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적으로 올바른 소설을 써 볼 생각이야.”
무료한 일요일 오전 내 룸메이트가 또 미친 소리를 지껄였다. 참고로 우리 룸메이트는 굉장히 특이한 친구였다. 내가 처음 미국에 도착하고 내 룸메이트를 만났을 때 룸메이트의 자기 소개는 이랬다.
“안녕. 친구 잘 지내보자고. 참고로 나는 동성애자이며 채식주의자며 불교신자야.”
내가 이 자기소개가 이상하다고 생각했을 때는 내가 내 룸메를 만난 지 정확히 30분이 지난 후 그 방안에서 짐을 정리하고 있던 내 옆에서 자연스럽게 빅맥을 먹고 있을 때였다. 그걸 보고 이상하게 생각한 나는 룸메에게 말했다.
“저기. 친구?”
“헤이! 킴 궁금한 거 있어?”
“그 빅맥은 뭐야? 미국 본토 맥도날드에서는 채식주의자를 위한 햄버거도 만드는 거야?”
“아니. 이건 고기야.”
내 룸메는 게걸스럽게 햄버거를 입에 넣으며 대답했다.
그 순간부터 나는 이 새X가 정상인은 아니구나. 라는 걸 알게 되었다. 학교에 다른 사람들에게서 얻게 된 정보에 의하면 내 룸메는
-게이이면서(본인의 주장에 의하면)- 성적인 관계는 여자와만 가지며.
- 채식주의자면서- 야채는 싫어하고 고기를 좋아하며-
-불교신자면서- 卍자를 보면 나치 나치 라고 소리를 치고-
-해리성 불확실성 결핍적 급성 증후군이라는 - 듣도 보도 못한 희귀병을 가지고 있다.(그렇게 본인은 주장하고 있으며.)
- 본인은 페미니스트이며 성의 상품화를 반대하면서- 그의 하드에는 야한 동영상이 그득히 들어차 있었으며, 자랑스럽게 작년에 AV 시상식에 참여한 일이 있었다고 말하는 친구였다.
짧게 말해서 미친놈이었다. 미쳐도 단단히 미친놈이었다.
“정치적으로 올바른 소설?”
“응. 킴 요즘 세상은 정말 정치적으로 올바르지 못한 세상이야. 이 시대에 경종을 울리는 내 마스터피스를 통해서 세계평화와 소수자들을 차별하는 악한 기득권층을 다 박살내버리겠어.”
참고로 미국 동남부 중소도시에 있는 이 대학의 등록금은 꽤나 비쌌다. 백인이고 좋은 교육을 받을 수 있고(좋은 머리를 가지진 못했지만) 부모님 재산도 많은 걸 보면 너도 충분히 기득권층인데? 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 이 미친놈에게 무슨 논리를 바랄 수 있을까?
“그래? 재미있게 들리지는 않네.”
“노우- 노우- 킴! 정치적 올바름은 재밌는 게 아니야. 올바른 거지.”
“그래도. 재밌어야 사람들이 소설을 살 텐데?”
“노우- 노우-. 그딴 상업적 마인드는 노우~. 나는 예술가야 알지?”
이 미친놈의 소설 쓰기는 처음부터 핀트가 어긋나 있었다.
“그래. 그럼 줄거리가 어떻게 되는 데?”
“일단. 배경은 애리조나주 시골 마을이야.”
“네 고향을 배경으로 하는 거야? 좋은 생각이네. 배경은 아무래도 작가가 잘 묘사할 수 있는 곳이 좋지.”
“그다음은 그곳 중학교에 전학을 가게 된 레이-제임스-무함마드가 주인공이야.”
“주인공이 3명이야?”
“아니 한 사람.”
“방금 레이-제임스-무함마드라고 했잖아.”
“노우- 킴 -노우-”
룸메는 고개를 크게 저었다.
“그게 한 사람이야. 레이.제임스.무함마드.”
....... 그게 사람 한 명 이름인거냐. 그래 그건 그렇다 치자.
“그럼 주인공은 어떤 사람인데? 인종은? 성별은?”
“노-오오오-우--우우.”
내 룸메는 얼굴을 찡그렸다.
“헤이. 킴. 그건 너무 인종 차별 성차별 적인 발언이야.”
건장한 백인남성이 만리타향에서 유학 생활을 하고 있는 동양인에게 인종차별이라고 말하는 때가 오다니. 정말 미국은 위대한 나라다.
“아니. 궁금하잖아? 주인공이 어떤 사람인지 궁금해 하는 것도 안 돼?”
“흐음. 킴 주인공은 세상 모든 인종의 혼혈인 사람이야.”
“세상 모든 인종?”
“128분의 1은 앵글로 섹슨계이고 128분의 1은 라틴계 128분의 1은 이누이트..........”
그는 그렇게 자신이 알고 있는 모든 인종을 줄줄이 말했다. 이 친구가 결혼을 하게 되면 UN에서 식을 올려야 할 판이다.
“그래. 주인공은 그렇다 치고 전학을 가게 된 다면 학교가 배경인 거야?”
“그렇지. 킴 애리조나 주 시골마을에 있는 중학교가 배경이야.”
“거기에 레이 뭐시기라는 친구가 전학가면서 얘기가 시작되는 거군.”
“그리구 그 학교는 인종적으로 정말 다양한 학교여서 백인-흑인-황인이 33%씩 다니는 학교야.”
“그럼 그 학교는 특별한 학교인가 보네?”
“응? 킴 무슨 소리지?”
“무슨 소리냐니. 애리조나주 평범한 시골마을에 평범한 중학교에 다니는 학생들이 인종 비율이 그런 건 이상하잖아?”
“헤이-킴. 너무 인종차별적인 거 아니야? 난 우리 친구 그렇게 생각 안 했는데.”
“좋아. 무슨 일인지 모르겠지만 미국 중서부에 있는 한 시골마을에 인종적으로 정말 다양한 평범한 중학교가 있다고 치고. 그 다음은?”
“그리고 이 소설에는 성상품화에대한 경종을 울리기 위해서 모든 등장인물은 정상체중에 3배로 설정하기로 했어.”
“등장인물 몸무게하고 성상품화는 뭔 상관인데?”
“헤이. 킴 그런 것도 몰라? 예쁜 여자 예쁜 남자는 모두 성 고정관념이 만들어낸 허상이야. 그래서 내 소설에는 추잡하고 역겹게 생긴 등장인물만 나올 거야. 주인공은 빼고.”
이미 그런 사람들을 추잡하고 역겹다고 말하는 너의 고정관념은 잘못된 거 아니니? 라는 정상적인 일침을 해주곤 싶었지만 그런 일침을 받고 정신을 차릴 놈이었다면 애초에 저딴 말을 하지 않았겠지.
“좋아. 뭐 소설이니까. 그렇다고 해두자. 그러니까 니 소설은 애리조나주 한 평범한 시골마을에 평범한 중학교에 전 세계 인종의 피가 섞인 레이 뭐시기라는 학생이 전학을 오면서 얘기가 시작된다는 거지. 또 왜인지 모르겠지만 그 평범한 중학교는 인종적으로 쓸데없이 다양하고 모든 학생들이 다 과체중인거고?”
역시 프로 미친놈은 생각하는 게 달라.
“예얍. 말이 통하는 군.”
내 룸메는 자랑스럽게 엄지 손가락을 올렸다.
“그래서 어떤 갈등 구조를 가지는 거지? 전학만 가서는 얘깃거리가 없잖아.”
“학교에서 동성애 퍼레이드로 경연을 하는 데 레이가 참가하면서 얘기가 시작될 거야.”
“동성애 퍼레이드?”
미국 중서부의 한 평범한 시골마을에 평범한 중학교에서 동성애 퍼레이드로 경연을 한다고?
“킴 왜 그래? 어이없어 하는 표정이야.”
“그 학교에서 왜 동성애 퍼레이드를 하는데?”
“아닛! 킴 그렇게 동성애를 혐오하면 어떡해? 나 놀랐어.”
“아니. 아니야. 혐오하는 게 아니라. 왜 미국 시골마을에 중학교에서 동성애 퍼레이드로 경연을 하냐고. 무슨 사연이 있나 궁금해서.”
“훗. 그건 말이야. 그 학교에 다니는 사람들은 모두 동성애자여서야.”
.......역시 프로 미친놈은 생각하는 게 달라.
미국 애리조나주 평범한 시골마을에 평범한 중학교에 인종적으로 정말 다양한 학생이 다니며 그 학생들이 모두 과체중이면서 모두 동성애자라고?
“저기. 그건 너무 이상한 설정이잖아?”
“헤이 킴! 무슨 소릴 하는 거야. 동성애는 반대하는 게 아니야. 자연스러운 사랑이지. 지금 넌 이 세상 모든 동성애자를 모욕하고 있어.”
“아니. 그런 미친 소리는 그만하고. 그래. 비유를 들자면 이런 거야. 어느 중학교에 학생이 모두 금발이라고 생각해보라고. 그건 특이하잖아? 왜 이 학교 학생들은 다 금발일까? 무슨 이유가 있는 걸까? 그렇게 생각해 볼 수 있는 거 아니야?”
나의 말에 룸메는 잠시 생각을 하는 것 같았다. 과연 저 머리로 생각이라는 게 가능할까?
“킴 헛소리 그만해. 지금 당장 나에게 사과하지 않으면 트위터에다가 내 룸메는 저열한 인종차별주의자면서 성차별주이자이기 때문에 보이콧을 해야겠다고 올릴 거야.”
-대체 트위터 하는 애들이 나를 보이콧하면 내 인생에 무슨 일이 생기는 건데? 라고 반문하고 싶었지만.
“오케이. 알았어. 미안해. 소설인데 뭐. 상상력 발휘했다고 치자.”
“그래. 바로 그거야. 자유로움을 온몸으로 느껴봐.”
자유로움이라기보다는 한 사내의 광기인 것 같지만 아무튼.
“그래. 그 동성애 퍼레이드에 레이라는 친구가 참가해서 어떻게 되는 데?”
“오우 안타깝지만 레이가 속한 조는 탈락해. 그래서 모두들 실망을 하게 되지.”
“그래서? 그러고 끝이야?”
“아니쥐. 경연이 끝나고 시상을 하러 모두가 모여서 --파티를 하게 되는 거야. 그러면서 원한을 풀고 모두가 하나 되는 거지.”
............ 뭐?
“방금 뭘 한다고?”
“--파티!”
--------- 그러니까 내 룸메는 미국 중서부 한 주의 평범한 중학교에서 인종적으로 다양한 과체중의 동성애자 중학생들이 -- 파티를 하는 내용의 소설을 쓰고 싶다고 말하며 그것을 정치적으로 올바르다고 주장하고 있는 중이었다. 제발 FBI든 CIA든 이 자식 잡아가서 고문 좀 해주세요. 라고 잠시 기도를 했다.
“잠깐 잠깐! 친구. 진정해보자고. 너 성상품화를 배격한다고 말한 게 몇 초전인지 기억하니?”
“헤이~ 킴 이게 성상품화하고 뭔 상관이야? 내가 하는 건 예술이고. 투쟁이야.”
아. 그렇구나. 광기의 격이 달랐다. 나도 한국에 있을 때는 자유롭고 특이한 사람이었는데 진짜배기를 만나니 상대가 되질 않는다.
“그래 그러고 끝이야?”
“놉. 거기서 얘기는 시작이야.”
아직 광기는 끝나지 않은 건가.
“그렇게 하나가 된 레이와 친구들은 전국에 있는 이성애자들을 사냥하기 시작해.”
“,,,,,,,왜?”
“소수자는 억압에서 벗어나야 하니까.”
“아니 억압에서 벗어난 게 왜 이성애자들을 사냥하는 게 되는 건데?”
“헤이~ 우리들의 분노를 우습게보면 안 돼. 프랑스 혁명 식으로 가야해. 우 쏭 래 뚜왈레뜨!(화장실이 어디입니까?)”
“좋아. 그렇다 치고. 그래서 소설 끝이 어떻게 끝나는데?”
“결국 갖은 고난을 극복하고 레이는 이 세상 모든 나라를 정복하고 제국을 세우고 모든 사람들을 노예로 부리게 되지.”
“너. 맨 처음에 정치적으로 올바른 소설을 쓰고 싶다고 하지 않았냐?”
정치적 올바름이라는 게 왜 제국을 세우는 걸로 끝나는 걸까?
“헤이 킴! 세상의 모든 정의는 실현 되었어. 우리 억압받는 이들은 정당히 폭력을 행사해야해.”
“그건 위험한 생각이야. 그게 맞는다고 쳐보자. 지금 미국사회에서는 동양인이 소수자니까 내가 다수자인 백인인 너를 때려도 너는 아무 말 않고 맞아야 한다고 하면 말도 안 되는 일이잖아.”
“노웁. 킴. 너는 생각이 짧아.”
생각이 미친 인간한테 생각이 짧다는 얘기 들어본 사람? 여기 한 명 있네요.
“나는 게이니까. 내가 더 소수자니까. 내가 더 정의롭고 착한거야. 게이는 황인종을 이겨.”
....... 역시 프로 미친놈은 격이 다르다.
“잠깐 네가 게이라고 말하는 것도 그냥 네 생각이잖아. 너 남자 좋아한 적 없잖아. 여자 친구는 사귄 적 있어도!”
“노웁 킴. 나는 남자를 좋아하진 않아. 여자를 사랑하지. 하지만 난 게이야.”
....... 미친새X
“좋아. 그럼 내가 동성애자라면 어쩔 건데? 백인 게이보다는 황인 게이가 미국 사회에서는 소수자겠지?”
“노웁. 안타깝지만 우리 할머니에게는 1/32 체로키 인디언의 피가 흐르지. 나에게 더 희귀한 혈통의 피가 흐르기 때문에 내가 더 소수자야. 내가 더 소수자니까 내가 더 착하고 정의롭지.”
그렇게 말하며 나의 룸메는 거만한 미소를 지었다. 역시 미친놈은 생각하는 게 달라.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혼란스럽군요...... 그래도 신나게 웃으면서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