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게 다야? 콜록"
문이 따로 없이 그저 사람 한명 설만한 원형 철판 뚜껑에 대피소라고 새겨져 있었다. 로아의 망막에는 "입구를 활성화 시키십시오."라는 메시지만 떠올라 깜빡인다. 발판? 말이 좋아 발판이지 누가봐도 하수도 맨홀 뚜껑 같아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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뚜껑을 보며 망설이는 사이, 날카로운 굉음이 대지를 갈랐다. 이제까지와 비교도 되지 않는다. 유리를 긁어대는 듯한 고주파음이 귓속을 파헤치자 남매는 무의식 중에 맞잡았던 손을 놓고 양손으로 귀를 막았다. 그러나 소용 없는 짓이었다.
소리는 손가락 사이를 악착같이 파고들어 귓속을 헤집어놓는다. 굉음은 짧게 끝나고 금새 거짓말 같이 정적이 찾아왔지만 그것을 느낄만큼 남매의 귀가 멀쩡하진 못했다. 먹먹한 이명만이 남아 고막을 후벼 판다. 귀에 이어 머릿속까지 지끈거리기 시작한다. 그 때문인지 미아는 갑작스럽게 멀미나 나는 것 같았다.
어지러웠다.
고음이 귀를 망가트린 것일까? 미아는 헛구역질을 하며 억지로 구토감을 진정시키려 애썼다. 자신만 그런 건가 싶어 로아를 돌아본다.
그녀의 시선에 예상치 못한 모습이 들어왔다. 로아의 몸이 천천히 떠오르는 것이었다. 그가 당황한 표정으로 무언가 외치지만 그녀의 귀로는 여전히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귀에 문제가 생기면 균형감각에 문제가 생기는 줄 알았는데, 시신경에도 문제가 생기는 모양이구나'
멍청한 생각이 무심히 떠오른다. 생각 없는 공허한 눈으로 로아를 바라보던 그녀는 무중력이라도 된 걸까?라고 중얼거렸다. 그러다 문득 눈 앞에서 하늘거리는 자신의 머리카락을 보았다. 한 순간에 정신이 번쩍난다.
우주선의 회전이 멈춰 중력 역할을 하던 원심력이 사라지면 어떻게 될까? 몸은 갑작스런 관성의 변화를 견디지 못하고 균형 감각을 잃게 될 것이다. 균형감각의 상실은 멀미로 이어진다.
이주선은 보편적으로 1천명 이상의 사람을 실어나른다. 사소한 문제로 배가 회전을 멈추는 경우, 이주민 몇 천명의 생명이 걸린 사고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에 갖가지 최신 기술을 이용해 제작된다. 어떤 종류의 사고에도 중력만큼은 절대 잃지 않도록 말이다. 중력을 잃는 경우는 다른 종류의 사고에 비해 사상자의 수가 어마어마하다. 그런데 대한민국의 상징과 같은 초 거대 이주선 포도선이 중력을 잃다니. 사실이라면 누구도 감히 상상도 못할 일이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셈이었다. 미아는 언젠가 봤던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의 멘트가 떠올랐다.
'사고로 인해 고장난 우주선은 그저 망망한 어둠 속에 던져진 거대한 관이다. 살아남기 위해서는 최대한 빨리 대피소로 피해야 한다.'
미아는 사태의 심각성을 깨닫는다. 다급하게 허리를 숙여 손으로 대피소 입구를 건드렸다. 그녀의 손에 닿은 대피소의 원형 문이 살짝 빛나더니 하늘을 향해 양팔 벌리듯이 벌컥 열린다.
곧장 열린 문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면 좋았을 텐데 현실은 그렇지 못했다. 갑작스럽게 열린 문에 미아는 아무 저항도 하지 못한 채 그대로 뚜껑에 밀려나 버린 것이다. 으레 문이 옆으로 미닫이같이 열리거나 땅 아래로 열릴 거라 생각했던 것이 화근이었다.
대피소의 문이 그녀를 공중으로 내던진 꼴이 되어 손쓸 틈도 없이 그녀의 몸이 땅에서 떨어져 공중으로 날아올랐다. 대피소에서 몸이 멀어져가는데 그녀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평상시 경험할 수 없는 하늘을 나는 기분이었지만 결코 즐겁지 않았다.
"로아!"
목청껏 사촌동생의 이름을 불렀다. 좀 전의 굉음 때문에 먹먹해진 귀로는 본인의 목소리조차 들리지 않는다. 귓속은 여전히 파도소리 같은 울림만 가득하다. 이대로 로아를 부르는 것은 소득없는 행동이다.
그녀는 동생을 부르는 대신, 잠시 동안 땅에서 멀어지지 않기 위해 필사적으로 버둥거거려보았다. 당연하게도 허공에서 팔짓발짓은 무의미했다. 남은 방법은 로아가 그녀를 향해 무엇이든 잡을 만한 것을 던져주는 것말고는 없었다.
"로아! 로아!"
흙먼지 속으로 흐릿하게 사라져가는 사촌동생을 향해 그의 이름을 목이 터져라 외쳐본다. 로아도 그녀를 마주보고 있지만 별다른 행동을 취하지 않는다. 표정을 보니 이 상황을 그렇게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지 않은 모양이다. 미아는 그가 차분하게 대피소에서 뭔가 꺼내오길 바랬지만 철없는 사촌동생에게 할만한 기대는 아니었다. 그녀는 로아 말고 주변에 도움이 될만한 것이 있는지 돌아보았지만 눈에 띄는 것은 없었다.
그 사이에도 조금씩 더 거리가 멀어져간다. 멀어지는 거리만큼 미아는 마음이 조급해진다. 서둘러 방법을 찾아야했다. 더 멀어져서 방향감각까지 상실하기 전에 스스로의 힘으로 돌아가야한다.
'생각. 생각하자. 혼자 돌아갈 수 있을만한 방법.'
그녀는 다른 방법을 찾기 위해 바로 어제 방문했던 견학실을 떠올려보았다. 건성으로 돌아보았기 때문에 또렷이 떠오르는 것은 없었지만, 분명 긴급상황에 대처하는 방법을 배웠던 것 같다.
'당황해서 떠오르지 않을 뿐이야. 차분하게, 차분하게.'
그녀는 스스로를 진정시키기 위해서 안간힘을 썼다. 무중력에서 움직이기 위해서 필요한 것이 뭐였는지 기억을 더듬는다.
순간, 미아의 머릿속을 스쳐지나가는 것이 있었다. 추진제! 모든 우주선이 그러하듯 무중력에서 전진하기 위해서는 추진제가 필요했다. 다급하게 잡아 던질만한 것이 있는지 찾아보지만 그녀의 손이 닿는 거리에는 흙먼지만이 가득할 뿐이다. 무중력이니 돌덩이 한 두개 정도 떠다닐 법도 할텐데 그녀의 근처에는 거짓말처럼 아무것도 없었다. 잠시 동안이었지만 냉정을 잃지 않으려 노력했던 마음이 무너져 내린다. 위험이 현실적으로 그녀에게 한발자국 더 다가서는 것이 느껴지자 참아왔던 공포가 밀려든다.
"안돼! 안돼! 로아! 로아!"
미아는 자신도 모르게 비명을 토해냈다. 이대로 죽는 걸까. 절망감에 몸부림치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자신이 너무나도 미웠다.
"안돼!"
다시한번 비명을 내지른다. 만질 수도 없고, 들을 수도 없다. 공포와 불안감에 눈물이 쏟아진다. 눈물은 그녀의 눈 주위에 둥둥 떠오르더니 그녀의 시야를 가려 버렸다. 이대로 보는 것조차 할 수 없게 된다면 미쳐버릴 것 같았다. 손을 뻗어 눈가를 슥슥 닦아낸다.
그 과정에서 그녀는 자신이 오른손에 무엇인가 쥐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불안감에 자신도 모르게 꼭 쥐고 있던 손을 펴자 사촌동생이 놀리던 바로 그 구닥다리 단말기가 눈에 들어온다. 순간 그녀는 자신이 잠시동안 얼마나 멍청이 같았는지 깨달았다. 손에 쥐고서 발견하지 못하다니. 자책과 함께 실낱같은 희망이 솟아올랐다.
'단말기를 던져야 해.'
단말기가 그녀의 몸을 밀어내는 추진제 역할을 할 것이다. 미아는 울음으로 거칠어진 호흠을 가다듬었다. 잘 던져야한다. 단말기는 그녀보다 훨씬 가볍다. 살살 던져서는 전혀 효과가 없을 것이다. 빠르고 강하고 정확하게 던져 운동량을 최대한 부풀려야 그나마 가능성이 있다. 미아는 재차 심호흡을 하고 그녀가 밀려나온 방향을 주시한다.
"할 수 있어."
미아는 이를 악물고 그녀가 할 수 있는 가장 유연한 동작으로 단말기를 내던졌다. 단말기가 순식간에 시야에서 사라졌다. 효과를 확인하기 위해 그녀는 로아가 있었던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이미 로아와 대피소는 흙먼지 속으로 사라져 보이지 않는다. 효과가 있었는지 확인할 길이 없었다. 그녀는 조급해하지 않기로 다짐한다. 가까워지고 있는 중이라면 조만간 로아를 다시 볼 수 있으리라.
몇십초가 무심하게 흘러간다. 미아에게는 영원 같이 기나긴 시간동안 마른 침을 삼키며 로아의 모습이 나타나길 기다린다. 그러나 나타나지 않는다. 애타는 속마음 때문인지 그녀의 입술 사이로 신음소리가 새어나왔다.
"아니야. 아니야. 아니야...... 아니야......"
실패한 것이 분명하다. 단말기는 그녀를 밀어내기에는 너무 가벼웠던 것이다. 그녀도 머릿속으로는 알고 있었다. 허나 인정할 수 없었다. 여기서 포기하면 그녀를 죽음으로 밀고갈 절망만이 남는다. 그녀는 포기하는 대신, 속으로 '보이지 않아도 분명 자신은 로아를 향해 다가가고 있다'라고 마음을 다잡았다.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금방이라도 정신줄을 놓칠 것만 같았다.
그때였다. 그녀의 귓속을 채우고 있던 파도소리들 사이로 이질적인 것이 끼어든다. 낯익지만 작고 불분명했다. 그러나 희망을 찾던 그녀에게는 천둥보다 큰 소리였다.
"누나!"
로아였다. 이제서야 조금씩 귀가 들리기 시작한 것이다.
지금 네이버에서 님작품보고 제것을 한 번 봤는데, 갑자기 한강물에 빠지고 싶네요.
이 정도 극찬은 들어본 적이 없어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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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말기는 눈부신 빛을 내며 사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