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승님.”
“왜 그러냐, 씹어 먹어도 시원치 않을 못난 제자놈아.”
“스승님은 대륙에서 제일가는 마법사시면서 모두의 인정받는 현자고 임금님과는 호형호제를 할 수 있을 정도로 엄청난 분이 아니십니까?”
“그런 엄청나고 훌륭한 사람이 바로 나다만 뭐가 말하고 싶은 거냐, 말라비틀어져야 예쁠 거 같은 제자놈아.”
“그런 분의 제자인 제가 왜 고블린 무리에게 잡혀있는 겁니까?”
“그런 분의 제자인 너에게 내가 마법을 쓰지 못하는 마법을 걸었기 때문이지.”
“그렇군요, 씨발.”
눈앞에 불을 피우고 있는 고블린들의 모습에 차마 욕을 참을 수 없었다. 어쩌자고 내가 이런 사람의 제자로 들어왔을까.
“그보다 말하는 본새가 곱지 않아 왜 제자로 삼았는지 모르겠지만 제자인 어리석은 제자놈아.”
“네, 왜 부르십니까 고블린 밥이 될 거 같은 제자의 스승놈님.”
“이제는 귀하신 스승을 놈이라 부르는 빌어먹을 제자놈아. 왜 대륙 제일의 마법사이자 대현자인 내가 저열한 고블린의 무리에게 잡혀서 너랑 같이 묶여있는 거냐?”
“제가 스승놈이 무슨 짓을 몰라 두려운 나머지 반사마법을 걸어두었기 때문이죠.”
“그것 참 씨발이로구나, 제자놈아.”
하하하, 대륙 최고의 마법사와 제자가 아이들도 내쫓을 수 있다는 약소종족인 고블린에게 잡혔다니 이 무슨 코미디이겠습니까. 절로 웃음이 날 거 같지만 고블린 놈들이 입에서 침을 뚝 떨어트리는 꼴을 보면 그럴 마음도 쑥 들어간다.
“아니! 무슨 생각으로 제자한테 그런 마법을 쓰려고 한 겁니까!!”
“내가 네놈한테 성장을 위한 적. 합. 한. 임무와 조건을 주려했으나 네놈이 평소 하는 짓이 영악하기 그지없어 마법 없이 한 번 해보란 의미였다! 그러니 누가 그리 멋대로 하랬느냐!! 네놈이야 말로 스승의 말을 믿지 못하고 반사주문 같은 괴악한 걸 쓰지 않았더냐!”
“네네, 입문 첫날부터 아무런 방호 장비 없이 야생 맨드레이크를 100개나 뽑아오라 시키신 고귀한 스승님을 존경하지 못한 제 잘못입니다! 예예! 한 번 뽑을 때마다 귀에서 피가 나오는 걸 버텨가면서 다 뽑고 나니 다 필요 없다며 버린 스승놈을 믿지 못한 내가 잘못입니까?!!”
“네가 잘못이지 이놈아! 뽑을 거면 제대로 뽑아야지 다 상하게 해놓고선 어따 쓰라고!! 그리고 봐라, 네놈의 수련을 게을리 하니 완벽히 반사해야할 반사마법이 실패해서 이꼴이지 않느냐! 반사할 거면 막아야지 네놈도 마법에 걸리는 게 말이 되느냐! 애석한 제자놈 같으니라고.”
스승놈께선 한심하다며 고개를 저으면서도 자신의 마법이 뛰어나서 제자가 막지 못했나라는 자기 자존감을 한껏 상승시키는 발언을 하시니 제자로서 참으로 애달플 수밖에 없다.
노망난 영감탱이 같으니라고.
“하...이 순간이 오니 아버지가 원망스럽습니다.”
“머처판 경을 원망하면 쓰나. 머처판 경이 자기 자식 재능도 모르고 나한테 부탁을 할 정도로 어리석지만 머처판 경이라고 자기 아들이 고블린 먹이가 될 거라고 예상하고 아들을 낳진 않았을 텐데.”
“한 마디도 안 지시는 모습을 보아하니, 스승님께서는 아가리파이팅으로 대현자란 타이틀을 얻으셨나보십니다.”
“원래 말빨이면 반은 먹고 가는 게다. 봐라, 말조차 못 이기는 네가 제자고 내가 스승인 이유가 있지 않느냐.”
“제가 고블린이면 스승님부터 씹어 먹었을 겁니다.”
“하하, 그것 참 안타깝구나 미안하지만 이 스승은 연구를 위해 육체 밸런스가 엉망이라 맛이 없을 게 분명하다. 네놈이 먼저 씹어 먹히겠구나.”
“이런 젠장! 평소 건강히 살아서 먼저 먹힌다고! 여신님은 어디 있는가!!”
“이런 상황에서 신을 찾으니 네가 안 된다는 거다.”
스승은 혀를 차며 고개를 저었다. 나는 그 모습에 눈살을 찌푸릴 수밖에 없었다. 왜냐, 이 나라의 국교와 뿌리를 부정하는 말이니까.
“스승님께서는 이 나라와 인간을 부정하십니까?”
“갑자기 고운 말로 개뼉다구 갈아먹는 소리를 하는 것이냐, 망할 제자놈아.”
“여신께서 인간을 만드시고 세상을 창세하신 여신님을 부르짖는 저를 비난하시니, 이건 곧 여신에 대한 비난이고, 그것은 즉슨 이게 인간과 나라를 부정하는 게 아니겠습니까?”
“네 말대로라면 부모를 부정하면 자식을 부정하는 셈이 되겠구나.”
“당연하지요. 부모 없는 아이가 어디 있단 말입니까.”
“인생은 단순히 나아준다고 만들어지는 게 아니란 사실을 모르느냐. 나는 부모 없이 살아 혼자 자연의 이치를 깨닫고 마탑의 스승들로부터 마법을 배웠다. 이런 내가 부모를 부정한다고 내가 부정 당해야하는 이유는 어디 있느냐.”
“당연히 있지요. 부모가 아이를 낳지 않으면 아이는 없지 않습니까. 시작은 부모입니다! 부모!!”
“그렇다면 부모는 아이를 부정할 수 있겠구나.”
“네?”
말의 뜻을 이해하지 못해 고개를 갸웃거리다 목에 물방울이 떨어졌다.
“으윽!?”
“멍청한 제자인 네놈에게 말해주자면 부모는 아이의 위에 있으니 엄연히 부정할 수 있는 것 아니냐. 동시에 스승인 내가 네놈을 부정할 수도 있겠군.”
“그건...뭔가 이상하지 않습니까?”
“네놈이 말하던 게 이거다. 상하관계라는 것을 상정해버리는 오류이지. 정작 밑에 있는 네놈은 동등을 원하면서. 더 나아가서 물어보마, 만약 여신이란 존재가 있고 그 여신이 널 없었던 존재로 하겠다고 하면 넌 당연시하고 받아들이겠느냐?”
“......”
난 잠시 뜸을 들이다 정중한 목소리로 아니라 답했다. 스승은 호쾌하게 웃어댔다.
“그래그래! 네놈이 완전히 뇌를 팔아먹지는 않은 모양이구나. 세상이란 그런 거다. 상하관계란 위에 있는 자들을 위한 것이고, 평등관계란 아래 있는 자를 위한 것이지. 네놈이 믿는 여신이란 것도 결국 여신을 위해 존재하는 거지.”
“...그 발언 다른 곳에선 절대하지 마십시오.”
“심심할 때나 한 번 해봐야겠군. 전쟁이라도 나지 않을까?”
스승은 농담이랍시고 호호거리지만 나는 이게 진짜 불씨가 되어버릴까 내심 불안해졌다. 크게 번져버리면 역사서에서 이 산불을 일으킨 대현자의 제자는 난 어떻게 기록되는 걸까?
“먼 일을 걱정하는 건 멍청한 일이야. 당장 눈앞부터 걱정하거라. 언제 죽을지 모르니. 안 들리느냐? 이 자그마한 발소리가 지네다리처럼 계속해 울리는 게. 고블린 무리가 돌아왔나 보구나.”
고개를 불의 너머로 던지자 우리를 잡아왔던 고블린의 대장격으로 존재와 그가 이끄는 무리가 돌아왔다.
어릴 적 유모가 해주던 고블린 괴담이 생각났다. 가장 먼저 손과 발을 잘라버린 다음 살아있는 체로 눈을 파먹다가 다음은 구워버린다는 이야기다.
“...죽은 척하면 살 수 있지 않겠습니까?”
“고블린들은 심성이 잔악하여 죽은 시체를 가지고 노는 습성이 있지. 스승이 편찬한 책도 안 읽어본 것이냐? 고얀 제자놈 같으니. 기본이 안 되어있어, 기본이.”
“마지막까지 그런 소리라니 참으로 경이로우십니다.”
“드디어 스승의 진면목을 알아보는 구나.”
돌아온 고블린 우두머리는 짐들을 끌고 있는 고블린을 걷어차곤 멋대로 짐들 사이에서 먹을 것을 꺼내 먹었다. 차인 고블린은 피를 흘리지만 우두머리에게 적의를 보이기는커녕 바닥에 넙쭉 엎드렸다.
스승은 그 모습을 보곤 혀를 찼다.
“세상은 저런 거다. 사실은 별로 힘의 차이도 나지 않겠지만 원래 정해진 관계라는 듯이 따르는 거지. 인간도 다르지 않지. 만약 우리가 여기서 우연히 살아난다면 넌 뭐라고 하겠느냐.”
“여신님의 축복?”
“난 그걸 우연이나 행운이라 부른다. 날씨에 비해 물이 많이 차구나. 숨을 깊게 들이켜라.”
“네?”
스승의 말이 끝나자 천장에서 구멍이 나더니 물이 쏟아졌다. 대삼림의 폭포는 저리가라 할 정도의 물폭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