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일차
JW 매리어트 카라카스
카라카스 베네수엘라
아고스토의 침실 문이 열렸다.
그리고
이야기를 하려고 들어갔던
그레이스 박사와 앤 챔버가 거실로 나왔다.
잇토키는
그 둘 사이에 흐르는 분위기가
이전과 바뀌었음을 알았다.
침실로 들어가기 전
그에게 날카롭게 소리치던
그레이스 박사의 표정에는 힘이 빠져있었다.
반면에
그녀의 뒤를 따라 나오는 앤 챔버의 걸음걸이에는
당당함이 느껴졌다.
방에서 나온 그레이스 박사는
모두가 지켜보는 가운데 힘없이 소파에 앉았다.
방에 들어가기 전의
표독스럽고 앙칼진 분위기는 씻은 듯이 사라져서
마치 다른 사람이 앉아 있는 것 같았다.
“미스터 스즈키.”
그레이스 박사를 바라보던
사쿠라바 잇토키는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에 앤 챔버를 돌아보았다.
발걸음만큼 당당한 눈동자가
그를 마주 바라보고 있었다.
“부탁드릴 것이 있어요.”
잇토키는
베네수엘라에 도착하고 처음으로 흥미를 느꼈다.
그저 말없이 그레이스 박사를 따라다니는
앤 챔버에게
처음으로 집중하게 되었다.
잇토키는 말하라는 의미로
앤 챔버에게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먼저 주제넘게 이런 말씀을 드리는 것에 대해
사과의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그레이스 박사님과 저는
미스터 스즈키의 지시에 따르도록 하겠습니다.
그러니
임무를 포기하겠다는 말씀은
철회해 주시면 안 될까요?”
그 말에
잇토키는 그레이스 박사를 돌아보았다.
앤 챔버가
이런 말을 할 권한이 있는 것일까?
그녀가
그레이스 박사를 어떻게 설득했을까?
그레이스 박사는
소파에 앉아서
여전히 아무 말이 없었다.
잇토키의 시선이
아고스토 이사에게로 향했다.
아고스토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앤 챔버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아고스토 이사님.
이사님도 안전을 위해서 스즈키 씨에게 협조해 주세요.
부탁드릴게요.”
앤 챔버가 아고스토에게 말했다.
아고스토는
시선을 그레이스 박사에게 돌렸다가
다시 앤 챔버를 바라보았다.
둘 사이에서는
이미 이야기가 끝난 상황임을
아고스토도 알 수 있었다.
“이사님. 부탁드려요.
제발요.”
다시
앤 챔버가 간청하는 표정으로 말했다.
아고스토는
그녀의 표정이 마음에 들었다.
그가 보고 싶던 표정이었다.
비록 고대하던 침대 위는 아니었지만.
“챔버 양의 의견을 따르도록 하지요.”
아고스토는
그렇게 말하고 잇토키를 돌아보았다.
“당신의 뜻에 따르는 것이 아니라.”
아고스토의 말에
잇토키는
속으로 픽 하고 실소했다.
재미있는 양반이군.
아고스토는
앤 챔버에게는 호의를,
자신에게는 자존심을 내세웠다.
잇토키는
아고스토가 알량하게 자존심을 세우는 모습을 보고
원하신다면
경호대상에서 제외시켜 주겠다고 말할까 하다
그만두기로 했다.
일행에서 유치한 사람은
아고스토 하나로 충분했다.
“감사합니다. 이사님.”
앤 챔버가 미소를 지으며
아고스토에게 감사의 인사를 표했다.
아고스토는
그 미소를 보고
둘 사이가 조금 더 가까워졌다는 사실에 만족감이 들었다.
“미스터 스즈키,
그리고
도밍게즈 소령님.”
앤 챔버가 두 사람을 불렀다.
“말씀하신 것처럼
경호와 관련해서는
두 분의 지시를 전적으로 따르도록 하겠습니다.
그러니
부디 마음을 풀어주시길 부탁드립니다.”
앤이 말했다.
“알겠습니다.”
도밍게즈 소령이
먼저 앤 챔버에게 말했다.
남미의 여자는 강하다.
게으른 천성을 타고 나는
남미 남자들을 대신해
아이를 키우고, 돈을 벌고, 가정을 지킨다.
어린 나이에 입양되어
스페인어를 할 줄도 모르는
미국인 아가씨에게서
남미 여성의 강인함이 느껴졌다.
역시 남미의 핏줄은 핏줄인가?
도밍게즈 소령과 달리
잇토키는 답을 하지 않았다.
그저 앤 챔버를 바라보고만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