으로 보는 상황이다.
2020년 10월 8일 유명희 산업통상자원부통상교섭본부장 차관이 2020년 WTO 사무총장 선거에서 차기 WTO 사무총장 최종 후보에 선정되었다. # 현재 세계무역기구(WTO) 사무총장 선거를 앞두고 미국이 유명희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본부장을 지지하고 있다. # 다만 2020 미국 대선의 결과 트럼프 정부의 재선이 실패해 바이든 정부가 들어서게 되면서 어떤 쪽의 손을 들어줄 지에 많은 관심이 모였고, 결국 유명희 후보는 2021년 2월 초 사퇴했다.
2021년 1월 22일, 한국이 연관된 사상 최대의 WTO 분쟁(16억 달러 규모)에서 미국이 한국에 완패했다. WTO 패널은 미국이 불리한 가용정보(AFA)를 적용한 한국산 제품에 관세를 부과한 8건의 조치가 불합리하다고 결정했다. 패널은 40개의 쟁점 중 37개의 쟁점에서 한국의 주장을 인용하며 미국의 조치가 WTO 협정에 어긋난다고 판단했다. AFA의 법적 기반이 된 무역특혜연장법(TPEA·Trade Preferences Extension Act of 2015)은 버락 오바마 정부 당시 도입됐다.# 그러자 이에 대해 미국은 WTO 패널의 판정이 부당하다며 상소했다. 문제는 WTO 상소기구의 기능이 사실상 정지상태라는 것.
[1] 프랑스, 이탈리아, 스페인 등과 같은 로망스어군 사용국은 OMC를 약자로 사용한다. 그래서 NATO처럼 WTO OMC라고 병기한다.
[2] 먼저 공산품의 관세를 낮추는 데서 시작하였고, 6차 라운드인 케네디 라운드에서는 반덤핑 문제를, 7차 라운드인 도쿄 라운드에서는 비관세 무역 장벽 문제를 새로 다루기 시작했다. 그러나 반덤핑 협정은 당시 미 상원이 딴죽을 걸며 비준동의에 반대하는가 하면, 비관세 무역 장벽 해당 라운드에서 언급만 했을 뿐 더이상의 진전은 이뤄지지 않았다.
[3] 미국은 자국의 재정적자를 감수하면서도 천조국스러운 자비로 세계 제1의 통화인 미국 달러화를 타국의 금을 확보하면서 달러화로 바꿔주는 금태환을 했고 타국의 고정환율제를 인정했으나, 결과적으로 여러 나라들이 달러를 확보하느라 달러를 많이 찍어내는 바람에 달러화의 가치가 급감하는 문제가 발생했다. 즉, 미국 재정의 적자 문제와 미국 달러화의 가치하락이 동시에 발생했던 것.
[4] 첨언하자면 트리핀의 딜레마는 유동성과 가치 안정이 상충된다는 것이다. 브레튼우즈 체제는 금 1온스당 35달러로 고정해놓고 달러의 금태환을 보장하는 제도였는데 미국의 막대한 경상수지 적자로 세계적으로 달러의 유동성은 증가했지만 동시에 달러 가치의 하락으로 이어졌다. 이로써 금태환의 실현가능성에 대한 의문이 제기됐고 결국 닉슨의 금태환 폐지 선언에 따라 브레튼우즈 체제의 붕괴로 이어진다.
[5] 심지어 2심에서 승소한다 해도 해당 국가가 무시할 경우에는 보복관세 이외의 뾰족한 대안이 없다. 우루과이 라운드 협정의 허점이 있어서 WTO는 강제력을 가지고 있는 기구가 아니기 때문이다. 도하개발어젠다가 합의가 돼야 WTO에 강제력을 부여하는데 DDA가 합의되려면 100년은 더 있어야 한다(...) 국제상공회의소(ICC)라면 강제력이 있는데 WTO 상소는 정말 강제력이 없다. 특히 미국, 중국, 일본, 러시아같은 강대국들이라면 더더욱 WTO 판결을 쌩깔 가능성이 높다.
[6] 중국 상무부 부부장
[7] 미국
[8] 프랑스
[9] 코스타리카
[10] 前 일본 외무성 심의관
[11] 각국의 경제장관
[12] 2005년에는 대한민국의 최혁 전 제네바 대사가 의장을 맡기도 하였다.
[13] 모든 회원국에 해당된다.
[14] 수락한 회원국에만 효력을 발휘한다.
[15] 부속서 4는 복수간 무역협정으로, 민간 항공교역, 정부 조달, 국제 낙농업, 쇠고기 등에 대해 다룬다.
[16] 우루과이 라운드 이전에는 회원국 간의 알력으로 이 두 부문에 대해서는 협정이 이뤄지지 않았다.
[17] 한편, 섬유협정은 1995년 WTO 이후 10년간 발효하다 2005년에 실효(失效)됐다.
[18] 학계에서는 국경에서의 무차별이라고 한다. 한 국가에 A라는 특혜를 주게 되면 다른 국가에도 A라는 특혜를 제공해야한다는 원칙이다.
[19] 학계에서는 국내에서의 무차별이라고 한다. A라는 국가의 수입품이 B국에 들어왔을 때, B국 내부에서는 A국의 수입품과 B국의 자국생산품을 동일하게 취급해야 한다는 원칙이다.
[20] 특히 서비스 무역에 있어 투명성을 제일로 중시하고 있다.
[21] GATT 1994에서는 선진국이 개발도상국에 대해 지원과 특혜를 부여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일반특혜관세제도(Generalized System of Preferences)가 바로 여기에 해당된다.
[22] 협정 등을 통해 특정 품목의 관세를 낮추거나 없앤 것을 다시 부과하는 조치
[23] 박근혜 정부에서 방사능 관련 실태조사를 중단시키면서 법적 자료가 엄청나게 부실했단 의혹이 있다.# 여담으로 일본이 1심을 이긴 이유가 '바다는 오염되었지만 수산물은 다르다.', '후쿠시마 앞바다의 물을 떠다 수출하는 게 아니다.'란 논리였다고.#
[24] 2심 재판이라 상소심이 사실상 최종심이었다.
바티칸
1. 개요
2. 상징
2.1. 국호
2.2. 국기
2.3. 국가
3. 지리
4. 역사
4.1. 교황권 역사
4.2. 바티칸 시 역사
5. 정치 및 행정
5.1. 국가행정조직
6. 경제
7. 군사
8. 치안
9. 문화
9.1. 성 베드로 대성당
9.2. 시스티나 경당(시스티나 소성당, Sistine Chapel)
9.2.1. 소개
9.2.2. 촬영 관련 이야기
9.2.3. 벽화 감상 그리고 정숙
9.3. 사도 궁전
9.4. 바티칸 도서관 및 사도문서고
10. 외교
11. 스포츠
12. 관광 정보
13. 여담
14. 창작물에서
15. 관련 문서
1. 개요[편집]
너는 베드로다.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울 터인즉, 저승의 세력도 그것을 이기지 못할 것이다.
σὺ εἶ Πέτρος, καὶ ἐπὶ ταύτῃ τῇ πέτρᾳ οἰκοδομήσω μου τὴν ἐκκλησίαν, καὶ πύλαι ᾅδου οὐ κατισχύσουσιν αὐτῆς.
Tu es Petrus, et super hanc petram ædificabo Ecclesiam meam, et portæ inferi non prævalebunt adversus eam.
마태오 복음서 16장 18절 (가톨릭 성경)
남유럽에 위치한 도시국가이자 이탈리아 로마시에 둘러싸인 내륙국. 로마 주교이자 전 세계 가톨릭 주교단의 단장인 교황을 국가원수로 한다.
2011년 3월 2일 호주 매체에서 보도한 바에 따르면 바티칸의 인구는 여성 32명, 남성 540명으로 총 572명이라고 한다.[8] 그러나 바티칸에 거주하면서 생활하고 있는 실제 인구는 223명에 불과하다.[9]
비록 이탈리아의 로마에 둘러싸인 형태[10]로 존재하지만, 이탈리아와 다른 나라로서 갖출 건 다 갖춘 어엿한 독립국이다.[11] 특히 세계에 퍼진 가톨릭의 위상을 생각하면 국가 규모에 비해 세계에 미치는 영향은 엄청나다. 1984년 도시 전체가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되었다.
바티칸 시국은 교황청을 유지하기 위하여 인정된 독립 국가로서의 교황령을 지칭하는 명칭이므로 가톨릭의 최고 통치 기구인 교황청(敎皇廳, Curia Romana, Roman Curia)과는 다른 개념이다. 따라서 국정을 운영하는 조직 자체도 별도의 추기경단이 따로 있다. 하지만 사실상 교황청 또는 심지어 로마(Roma, Rome)라는 말 자체가 바티칸 시국을 지칭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바티칸 스스로는 세속적인 의미가 강한 '바티칸 시국'도 아니고 엄밀한 의미의 '교황청'도 아닌 '성좌'(聖座, Sancta Sedes, Holy See[12])를 대외적인 공식 국가명으로 채택하고 있으며, 대한민국 정부에서는 이를 경우에 따라 '교황', '교황청'으로 번역하여 사용한다. 따라서 성좌에 파견된 한국의 특명전권대사는 '주교황청 대한민국 대사'로, 성좌가 한국에 파견한 대사는 '주대한민국 교황 대사[13]'로 칭하고 있다. 한편 교황대사는 영어로 embassador가 아닌 nuncio라고 부르며, 교황대사관도 Embassy가 아닌 Apostolic Nunciature 라는 특이한 용어를 사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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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켈란젤로의 돔에서 내려다본 성 베드로 광장.
광장은 하늘에서 볼 때 열쇠 구멍 모양으로 만들어졌는데 베드로의 상징물이 열쇠, 정확히는 천국 문의 열쇠이기 때문이다. 광장 한가운데의 오벨리스크는 이집트 제12왕조 시대인 기원전 20~19세기 헬리오폴리스에 세워졌던 것으로서, 이후 기원전 1세기 말 로마의 이집트 총독 코르넬리우스 갈루스(Cornellius Gallus)에 의해 알렉산드리아의 포룸 율리움(Forum Julium)으로 옮겨졌다가 다시 칼리굴라 황제에 의해 로마시로 이전되었다. (이와 관련한 자세한 내용은 '성 베드로 광장' 문서의 오벨리스크 설명 부분 참조.) 그리고 서로마 제국이 멸망한 후 1586년까지 방치되던 것을 대성당 중앙으로 끌어와서 일으켜 세웠다고 한다. 그러고 나서 예수 그리스도의 승리를 상징하는 거대한 십자가를 위에 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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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4월 13일, 주님 수난 성지(聖枝) 주일 미사, 교황 프란치스코 집전
성 베드로 성상, 주세페 데 파브리스, 1840년
2011년 6월 27일 뉴스 사이트 '바티칸 투데이'가 개설되었고(바로가기), 다음 날에는 트위터가 개설되었다(#). 교황 베네딕토 16세는 직접 트위터를 통해 영어로 바티칸 투데이의 개설을 알렸다.
Dear Friends, I just launched http://news.va/en Praised be our Lord Jesus Christ!
With my prayers and blessings, Benedictus XVI
친구들, 저는 방금 News.va를 개설했습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찬미합시다!
기도와 축복을 담아, 베네딕토 16세
바티칸 관련 뉴스는 바티칸 라디오를 참고하기 바란다.
지구에서 가장 좁은 나라이다.[14] 면적은 0.44km²[15]이고 이 면적은 대한민국의 경기도 화성시에 위치한 섬인 입파도와 같은 면적이다.
동시에 출산율이 가장 낮은(0명) 나라이기도 하다. 그도 그럴 것이 인구라고는 죄다 주교, 신부와 수사, 수녀들뿐인데 출산율이란 게 집계가 될 리가 없다(…).
2. 상징[편집]
2.1. 국호[편집]
바티칸이라는 이름은 이 나라 및 교황청이 위치한 지역의 이름인 바티칸 언덕(라틴어로 Mons Vaticanus, 이탈리아어로 Colle Vaticano)에서 따왔다. 바티칸이라는 말은 고대 로마 이전에 이 지역에 있던 에트루리아인 마을 이름 Vatica 혹은 Vaticum에서 따왔다고 하며, 정원을 뜻한다.
현재 바티칸이라는 말은 교황청이라는 말과 혼용되지만, 엄밀히 말해서 바티칸 시국과 교황청, 교황령 등등은 모두 다른 뜻을 가지고 있다.
바티칸 시국(Vatican City State): 로마의 바티칸 언덕에서 유래한 말로, 현재 교황이 세속적 권력으로 직접 통치하는 국가를 국제법적으로 일컫는 말이다. 1870년 교황령의 소멸 이후 한동안 교황의 세속적 영토 혹은 통치 국가는 존재하지 않았으나, 1929년 교황 비오 11세가 무솔리니와 체결한 라테라노 조약을 통해 탄생하였다. 가장 흔히 교황청과 혼용되는 말이며, 이 항목의 전체적인 내용 역시 이 바티칸 시국의 본래 의미와 가장 가깝게 작성되어있다.
교황령(Papal States): 754년부터 1870년까지 존속했던 교황의 세속적 영토. 교회의 재산 소유와 양도를 허가한 321년의 콘스탄티누스 칙령에서 비롯되었으며, 이후 프랑크 왕국의 피핀이 교황 스테파노 2세에게 영토를 할양한 이른바 피핀의 기증에서 교황령 통치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이후 여타 세속적 국가들과 마찬가지로 많은 우여곡절을 겪으며 영토 크기에 변화를 겪어 왔으며, 이후 1870년 이탈리아 통일 당시 이탈리아에 흡수당하면서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사실 지금도 바티칸 바깥, 로마시에 바티칸의 영토로 인정되는 '건물'들이 좀 있다. 바티칸 영토이므로 이탈리아 법이 미치지 않는다.
성좌(Holy See) 혹은 사도좌(Apostolic See): 원래는 세계 교회의 수도인 로마의 주교좌, 즉 베드로의 후계직을 뜻하는 말이었지만, 점차 의미가 확장되면서 교황청과 바티칸 시국을 포괄적으로 아우르는 말이 되었다. 현재 교황청은 세속적인 의미가 강한 '바티칸 시국' 대신 '성좌'를 대외적인 공식 국가명으로 채택하고 있다.
교황청(Roman Curia): 본래는 세계 교회를 통치하는 교황과 교황을 보좌하는 교회의 최고 행정 기구를 뜻하는 말이다. 하지만 이제 사실상 바티칸 시국의 영토가 교황청과 그 주변으로 축소되면서, 바티칸이라는 말과 거의 동일한 뜻으로 쓰이게 되었다.
2.2. 국기[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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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atican City sky...
국기 오른쪽의 문장은 베드로의 상징인 천국의 열쇠와 교황의 상징인 교황 삼층관으로 이루어져 있다.
13 예수님께서 카이사리아 필리피 지방에 다다르시자 제자들에게, "사람의 아들을 누구라고들 하느냐?" 하고 물으셨다.
14 제자들이 대답하였다. "세례자 요한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어떤 이들은 엘리야라 하고, 또 어떤 이들은 예레미야나 예언자 가운데 한 분이라고 합니다."
15 예수님께서 "그러면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하고 물으시자,
16 시몬 베드로가 "스승님은 살아 계신 하느님의 아드님 그리스도이십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17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르셨다. "시몬 바르요나야, 너는 행복하다! 살과 피가 아니라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그것을 너에게 알려 주셨기 때문이다.
18 나 또한 너에게 말한다. 너는 베드로이다.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울 터인즉, 저승의 세력도 그것을 이기지 못할 것이다.
19 또 나는 너에게 하늘 나라의 열쇠를 주겠다. 그러니 네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고, 네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릴 것이다."
20 그런 다음 제자들에게, 당신이 그리스도라는 것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분부하셨다.
마태오 복음서 16장 13-20절(가톨릭 성경)
열쇠는 예수 그리스도가 제자들과 "너희들은 내가 누구라고 생각하느냐?"라는 물었을 때 베드로만이 모범 답안을 말해서 천국의 열쇠를 주었다는 마태오 복음서의 구절에서 착안한 것이다. 덕분에 이 열쇠는 바티칸을 다룬 매체에서 자주 등장한다.
천사와 악마 영화판에서는 원작과 달리 궁무처장의 가슴에 찍히는 도장이 일루미나티 다이아몬드가 아니라 두 열쇠 모양으로 바뀌었다.
삼중관이라고도 하는 교황관은 교황 클레멘스 5세 시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세 가지의 교황권을 상징하기 때문에 교황만이 쓸 수 있었다. 그러나 20세기에 들어서 교황관 대신 3줄의 금색 무늬를 새겨넣은 주교관을 쓰는 추세다. 자세한 내용은 교황관 문서 참고.
2.3. 국가[편집]
국가(國歌)
국가는 Inno e Marcia Pontificale(교황 찬가 행진곡)이다. 곡은 샤를 구노의 아베 마리아로 유명한 샤를 구노(Charles Gounod)가 작곡한 것이며, 가사는 1949년부터 안토니오 알레그라(Antonio Allegra)가 작사한 이탈리아어 가사를 쓰다가 1991년에 라파엘로 라바냐(Raffaello Lavagna)가 작사한 라틴어 가사가 채택되었다.
가사 전문은 다음과 같다. 위와 번역이 많이 다르니 유의할 것.(출처: 위키백과)
가사 일부가 마태오 복음서를 인용한 구절이 있다.
라틴어
한국어
O felix Roma – o felix Roma nobilis:(×2)
Sedes es Petri, qui Romae effudit sanguinem,
Petri cui claves datae sunt regni caelorum.
Pontifex, Tu successor es Petri;
Pontifex, Tu magister es tuos confirmans fratres;
Pontifex, Tu qui Servus servorum Dei,
hominumque piscator, pastor es gregis,
ligans caelum et terram.
Pontifex, Tu Christi es Vicarius super terram,
rupes inter fluctus, Tu es pharus in tenebris;
Tu pacis es vindex, Tu es unitatis custos,
vigil libertatis defensor; in Te potestas.
VOX ACUTA, VOX ALTERA AB ACUTA
Tu Pontifex, firma es petra, et super petram
hanc aedificata est Ecclesia Dei.
VOX MEDIA, VOX GRAVIS
Pontifex, Tu Christi es Vicarius super terram,
rupes inter fluctus, Tu es pharus in tenebris;
Tu pacis es vindex, Tu es unitatis custos,
vigil libertatis defensor; in Te potestas.
O felix Roma – O felix Roma nobilis.
오 복된 로마여 - 오 고귀한 로마여(×2)
그대는 로마에서 피 흘린 베드로좌이며,
하늘나라의 열쇠를 받은 베드로좌로다.[16]
교황님, 당신은 베드로의 후계자이십니다;
교황님, 당신은 당신 형제들의 신심을 굳건히 하는 선생님이십니다;
교황님, 당신은 하느님의 종들의 종,
사람을 낚는 어부[17], 양떼의 양치기,
하늘과 땅을 잇는 분이십니다.
교황님, 당신은 그리스도의 지상 대리자요,
풍파 한가운데의 바위이십니다, 당신은 어둠 속의 등대이십니다;
당신은 평화의 옹호자이십니다, 당신은 일치의 수호자요,
방심하지 않는 자유의 수호자이십니다; 당신의 권위 안에 있나이다.
교황님, 당신은 흔들리지 않는 반석으로,
그 반석 위에 하느님의 교회가 세워졌나이다.[18]
교황님, 당신은 그리스도의 지상 대리자요,
풍파 한가운데의 바위이십니다, 당신은 어둠 속의 등대이십니다;
당신은 평화의 옹호자이십니다, 당신은 일치의 수호자요,
방심하지 않는 자유의 수호자이십니다; 당신의 권위 안에 있나이다.
오 복된 로마여 - 오 고귀한 로마여.
3. 지리[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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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치오주 로마현의 전 행정구역을 표기한 그림.
빨간색이 로마시이고, 로마시 한복판의 아주 조그마하게 비어 있는 부분이 바티칸에 해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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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0px-Rom-rioni...
로마시의 구역도. 1번, 13번, 14번에 끼어있는 부분이 바로 바티칸이다.
바티칸의 국장이 그려져 있는 부분으로, 로마시의 구 중에서도 가장 작은 부분.
로마시의 리오네(rione)들과 붉은 색으로 칠해진 바티칸.
바티칸 시국 지도 01
바티칸 시국 지도 02
바티칸 시국의 국경 및 영토 내부 지도.
이 외에도 로마시 각지에 바티칸 소유의 성당이나 박물관이 존재하는데 일부는 치외법권 지대로 설정되어 이탈리아의 주권이 미치지 않아 사실상 바티칸의 영토 취급한다. 바티칸령 권외 소유지로는 아래의 영역이 있다.
산 조반니 인 라테라노 대성당
산타 마리아 마조레 대성당
산 파올로 푸오리 레 무라 대성당
라테라노 궁전
교황청립 라테라노 대학교
교황청립 우르바노 대학교
영토가 좁아 각 국의 외교공관은 이탈리아 로마에 소재해 있으나 다수 국가의 주교황청대사관은 바티칸에 붙어있는 Borgo지역에 밀집해 있다. 대표적으로 중화민국 대사관이 이 곳에 위치해 있으며, 필리핀의 경우 아예 바티칸으로 들어가는 베드로 출입구 맞은편에 대사관을 두고 있다. 반면 미국은 주 이탈리아 대사관 바로 옆에 소재해 있으며, 한국의 경우는 바티칸과는 조금 먼 곳에 위치해 있다. 이탈리아의 경우는 테베레 강 바로 건너편에 대사관을 두고 있다.
4. 역사[편집]
바티칸 시국의 역사
Historia Civitatis Vaticana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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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리석은 광신자들이여, 우리는…"
"…교회를 파괴하고…"
"…너희에게 선고할 것이다…"
"….(너희는)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질 것이라고..."[19]
세상은 강한 자가 살아남는 게 아니라 살아남는 자가 강한 거야!
4.1. 교황권 역사[편집]
상세 내용 아이콘 자세한 내용은 교황령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동로마 제국이 이탈리아 반도를 탈환할 때 533년 로마시에 세운 '로마 공국'이 교황령의 기반이 된다. 이탈리아 탈환 후 얼마 안 가 568년에 랑고바르드족이 침입하면서 이탈리아에서 동로마 제국의 영역은 중부와 남부 끄트머리로 크게 한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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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75년 이탈리아 반도의 모습
주황
동로마 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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랑고바르드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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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로마 제국과 랑고바르드족이 공존했던 이탈리아의 지도와 오른쪽 위 교황령의 지도
분홍
동로마 제국
주황
랑고바르드족
동로마 제국은 이러한 이탈리아에 584년 라벤나 총독부를 세워 로마 공국과 베네치아, 풀리아, 칼라브리아를 통치했다. 그러다가 동로마 제국의 지배권이 슬슬 약해지자 교황은 점점 로마 공국을 다스리는 한 독립 영주로 성장하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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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51년 랑고바르드 왕국이 라벤나를 점령한 이후 이탈리아 반도의 모습
주황
동로마 제국
회색
랑고바르드 왕국
751년 동로마 제국의 라벤나 총독부가 결국 랑고바르드족에 의해 함락되면서 로마 공국은 동로마 제국 본국과 완전히 단절되었다. 752년 새로 선출된 교황 스테파노 2세는 랑고바르드족의 위협을 피하기 위해 중립을 선언하면서 비밀리에 프랑크 왕국에 도움을 요청하였다. 프랑크 왕국의 피핀 3세는 스테파노 2세에게 랑고바르드족을 몰아내는 대신 본인의 쿠데타를 묵인해 달라 요청하였다. 스테파노 2세의 묵인하에 피핀 3세는 기존의 메로빙거 왕조를 몰아내고 새로이 카롤루스 왕조를 세울 수 있었다. 피핀 3세는 그 대가로 랑고바르드족을 옛 라벤나 총독부 땅에서 몰아내고 그 땅을 스테파노 2세에게 헌납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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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56년 ~ 817년 교황령
나중에 동로마 제국과의 마찰을 무마하기 위해서 '콘스탄티누스 1세가 교황에게 땅을 내려주었다'고 했다. 이것을 법적으로 보증한 것이 그 유명한 '콘스탄티누스의 증여서'이다. 이 문서의 원본은 지금도 박물관에 잘 보존되어 있다. 콘스탄티누스의 증여서를 누가 언제 만들었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하지만 콘스탄티누스의 증여서 이전부터 관습적으로 전해지던 교황과 교황청의 권리에 성문법적인 근거를 마련하고자 했던 것으로 보인다. 교황청의 권리를 법적으로 보장하던 이 문서가 위조됐음을 처음으로 지적한 사람은 아이러니하게도 추기경이었다. 르네상스 시대가 되면서 훨씬 학문적인 방법으로 콘스탄티누스의 증여서가 위조 문서임을 증명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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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89년 교황령
19세기에 이르러 이탈리아 통일(1861년 ~ 1870년) 과정에서 강제로 합병당하여(1870년) 이에 열 받은 교황 비오 9세가 스스로를 "바티칸의 포로"임을 선언하는 등 신생 이탈리아 왕국과 한동안 정치, 사회적 대립을 하였으나 1929년 베니토 무솔리니가 라테라노 조약을 제안하여 결국 지금의 바티칸 시국의 영토와 형태가 성립되었다.
4.2. 바티칸 시 역사[편집]
leonine walls
9세기 로마시
Plan of Rome in ...
중세시대 로마 시 확장
빨간색 선
3세기 아우렐리아누스 성벽
하늘색 선
9세기 교황 레오 4세가 세운 성벽(레오의 도시)
삐뚤빼뚤한 선
17세기 교황 우르바노 8세가 세운 성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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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오의 도시
바티칸 도시의 모양은 교황 레오 4세가 무슬림들의 침략을 방어하기 위해 테베레강 너머 성 베드로 대성당 둘레에 성벽을 세우면서 시작되었다. 성벽은 테베레 강변의 산탄젤로 성에서 시작해 바티칸 언덕 주위를 빙 돌아 다시 테베레 강변에서 끝난다. 이후 로마의 정치 파벌들 간의 다툼을 피해 레오의 도시로 온 교황 인노첸시오 3세는 레오 4세가 세운 성벽의 제2망루를 높여 방어력을 강화했다. 현재의 바티칸 국경이 되는 성벽은 바오로 3세, 비오 4세, 우르바노 8세를 거치면서 완성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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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세기 로마 시
5. 정치 및 행정[편집]
바티칸 시국은 스스로의 정부 체제를 절대군주제라고 규정하고 있다. 바티칸 시국 공식 홈페이지의 바티칸 정부에 대한 소개 및 설명 페이지(이탈리아어)에 따르면 본인들의 정부 체제(forma di governo)가 절대군주제(monarchia assoluta)라고 하고 있다. 실제로 바티칸 시국 정부는 교황(敎皇, Pope)이 직접 임명한 추기경들 및 주교들이 행정을 담당한다.[20] 또한 교황은 세습제가 아닌 선출제이므로 절대군주제인 동시에 선거군주제 국가이기도 하다. 그와 동시에 가톨릭의 신권 정치적인 요소 또한 있다고 보기도 한다. 얼핏 보면 독재국가지만, 바티칸 자체가 아주 특수하고 작은 국가인데다 인구도 적어서 민주주의가 의미 없다.
외교도 독자적으로 하고 있다. 여권도 이탈리아 여권과는 다른 것을 쓰는데, 시민권자 수가 적어서 바티칸 여권은 상당히 레어 아이템이라고 한다. 독자적으로 우표도 발행하고 있고, 독자적으로 주조하는 동전도 있다. 바티칸 리라라는 화폐도 독자적으로 발행했지만 이탈리아 리라에 종속된 것이었고, 1999년 1월 1일부터 이탈리아가 유로화를 쓰기 시작하면서 바티칸도 유로화로 전환해 지금에 이른다.
라틴어가 제1공용어이며,[21] 이탈리아어도 공용어로 쓰인다. 그리고 일상 회화로는 프랑스어, 독일어, 영어, 스페인어가 모두 통용되는 나라다. 외교 언어로는 프랑스어가 주로 쓰인다.
5.1. 국가행정조직[편집]
바티칸 조직도
6. 경제[편집]
상세 내용 아이콘 자세한 내용은 바티칸/경제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7. 군사[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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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는 스위스 근위대가 전부다. 사진은 스위스 근위대원들로 중세의 재래식 군대 같지만 저렇게 전통 복장으로 근위 임무를 서는 대원 이외에 실제 경호 임무를 맡는 대원도 있으며 이들에게는 현대식 화기가 지급된다. 그러니까 저건 그냥 의전용. 권총, 기관단총, 방탄복부터 중기관총, 대전차 미사일 등등 있을 건 다 있다. 추기경 등을 비롯한 교황청 주요 인물의 경호 업무도 맡고 있다. 스위스 용병 부대에게 바티칸 방위 및 교황의 경호를 맡긴 것에서 시작한 것으로, 현대 스위스에서는 용병을 '불법'으로 규정했기 때문에 공식적으로는 '치안 경찰'로 분류하고 있다.
명목상으로는 바티칸 유일의 군대이지만 실질적인 전력으로 보기엔 무리가 있으며, 헬기 같은 장비도 이탈리아군에게 빌리는 형식 등으로 지리적으로 밀접한 이탈리아에서 국방을 대행해 주고 있다. 이탈리아의 가장 중요한 도시라 할 수 있는 수도 로마의 내부에 위치하고 있으니 바티칸의 국방 불안은, 그보다 앞서 이탈리아의 국방이 불안해졌다는 의미다.
국방력은 사실상 없는 것이나 다름없으나 이탈리아 자체가 강대국 말석에 들만큼 국력이 강하고 12억 정도에 이르는 가톨릭의 총본산이므로 바티칸에서 국방력의 강약은 국가 유지에 큰 의미가 없다 할 수 있겠다.
교황령이 건재하던 옛날에는 당연히 교황령 방위를 위한 정규군이 대규모로 있었다. 리소르지멘토 과정에서 교황령이 소멸하면서 교황군이 없어진 뒤에도 평신도 무장 조직인 팔라딘과 검은 귀족 근위대가 존속하고 있었다. 물론 축소된 교황령에서 상비군을 두는 것은 무리였으므로, 팔라딘 대원들은 평상시엔 생업에 종사하며 정기적으로 훈련에 참석하는 예비군 형태로 유지되었고, 검은 귀족 근위대는 소수의 귀족 인사들을 중심으로 스위스 근위대와 함께 교황 및 교황령의 근접 경비를 맡았다.
교황 바오로 6세의 명령으로 이 둘은 해체되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그 뒤로는 스위스 근위대가 유일한 바티칸의 군대로 남아있다.
8. 치안[편집]
바티칸 헌병대가 경찰 업무를 담당한다. 명칭은 헌병이지만, 법적으로 헌병군이 아닌 경찰 조직으로 분류되며, 이 때문에 헌병 등 군사 조직의 가입이 금지되는 인터폴에도 가입돼 있다.
9. 문화[편집]
바티칸은 국토 전체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문화재로, 성전과 건물들은 물론, 곳곳에 위치한 조각상이나 기둥, 장식 하나하나가 모두 예술품으로 평가받고 있다. 바티칸 내부의 건물로는 크게 바티칸 미술관, 시스티나 소성당, 성 베드로 대성당 등이 있다. 바티칸 미술관은 소위 말하는 세계 3대 박물관에 견주어도 손색이 없을 만큼 많은 예술품과 전시품들을 소장하고 있다.
9.1. 성 베드로 대성당[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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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장 앞 도로[26]에서 바라본 외관
성 베드로 대성당(St. Peter's Basilica)은 흔히 영화에서 바티칸이 나오면 등장하는, 둥그런 광장의 한쪽을 차지하고 있는 곳으로 천주교의 총본산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곳이다.
처음에는 4세기 중반 콘스탄티누스 대제 때 세워진 바실리카 양식의 성당이 있었지만 천 년이 넘도록 사용되면서 어지간한 보수 공사로는 더 이상 건물을 지탱하기 어렵게 되자 1506년 교황 율리오 2세가 기존의 성당을 철거하고 새로운 성당을 짓기로 결정했다. 신축 당시 옛 성당이 초기 교회와의 연속성을 상징하는 건물이니 어떻게든 흔적을 남기자는 주장도 제기되었지만 율리오 2세는 이를 물리치고 기존의 건물보다 훨씬 크고 아름다운 건물을 원했다. 이를 위해 도나토 브라만테를 시작으로 줄리아노 다 상갈로, 프라 조콘도, 라파엘로 산치오, 발다사레 페루치, 안토니오 다 상갈로, 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 자코모 델라 포르타, 카를로 마데르노, 잔 로렌초 베르니니 등 르네상스~바로크 시대의 예술가들이 120년 동안 갈려들어간 끝에 1626년 교황 우르바노 8세 때 비로소 축성되었다. 건축 과정에서 막대한 공사비를 충당하기 위해 레오 10세가 면벌부를 발행한 것이 종교개혁의 도화선이 되기도 했다.
완공 이후 수백 년 동안 세계에서 제일 큰 성당이었다.[27] 정면에서 보면 3개의 발코니가 있는데 그중 가운데 발코니를 보면 창문 옆이 붉은색으로 칠해져 있다. 이곳은 교황 전용 발코니로, 교황만이 사용할 수 있다. 영화 천사와 악마의 마지막에 새로 선출된 교황이 등장하는 곳이 이 발코니다. 성당 내부에는 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가 조각한 성상인 피에타가 있기도 하다.
교황이 직접 나오는 성당이니만큼 들어가려면 몇 가지 복장 규칙을 준수해야 한다. 슬리퍼는 신고 갈 수 없고 대신 뒤꿈치가 막혀있는 샌들류는 괜찮다. 여자는 무릎 아래로 오는 옷을 입어야 한다. 치마든 바지든 상관없다. 하지만 남자는 무조건 긴바지를 입어야 출입이 가능하다. 또한 민소매 옷은 입고 들어갈 수 없다. 때문에 성당 근처로 가면 숄을 파는 상인들이 있기도 하다. 바티칸에서 한번은 어느 수녀를 문지기로 임명해서 성 베드로 대성당에 들어오는 관광객들 복장을 검사하게 한 적이 있었다. 여름 한철 동안 숱한 관광객들을 상대한 뒤 이 수녀는 신경쇠약으로 일을 사임했다고 한다.
성 베드로 대성당을 정면으로 놓고 오른편을 보면 건물이 하나 있다. 창문이 많은 건물인데, 교황의 집무실이 있는 사도 궁전이다. 오른쪽 맨 위의 창문이 집무실 창문이라고 한다. 만약 창문들에 덧문이 모두 내려져 있으면 교황이 출타 중이라는 뜻이다.
오랫동안 유럽 미술의 대상이었던 천주교 신앙의 근원인 나라인만큼 국토 곳곳이 유명 미술 작품 천지다. 시스티나 소성당만 해도 미켈란젤로의 천장화가 있는 데다, 성 베드로 대성당에는 그 유명한 성상인 피에타가 있고… 이건 대표적인 것만 꼽은 것이고, 이외에도 굉장히 많다. 그런 연유로 유럽 3대 박물관 중 하나로 바티칸 박물관을 꼽을 만큼 유럽 여행 중 필수 코스로 여긴다.
이러한 관광 수입은 이 도시국가를 지탱하는 중요한 재정의 근간이며, 이 관광객들이 이탈리아를 통해 입국해 이탈리아에도 돈을 뿌려주고 가기 때문에 이탈리아 입장에서는 바티칸은 지역 경제를 위해 초특급 대우가 아깝지 않은 나라다. 종교, 신앙적인 측면도 중요하겠지만.
9.2. 시스티나 경당(시스티나 소성당, Sistine Chapel)[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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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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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장을 장식하고 있는 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의 천장화의 일부 중
아담의 창조
9.2.1. 소개[편집]
시스티나 경당(Sistine Chapel)은 영화 천사와 악마에서도 나오는 콘클라베가 이루어지는 장소로, 안쪽의 벽면과 천장들이 전부 미켈란젤로가 그린 프레스코로 이루어져 있다. 천장에 있는 것이 천지창조,[28] 입구 쪽의 큰 벽면을 가득 채운 것이 최후의 심판이다. 프레스코가 빛에 약하기 때문에 내부는 어두우며, 플래시를 막기 위해 안쪽에서는 사진 촬영이 금지되어 있다. 따라서 천사와 악마에 나온 그 장면은 직접 시스티나 소성당에서 찍은 것이 아니라, 따로 세트장을 만들어서 찍었다. 일반 사진기조차 플래시 때문에 사용 금지인데 영화 촬영은 애초에 불가능할 것이다.
9.2.2. 촬영 관련 이야기[편집]
2010년 기준으로 시스티나 성당의 프레스코화 복원 작업 후 카메라로 사진 찍는 것을 제재하는 장면을 많이 보인다. 심한 경우는 경비원이 와서 디지털 카메라의 메모리 카드를 압수한다. 그리고 끊임없이 "No pictures please"하고 다니고 있다. 대놓고 찍지 않으면 워낙 사람이 많다 보니 일일이 알 수는 없지만 인물 사진 같은 것은 찍기 힘들다.
가이드들의 말로는 사실 저 프레스코화의 저작권이 복원을 한 일본의 모 회사의 소유가 되어서 바티칸 시국과 협의 후 사진을 못 찍게 하는 대신 서점에서 사진집을 팔기 때문이라는 믿기 힘든 도시전설급 이야기를 한다. 동시에 그런 이야기가 단순한 루머라는 이야기를 하는 가이드도 많은데… 실제로 바티칸에서 시스티나 소성당의 벽화를 복원하면서 자금 문제로 고민하던 중 일본 NHK에서 자금과 기술을 대어주면서 겨우 해결되었는데, 교황청과 합의 끝에 NHK에서는 10년간 관련 저작권에 대한 독점권을 가질 수 있었다고 한다.
다만 그만큼 1994년 복원 작업이 끝난 뒤 10년이 지난 2004년에는 일본의 독점권이 끝났다. 그러나 교황청에서는 여전히 사진 촬영을 엄금하고 있는데, 이는 빛에 약한 프레스코화의 특성상 최대한 빛의 접촉을 줄여야 하며, 햇빛 역시 최대한 간접적인 방법으로만 비추도록 하고 있다고 한다.
덧붙여 복원 작업에 관련된 재밌는 일화가 있다. 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의 최후의 심판은 원래 올 누드화였다. 그런데 이 그림이 그려질 당시 종교개혁과 봉건 사회 해체 등으로 인해 사회가 엄청나게 혼란스러웠다. 덕분에 르네상스로 인해 세속화되면서 느슨해지고 인본주의적 모습을 보이던 가톨릭 교회에서는 이에 대한 반발로 오히려 더욱 보수화되어 가고 결국 1545년 트리엔트 공의회에서 모든 성화에 누드를 금지하는 결정이 내려진다. 따라서 기존에 르네상스로 인해 그려진 누드 성화는 파괴되거나 대대적인 수정이 가해지게 되었는데 최후의 심판 역시 이러한 손길을 피할 수 없게 되었다. 사실 최후의 심판은 완성 당시부터 이단 논쟁을 피할 수 없었다. 무엇보다도 누드로 표현된 게 가장 큰 문제였다.
파괴냐 수정이냐의 중대한 기로에 선 마당에서 미켈란젤로의 제자 다니엘레 다 볼테라가 중요 부위(?)를 살짝 가리는 수정을 도맡게 되었다. 그래서 현재 <최후의 심판>의 등장인물들을 보면 중요 부위(?)에 어디에선가 자연스럽게(?) 나오는 천들에 의해 가려진 모습으로 보여지고 있다. 덕분에 볼테라는 '기저귀를 만드는 사람'이라는 별명이 붙었다고 한다. 이러한 작업이 이뤄진 지 400여 년이 지난 후 일본에 의한 복원 작업이 진행되고 있을 때 '미켈란젤로가 그린 원본으로 복원해 보자!!'는 시도가 진행되었는데 이에 대해 "교회의 결정을 존중하라"는 교황청과 신자들의 반발이 있었고, 결국 일본 측에서는 거기에 굴복해 작업이 중지되고 그냥 때 벗기는 작업만 진행하게 되었다. 그래도 현재 <최후의 심판>의 등장인물들 중 총 6명은 초기 작업의 영향으로 올 누드 상태라고 한다. 들어가 보면 벽 쪽에 커튼들이 보이는데, 가까이 가서 보면 다 그림이다.
9.2.3. 벽화 감상 그리고 정숙[편집]
워낙 유명한 곳이고 로마 관광 필수 코스로 여겨지는 곳이라 언제 가도 사람으로 발 디딜 틈이 없다. 정말 발 디딜 틈이 없을 정도로 사람이 계속 들어간다. 그러다 보니 경비원들이 위에서 말한 카메라로 찍지 말 것을 요구하는 것 외에 조용히 할 것과 벽화를 계속 감상할 사람들을 가운데로 모으고 길을 만든다. 사람들이 워낙 많이 몰리고 작은 소리도 잘 울리다 보니 특별히 누가 떠드는 것이 아니어도 소란스럽게 느껴지는데, 어느 정도 소리가 커지면 신부님이 등장해 "가톨릭의 경건한 성당이자 문화재이니 조용히 감상해 달라"는 말과 방문자를 축복하는 기도를 이탈리아어, 독일어, 프랑스어, 영어 등 대략 4~5개 언어로 하는 위엄을 보인다.
벽화를 감상할 목적으로 방문했다면 소성당 가운데로 가는 것보다는 의자에 앉는 쪽을 추천하는데, 성당 가운데 서서 천장 벽화를 보게 되면 얼마 안 가 목에 통증을 느끼게 된다. 앉아서 감상할 수 있는 의자가 벽에 붙어 배치되어 있는데 은근히 경쟁이 치열하다.
9.3. 사도 궁전[편집]
아테네 학당 등 벽화들과 유물들이 전시된 공간.
9.4. 바티칸 도서관 및 사도문서고[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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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최고의 도서관 가운데 하나로 손꼽히며, 역사적인 가치가 있는 귀중한 서적과 문서 등을 많이 소장하고 있다. 1448년 교황 니콜라오 5세에 의해 도서관으로 개관되었다. 4세기경 교황 다마소 1세가 창설한 종교 문서관이 전신이라고 할 수 있다. 니콜라오 5세는 전임 교황들로부터 물려받은 350점에 달하는 그리스어, 라틴어, 히브리어의 고사본과 함께 여러 서적과 문서 등을 수집했다. 1587년 교황 식스토 6세가 새로운 건물을 지었고 1.5kg의 금으로 화려하게 장식된 성경을 비롯해 약 15만 권의 필사본을 포함, 150만 권 이상의 장서가 보관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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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티칸 사도문서고 홈페이지
그중 바티칸 사도문서고는 바티칸에서도 특히 중요한 곳 중 하나인데 수많은 역사적 가치가 있는 도서와 비밀 문서를 보관하는 곳이다. 홈페이지에 의하면 가장 오래된 문서의 연대는 8세기 말엽까지 올라가며, 몇 차례의 동란으로 12세기 때의 교황 인노첸시오 3세 이전의 문서들은 상당한 수가 소실되었다. 17세기에 교황 바오로 5세의 지시로 바티칸 도서관에서 분리되어 다른 곳에 보관되었다. 그러다가 나폴레옹 때 상당한 양을 프랑스에 뺏겼으나 1817년 되찾을 수 있었다. 이 후 1883년 교황 레오 13세가 1815년 이전의 문서들을 일반 학자들에게 처음으로 공개하였다. 이때부터 꾸준히 공개하는데, 만들어진 날에서 75년이 지나야 공개가 가능하며 몇몇 중요하고 민감한 문서는 영구 비공개로 지정되었다. 최근 들어서는 2012년에 바티칸 사도문서고 400주년 기념으로 대거 공개하였다.기사
문서의 면면을 보면 중요한 히브리어, 라틴어, 아람어, 그리스어 고서들과 각 지역 교구들과 신자들이 보낸 각종 정보 및 첩보 문서, 왕들 및 귀족들과의 편지, 마르틴 루터와 갈릴레오 갈릴레이 재판 기록 등등 이루 가치를 따질 수 없는 많은 희귀한 고서본들을 보관 및 관리하고 있다. 관련 기사1,관련기사2 개중에는 몽골의 네스토리우스교를 믿었던 군주들이 교황에게 보낸 편지나 남명의 마지막 황제 영력제의 모후 왕씨가 교황에게 보낸 구조 서한 등 온갖 귀중한 가치를 지닌 사료들이 있다. 실로 보관된 문서들 하나하나가 모두 국보급이다. 그야말로 역사학자들부터 역덕들에게는 꿈의 성지.
10. 외교[편집]
상세 내용 아이콘 자세한 내용은 바티칸/외교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11. 스포츠[편집]
IOC나 FIFA에도 가입하지 않았기 때문에 올림픽이나 월드컵에는 참가하지 않는다. 2010년대 후반 들어서서 스포츠에 대해서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으며, IOC 총회에 옵서버 자격으로 참가했고, 2019년에는 육상팀을 창설하는 등 장기적으로 올림픽 참가 목표로 보고 있다.
이탈리아 올림픽위원회와 파트너쉽으로 유럽 소국 게임, 유럽 유스 하계 올림픽 페스티벌에 2021년부터 참가한다.
그럼에도 축구 국가대표팀 정도는 있다. 바티칸 시국 축구 국가대표팀 참조. 여자 축구 국가대표팀도 있다. 축구 리그, 컵 대항전도 꽤 오래전부터 활성화되고 있다.
12. 관광 정보[편집]
성 베드로 대성당은 입장료를 받지 않으나, 바티칸 미술관은 입장권을 사야 들어갈 수 있다. 패키지 관광을 갈 때는 십중팔구 아침 일찍부터 입장 줄을 길게 서야 하는데, 가톨릭의 총 본산이자 성지인 데다, 국가 전체가 세계유산이기 때문에 곳곳에서 수많은 관광객들이 몰려들기 때문이다. 인터넷으로 줄을 서지 않고 들어갈 수 있도록 예약을 할 수 있지만 약속한 시간에 가지 못하면 취소되고, 패키지 관광 상품은 출발 하루 전날에도 고객이 들어오고는 하기 때문에 예매를 할 수가 없다고 한다.
이를 감안해 최근에는 특전으로 사전예약을 넣는 상품이 늘고 있으며, 이런 상품은 출발 하루 전과 같은 임박한 시기에는 합류할 수 없으니 주의하자. 사람이 아주 많은 경우에는 예약한 사람들도 줄을 서야 한다. 일반 줄보다는 훨씬 짧다.
주의할 점은, 줄이 워낙 길기 때문에 혼선이 올 수 있다. 일반 입장 줄인 줄 알고 섰는데 알고 보니 예매 줄. 이런 경우엔 줄이 갑자기 사라질 수가 있다. 그렇게 되면 일반 줄에 본의 아니게 새치기를 하게 될 수도 있다. 실제로 이런 일이 일어나서 싸움이 붙은 적이 있었다. 그것도 같은 한국 관광객들끼리. 잘 해결되기는 했지만… 주의하자.
또 새치기를 조심해야 한다. 특히나 새치기 같은 경우는 이탈리아인들도 꽤나 잘 하기 때문에 조심해야 한다. 보통 새치기는 안 들키려고 스리슬쩍하지만, 이탈리아인들은 대놓고 당당하게 한다. 그래서 새치기 당해놓고도 "어…어?" 하다가 당하는 경우도 있다. 말빨 좀 되는 가이드가 항의하면 인정하고 물러나긴 한다.
주의할 점 또 한 가지. 줄 서는 곳에는 그늘이 일절 없다.[29] 바티칸 성벽을 죽 따라서 인도가 있는데, 그곳에서 줄을 서기 때문이다. 바로 옆은 그냥 찻길이다. 따라서 줄 서는 동안 따가운 햇빛을 고스란히 받아야만 한다. 여름철에 서면 진짜 무진장 덥다. 그래서인지 줄 주변에 보따리 장수들이 '1유로~! 2유로~!'하면서 싸구려 접부채를 팔고 있다. 이것은 여름철에 여행할 경우이고, 겨울에는 손난로나 각종 예술품을 판다.
의외로 외국인 범죄율이 높은 나라인데, 강력 범죄가 아니라 주로 관광객/순례자들을 노리는 외국인 집시 소매치기가 주를 이룬다고 한다. 이탈리아와 붙어있고, 별도 입국 심사 없이 바티칸에 입국이 가능한 데다 이탈리아의 치안이 불안하기 때문에 바티칸의 치안은 이탈리아의 치안과 궤를 같이한다. 즉, 외국인들이 들어와서 다른 외국인에게 범죄를 저지르는 셈.
13. 여담[편집]
바티칸의 주화와 우표는 바티칸 우취 및 주화국에서 발행하며, 이 우표들은 종교 테마에서 매우 중요한 우표들이다.
관련 서적으로는 『백과사전에도 없는 바티칸 이야기』(니노 로 벨로, 2001년, 생활성서, 6,800원)와 『바티칸 영혼의 수도, 매혹의 나라』(마이클 콜린스, 2009년, 디자인하우스, 40,000원),『인사이드 바티칸』(토마스 리스, 2004년, 가톨릭출판사, 18,000원) 등을 추천한다.
무한도전에서 길에 따르면 목사님이 사는 곳이라고 한다(…).[30] 사실 개신교 목사가 아니라 가톨릭과 관련된 곳이지만...
재미있는 통계가 있는데, 2018년 3월 22일 기준 세계에서 1인당 스팀게임 숫자 1위 국가이며, 토탈 플레이타임이 많은 게임을 1위부터 꼽자면 순서대로 도타2, 카스 글옵, 하츠 오브 아이언 4, 유로파4, 토탈 워: 로마2이다. 진지하게 따지자면, 그냥 국가 설정을 바티칸으로 해놓은 헤비 게이머가 많아서일 가능성이 있다.
의외로 철도가 존재한다. 하지만 화물 운송용이라 직접 타볼 기회는 드물다. 이걸 타고 바티칸에 가본 사람이 있다면 자랑해도 좋을 수준이며 여태까지 이걸 이용해 본 사람은 교황이 요한 바오로 2세 정도밖에 없다. 로마 산 피에트역에서 들어간다고 하는데 총 길이가 약 1.27km 정도 하고 바티칸에 속한 길이는 약 300m 정도 한다는 듯. 따라서 세계에서 가장 짧은 국철이다.
교황청이 이탈리아 안팎에 5천 건이 넘는 부동산을 보유한 것으로 나타났다.#
난민도 수용한다. 2019년 12월에는 프란치스코 교황이 그리스 레스보스 섬 난민 수용소에 머물던 난민 33명을 받아들이기로 했다고 발표했고, 이를 위해 이탈리아 정부와 몇달에 걸쳐 협상을 했다고 한다. #
14. 창작물에서[편집]
각종 창작물에서는 왠지 초인들이 득시글거리는 무지막지한 전투 집단으로 묘사되는 일이 잦다. 특히 일본 서브컬처 매체에서 이런 경향이 강한데, 이는 종교를 크게 신경 쓰지 않는 일본인의 시각이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일단 판타지가 주가 되는 이 바닥에서 교황청의 이미지는 마녀사냥 때에서 멈춰버린 듯하다. 어느 작품에 등장하나 다 엇비슷하다. 대개 이단자나 악마, 괴물 따위를 처단하는 비밀 기관이 있고, 여기서 근무하시는 성직자나 수도자 분들이 적극적으로 이단자와 흡혈귀 박멸에 열중하시거나 흡혈귀의 환생체이기도 하다. 거기다 마법은 기본.
어쌔신 크리드 2와 어쌔신 크리드: 브라더후드에서도 이곳이 등장한다. 전자의 경우 최종 보스가 교황 알렉산데르 6세 = 로드리고 보르지아[31]라서 마지막 스테이지로 등장. 브라더후드는 주 무대 자체가 로마로 옮겨지기 때문에 바티칸 역시 갈 수 있다. 하지만 2편의 마지막 미션에서 갈 수 있는 시스티나 소성당에선 아직 프레스코화가 그려지지 않았던 시절이라서(1500년) 안타깝게도 볼 수 없다. 아무리 천장을 올려다보아도 시커멓게 나올 뿐이다. 또한 성 베드로 대성당은 2편의 후속인 브라더후드에서도 등장하지 않는다. 이는 게임이 시간적 배경으로 사용한 1500년대가 아직 공사 중이던 해였기 때문. 단, 공사 중인 시기라서 그 현장만은 볼 수 있다. 바티칸 지역에 마지막으로 열리는 비밀 지역(로물루스의 소굴)이 바로 공사 중인 성 베드로 대성당을 탐험하는 것이기 때문이다.[32][33]
미션 임파서블 3에선 적의 조직 보스를 납치하기 위해 들어가는 장소로 나오는데 여기서 엄청난 옥에 티가 나온다. 바티칸에서 열리는 연회에서 여자들의 복장이 죄다 노출이 심하다.
아르카나 하트시리즈에서 2편부터 나오는 수녀 캐릭터인 엘자 라 콘티, 클라리체 디 란차가 소속된 곳이기도 하다.[34]
크로노 크루세이드 애니메이션 최종회 24화에서 마지막 무대가 된 곳이다.
디지몬 어드벤처 후반부 편인 어둠의 사천왕에서 48화 파워드라몬의 에리어로 잠깐 등장한다. 여기 이 장소에서 메가드라몬과 기가드라몬이 대기를 하던 장소로 나타났다.
탑블레이드 무인편 중반부 '유럽편'에서 안토니오와 올리비에가 나타난 장소이다. 여기서 강민과 잠시 승부를 하기도 하였다.
댄 브라운의 소설 천사와 악마는 여기가 주 무대다.
중세시대를 모티브로 한 작품인 늑대와 향신료와 늑대와 양피지에서는 "교회의 총본산"이라는 이름으로 간간이 언급된다.
교회의 총본산에 앉아 있는 교황이 속세의 황제와 대립하고 있던 시절에는 황제를 눈이 펑펑 내리는 들판에 사흘간 내버려 두었다는 이야기도 있는데, 상대가 상인이라면 그 정도로 끝나지 않는다.
늑대와 향신료 10권 中
『대략 여기쯤이네요.』
지도는 교황께서 계신 남쪽의 대도시를 중심으로 그려져 있다.
늑대와 양피지 1권 中
존 윅 2에서 등장한다.
바티칸 기적 조사관에서 주인공 히라가 요셉 코우와 로베르토 니콜라스가 근무하는 교황청 시성성 내 '성도의 자리'가 있는 직장으로 나온다. 가톨릭교회의 전례력 일정에 따라 교황이 직접 미사를 집전하는 장면이 묘사되는 등 현실적인 바티칸의 모습을 보여주려 노력했다.
일본 애니메이션 헬싱에서 무지막지한 전투 집단을 거느리고 있는 곳으로 묘사되곤 한다.
2012에 이탈리아 총리가 있었던 곳으로 대륙이동이 시작되자 대성당이 무너져 압사한 장면으로 나온다
일본만화 엑소시스트가 타락하질 않아에 엑소시스트들의 본 본부라고 할 수 있는 바티칸 협회가 등장한다.
용사가 돌아왔다에선 전대 믿음의 용사 성 데미안 아르카디우스가 봉인되어 있는 곳으로 나온다.
15. 관련 문서[편집]
가톨릭
검은 귀족
교황
교황/명단
몰타 기사단
바티칸 우취 및 주화국
바티칸 시국 축구 국가대표팀
바티칸 선정 위대한 영화
[1] 전 세계 가톨릭교회의 중심이자 대변자로서 대한민국 외교부가 인지하는 명칭
[2] 세속적 영토 주권 국가로서 대한민국 외교부가 인지하는 명칭
[3] 유엔이 인지하는 공식 영문 명칭.#
[4] 영토 전체가 이탈리아의 로마에 둘러싸인 위요지이다.
[5] 전체 군대 중에서 가장 인원 수가 적은 군대이자 경찰조직이다.
[6] 국토 방위는 라테라노 조약에 의해 실질적으로 이탈리아군이 담당하고 있으며 CIA도 스위스 근위대를 군 조직으로 보지 않는다(#).
[7] 출처: 바티칸 시국 공식 홈페이지
[8] 중고등학교 한 학년을 평균 400명이라 하면 총 1,200명이므로, 바티칸 인구가 중고등학교 학생 수의 약 절반에 불과한 셈이다. 후술할 실제 거주 인구는 중고등학교 학생 수의 약 1/5~1/6(한 학년 학생 수의 대략 절반)에 불과하다.
[9] 추기경이 되면 자동으로 바티칸 국적이 부여되는 등의 이유.
[10] 레소토나 산마리노처럼 특정 국가에 완전히 둘러싸인 내륙국은 몇몇 존재하지만, 어떤 나라의 수도에 둘러싸인 또 다른 나라의 수도로서는 유일하며, 단순히 어떤 나라의 수도에 둘러싸인 형태의 나라로서도 전례를 찾아보기 어렵다.
[11] 그래서 바티칸에 들어가려면 통행증을 소지하고 출입국심사를 받아야 하던 때가 있었다. 지금은 국경을 이탈리아에 위탁한지라 CIQ는 존재하지 않지만 그래도 신분증 검사는 실시한다. EU 거주자가 아니라면 여권을 준비할 필요가 있다. 5유로로 명목상 출입국심사 스탬프를 받을 수 있는 산마리노와는 달리 바티칸은 관광객에게는 출입국처리를 안 한다.
[12] See는 '관구'를 특별히 격식을 갖추어 일컬을 때 쓰는 영어 단어인데, 그 의미가 좁혀져서 교황이 다스리는 관구, 즉 교황청을 의미하게 되었다. 일반적으로 관구를 일컬을 때는 'province'라는 단어를 사용하며, 'see'는 여기에서의 'Holy See' 외의 다른 용례를 보기 힘들다. 문장 중에 사용할 때는 정관사를 붙여야 한다("the Holy See").
[13] 이때는 '교황청 대사'라고 하지 않고 '교황 대사'라고 한다
[14] 정확히 말하자면 유엔에서 인정받은 국가에서 가장 작은 나라다. 인정되지 않은 초소형국민체를 포함시키면 이보다 훨씬 적은 면적의 나라가 많다. 물론 나라라고 하기에는 굉장히 부끄럽지만
[15] 4.4\times{10}^{5}{meter}^{2}4.4×10
5
meter
2
[16] 마태오 복음서 16장 19절
[17] 마태오 복음서 4장 19절 참조.
[18] 마태오 복음서 16장 18절
[19] 2014~15년경의 한창 잘나가던 시기의 ISIL은 배포한 영상을 통해 우리는 신의 허락에 따라 가톨릭의 중심부인 로마를 점령할 것이라고 선포했다. 그리고 불과 3년도 못 가 자기들이 완전히 망해버렸다.
[20] 교황청은 오직 종교에 관련된 업무와 각국 대사를 파견하는 일만 한다. 해당 문서 참고.
[21] 사실상 사어인 라틴어를 공용어로 사용하는 유일한 국가이다. 물론 일상적인 용도는 아니고 업무, 학술 용도로 쓰인다.
[22] 인간의 창의성으로 빚어진 걸작을 대표할 것
[23] 오랜 세월에 걸쳐 또는 세계의 일정 문화권 내에서 건축이나 기술 발전, 기념물 제작, 도시 계획이나 조경 디자인에 있어 인간 가치의 중요한 교환을 반영
[24] 인류 역사에 있어 중요 단계를 예증하는 건물, 건축이나 기술의 총체, 경관 유형의 대표적 사례일 것
[25] 사건이나 실존하는 전통, 사상이나 신조, 보편적 중요성이 탁월한 예술 및 문학 작품과 직접 또는 가시적으로 연관될 것
[26] 로마 영토이다.
[27] 코트디부아르에 평화의 노트르담 대성당이 지어지면서 기록이 깨졌다.
[28] 미술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 보았을, 하느님과 아담이 서로에서 손을 뻗고 손가락이 닿을락 말락하는 그 그림이다. 사실 이 그림은 천지창조를 이루고 있는 수많은 그림 중 하나일 뿐이다. 이 그림만 천지창조란 이름을 가진 것이 아니니 참고할 것.
[29] 여름철 대략 오후 1시 이후부터 입구 쪽 줄에 성벽에 의한 그늘이 생기기도 한다. 계절과 태양 고도에 따라 달라진다.
[30] 오호츠크 특집에서 하하와 지식배틀 중에 "옛 로마 제국의 수도가 어디냐"는 질문에 대답한 말이다.
[31] 게임상의 픽션이지만 로드리고 보르지아는 실존 인물이다.
[32] 지도엔 로물루스의 소굴로 표시되지만 실제 역사 속에선 로물루스와는 전혀 관계없다. 해당 미션이 '로마를 지배하는 보르지아 세력과 로물루스 추종자들의 연결고리를 가진 추기경을 추적하는 것'이기 때문에 이렇게 뜰 뿐… 이 내용도 게임 스토리상의 픽션이다. 오해하지 말자.
[33] 이 미션 초반에는 추기경들 사이를 은신해서 움직여야 하는데, 이상하게 새빨간 차림에 챙 넓은 모자를 쓰고 있는 추기경들이 새하얀 후드 차림의 에치오를 보고서도 전혀 이질감을 느끼지 않는다. (경비병들은 눈치채고 의심한다.)
[34] 본래의 출신지는 이탈리아 아브롯트주 출신이다.
무시무시한 통찰력이 엿보입니다! 진짜 오랜만에 보는 재미가 납니다!
좋은 말씀 고맙습니다. 이런 댓글이 저에게는 큰 힘이 되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