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배 히로인이 너무 많아!,
패배해도 인생은 끝나지 않아
"단역 캐릭터 시점의 나날은
너무 시끄러워 청춘 대전쟁"
-패배 히로인이 너무 많아!op-
패배 히로인. 남자 주인공과 이어지지 못하고 호라모젠젠 해버린 정실 후보 탈락생들을 일컫는 말.
보통은 주인공과 진히로인이 이어지며 이야기가 끝나겠지만
어쩌겠나 인생은 패배 한 번 한다고 끝나지 않는 걸
패배 히로인이 너무 많아!는 기술적으로 훌륭한 애니메이션이라고 생각합니다.
광원의 활용은 신카이 마코토가 떠오를 정도로 수려하고 카메라 활용도 과하지 않는 수준에서 작품을 매력적으로 만들고 있습니다.
하지만 결국 모든 창작물의 근본이자 가장 큰 포인트는 이야기에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으로서는 조금 아쉬운 작품이기도 했습니다.
처음 제목을 보았을 때는 원작을 모르기도 해서 그냥 흔한 러브코미디인가 싶었습니다.
1화에서 보여준 흐름도 그렇게 가는 것 같았고요. 물론 실제로 러브와 코미디를 하긴 하지만 작품의 메인은 따로 있습니다.
패배 히로인에 해당하는 야나미, 야키시오, 코마리의 실패와 성장이죠.
여러분은 클리셰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한창 유튜브에 영화나 게임, 애니 리뷰가 범람하던 시절에는 클리셰가 거의 죄악처럼 다뤄지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클리셰를 남발하는 것은 물론 너무 뻔하고 흔한 전개로 빠지기 때문에 저도 그렇게 선호하지 않지만
클리셰는 적절히 사용한다면 작품에서 불필요하게 설명해야하거나 곁가지 같은 부분들을 깔끔하게 쳐내고 메인에 집중할 수 있게 분량을 압축하는 역할을 할 수 있습니다.
굳이 많은 인물들을 하나하나 설명할 필요 없이 디자인이나 흔히 사용되는 기호적인 성격을 부여함으로서 현재의 모습에 대한 기원을 설명할 필요 없이 저 캐릭터는 저런 캐릭터 구나하고 청자를 납득 시킬 수 있거든요.
다만 클리셰를 강박적으로 싫어하는 것에 아예 공감을 하지 못하는 건 아닙니다.
하늘 아래 완전히 새로운 창작물은 없다 지만 아무리 그래도 너무 전형적인 캐릭터들이 나와 흔하고 뻔해서 다음 장면 다음 전개가 모두 훤히 보이는 작품이라면 보는 입장에서 정말 재미없게 느껴질 수 있거든요.
솔직히 말하자면 패배 히로인이 너무 많아!는 후자에 속하는 애니메이션이었습니다.
개인적으로 라이트노벨을 원작으로 하는 학원성장물은 이제 거의 끝에 도달했다고 생각합니다.
아무래도 장르에서 나올 수 있는 캐릭터랑 캐릭터는 다 나왔고 클리셰를 비틀다 그게 또 다시 클리셰가 되는 경우도 적지 않아졌습니다.
그렇다보니 이전에는 관찰자 정도의 역할을 하던 남주인공에 개성을 부여하거나 작품의 소재를 독특하게 투입해서 전개를 비트는 등 여러 방면에서 시도가 되고 있습니다.
이번 작품도 캐릭터나 전개는 아주 뻔하지만 소재를 달리하는 것으로 개성을 부여했다고 생각합니다.
보통은 다뤄지지 않거나 짧게 치고 넘어가게 되는 패배 히로인을 포커스 중심에 넣는 것이죠.
클리셰적인 설정을 가득 담은 캐릭터들이라고 해도 독특한 소재나 주변인물을 배치한다면 새로운 이야기를 펼쳐낼 수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청춘돼지 시리즈는 소재도 모노가타리 시리즈가 떠오르는 괴현상 발생으로 인한 주인공과의 얽힘이라는 흔한 소재에 번갈아가며 나오는 히로인들도 하나하나 때놓고 보면 그리 특별할 것이 없지만
보통 러브 코미디에서 잘 사용되지 않는 정실 확정에 적극적이고 능청맞은, 자칫하면 히로인들의 분량이나 티키타카를 해칠 수도 있는 색이 강한 캐릭터를 남자 주인공으로 배치함으로서 청춘돼지만의 개성적인 전개를 보여줄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패배 히로인이 너무 많아!는 캐릭터들의 개성이나 전개에서 특별함을 하나도 보여주지 못합니다.
타이틀 히로인에 해당하는 야나미만 독특하게 빛나고 체육계 바보뇌 속성에 야키시오나 음침녀 소동물계 속성의 코마리는 야나미보다 긴 분량의 개인 에피소드를 배정받았음에도 너무나도 틀에 박힌 전개와 뻔한 성장과 극복을 반복함으로서 캐릭터를 어필하는데 실패했다고 생각합니다.
거기다 이젠 너무나도 흔한, 호타루와 하치만을 반반 섞어다 무개성한 디자인에 꾸겨넣은 누쿠미즈는 적극적으로 티키타카를 칠 수 있는 야나미를 제외하면 내내 관찰자 포지션을 유지하다가 갑자기 호타루를 버리고 하치만에 빙의하는 순간을 제외하면 전개에 유의미한 영향을 주지도 못하죠.
심지어 하치만에 빙의돼서 희생 플라이를 치고 명언을 박는 장면을 보면 저런 퀄리티에 뛰어난 센스를 뿜어내는 기술적으로 훌륭한 애니메이션을 진심으로 끄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습니다.
그렇다면 작품의 소재인 패배 히로인의 뒷이야기는 개성적이었는가 하면 그렇지도 않습니다.
패배 히로인의 후일담은 사실 아예 다뤄지지 않던 부분이 아닙니다. 짧게 혹은 에필로그처럼 지나가는 것이 일반적이라서 그렇지 패배 히로인들에게도 서사를 부여하는 하렘 작품들은 꾸준히 서브로 다루고 있던 소재입니다.
그걸 그냥 메인으로 끌어와서 너무나도 평범한 캐릭터들로 펼치고 있으니 딱히 작품에 개성이랄 것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초반부에 패배 히로인에 대한 클리셰를 적극적으로 배치하고 주변인물들의 성격이나 이미지도 클리셰를 적극 활용하기에 이렇게 압축한 분량으로 비트는 개그를 칠지 아님 더 깊은 이야기를 보여줄지 기대했습니다만.
성우의 열연과 능청스럽지만 어딘가 밉지 않은 성격으로 무장한 톡톡 튀는 야나미가 나올 때를 제외하면 활발한 체육계로 나와서 서비스신만 주구장창 찍다가 갑자기 말실수하고 이뤄질 수 없는 늦어버린 첫사랑 클리셰로 드리프트 하는 야키시오나
소동물 아싸 컨셉으로 시작해서 현재의 상황을 깰 수도 있는 고백을 하며 복합적인 심리를 중반까지 잘 살릴 수 있는 부분에서 갑작스러운 누쿠미즈의 하치만 빙의와 함께 캐릭터 빌드를 뭉게 버리는 코마리가 메인으로 나올 때는 바로바로 다음을 예상할 수 있을 정도로 뻔한 전개를 보여주었습니다.
작품이 볼만하냐고 물어본다면 볼만하고 재밌다고 대답할 거 같습니다.
분명 기술적으로 뛰어나고 중간 중간 너무 급하게 해결하는 부분들이 있긴 하나 전체적인 작품의 분위기를 생각하면 그냥 저냥 넘어갈만한가 싶기도 합니다.
다만 수작, 명작이라는 타이틀을 붙이기엔 너무 치명적인 전개상의 뻔함과 클리셰 남발로 벌어놓은 분량을 또 클리셰 펼치는데 사용하고 있는다는 점에서 아쉬운 것 같습니다.
패배 히로인이 너무 많아!의 2기보단 감독의 차기작, 야나미 안나를 연기한 토오노 히카루의 차기작이 더 궁금해지는 패배 히로인이 너무 많아!가 말합니다.
"몇 번이고 몇 번이고 지는 거야!
눈물은 그때마다 강해져
분명 언젠가는 언젠가는 해피 엔딩"
-패배 히로인이 너무 많아!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