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21.
“프로스 대리대사님. 죄송합니다만 저 대신 병사들의 지휘를 부탁드립니다.”
헤서만이 말했다.
“네, 잠시 실례하겠습니다.”
퀑이 양해를 구하며 지휘부에서 나왔다. 그를 기다리고 있는 건 푸른등대의 한 병사였다.
“무슨 일인가?”
“들으셨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저희 측 병사 한 명이 납치, 실종되는 일이 있었습니다. 가이아 요원 측도 모르고 있는 일입니다. 그 범인을 추적했습니다.”
“그런 일이 있었군. 누구지?”
“신원은 파악되지 않았습니다. 이곳 차량 터널 폭파 현장에 매복하고 있던 것을 발견했습니다. 발각된 직후 도주하던 것을 추적해 위치를 확보했습니다.”
“어디 있지?”
“그것이, 이곳 기지의 종교건물입니다.”
“종교건물? 활주구 쪽에 있던 것을 말하는 건가?”
“아닙니다. 저희가 모르고 있던 종교건물이 하나 더 있었습니다. 도보 출입구를 위장하고 있는 건물입니다. 저희가 종교건물이 하나 더, 그것도 다른 종교의 건물이 있을 거란 생각을 못 해 민간 건물로 착각했었습니다. 그래서 내부 수색을 하지 않았었습니다.”
“그럴 수 있지. 우리와 달리 이곳은 지역 언어만큼이나 종교가 많은 행성이니까. 헌데, 지휘관이 직접 그 현장에 파견되어야 할 이유가 무엇인가?”
“납치범의 요구입니다. 그가 인질을 두 사람 데리고 있어 함부로 제압할 수 없기도 합니다만, 동시에 그가 저희의 계획에 대해 알고 있다며 으름장을 놓았습니다.”
“기껏 구하려는 인원이 상해를 입어선 안 되지. 어서 가지.”
퀑은 인도를 받아 지부의 통로를 빠르게 가로질렀다. 승강기를 타고 지부 하층까지 내려가 한참을 걷자 긴 복도가 나왔다. 오래 걷는 건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퀑은 계속 걸었다. 인질극과 관련된 협상보단 궁금증 때문이었다. 계획에 훼방을 놓으려는 자의 얼굴을 봐두고 싶었던 것이다. 얼마 후 자그만 문이 보였다. 그것도 세 겹이나. 문을 지날 때 마다 기계로부터 수색을 받은 후에야 어느 방에 들어설 수 있었다. 그 방이 끝이 아니었다. 낡아 보이는 계단으로 올라가 두꺼운 문을 지나자 처음 보는 건물의 내부가 나왔다.
“이곳이 종교건물인가?”
“건물 본관의 옆방입니다. 본관 내부는 저희 병사들이 있습니다.”
퀑은 자신이 나온 문을 돌아보았다. 문은 없고 벽만 보였다. 나쁘지 않은 위장이었다. 퀑을 인솔하던 병사가 방문을 열고 나가자 널찍한 공간이 나왔다. 길쭉한 의자가 줄줄이 놓여있고 앞에는 강단이 놓여있었다. 그 뒤의 벽에는 아주 거대한 상징물이 달려있었다. 하지만 그 앞에 있는 한 사람 덕분에 경건에 보이는 공간이 긴장이 흐르고 있었다.
한 가이아 청년이 벌거벗은 가이우스 청년을 인질로 잡고 있었다. 가이우스 청년은 의자에 조잡하게 묶여있었다. 그리고 그의 입에는 권총이 한 정 물려있었다. 물론 그 권총을 쥔 건 가이아 청년이었다. 가이우스 청년보단 멀쩡해 보였지만, 어느 가이아 중년 남성도 근처 바닥에 묶여 내팽개쳐져 있었다. 그는 다리가 묶여있지는 않았지만 도망치지 못하고 있었다. 퀑은 대치중인 공간으로 몸을 들이밀었다.
“뭐야, 정말 협상이라도 하겠다고 직접 온 건가? 대리대사.”
“나를 알고 있군.”
“모를 리가 있겠나.”
“너는 불칸인가?”
“아닐걸?”
“그럼 가이아인, 왜 우리의 병사를 납치해 인질로 잡고 있는 거지? 심지어 옆에 있는 사람은 동족이지 않나.”
“나도 이 분을 이렇게 대하는 건 싫었어. 그래도 설득할 시간을 아껴야 했거든.”
가이아 청년이 권총으로 옆의 중년 남성을 가리키며 말했다. 그 사이에 입이 자유로워진 카샤 상병이 외쳤다.
“저는 신경 쓰지 마십시오! 당장 이 자를 제거……컥!”
그의 말은 가이아 청년의 공격으로 끊겨버렸다. 뒤통수를 강하게 얻어맞은 카샤가 신음하며 고개를 떨어뜨렸다. 가이아 청년은 카샤의 뒷덜미를 움켜쥐며 말했다.
“얘는 말이 너무 많은 거 같더라고. 덕분에 필요한 건 결국엔 불게 만들 수 있었지만.”
“원하는 것이 정보였는가?”
“정보를 원하는데 고작 병사를 끌어들였겠어? 정보를 원한 게 아니라 확인을 했을 뿐이야. 알고 있는 건 이미 있었거든. 그리고…….”
가이아 청년이 뒷덜미를 잡고 있던 손으로 카샤를 뒤에서 끌어안으며 말을 이었다.
“이러고 있어야 너희가 함부로 나에게 번개를 날리질 않지. 더구나 마침 이렇게 직접 진짜 정보원까지 나셔주시기까지 했고.”
“무슨 정보를 얻어냈다는 거지?”
“여러 가지 있지. 특히 너희 가이우스가 우리한테 뭔가를 하려고 한단 사실. 그러고 보니 마침 잘 됐네. 프로스 퀑, 다른 사람은 몰라도 너는 진짜로 직접 죽이고 싶었거든.”
“나를?”
“그래. 원한이 좀 큰 게 쌓여있거든.”
“일개 납치범에게 원한 쌓을 짓은 하지 않았다.”
“그럴까? 온 가이아가 너를 갈기갈기 찢어 나눠가져도 할 말이 없을 텐데?”
“무슨 뜻이지?”
카샤의 입에 권총을 다시 밀어 넣으며, 박승태가 말했다.
“가이우스, 너희들이 성적과 불칸에게 가이아 침공을 사주했기 때문이지.”
5-22.
은비와 하진은 물론, 흑인 암살병기조차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특히 암살병기는 걸고 있던 포박까지 풀어버린 상황이었다. 인드히 때문이었다.
“자, 병사들. 그럼 이제 「이대로 돌아가시게나」.”
어딘지 모르게 머릿속을 울리는 말. 인드히의 그 한마디에 푸른등대 병사들이 다시 동요하기 시작했다. 방금까지만 해도 무기를 겨누던 그들이 순순히 그의 말을 따르고 있었던 것이다. 다만 그 상태가 그리 좋아 보이지 않았다.
병사들은 전신을 떨며 아주 힘겹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돌아서는 자세도 어설펐고, 한 병사는 넘어지기까지 했다. 어느 병사는 ‘돌아가야 해’라는 말만 조용하고 빠르게 되뇌기까지 했다. 다들 제정신을 놓아버린 모습이었다. 마치 누군가가 강제로 조종하는 것 같았다. 움직일 수 있는 병사들은 그나마 상태가 양호한 편이었다. 어느 병사는 아예 입에 거품을 물고 쓰러져 경련하고 있었다.
“외교관님? 지금……무슨 일이 이러난 겁니까?”
“응? 별거 아닐세. 그저 외교관으로서의 지위를 이용해 지시했을 뿐이지.”
“그게 겨우 ‘지시’일 리가 없잖습니까.”
분명 이 병사들의 의지는 확고해 보였었다. 그들은 무기를 일행에게 겨누었었다. 전기불꽃이 튀는 게 보일 정도였다. 그 때 인드히가 무기를 내려놓으라고 말했던 것이다. 머릿속을 울리는 강렬하고 단호한 한마디. 그 말이 퍼지자마자 푸른등대 병사들이 동요하기 시작했다. 필요이상으로 재빠르게 손을 내리거나, 경련하며 손을 내리는 병사들. 바보가 된 것처럼 눈빛이 굳고 근육이 풀린 모습들이었다.
“가이우스인. 너의 정보파가 일순 크게 요동쳤다. 그것이 무슨 관계가 있나?”
암살병기가 물었다. 이에 인드히는 입가에 미소를 띠우는 것만으로 답했다.
“그것보다 중요한 것이 있지 않은가? 불칸의 작전은 어떻게 진행되었는가? 새로운 동맹은 모두 끌어들였나?”
그 말을 듣자 암살병기가 팔뚝에서 긴 칼날을 뽑아내며 인드히의 목을 향해 들이밀었다.
“너, 그것에 대해 어떻게 알고 있는 거지?”
“단순한 통찰력이라네. 이러는 것 말고 정말 중요한 것이 있다하지 않았는가? 말했다시피 진실을 이야기할 시간은 많단 말이네.”
암살병기는 눈살을 찌푸리다가 다시 칼날을 집어넣었다.
“얼마 있지 않아 지원 병력이 해안을 기습할 예정이다. 그때 우리도 투입한다.”
인드히는 능글맞게 웃으며 알았다고 했다. 하진은 고개를 끄덕이는 데에만 10초 가까이가 걸렸다. 그에 반해 은비는, 대답초자 할 생각이 없었다. 이 섬에서 빠져나가는 것 보다 더 신경이 쓰이는 것을 느꼈기 때문이었다.
들렸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번역기도 없이 인드히의 말이 들렸던 것이다. 단순히 귀로 들어왔단 뜻이 아니었다. 그 말뜻 자체가 들렸단 것이다. 해석돼서 들린 거나 모국어로 들린 것이 아니었다. 말 그대로 뜻 자체가 들렸던 것이다. 모두 들린 것은 아니었다. ‘이대로 돌아가시게나’라는 말만이 머릿속을 울리며 들렸다. 그리고 그 말이 만들어낸 틈새로 인드히의 ‘속’이 엿보였다.
늘 이질감은 느껴졌었다. 하지만 단순히 외계인이기 때문이라 생각했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 설명할 수 없는 존재감도 있었다. 은비는 그것이 무엇인지 알 수 없었다. 잘 느껴지지도 않았고 익숙하지도 않았고 신경 쓸 겨를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단순히 특이한 언행 때문일 거라 생각하기도 했었다. 그러나 이젠 무시할 수가 없었다. 이 사람이 한마디 강력한 말을 하면서, 자신의 참모습을 잠시 드러냈기 때문이었다. 살며시 비친 그 모습은 거대했다.
“……가이우스인이 아니시죠?”
은비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러자 인드히가 다시 능글맞게 웃었다.
“응? 그게 무슨 말이신가?”
“도대체 누구신거에요? 언니, 제가 모르는 외계인이 또 있어요? 아냐, 이건 다른 외계인이라서 그런 게 아냐. 겉은 가이우스인이 맞아…….”
“은비야, 너 마저 왜 그래? 가이우스인이 아니라고? 이 사람은 분명한 가이우스 외교관이야. 설마……암살병기 같은 거란 뜻이니?”
“이 자는 불칸이 아니다. 분명하다.”
“몸은 분명 가이우스인이 맞아요! 그런데, 그 몸이 그냥……껍질이에요. 저도 잘 모르겠어요! 근데 어쨌든 뭔가 달라요!”
갑작스런 은비의 주장을 하진과 암살병기는 따라가지 못하고 있었다. 방금 전 인드히가 보인 괴상한 설득도 이해가 가지 않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가장 조용하던 은비가 나서기까지 하자 상황은 붙잡을 수 없는 곳까지 날아가 버렸다. 그리고 정작 가장 먼저 상황을 날려 보낸 인드히는 알 수 없는 미소를 짓고 있었다.
“52번째에서……마침내 나왔군.”
무언가를 중얼거리며 인드히는 차분히 은비에게 다가갔다. 은비는 그에게서 위압감을 느끼기 시작했다. 이질감 때문이 아니라 존재감 그 자체 때문이었다. 너무도 거대한 본모습이 계속 겹쳐보였다.
“그림자가 아닌, 그림자를 만드는 사물과 빛을 보았구나. 마침내 고개를 돌릴 수 있게 된 거야. 「얘야, 잘 보았구나」.”
해안이 소란스러워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일행은 그 상황에 집중할 수가 없었다.
5-23.
닐슨은 이게 어떻게 된 일인가 싶었다. 분명 불칸의 전초기지에서 가이아인들을 구출해오는 단순명료한 작전이었다. 그리도 단순한 작전이 어디서부터 이상해진 걸까.
우선 이 길쭉한 본명을 가진 암살병기가 말을 걸어올 때부터 조금씩 어긋나기 시작했던 것 같았다. 푸른등대와 가이우스가 위협이라니. 무슨 헛소리인가 하고 생각했다. 그런데 갑가기 푸른등대가 나타나더니 그 말을 직접 입증해주기 시작했다. 편리하게 치워버리겠다나 뭐라나. 그러다 불칸이 목숨을 구해주기까지 했다. 그 암살병기와는 통성명도 해버렸다.
‘젠장, 그 통성명이 문제였나.’
작전이 이상해지는 그 끝은 바로 이 해안인 듯했다. 닐슨은 에스알두 어쩌구 꾸냐였다는 이 19번 암살병기를 따라 동쪽 해안에 도착했다. 그곳엔 어째선지 푸른등대에게 점령당한 훌리건이 있었다. 무슨 상황인지 파악이 되진 않았다. 그래도 닐슨은 억지로 들고 온 중화기를 내려놓으며 일단 암살병기와 함께 근처에 몸을 숨겼다. 그러고 몇 분을 기다렸을까, 갑자기 암살병기가 일어서며 돌격을 명했다. 웃긴 것은 암살병기 자신이 먼저 돌격하기 시작했단 점이었다.
‘이건 또 무슨 미친 짓인가.’
어차피 미치지 않기에는 조금 멀리 온 것 같았다. 작은 한숨과 함께 닐슨은 보조시스템도 없이 근력으로만 중화기를 휘두르며 달려들었다. 그 때 이상해짐의 클라이막스가 펼쳐졌다. 해안 사방에서 숨어있던 사람들이 달려들기 시작했던 것이다. 닐슨과 함께 왔던 검은요원들. 그들 사이사이에 낀 허름한 옷차림의 가이아인들. 그리고 그들을 지원해주는 적지 않은 불칸의 대인병기들.
목적지는 모두 같았다. 그 덕에 수송기를 감시하던 푸른등대는 포위당하게 되었다. 당황한 그들은 몰려드는 인원을 향해 번개를 쏘기 시작했다. 하지만 어느 전투에서나 수적우위는 영향을 발휘하는 법이다. 구조 받은 요원이나 극무요원을 다 합쳐도 20명을 조금 넘을 정도였지만 기다리고 있던 푸른등대 병사보단 많았다. 무엇보다 대인병기들은 훨씬 많았다.
“이게 다 뭐야?”
닐슨이 달리다 멈춰서며 말했다. 가이아의 검은요원들이 불칸과 힘을 합치는 모습을 보니 뭔가 어안이 벙벙해졌던 탓이다.
“너희와 우리가 동맹이라는 뜻이다.”
19번이 말했다.
“필요 없는 손실을 줄이며 목적을 달성하는 데에 모두가 동의한 결과다.”
“전부 다 나처럼 설득된 거야?”
“너와 같이 일대일로 설득된 인원도 있다. 하지만 다수의 인원은 검은요원 복장으로 위장한 개체들이 거짓정보를 퍼트려 동맹으로 끌어들였다.”
자신만 이상한 판단을 내린 것이 아니다. 그 사실이 묘하게 안도가 되었다. 닐슨이 다시 중화기를 움켜쥐는 사이, 그의 눈에 뭔가가 보였다. 이상하게 요란한 옷차림의 사내였다. 그의 곁에는 흑인 사내와 두 동양계 여성이 있었다. 그들도 자신처럼 어디선가 튀어나와 수송기를 향해 달리고 있었다.
“저 자들이 보이나?”
마침 닐슨이 발견한 일행을 가리키며 19번이 말했다.
“저 중에 가장 어린 여성이 보이나?”
“동양인 외모는 잘 구분을 못해서 말이지……. 녹색 옷 입은 쪽인가?”
“그녀가 보호대상이다.”
“저 요란한 옷차림 말고? 보호는 그쪽이 더 필요해 보이……….”
“가이우스의 최종 목적도 분명 보호대상일 것이다. 보호대상을 부탁한다.”
“응?”
“우리는 이곳의 문제를 해결해야한다. 너의 동료들도 너와 같은 정보를 가지고 있을 테니 걱정마라. 이후의 보호를 부탁한다, 닐슨 빌바오.”
마지막 말을 남기고 암살병기는 다시 섬 쪽으로 달려갔다. 이름을 알려주지 말걸 그랬나하는 후회와 함께, 닐슨은 그의 부탁을 들어주기로 했다. 닐슨은 앞으로 나아가며 하늘로 도망치는 푸른등대 병사를 향해 총을 난사했다. 무게도 무게지만 반동 때문에 총알이 심하게 퍼져나갔다. 그래도 나름 화망이 만들어져 병사의 움직임을 방해할 수 있었다. 그 병사는 결국 사방에서 날아오는 총알 세례에 휩쓸려 땅에 떨어졌다.
기습당한 푸른등대는 어이없게 제압되고 가이아-불칸 연합은 수송기를 탈환할 수 있었다. 닐슨은 훌리건으로 달려가 재빠르게 중화기를 던져 넣었다. 아픈 팔을 문지르고 숨을 고르며, 닐슨은 이미 사망한 조종사가 내려지는 것을 지켜보았다. 다른 동료가 대신 조종석에 앉는 것을 보며 안심한 그는 보호대상을 찾기 시작했다.
그녀는 수송기 근처에 있었다. 보호대상은 함께 있던 요란한 남자와 같이 심각하게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닐슨은 시간이 급하니 일단 태워야겠다싶어 그들에게 다가갔다. 그러다 의도치 않게 이야기를 엿듣게 되었다. 덕분에 요란한 옷차림의 사내는 가이우스인인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러고 보니 구조작전의 대상 중에는 가이우스 외교관이 한 명 있었다. 아무래도 이 사람이 그 사람인 모양이었다.
닐슨은 심각하게 얘기하는 두 사람을 향해 좀 더 가까이 다가갔다. 그 순간 가이우스인이 묘한 미소를 지으며 닐슨을 돌아보았다. 갑자기 눈이 마주쳐 놀란 닐슨에게 그가 말했다.
“엿듣고 있던 자네, 미안하네만 「이 아이를 수송기로 데려가주시게」.”
5-24.
“……그런 과정을 통해서 너희는 그놈들과 거래를 했을 거야. 우리가 성적 놈들을 심문해 얻어낸 정보와도 일치하지. 누군가가 가이아 침공을 사주했고, 얼마 후엔 누군가가 다시 불칸을 지원해 주겠다고 했다 하더군. 그 누군가가 아마 네놈들이겠지. 그리고 실제로 성적과 불칸은 가이아를 침공했어! 이상하긴 했지. 분명 우주전에 쓰일 전함인데 정작 추락하고 보니 대인병기들이 쏟아져 나왔으니까. 애당초 사고를 일으킬 목적으로 준비한 전함이었던 거야. 너희의 사주로 가이아에 들어올 틈새를 만들기 위해서!
그렇게 들어온 성적들이 날뛰는 걸 도와주기위해 너희는 철저히 준비했어. 그 전술 매뉴얼! 만들게 된 계기부터 사용하는 과정까지 프로스 퀑, 네가 빠지지 않은 곳이 없었어! 처음 짤 때부터 미리 구멍을 뚫어놓기로 작정했겠지. 그리고 너는 그 구멍을 이용해 성적들을 이 행성에 잔류시켰어. 솔직히 성적이 살았다기보다는 불칸이 살아났지. 둘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결론적으로 너희가 원하는 그림은 나왔잖아? 가이아의 혼란! 성적이든 불칸이든 뭐든 간에 그것들이 난리를 쳤지. 그 과정에서 마르트도 따라 들어왔고. 덕분에 가이아는 말도 안 되는 혼란을 겪고 있어! 그것이 너희가 바라는 것이잖아!”
“우리가 가이아에 혼란을 가져와서 얻는 이득이 뭐란 말이지?”
퀑이 물었다. 이에 승태가 간결하게 대답했다.
“점령의 당위성!”
“……훌륭하군, 가이아인. 그 정도까지 생각 해내다니. 정보원이 있는 것만은 확실하군. 혼자서 알아내기 힘들 정보까지 사용한 모양이야. 하지만 그것만으론 부족하지. 이렇게까지 진행을 시키는 데에는 확고한 동기가 있었겠군?”
“그것들이 일으킨 난리에 내 동료가 죽었다.”
“그래서 조사를 시작한 건가?”
“처음에는 그저 납득이 가지 않는 것만 알아볼 생각이었는데, 파고들어가다 보니 납득가지 않는 게 한두 개가 아니더라고. 그러다보니까 여기까지 오게 된 거지.”
“어디까지 알아낸 건가?”
“너희가 우리 지부에다가 뭔가를 만든다는 사실. 그 물건이 뭐든 간에 지금 우리가 얻은 혼란을 일시에 사라지게 할 만큼 강력하다는 사실.”
“혼란이 사라진다면 가이아야말로 최대 수혜자가 아닌가?”
“그래, 그것이 바로 ‘당위성’이란 거지. 문제는 너희가 우리도 ‘혼란’으로 보지 않으리란 보장이 없잖아?”
“나쁘지 않은 통찰이군. 하지만 동료가 죽은 것과 우리의 일을 방해하는 것 자체는 연관이 적지 않는가? 겨우 그 정도 동기로 이 정도까지 왔다 이 말인가?”
“조사를 하다 보니 내가 좀 감정적이 돼버렸어. 그러다보니 원래 목적도 잊고 너희 일을 방해하는 쪽으로 방향이 바뀌어 버렸지. 정말로 내가 제정신을 잡질 못 했거든. 그걸 위해 이런 일 저런 일을 준비했어.”
“그런가? 그렇다면 지금 이 상황도 타개할 자신이 있는 건가?”
퀑이 손짓하자 주변의 푸른등대 병사들이 다시 승태에게 무기를 겨누었다.
“말했잖아. 내가 감정적으로 일을 했다고. 작전도 몇 시간 만에 대충 짜낸 거라, 허점이 많았지. 그래서 결국 이 모양이 된 거야.”
“그렇다면 이미 이 행동은 의미가 없어진 것이군. 여기서 그만두길 권장하지.”
“그래, 실패한 거지. 여길 도망쳐 오면서 깨달았어. 이 짓은 더 해봤자 이득이 없다고. 그래서 바꾸기로 했지.”
승태는 인질에게 더욱 바짝 붙으며 권총을 앞으로 겨누었다.
“본래 목적에 충실하기로.”
“본래 목적이라면……복수겠군.”
“역시 머리 좋아.”
승태는 퀑을 향해 권총을 조준 했다. 그러자 한 병사가 앞으로 나서며 한 손을 펼쳐보였다. 그리고 그 손을 중심으로 둥글고 푸른 아지랑이가 퍼지기 시작했다. 얇지만 분명한 역장이었다. 둥글고 커다란 방패를 만들어 낸 것이었다.
“자네가 들고 있는 것만으론 나에게 위해를 가할 순 없겠군. 포기하게.”
승태는 말없이 권총을 내렸다. 그리고 조용히 옆의 중년 남성에게 말을 건넸다.
“목사님, 죄송했습니다. 제 장단에 어울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제 무작정 튀십시오.”
그 말과 함께 승태는 한 발로 목사를 떠밀었다. 그는 미친 듯이 밖으로 달려 나가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보며 퀑이 말했다.
“그래, 포기한 건가? 잘 생각했네.”
“내가 말했지? 도망치면서 계획을 바꿨다고. 원래 다른 데에 쓰려고 미리 준비해두긴 한 건데, 이렇게 쓸 수 있단 걸 아까 깨달았어.”
“무슨 말이지?”
“잊었냐? 우리 2번 게이트 폭파시킨 게 나야.”
승태는 품속에서 작은 기계장치를 꺼냈다. 조잡하게 생겼지만, 그곳에 작은 버튼만큼은 눈에 띄었다. 퀑이 그의 말뜻과 행동의 의미를 눈치 채려 하던 때였다. 승태가 갑자기 인질의 머리를 쏘아버렸다.
“뭐 하는 짓이냐!”
“다 같이 묻어주마 이 개자식들아.”
승태가 버튼을 눌렀다. 푸른등대 병사들이 채 번개로 제재하지도 못할 만큼 빠르고 망설임 없는 결단이었다. 이어서 건물의 천장에서 거대한 압력이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불꽃과 열이 뒤섞인 기압은 산을 뒤흔들었다. 폭발로 인해 교회가 제 모습을 잃어버린 건 더 말할 것도 없었다.
5-25.
“또 폭발이 일어났다고?”
“네, 그렇습니다! 도보 통로로 이용되는 교회가 폭파되었습니다!”
검은요원이 우렁차게 보고했다. 그와 같이 들어온 푸른등대 병사는 헤서만에게 따로 조용히 말하고 있었다.
“프로스 퀑 대리대사님께서 휘말리셨습니다. 지금 건물 잔해 밑에 생존해계신 것은 확인했습니다.”
“연락은 되나?”
“네, 병사의 헬멧을 이용하신 것 같습니다.”
“……나가자. 연결해 둬.”
“네.”
헤서만은 제정신을 잃어가는 지휘부에서 빠져나왔다. 지부 건물 자체에 2회에 걸친 폭파가 발생했다. 피해도 적지 않았다. 지금 이곳의 검은요원들이 제정신을 챙길 수 있을 리가 없었다. 하지만 푸른등대도 나름의 걱정거리가 생겨 그들을 도울 수만은 없었다.
“전대장님! 연결됐습니다!”
헤서만은 병사가 건네주는 헬멧을 잡아챘다. 그리고 무전기만 떼어낼 생각은 않고 그대로 뒤집어썼다.
“프로스 퀑!”
「콜록! ……아, 탕피 헤서만. 내가 어디 있는지는 들었지?」
“어떻게 된 거야!”
「어떤 가이아인이 폭발을 일으켰어. 검은요원 같던데, 그 자가 병사를 납치했지. 우리 계획을 방해하려 했다는 군. 결국엔 자폭하고 이 상황이지. ……켁! 켁!」
“괜찮아? 어떻게 살아난 거야?”
「병사들이……저들 대신 내 주변으로 역장을 집중해줬어. 꽤나 두꺼워. 오래 지속될 것 같아.」
“알았어. 즉시 구조병력을 보내줄게.”
「그것보단, 내부자를 먼저 확인해야 돼!」
“내부자?”
「그 요원은 상세히 알고 있었어! 우리가 성적을 끌어들인 것부터, 계획의 개략적인 전개까지!」
“그래서 내부자가 있을 거란거군?”
「아마 그 내부자가 다른 무언가를 준비했을 가능성이 높아. 그 요원의 정보량은 넓지만 깊지 않았어. 잘 알지 못하는 것들도 있더군.」
“그렇다면, 버리는 말이었을 가능성이 높겠군.”
「눈을 돌리기 위해 이용된 것일 수 있어. 콜록! 콜록! 으흠, 내 구조는 조금 늦어도 돼! 우선 계획에 흠집이 나지 않는 게 중요해!」
“시작은 전함 도착 직후야. 우선 그때까진 기다려야해. 구조 인원은 즉시 파견할게.”
「그럼 최대한 빠르게 꺼내줘. 불안해서 가만히 있을 수가…….」
“아, 누가 찾는다. 알았어. 빠르게 도와줄게.”
한 검은요원이 자신을 부르기에, 헤서만은 빠르게 무전을 마쳤다. 그는 헬멧을 돌려주며 병사에게 구조지시를 전달했다. 병사는 자신의 상관에게 지시를 전달하러 달려갔다. 그 모습을 보며 헤서만은 곧바로 요원에게 다가갔다.
“무슨 일인가?”
“지금 지휘관들이 찾고 있습니다! 여쭤볼 게 있답니다! 죄송스럽지만 전 상세한 내용은 알지 못합니다!”
“알았다.”
헤서만은 다시 정신없는 공간 속에 몸을 집어넣었다. 다시 어두컴컴한 지휘부에 들어서자 질문이 쏟아졌다.
“저희 측 요원이 일으킨 폭발이란 정보가 있었습니다! 무슨 일인지 아십니까?”
“푸른등대 병사가 납치되고 대리대사님이 폭발에 휩쓸렸단 첩보도 있습니다!”
“탈출한 저희 측 인질의 증언이…….”
“폭파 원인이 가이우스란 말이 있습…….”
“지금 상공에 푸른등대 전함이…….”
“대리대사는 생존해 있습니까? 어떻게…….”
“잠시만 기다리십시오! 무슨 상황인지는 저도 들었습니……. 잠시만, 죄송합니다만 방금 뭐라고 하셨습니까?”
헤서만이 한 사람을 지목하며 말했다.
“저 말입니까? 우주 상공에 지금 푸른등대 전함이 한 대 더 출현했다는 첩보가 들어왔습니다만. 그런데 그게…….”
헤서만은 가벼운 미소를 띠웠다. 그는 자신을 끌고 온 검은요원을 불러다, 밖에 있는 푸른등대 인원을 최대한 불러줄 것을 지시했다. 요원이 나가는 것을 보며 헤서만이 말을 시작했다. 이제 이 성가신 일을 한 번에 해소할 수 있다. 어쩐지 즐거운 기분이 생겨났다.
“네, 가이아의 요원 분들. 지금 정신이 없으신 것 모두 이해합니다. 현재 전황은 어지럽게 돌아가고 있습니다. 그 와중에 이 건물은 두 차례의 폭파공작을 당했습니다. 범인이 이곳 요원이라는 것도 사실입니다. 여러분이 들으신 정보도 다수가 사실일 겁니다. 이런 상황에서 여러분께서는 정신적으로 힘겨우실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걱정 마십시오. 저희가 여러분을 구원해드릴 수 있습니다.”
그 말과 함께 갑자기 헤서만이 지휘부의 문을 열었다. 문 밖에는 푸른등대 병사들이 여럿 서 있었다. 상황을 파악 중인 요원들을 두고, 헤서만은 방을 나서며 병사들에게 말했다.
“제군들. 과거의 영광을 만들어낼 시간이다!”
잠시 후, 작전통제실 안에서 번개가 튀었다.
----------------------------------------
5장은 끝났고, 다음 6장이 마지막이 될 것 같네요.
그건 그렇고 한글판 와치독이 오늘 왔습니다.
얼른 플레이하고 욕해야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