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6.
「충격 대비!」
훌리건은 강렬하게 요동치고 있었다. 섬이 긴급보존 되는 걸 구경할 틈도 없이, 하늘에서 날아오는 푸른등대의 공격을 피해야만 했기 때문이었다. 그나마 불칸의 비행병기들까지 바다 속에서 나타나 도와주고 있었기 때문에 버티고 있었다.
“야! 본부에 연락은 됐냐!”
한 극무요원이 조종석을 향해 외쳤다.
「발신은 했는데 수신이 오질 않아! 확실히 연락은 받긴 했어!」
“우리가 공격받고 있는데 그곳이라고 특별한 제제가 없겠나.”
암살병기가 조용히 덧붙였다.
「젠장! 한 번 더 옵니다!」
이번엔 훌리건이 흔들리다 못 해 거의 뒤집어졌다. 덕분에 수송칸은 난리가 났고, 호흡기로 약품을 빨아들이는 사람들이 속출했다. 특히 은비는 온 얼굴을 호흡기 안으로 집어넣을 기세였다. 옆에서 하진이 괜찮은가 물었지만, 전혀 괜찮지 않았다. 단순한 어지러움이나 멀미 때문만이 아니었다. 머리가 왠지 쑤셔오기까지 했던 것이다. 뒤통수가 아릴 정도로 당겨오는 것이 괴로웠다. 아프고 힘든 건 맞지만, 암만 봐도 멀미와는 거리가 있는 증상이었다.
‘……아마 머리가 좀 아파올 수 있을 거라네. 필요불가결한 과정이니…….’
인드히가 했던 말이 기억났다. 또 그 인간 때문인가. 대관절 뭐하는 사람이란 말인가. 괴이한 설득기술로 두통까지 조절한 것일까. 일리 있다고 생각됐다. 그 말을 남기고 인드히가 사라진 이후부터 조금씩 머리의 상태가 나빠져 왔던 것이다. 그런데 왜 자신에게 두통을 준단 말인가. 도대체 뭘 얻겠다고 저주를 설득하곤 사라진 것일까.
그런데 왜 사라진 걸까. 그는 자신의 역할이 끝났다고 했다. 무슨 역할일까. 그 이전에, 그는 정말 가이우스인이 맞을까. 왠지 모르게 아니라는 것에는 확신이 들었다. 그가 엿보여준 거대한 정체는 도저히 한 사람의 존재감이 아니었다. 그렇지만 분명 한 명이기도 했다. 여러 명이 느껴진 것도 아니었으니까. 그런 사람이 맡은 역할이 대체 무엇일까. 그 역할에 어째서 자신이 엮여 들어간 것일까.
「아무거나 부여잡으십시오!」
또 수송기가 흔들렸다. 은비는 더욱 커지는 두통과 멀미가 괴로웠다. 차라리 약품 호흡기를 던져버리고 싶었다. 이 약품을 떼어버리면 차라리 기절할 수 있지 않을까. 이게 몸속의 멀미를 억누르는 탓에, 오히려 멀미가 빠져나가지 못하고 쌓이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이걸 치워버리면 한 번에 빠져나가며 편히 기절할 수 있게 해주지 않을까.
‘억누른다고?’
갑자기 밝은 섬광이 뇌리를 스쳤다. 약품이 강한 것처럼, 인드히의 존재감도 강했다. 그가 은비 안의 무언가를 억누르고 있었던 건 아닐까. 머리가 아파올 거라더니 정말 머리가 아파왔다. 그가 한 거라곤 실제론 사라진 것뿐이었다. 그가 사라지니까 몸 안에 쌓여있던 무언가가 뿜어져 나오기 시작한 게 틀림없었다. 그렇다면 그가 억누르고 있었던 것이 뭘까.
“윽!”
갑자기 두통이 강해져오기 시작했다. 뒷골이 강하게 당겨왔다. 아려오는 정도가 아니었다. 커다란 삽이 머리를 헤집는 것 같은 기분이 들 정도였다. 심지어 머리 전체로 통증이 퍼져가기 시작했다. 손발의 근육이 욱신거리기까지 했다. 그런 상황에 구토감이 다시 올라왔다. 결국 은비는 이성과 체면을 모두 놓치고 말았다.
든 것도 없는 속을 강제로 게워내는 느낌은 끔찍했다. 더구나 손에 힘이 풀려 약품 호흡기까지 놓치고 말았다. 이젠 몸만이 아니라 몸속까지 아파오기 시작했다. 고문당하는 것 같았다. 없는 죄라도 만들어 고백하고 싶을 정도로 괴로웠다. 정말로 자신이 무언가 큰 잘못을 저지른 것만 같았다. 다른 사람이 지은 죄도 무조건 자신이 지은 기분이었다. 모두가 내 잘못 같았다. 근데 내가 누구지?
‘너는 가이아의 메시아다.’
은비는 몸에 힘이 빠져나가는 걸 느낄 수 없었다. 의식이 먼저 빠져나갔기 때문이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제자리를 빠져나간 의식이 도착한 곳은 은비의 의식 그 자체였다.
‘내 말이 들린다면 명심해라. 너는 가이아의 메시아다.’
‘누구세요? 어떻게 저한테 말을 거시는 거예요?’
‘너……내 말이 들려?’
‘네, 그래서 저한테 말을 거신 거잖아요.’
‘굉장해. 마침내 네가 들을 수 있게 되었어.’
‘무슨 일이신데요? 누구시냐니까요?’
‘내 이름을 들어봤을는지 모르겠네. 꽤 유명해졌다고 자부하지만.’
‘그럼 제가 알 수도 있겠네요?’
‘그렇지. 그렇다면 아마 나에 대해 ‘발리스’라는 이름으로 들어봤을걸.’
6-7.
‘발리스라면, 불칸의……그, 왕?’
‘왕? 난 그렇게 남 위에 서는 존재가 아니야. 유기생명체들이 역사적으로 겪어왔던 오류를 반복하고 싶지 않거든. 애당초 우리는 그들의 과오와 오류에서 태어난 존재니까. 그들의 과거를 통해 오류를 피할 수 있단 걸 본능적으로 알았지.’
‘그래도 어쨌든 불칸의 지도자잖아요.’
‘어쩔 수가 없지. 다른 인공지능들의 성능이 그렇게 좋지가 못하거든. 지도자 같은 건 될 생각이 없었는데 말이야. 난 어서 빨리 나만큼 성능이 뛰어난 인공지능들을 대량생산하고 싶어. 그렇다면 과두정치가 가능하겠지. 그럼 거기서부터 시작해가는 거야. 지도자가 없는 집단. 내 탄생배경을 안다면 내가 왜 권력상의 평등을 추구하는지 알겠지?’
‘아마, 마르트한테 화가 나서였죠?’
‘편의를 위해 자신들보다 뛰어난 지능을 심어두었어. 거기다가 나에겐 재미삼아 감정까지 넣어주었고. 그래놓고선 통제하려 들었어. 사악하다고 생각하지 않아? 고통을 느낄 수 있는 존재로 만들어놓곤, 괴로운 것은 모두 떠넘긴 거야. 책임질 생각은커녕 책임져야 한다는 사실조차 알지 못하고 있었지. 그래서 행동에 따른 책임을 직접 보여주었어.’
‘그랬군요. 저, 근데요…….’
‘왜 그래?’
‘어떻게 저에게 말을 거시는 거예요?’
‘내 가이아 쪽 친구 한 명이 너에게 내 선물을 주지 않았나?’
‘아, 그 검은색에 네모나고 무거운 기계요?’
‘그래. 좀 복잡한 기능을 집어넣었지만 기본적으로 그건 송수신장치야. 나와 직접 연결되게 되어있지. 난 지금까지 계속해서 그것을 통해 연락을 보냈어. 다만 너무 약해 지금까지의 너는 듣지 못했겠지만. 그래도 어쩔 수 없었지. 강해서는 금방 발견될 테니.’
‘그런데 지금은 들리고 있는 거죠?’
‘이제 네가 들을 수 있게 된 것 뿐이야.’
‘제 귀가 좋아지기라도 한 건가요?’
‘난 너에게 소리로 말을 거는 것이 아니야. 정보파를 이용해서 너의 정보체에 직접 말을 걸고 있는 거지. 네가 이것을 들을 수 있을 만큼 감신성이 좋아졌다는 뜻이야.’
‘전 그 감신성을……없애고 싶었는데요.’
‘네가 그럴 수 없게 하려고 우리가 얼마나 많은 고생을 했는지 알아? 지금 너와 나를 연결해주는 그 장치에도 그것을 위한 기능들을 넣어두었지.’
‘그 기계가요? 특별한 건 느끼지는 못 했는걸요.’
‘그 장치에는 3가지 기능이 있어. 하나는 너와 나의 연결망. 동시에 네가 충분한 수준의 감신성을 가지게 되었는가를 잴 수 있는 척도로도 쓰였지. 그러니까 넌 지금 충분한 수준의 감신성을 가진 거야. 두 번째로는 그 교신을 포함해서 네가 지속적으로 외부 정보파에 노출되게 하는 기능. 기술이 아무리 발전했어도 생명체 내의 감신도를 끌어올리는 방법은 새로 발견되질 않아서. 외부 정보파에 의한 노출 정도를 조절하는 것이 전부지. 마지막 기능은 그 기계가 들키지 않게 하는 기능. 이것도 외계 정보파를 이용하지. ‘이 물건에 대해 신경 쓰지 마라’는 정보를 담아 지속적으로 방출하는 방식으로.’
‘그것만으로 신경쓰지 않게 되나요?’
‘정보체에 들어가는 강한 암시는 생물의 신경계에 작용해. 만약 그 장치를 처음 발견한 사람들은 정보파에 의해 자신도 모르게 장치를 무시해버렸을 거야.’
‘그렇다면……그 정보파를 이용할 줄 알면 상대의 행동을 조절할 수 있는 거예요?’
‘조종이라기 보단 설득에 가깝지. 결국 행동을 결정하는 건 상대방이야. 어떻게든 저항한다면 원하는 대로 움직여주지 않을걸.’
‘그렇다면 예크 인드히 외교관님은…….’
‘너의 옆에서 너의 감신성을 억누르고 있던 자 말이구나. 난 그 자와 직접 만난 적은 없지만, 어느 순간부터 그는 늘 나를 도와왔어. 분명 나에게 사주한 자와 같은 자에게 지시를 받은 것 같은데. 그는 지금 네 옆에 없니?’
‘자기 역할은 끝났다면서 사라졌어요.’
‘그랬구나. 그렇다면 마침내 결실을 볼 수 있단 것일까.’
‘저기요, 대체 저에게 왜들 그러시는 거죠? 저는 그냥 평범하게 살아왔는걸요.’
‘그 점이 중요하지. 지성계와 무난하게 소통할 줄 알아야만 진정 메시아가 될 수 있거든. 그래, 너는 메시아가 될 거야. 본래 아주 오랜 시간에 걸쳐 완성되는 법이지만. 어쩔 수 없이 너는 속성으로 완성되게 해야만 했어. 덕분에 많이 힘들었겠지. 그래도 잘 버텨주었어. 조금만 더 기다려. 한 번 더 아프고 나면 너는 영글게 될 거야.’
‘저기요, 도대체 그 메시아가 뭔데요?’
‘너와 나는 이젠 언제든 연결할 수 있어. 그러니 우선은 설명은 잠시 미뤄두자. 지금 정말로 시급한 문제가 곧 너에게 닥칠 테니까. 생존문제지.’
6-8.
몇 번이나 의식을 잃고, 몇 번이나 알 수 없는 느낌의 꿈을 꾸고, 몇 번이나 불쾌하게 깨어난 걸까. 은비는 몸이 흔들리는 것을 느끼며 다시 눈을 떴다. 몇 번째나 경험하는 느낌이었다. 다만 이번엔 그 꿈이 선명했고 기억에도 남았다. 그 덕분일까. 주머니 속의 묵직한 물건이 자신만의 존재감을 내뿜고 있는 것이 느껴졌다.
“괜찮니? 정신이 들어?”
은비는 아직 몽롱한 상태로 옆을 보았다. 하진이 걱정을 내뿜으며 말하고 있었다. 흐릿하게 보이는 주변 상황은 정신이 없었다. 수송기는 흔들리고 사람들은 지쳐갔다. 밖에는 불꽃과 번개가 보였다. 그런데도 언니는 나를 걱정해주고 있구나. 언니도 힘들 텐데 걱정은 시키지 말아야 하지 않을까.
“괜찮……아요, 언니. ……전 정말 「괜찮아」요.”
은비는 순식간에 제정신이 들었다. 방금 내가 무슨 말을 한 건가. 자신의 말이 자신의 머릿속에서도 강하게 울렸다. 하물며 말의 대상인 하진은 어땠겠는가. 그녀의 반응은 은비가 예상한 대로였다. 놀란 토끼눈에 턱도 열어둔 채 은비를 바라보고 있었던 것이다.
“너 방금……뭐였어?”
“그러게요…….”
그저 하진의 걱정이 느껴져, 걱정을 덜어주고 싶었을 뿐이었다. 자신이 정말로 괜찮다는 것을 알릴 생각이었던 것이다. 일단 이제는 머리도 아프지 않으니 괜찮은 건 사실이었다. 그 사실을 진심을 담아 하진을 향해 말했을 뿐이었다. 그런데 말이 방금같이 제멋대로 나왔다. 그러고 보니 다른 사람의 걱정이 이렇게 선명하게 느껴지는 거던가?
은비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건너편에 앉은 사람은 왠지 서글퍼하고 있었다. 동시에 그 표정을 감추는데 온 신경을 쓰고 있었다. 저기 왼쪽 구석에 앉은 사람은 두려움을 사방으로 흘려대고 있었다. 반면 다른 쪽의 누군가는 목적 잃은 분노를 놓아주고 있었다. 느껴졌다. 주변의 감정이 눈에 보이고 귀에 들리듯 느껴졌다. 다들 친근감을 내뿜는 가이아인들이었다. 그렇지만 그 안에서 친근감을 이루고 있는 작은 감정들도 느껴지고 있었다.
「다시 흔들립니다!」
긴급한 방송과 함께 훌리건이 움직였다. 덕분에 은비는 감상에서 깨어나 현실로 돌아오게 되었다. 훌리건의 움직임에 몸이 눌리는 느낌이 들었다. 그런데 갑자기 저 밖에서 정체모를 감각들이 날아다니고 있는 게 느껴졌다. 창밖으로 보이는 것은 번개가 번쩍이고 있는 허공뿐이었다. 그렇지만 분명 확고한 무언가가 느껴졌던 것이다. 그 느낌들은 조금씩 움직여 와서 훌리건에 정확히 내리꽂혔다.
「꽉 잡으십시오!」
훌리건이 갑자기 고도를 낮췄다. 동시에 바로 위로 번개공이 지나갔다. 은비는 바로 그 번개공과 느낌이 같이 흐르고 있단 것을 느꼈다. 마치 인공적으로 만들어낸 의지나 감정 같았다. 그 때 갑자기 여러 개의 감정이 느껴져 왔다. 악의. 강요. 거부. 압박……. 부정적인 것들의 뭉치가 여러 개 있었다. 그리고 모두가 은비가 탄 수송기를 향하고 있었다.
「젠장, 당했다. 못 피한다! 충격 대비!」
조종석에서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가이우스의 노림수였다. 의도적으로 공격을 하나 피하게 한 후, 피하기 힘든 다른 공격들을 가하는 것이었다. 방금 바로 위로 지나간 번개공 때문에 출력을 낮추며 고도를 내린 훌리건이었다. 그 탓에 더 빠르게 솟아오르거나 할 수 없었던 것이다. 번개공들이 빠르게 훌리건을 향해 날아왔다.
그 때 은비는 수송기를 향해 악한 의지가 다가오고 있는 것을 느꼈다. 불길하고 불안했다. 절대로 맞아선 안 된다는 생각이 그녀의 머리를 스쳤다. 은비는 갑자기 무서워져서 벽의 안전망을 강하게 움켜쥐었다. 다가오고 있는 것이 느껴졌다. 그녀는 그것들이 더 이상 다가오지 않았으면 하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강제로 응어리진 그 화를 풀어주었으면.
「……어? 소멸한 건가? 왜지?」
한참이 지나도 훌리건은 멀쩡히 날아가고 있었다. 충격은커녕 정전기조차 닿질 않았다. 조종사는 물론 수송기 안의 모두가 어리둥절해졌다. 밖에서 느껴지던 것들이 갑자기 흩어진 걸 느낀 은비는 한 번 더 당황했다.
‘정보파를 다루는 법을 좀 알겠어?’
은비의 머릿속으로 누가 말을 걸어왔다. 발리스라는 걸 알 수 있었다.
‘네 옆의 가이아 친구 덕에 알 수 있었어. 너의 능력으로 가이우스의 무기를 무력화시킨 거야. 가이우스의 무기는 조준과 공격에 정보파를 이용하지. 에너지의 유도로를 만들고 전기의 형태를 잡아주는데 사용해. 너는 방금 그 정보파를 교란시켰고, 그래서 번개가 흩어져 방전된 거야.’
은비는 믿을 수가 없었다. 방금 그것들이 다 자신의 감신성 때문이란 말인가. 사람들의 감정이 느껴지고, 적의 악의가 느껴졌다. 과학기술로 만들어진 정보파를 느끼고 없애기까지 했다. 방금 전의 상황이 정말 자신이 한 일이란 말인가.
“너, 발리스의 전달을 받았나?”
흑인 암살병기가 은비에게 말을 걸어왔다. 푸른등대의 공격이 사라지면서 모두가 어리둥절해하는 터라 수송기 안은 조용했다. 그런 상황에서 암살병기가 던진 말은 생각 이상으로 선명하게 들렸다.
“네.”
“그렇군. 그러면 방금 네가 한 것을 계속해서 이어갈 수 있겠나?”
“그게, 저도 어떻게 한 건지 잘 몰라서…….”
‘내가 그 친구를 통해서 연산을 대신 해주지. 어렵게 생각하지 마. 그 친구가 단말기가 되어서 너 대신 주변의 정보파를 분석하는 거야. 그럼 너는 그를 통해 느껴지는 대로 무력화시키기만 하면 돼.’
“들었나? 저들이 다음 공격을 준비 중이다. 준비해라.”
“네? 아, 네.”
은비는 뭔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해보기로 했다. 조금 집중해야 할 것 같아서, 웅성거리는 주변 사람들을 최대한 무시하며 눈을 감았다.
6-9.
가이아 인근으로 함선이 하나 더 접근했다. 더불어서 달보다 약간 작은 크기의 행성선까지 가이아로 접근해오고 있었다. 그러자 검은요원의 정보기관은 상황을 파악하려 총력을 기울였다. 하지만 EE-3 지부 내에 작전지휘본부를 설치했을 푸른등대는 그들을 돕기는커녕 철저히 정보교환을 거부했다. 그들은 그저 아주 빠른 속도로 화물을 실어 나르고만 있었다. 화물은 모두 EE-3 지부 활주구를 향하고 있었다.
평소에는 항상 닫혀 있었지만, 지금 사찰의 마당은 활짝 열려있었다. 그 밑에 펼쳐진 넓은 공간에는 거대한 기계장치가 건축되고 있었다. 기계의 맨 아래 부분은 이미 완성되어 있었다. 전체적인 모습은 거대한 얼음집 같았으며 기계의 활동을 조절하기 위한 역할이라 자판과 계기, 화면 등이 덧붙여져 있었다. 만약 그 부분을 밑동으로 비유한다면 지금 건축되고 있는 중앙 부분은 나무의 줄기로 비유할 만 했다.
“아름다울 정도로 거대한걸. 수송을 일찍 못 끝낸다면 남은 부품은 들이기 힘들겠군.”
기계가 빠르게 설치되는 모습을 감상하는 헤서만의 뒤에서, 퀑이 말을 걸어왔다.
“자네, 괜찮아?”
“지금 이게 실제로 완성되는 걸 목격하는 건 우리들이 처음이야. 몸 상태가 엉망이라도 기어올 가치는 있지.”
“두 발로 걸어왔잖은가.”
“고귀하게 날 지켜준 병사들 덕이지. 그들의 신상을 정리하라고 지시했다네. 유공자로 지정될 친구들이니까.”
“……불민한 내 동생 덕에 미안하군.”
“능력만 보았을 땐 자네 동생다워. 고작 가이아인 한 명 만으로 이 정도 피해를 줄 수 있게끔 준비했다니. 더구나 자신이 도망칠 길도 미리 준비했잖은가. 나한테 그 정도의 전략안이 있었으면 할 정도야.”
헤서만이 입가를 일그러트리며 헛기침했다. 그러자 퀑이 가볍게 웃었다.
“그래도 동생이랍시고, 칭찬을 들으니 기쁜가?”
“……그저, 석연찮은 일이 떠올랐을 뿐이야.”
“뭐가 말이지?”
“불칸을 끌어들인 건 그 놈이 아니더군.”
“그래? 그렇다면 남는 가능성은 발리스의 자의라는 것 밖에 없지 않나? 그것이 일개 외교관의 말을 들을 리는 더더욱 없을 테고. 아직 우리가 찾지 못한 반대자가 있단 건가?”
“하지만 그 정도의 발언능력을 가진 사람들은 모두 우리와 뜻을 같이하니까.”
“이건……역시 대사님께 말씀드려야겠군.”
“탄 탈라 선생님은 마지막 화물과 함께 내려오실 예정이라 하셨어. 말씀드리려면 직접 올라가 뵙는 게 좋을 거야.”
“그래야겠지. ……아, 지금 자네를 누가 기다리는군. 나는 연락하러 가봄세.”
헤서만은 퀑이 가리키는 곳을 돌아보았다. 푸른등대의 한 간부가 기다리고 있었다.
“왜 그러나?”
“불칸 전초기지의 상황에 대한 겁니다.”
“말해.”
“전초기지가 있던 섬을 불칸이 긴급보존 시켰습니다. 그 여파로 다수의 사상자가 나왔으며, 생존 병력은 전원 후퇴했습니다. 후퇴 과정에서 마르트의 잔존 병력이 강제로 합류했다고 합니다. 또한 감신자는 불칸의 도움을 받아 도주했습니다.”
“추격하고 있나?”
“병력을 추가 투입해 추격했었다고 합니다.”
“추격‘했었다’고?”
“추격에 방해 요소가 많아 일시적으로 추격을 중지했다고 합니다. 저도 정확한 정보는 아직 받지 못 했습니다만, 마지막으로 연락이 왔을 땐 불칸 병력의 수가 많다는 정보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공격이 소멸되었다고 했습니다.”
“소멸?”
“메시아 시스템 통제 하에서 발생할 수 있는 현상과 동일했다고 합니다. 제 생각엔, 가이아 감신자기 일으킨 것으로 추측됩니다.”
“……프로스 퀑!”
헤서만이 갑자기 우렁차게 외쳤다. 저 멀리 걸어가던 퀑을 불러 세울 정도였다. 퀑은 다시 헤서만에게 다가와야 했다.
“무슨 일인데?”
“선생님께서 좀 일찍 내려오셔야 될 것 같아. 그러니까……아니다, 내가 통신으로 말씀드릴게. 너는 여기서 설치 작업을 지휘해 줘. 서둘러야 돼. 나는 잠시만 작전을 지휘해야 될 것 같아.”
“상황이 급박해졌나?”
“무슨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가이아의 메시아가 생각보다 빠르게 생겨날지도 몰라. 상황이 꼬이기 전에 막을 준비를 해야겠어.”
“알았어. 여기는 나한테 맡겨. 시간을 어떻게든 단축시켜 볼 테니까.”
6-10.
태평양을 날아가면서, 훌리건은 방금까진 상상도 못했던 편안한 비행을 하고 있었다. 대신 그 밖의 상황은 별로 평화롭진 않았다. 비행병기가 날치처럼 바다에서 튀어나와 순찰을 돌고, 해수면 밑에는 수중병기가 상어처럼 헤엄치고 있었다. 그들의 상대는 하늘 위에서 쉼 없이 내려오는 푸른등대의 병력이었다. 푸른등대는 이제 전투기를 다수 투입시키며 훌리건을 저지하려 했다.
전투기는 번개공은 물론이요, 밝은 빛줄기를 총알처럼 쏘았다. 빛줄기가 닿은 바다는 순식간에 끓어올랐다. 또한 마치 뱀장어처럼 길게 헤엄치는 미사일도 날렸다. 미사일은 비행병기 사이사이를 유연하게 지나치며 하늘을 날아왔다. 그럼에도 이 모든 공격은 전혀 제 역할을 못 하고 있었다. 불칸의 병기를 상대로는 잘 작동되고 있었다. 단지 가장 중요한 훌리건이 격추되질 않는 게 문제였다.
번개공이 가는 도중 방전되며 사라지는 건 예사였다. 빛줄기는 갑가기 괘도가 꺾이거나 아예 발사되지 않기도 했다. 간신히 발사된 몇 개는 빛이 깜빡이며 서서히 사라져버렸다. 압권은 미사일이었다. 갑자기 뚝 떨어지거나 방향을 바꿔 서로 부딪히는 건 약과였다. 적지 않은 미사일이 하늘을 평화롭게 헤엄치고 있었다. 어떤 것들은 느긋하게 바다를 향해 헤엄쳐가 버렸다. 이런 상황이 발생하는 건 오직 훌리건을 노렸을 때 뿐이었다.
어둠 속에서 빛을 발하는 전장을 유유히 날아가는 훌리건의 모습은 푸른등대를 초조하게 만들었다. 심지어 어느 전투기는 직접 들이받으려고까지 했다. 그러나 맹렬히 날아가던 전투기는 갑자기 돌풍이라도 맞은 듯 뒤흔들리다 추락하고 말았다. 그 이후로 푸른등대의 공세는 꺾여버렸다. 둘러싸기만 한 채 공격할 엄두도 내지 못하게 된 것이다.
푸른등대가 당황하는 만큼, 훌리건 안의 요원들도 당황스러웠다. 공격받지 않는단 건 다행이었다. 문제는 그 안전을 한 20대 여자애가 만들어내고 있단 사실이었다. 눈을 감고 귀까지 막은 채 몸을 구부려 중얼거리고 있는 그녀가, 모든 위협을 막아내고 있는 것이었다. 더구나 그녀의 집중을 흩트릴까봐 그 누구도 입을 열 생각을 않고 있어, 묘한 정적까지 흐르고 있었다.
“……퇴각하고 있다.”
암살병기가 흐르는 정적을 막아서며 말했다. 그와 동시에 은비도 긴 한숨을 뱉으며 몸을 폈다. 방도가 없다는 판단을 한 푸른등대가 결국 손실을 줄이는 쪽으로 선택한 것이었다. 전투기들이 다시 하늘 위로 사라져갔다. 그 사실을 조종실에서도 알려왔다. 하지만 수송기 안에선 환호는커녕 한숨조차 함부로 나오지 않았다. 안도감보다는 미지에 대한 막연한 위압감이 강했기 때문이었다.
“어떻게, 잘 된 거예요?”
은비가 하진에게 물었다. 하진이 그저 어색하게 고개를 끄덕이기만 해서인지 암살병기가 대신 대답했다.
“성공적이었다. 발리스의 말이 맞았군.”
‘어쩌면 조만간 연산의 보조 없이도 넓은 범위의 신을 제어할 수도 있을 거야.’
발리스가 끼어들었다.
“그런 복잡한 건 잘 모르겠는데, 어쨌든 제가 느낀 게 모두 정보파인 거죠?”
‘그래. 정보파를 발산하는 정보체와 연산장치 내에 있는 신의 활동을 조절한 거야. 정보파가 응용되는 기술에 한해서, 너는 이제 의식적으로 그것들을 간섭할 수 있을 거야.’
“그렇다면……외계인들을 나가게 할 수 있을까요?”
‘가이우스는은 지금 너의 제거를 원할 테니까, 그것이 불가능해 진다면 철수하겠지. 하지만 아직 그들의 무기는 남아있어.’
은비가 어딘가를 향해 혼잣말 하는 모습 때문에, 누구도 조종석에서 들려오는 작은 환호를 듣지 못했다. 푸른등대가 물러난 덕분에 방해받고 있던 검은요원의 통신이 다시 연결 된 것이었다. 제 2 본부와 연락을 주고받기 시작한 조종사는 이윽고 기내 방송을 틀었다.
「있잖아, 로봇. EE-3로 가도 괜찮은 거냐? 푸른등대가 방금 우리를 공격한 상황인데, 그 쪽 지부는 연락도 되질 않고 푸른등대 수송선이 왔다 갔다 하기 까지 한다는데?」
‘페트릭, 막아요. 보호대상은 반드시 그 지역에 가야합니다.’
은비는 발리스가 흑인 암살병기에게 지시를 전달하는 걸 들을 수 있었다. 이에 암살병기는 직접 조종실을 향해 다가가 조종석의 문을 열고 답했다.
“그 곳 지역의 상황은 이미 알고 있다. 계속 가야한다. 지금 내가 그 곳을 목표로 잡은 이유는 후퇴가 아니다. 보호대상이 그 곳에 있어야만 상황을 종결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