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우덴급 강습상륙함이 사막에 착륙했다. 함장인 제이콥 대령은 함교의 의자에서 내려와 관측창을 보며 장교와 대화를 나눴다.
"정찰대를 보내도 괜찮겠지?"
"하지만 대령님, 그들은 기초 훈련조차 마치지 못한 학도병들입니다."
"전쟁이네, 중위. 전쟁이야. 연합이 총공세를 받고 있는 지금 상황에서 가용 가능한 병력은 전부 써야한다네."
"아무리 그래도..."
"제11 거주구에서 탈출할 때, 숙련병들이 전부 당해버렸지 않았나. 앵커 나인에 정박했을 땐 또 어땠나?"
"..."
"전부 퇴짜 맞았네. 증원 요청도, 민간인의 수용도 모두. 그 일대에 연합 우주함대라곤 우리 함선밖에 없었지."
"여기에 있는 장비라곤 언제 퇴역해도 이상하지 않은 고물들과, 이제 만들어진 실험 장비들뿐입니다."
"알고 있네. 그리고 이 배는 구닥다리 상륙함이지. 내 군 생활보다도 오랜 기간을 연합 우주군에서 머물렀어."
"그렇지만 지금은 11 거주구 사람들의 유일한 집이야. 승조원들은 내 전우들이자 자식들이네."
"자네도 한 가정의 가장이지?"
"예."
"그 가장의 마음으로, 지금 저 아이들에게... 그리고 친구들에게 나가서 싸워달라는 명령을 내려야한다면..."
"...이해했습니다."
"토레즈 상사와 함께 나가게. 주변을 파악하고, 교전은 피하게. 어떻게든 살아서 돌아오게. 낙오자는 없어야해."
"명심하겠습니다."
헤이즈 중위는 제이콥 대령에게 경례했다. 제이콥이 헤이즈에게 고갤 끄덕이자, 헤이즈는 뒤로 돌아 함교를 나갔다.
헤이즈는 착잡한 심경으로 상륙 도크의 문앞에 대기한 토레즈 상사에게 다가갔다.
"..."
"심란해 보이시는 군요."
"예..."
"전쟁은 처음이십니까?"
"그렇습니다만은, 그것 때문은 아닌 것 같습니다."
"뭐, 저도 전쟁이 익숙해질 연배지만... 저 아이들을 보니 중위님과 같은 마음입니다."
토레즈 상사는 깊은 한숨을 내쉬며 헤이즈 중위가 보는 방향을 봤다.
아직 미숙해보이고, 어설픈 군기만 든 젊은이들이 전차와 장갑차 앞에 서 둘의 명령을 기다리고 있었다.
"뭐라도 말씀해주시죠."
"무슨 말로도 저들을 격려할 순 없을 것 같습니다."
헤이즈의 답을 들은 토레즈는 도크의 문을 열었다. 도크의 문이 천천히 열리고, 토레즈는 지휘전차 뒤의 장갑차에 탔다.
전차 3대, 장갑차 2대로 이뤄진 정찰소대가 출발했다. 소대가 함선을 나서자 도크의 문은 다시 천천히 닫히기 시작했다.
장갑차 둘이 선두로, 전차 셋이 그 뒤를 따랐다. 다섯 대의 차량은 사막 위를 이동하다 어느 능선에 다다라 정차했다.
"여기서 센서를 매설하고 잠시 휴식을 취하겠다."
헤이즈의 명령에 따라 각 차량들은 대열을 흐트리지 않는 선에서 정차해 승무원들을 하차시켰다.
장갑차의 후방문을 열고 내린 두 공병이 삽을 가지고 땅을 파기 시작했다.
둘은 작은 안테나만을 튀어나오게 센서를 매장했다. 작동을 알리는 전자음이 나오자 공병 중 하나가 단말기를 헤이즈에게 보였다.
"작동했습니다만은, 이상한 물체가 잡힙니다. 굉장히 큰데..."
"으억!"
그 말이 끝나기도 무섭게, 거대한 손과도 같은 것이 토레즈 상사를 쥐어잡아 들어올렸다.
"아머드 워커다!"
병사 한 명이 당황해 소리쳤다. 헤이즈 중위는 그의 철모를 고쳐 씌워주곤 그에게 소리쳤다.
"그럼 빨리 움직여서 전차에 타라!"
헤이즈 중위는 그의 등을 밀어서 전차로 복귀시키고, 자신도 지휘전차의 해치를 열어 급하게 탑승했다.
'대체 저건 뭐지...?'
헤이즈 중위가 탄 전차의 포탑이 적을 향했다.
"손을 맞춰라! 토레즈 상사를 구해!"
헤이즈의 전차와 뒤따르던 2호차가 물체의 손을 조준했다. 포수와 전차장의 관측창에 물체의 손이 들어왔다.
이내 사격을 지시하려던 헤이즈였지만, 관측창을 통해 그의 눈에 들어온 영상은 그를 당혹스럽게 만들었다.
거대한 존재는 토레즈 상사를 자신의 얼굴에 부비적 거리고 있었다.
"꺄~ 예림아, 이 햄스터 엄청 통통해~"
"야, 한유나... 야생 햄스터잖아, 그러다 물린다고."
"야생이라기엔 옷도 입었고, 이상한 장난감도 가지고 있잖아."
자신들과는 다른 모습, 거대한 크기. 여태껏 본 적 없는 존재들.
"그냥 내려줘."
"칫."
아둥바둥 거리던 토레즈 상사는 자신을 내려준 거대한 생물과 눈이 마주쳤다.
"토레즈 상사!"
헤이즈가 전차 밖으로 뛰어나와 그를 부축했다. 넋이 반쯤 나간 토레즈는 헤이즈에게 말했다.
"중위님, 저들은... 저들은..."
"일단 복귀합시다. 여긴 너무 위험합니다."
"저들은 적이 아닌 것 같습니다."
"제정신이십니까?"
"아니, 저들은 절 죽일 수 있었지만 죽이지 않았습니다. 그저 세게 쥐기만 해도 죽었을 저를..."
"그럼 아까 그 스킨십이 기분 좋으셨습니까?"
헤이즈가 어이없다는 듯이 말하자, 토레즈는 극구 부인하며 말을 이었다.
"적어도 저들과 통한다면... 여기서의 위기는 벗어날 것 같습니다."
"...정신 차리시죠. 일단 보고를 드리겠습니다."
"함장님, 헤이즈 중위입니다. 지금 정찰소대는 거대한 생물을..."
"...예, 예. 예?"
헤이즈는 수화기를 내려놓고 넋이 나간 듯 토레즈를 바라봤다.
"함장님도 같은 의견이셨나보군요."
"다들 단체로 정신이 나갔나?"
"중위님도 알고 계시지 않습니까? 그 먼 옛날, 거대한 씨앗을 주었다던 거신들 말입니다."
"그딴 건 역사책에서나 나오는 신화고..."
"이젠 현실입니다."
헤이즈는 전차장 자리에서 머릴 전차 내벽에 박고 나지막이 내뱉었다.
"제발, 누가 이게 꿈이라고 해줘..."
"대체 함장님이 뭐라고 하셨습니까?"
"...그대로 말씀드리죠."
"'거신들을 설득해 연합을 위해 싸우도록 만들게.'"
"...그게 명령이라면, 할 수밖에 없습니다."
토레즈의 답을 들은 헤이즈는 실성한 듯 웃다가 이내 말했다.
"위대한 공화국들의 연합을 위하여!"
토레즈는 이 비현실적인 상황을, 전쟁이라는 참극을, 그리고 맛이 가버린 중위를 보며 답했다.
"...공화국들의 연합을 위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