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격렬했던 전투의 종반. 여기사는 진흙탕 위에 누워있고, 오크는 여기사의 목에 칼을 겨누고 있다.)
여기사 : 크윽, 죽여라.
오크 : 왜?
여기사 : 치욕을 받을 바에는 죽는 게 낫다. 죽여라!
오크 : 내가 왜?
여기사 : 기사인 나를 모욕하는 것이냐! 포로가 된 나를 너희들 마음대로 범할 생각 아니냐! 그런 굴욕을 당할 바에는 죽는 게 낫다! 죽여라!
오크 : 뭔가 이상한데? 너 스스로 말하고도 이상한 점을 못 느꼈냐?
여기사 : 죽여라!
오크 : ……이 녀석은 왜 내가 범한다는 전제하에 지껄이냐. 안 범해. 안 죽여. 내가 처음부터 널 범할 생각이면 죽이라고 말하는 네 의사따위는 무시하고 널 범했을 거라는 생각은 안 드냐?
여기사 : 죽여라!
오크 : 사람 말 좀 들어라! 안 한다고! 도대체 뭐라고 말해야 사람 말을 믿을 거냐! 오늘 처음 봤는데 다짜고짜 범죄자 취급당하는 내 기분은 생각안하냐!
여기사 : ……네 놈들은 적군의 여자를 잡으면 범하는 놈들 아니냐?
오크 : 누구한테서 그런 소리 들었는데?
여기사 : ……‘성전신문’에서 읽었다.
오크 : 너희 쪽 어용신문? 그런 걸 믿나? 우리 쪽에도 ‘수호신문’이라는 어용언론이 있지만 우스갯거리나, 휴지, 불쏘시개로 밖에 안 써.
여기사 : 그 신문에 분명하게 너희가 어린아이를 잡아먹고 여자는 전부 범한다고 써있었단 말이다.
오크 : 바보세요? 어용이라는 단어 모르세요?
여기사 : ……모른다.
오크 : ……어. 음. 그러니까 자신의 이익을 위해 권력자나 특정 집단에게 유리하게 행동하는 짓을 말해. 간신배라는 말은 알지?
여기사 : 그건 안다.
오크 : 신문이 간신배 짓거리를 하면 어용신문이라고 해. 이해했지?
여기사 : 신문이 그런 짓을 할 리가 없잖아! 신문은 올바른 정보를 전달하기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잖나!
오크 : 합니다. 해요, 이 사람아. 정보를 취득할 때는 비판적인 시선을 좀 가지세요. 생각해봐라. 너 신문 보면서 이상한 점을 느낀 적은 없냐? 예를 들어서 최전방 상황이 개판인데도 신문에선 ‘최전방에 문제가 없다.’이런 식으로 기사가 뜬 적은 없냐고? 내가 얼마 전에 우리 쪽 신문을 읽었는데 ‘보급품 지급률 120%달성’이딴 기사가 1면에 나오더라니깐? 땔감 보급이 안 되서 밤마다 벌벌 떠는 내 주위 애들은 전부 이 기사 보면 웃거나 욕을 하면서 땔감으로 쓴다고.
여기사 : 그건 너희들이니깐 그런 거 아니냐!
오크 : 비판적인 시각은 가졌네. 지금 내 말을 비판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처럼 너희쪽 언론도 비판적인 시각으로 받아들일 수는 없냐고.
여기사 : 내가 너의 말을 믿을……
오크 : 아 쫌! 무작정 부정하지도, 무작정 믿지도 말고 네 머리로 생각을 해보라고! 5분간 아무 말도 하지 말고 생각해보도록 한다! 실시!
여기사 : …….
(5분 후)
오크 : 5분 지났다. 생각해봤냐? 너희쪽 신문을 보면서 이상한 점을 느낀 적 없냐?
여기사 : 있었다. 하지만 그냥 대수롭지 않게 여겨서……하지만 어째서 그런 기사를 내는 거지? 너희가 아이를 잡아먹고, 여자를 범한다는 기사를.
오크 : 거기까지 생각이 미쳤어? 장족의 발전이네. 네 생각은 어떤데?
여기사 : 사실이니까?
오크 : 그 점은 부인할 수 없군. 군대라는 집단 자체가 수십 만이 모여 있는 단체이다 보니 그 중에서 미친놈이 없을 수는 없으니. 그리고 전쟁은 평범한 사람도 이상하게 만드니까. 하지만 생각해보자고. 백보 양보해서 백 명 중에 하나가 아이를 잡아먹고 열 명 중에 하나가 여자를 범한다고 그 집단 전체가 그런 집단이라고 생각할 수 있을까?
여기사 : 그렇다면 그 기사가 사실이라는 말이지 않나.
오크 : 그렇게 따지면 너희들도 똑같은 취급을 받아야할 텐데? 너희들은 평화롭게 사는 마을에 쳐들어가서 마을을 불태우고, 임신한 여자의 배를 갈라서 태아를 아버지에게 먹이게 하는 놈들이지.
여기사 : (몸을 일으키며)그런 적 없다!
오크 : (칼끝에 여기사가 찔릴 까봐 칼을 슬쩍 뒤로 당기며)너는 그런 적 없지만 너희 쪽의 부대가 그런 짓을 한 걸 내가 똑똑하게 목격했다.
여기사 : 거짓말 하지 마라! 우리는 대의를 위해서 전쟁에 참가한 명예로운……
오크 : 내가 그 마을 생존자다. 임신한 여자는 우리 누나였고 태아는 내 조카. 아버지는 나의 매형.
여기사 : …….
오크 : 여기서 문제 하나. 이번 전쟁은 누가 먼저 시작했을까요? 누가 성전이라는 말로 군대를 일으키고 누구의 땅을 침략했을까요?
여기사 : 그건……너희들이 성지를 침탈했기 때문에…….
오크 : 천 년 전에? 천 년도 더 전에 있었던 일 때문에 전쟁을 일으켰다고? 그리고 너희가 말하는 성지를 탈환하고도 진격을 멈추지 않았는데? 넌 거기에 대해서 의문을 가진 적 없고?
여기사 : …….
오크 : 이보세요. 명예로운 기사님. 저는 질문했는데 대답 안 해주시나요?
여기사 : …….
오크 : 뭐, 네가 전쟁을 일으킨 건 아니니. 너에게 따지며 묻는 것도 공연한 화풀이 밖에 안되겠지. 방금 질문은 무시해라.
여기사 : ……미안하다.
오크 : 그 자리에 있지도 않은 네가 사과해봤자 무슨 의미가 있겠냐. 그런데 어쩌다가 이런 이야기가 나왔냐? 아. 맞다. 너희 신문에서 어째서 우리가 악독하게 나왔는지 물었지? 왜 그랬을까?
여기사 : …….
오크 : (칼을 치우며 여기사에게 손을 내민다.)일어나.
여기사 : (잠시 오크의 투박한 손을 바라보다가 손을 잡아 자리에서 일어난다.)…….
오크 : (잠시 여기사를 바라보다가 칼을 거꾸로 잡아 손잡이를 여기사에게 내민다.) 받아.
여기사 : (의심쩍다는 듯이 오크를 바라보다가 칼을 잡는다.) 뭐지?
오크 : (무방비하게 양 팔을 좌우로 펼친다.) …….
여기사 : 무슨 짓이냐?
오크 : …….
여기사 : 이봐.
오크 : 왜 안 찌르냐?
여기사 : 뭐?
오크 : 난 무방비하게 네 앞에 서있는 상태. 너는 칼을 가지고 있는 상태. 네가 마음만 먹으면 단숨에 내 목숨을 가져갈 수 있는데 왜 안하지?
여기사 : (혼란스러운 듯 인상을 찌푸리며)무슨 속셈이냐?
오크 : 어째서 너희 신문에 우리가 악독하게 나왔는지에 대한 대답.
여기사 : 뭐?
오크 : 네가 맨 처음에 ‘죽여라’이런 말 하던 그 직후에 이런 상황이 됐다면 넌 주저 없이 날 찌르고 도망쳤겠지? 그런데 지금은 힘들지? 왜 그럴까? 5분간 생각해본다. 실시. 아, 칼은 다시 돌려주고. 우리 애들이 이 모습 봤다간 너 큰일 난다.
여기사 : 뭔가 내가 바보가 된 기분이다.(그렇게 말하면서 오크에게 칼을 돌려준다.)
(5분 후)
오크 : 5분 지났다. 자, 여기서 질문. 너희 신문은 어째서 우리를 악독하게 표현했을까?
여기사 : 우리가 너희를 죽이기 쉽게 하기 위해?
오크 : 정답. 뭐 내 주관적인 생각이지만. 선량한 사람과 악독한 사람 중에 상대적으로 죽이기 힘든 건 당연히 전자겠지? 적들은 전부 악독한 놈들이라고 생각해야 병사들이 쉽게 적을 죽이겠지? 그리고 방금 전에 내가 나를 찌르지 않은 것도 내가 악독한 자가 아니라고 생각해서 그런 것 아닌가?
여기사 : 하지만 악독하니까 우리의 적이 된 것 아닌가?
오크 : 채 몸도 만들어지지 못하고 억지로 세상에 나와야했던 내 조카는 사악해서 죽은 건가?
여기사 : …….
오크 : 누가 선악을 구분하나? 전장에 나와 본적도 없으면서 악을 쳐부수라고 병사들을 전장에 떠미는 위정자들? 난 그 치들이 말하는 데로 선악을 구분하지 않아. 나의 경험에 따라 내가 본 것을 나 스스로 판단하여 구분하지. 그리고 무조건 상대가 선하다고 안 죽이는 것도 아니고, 사악하다고 무조건 죽이지도 않아.
여기사 : 뭘 말하고 싶은거지?
오크 : 네가 무조건적으로 옳다고 믿는 것을 가끔씩은 회의적으로 바라보는 것도 좋다는 말이다. 그리고 쉽게 죽는다는 말은 하지 마라. 사후세계가 있는지 없는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사후세계에서 돌아온 사람은 하나도 없다는 건 확실하지 않나.
여기사 : …….
(여기사가 생각에 잠겨있고 얼마 지나지 않아 쫄병오크가 달려온다.)
쫄병오크 : 장군님!
오크 : 왜?
여기사 : 장군!?
쫄병오크 : (여기사를 곁눈질하며) 전투종료! 적 부대는 패퇴! 추격조는 귀환. 척후조는 적부대와 거리를 벌리며 그들을 염탐하고 있습니다!
오크 : 전투에 참여한 자들을 쉬게 해라. 예비대는 사상자를 수습하고 아침까지 근무를 세워.
쫄병오크 : 전투에 참여한 자들은 휴식. 예비대는 사상자 수습 및 아침까지 근무. 이렇게 전하겠습니다!
(쫄병오크 달려간다.)
여기사 : 장군이었나?
오크 : 어찌어찌하다 보니.
여기사 : 칼 다시 줄 수 있나?
오크 : 이젠 안 되지. 따라와라. 포로수용소까지 안내해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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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크 : 적군의 여기사를 잡았는데 이 여기사 뭔가 이상하다.
여기사 : 네가 더 이상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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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산 오크들은 보통 5~6년이면 성체가되다보니 2개국어를하고 (오크어,인류어) 격투능력까지 평범한 인간을 압도하는 엄청난 종이죠 만일 오크가 그 강대한육체에 오오라를 담고 종의 수명의 한계를 뛰어넘어 지식을 궁구한다면 정말 무섭지아니할수없습니다!
합리적인 사고를하는 오크란게 신선하면서도 그림이 안그려지네요ㅜㅜ
국내에서는 오크의 이미지는 양판소에서 20살도 안 된 어린애에게 도륙당하고 박살나는 이미지로 굳어졌지요. 물건너 섬나라에서는 에로 동인지의 악역이니.(^^;)
국내산 오크들은 보통 5~6년이면 성체가되다보니 2개국어를하고 (오크어,인류어) 격투능력까지 평범한 인간을 압도하는 엄청난 종이죠 만일 오크가 그 강대한육체에 오오라를 담고 종의 수명의 한계를 뛰어넘어 지식을 궁구한다면 정말 무섭지아니할수없습니다!
좋은 오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