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다가
그런 그들의 마음은
후루미 렌야의
힘없는 말투로 이야기하는 내용으로 인해
완전히
자괴감 그 자체로
완전히 물들었으니.....
"게...게다가
그 새로 오신 공안 부장께서
제가 한 일을 듣고는
한탄을 하시면서 하신 말씀이 있었지요.....
'만...만약에
그 모리 코고로씨의 아버님이시자
우리 공안 경찰의 대선배 그 자체이신 동시에
멘토라고 하실 수 있는
그 모리 유키 중령님이
이 사실을 알았다면
우리 일본 공안과
내각조사실에 대한 실망감으로
아예 말도 꺼내지 않으셨을 거다.
1945년 이후
어떻게
이 내각조사실, 국가공안위원회
그리고
일본 공안 경찰이 만들어졌는지 아나?
1945년에
일본이 제 2차 세계대전에서 패한 뒤에
그 모리 유키 중령님이
나폴레옹 솔로 라는 가명을 쓴 미군 하사관으로
신분 세탁을 한 뒤
유럽 주둔 미군으로 위장해서
유럽으로 가신 뒤
유럽 전역의 암시장에서
엄청난 수익을 올리는 법을 비밀리에 알아낸 뒤,
유럽 전역에서
그 당시
러시아와 프랑스
그리고
영국등의 전승국들이
독일과
독일의 점령지에서 약탈한
금, 보석 같은 귀금속 종류와
그림, 조각 같은 고가의 미술품들을
닥치는 대로 훔쳐서
그런 고가의 물건들과 귀금속등을
암시장에 내다 팔아서
막대한 수익을 올린 뒤에
그런 엄청난 자금을
비밀리에
자신이 만든 D기관 소속의 공작원들에게
극비리에 전달하고
그렇게 받은 자금을 토대로 해서
지금의 공안 시스템의 핵심인
국가공안위원회와
내각조사실
그리고
일본 공안 경찰 그 자체를 만들 수 있게 되었단 말이야!
게다가
그렇게 우리들에게 자금을 전달한 것 때문에
그 분은
결국........
그것이 단서가 되어서
유럽 경찰에게 잡힐 뻔 하다가
그나마
미국 FBI를 완전히 엿을 먹였다는 것에 감동을 받은
CIA가
비밀리에 그 분을 구출해서
자신들의 요원으로 일하도록 강요하기까지 했어!
우리 일본 공안 경찰은
그 분에게 영원히 갚을 수 없는
엄청난 빚을 진 셈인데,
그런 분의 아들을
그렇게 아무렇지도 않게 대접한 정도가 아니라,
아예 죽이려고 까지 했다니........'
라고
거의 한탄하는 모습으로
이야기를 해 주시더군요.
그렇기 때문에
그 분의 심정을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게 되었지요.
완전히
우리 일본 경찰은
자신들의 목숨까지 구해주고
보따리까지 건져준 사람을
눈에 거슬린다는 이유로
도로 물로 떠밀어서 죽이려고 한
인간으로서는 도저히 할 수 없는.........
파렴치한..........
그 자체니까는 말입니다............."
그런
후루미 렌야의
풀죽은 투로 내벹는 말에
메구레 경부를 포함한
다른 형사들은
완전히 바닥이 꺼져라
한숨을 내쉬면서
자신들이 믿고 있던
경찰의 자부심을 포함한
모든 믿음 그 자체가
완전히 무너져내리는 듯한 기분으로
말없이
서로의 얼굴을
힘없이 바라보기만 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그들의 혼돈된 마음은
후루미 렌야의
완전히 힘이 빠진 듯한 마지막 말로
완전히
바닥 끝까지
무자비할 정도로 확실하게 추락했고,
동시에
다시는
모리 코고로에게 고개를 들 자격조차도 사라졌다는 것을
뼈가 저리게 실감하게 되었으니....
"이제야말로
확실하게 알게 되었습니까?
여기에 계신
모든 사람들은
당신들이 그렇게 알기 위해서 필사적으로 노력한
진정한 진실을 알게 된 댓가로
영원히.........
당신들이
지금까지 살아오고
알고 지냈던
저 바깥의
평화롭고 밝은 세상으로는
다시는..........
돌아갈 수 없게 되었지요,
어떤가요?
진정한 진실을 알기 위해서
필사적으로 노력한 것에 대한 댓가
아..아니
진짜 쿠도 신이치와
모리 코고로
그 두 사람이
지금까지 짊어지고 살아온 원죄의 일부분을
공유하게 된 기분은?"
그런
그들을 비웃는 듯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진심으로 안됬다고 여겨지는
후루미 렌야의
비꼬는 듯하면서도
안됬다는 뜻이 담긴듯한
허탈한 말투에
메구레 경부를 포함한
다른 형사들과
하쿠바 사구루는
자신들의 인생 처음으로
경찰 아니
형사가 된 것과
탐정이 된 것에 대해서
뼈가 시리도록 후회하고 있었고
차라리..........
진정한 진실을 알려고 하지 말 걸 이라는
후회와 자책감이
그들의 마음 속을 완전히 지배하고 있었다.............
여기서 나오는 마지막 부분은 드라마 시티헌터 1화분의 내용입니다.
김상중씨의 케릭터를 모리 코고로로 생각하신다면 이해가 빠를 겁니다.
그리고 그 이유가 모리 코고로가 이 소설에서 일본 육상자위대에서 일본 경찰로 옮긴 진짜 이유이기도 하지요.
이 소설을 읽으시면서 참고가 되셨으면 좋겠네요.
그리고 그 공안 부장이 이야기한 부분은
영화 ' 맨 프롬 엉클 ' 에서 나폴레옹 솔로가 CIA요원이 된 부분을 각색해서 묘사한 것입니다.
그런 부분도 참고를 해 주십시오.
델타포스 ( Delta Force, 1st SFOD-D(1st Special Forces Operational Detachment - Delta),
1. 개요[편집]
(Delta Force, 1st SFOD-D(1st Special Forces Operational Detachment - Delta),
(CAG(Combat Application Group, 과거 명칭),
(ACE(Army Compartmented Elements, 현재 명칭).[1]
미국 특수작전사령부의 티어 1에 속하는 특수부대. 미국의 일반적인 특수부대가 각 군 소속인데 반해 델타 포스와 DEVGRU는 JSOC이라는 독자적 지휘체계 내에 소속되어 있으며 일반 미 육군 특전단이 하는 것보다 훨씬 더 위험하고, 민감한 임무에 투입된다. 이런 임무 중에는 적국에 대한 군사공작이나, 적지에 민간인으로 위장해 들어가 군 첩보 수행, 대테러 작전 및 테러리스트에 대한 방해 및 예방공작[2], 그 외에도 평범한 민간인이 알아서는 안되는 정보를 막거나 이에 대응하는 임무들이 포함된다.
2. 특징[편집]
수행하는 임무가 워낙 중요한 탓에 심지어는 부대명칭과 존재 자체도 극비사항이었지만, 1980년대 이란 주재 미국 대사관 인질구출 작전당시 해군 헬리콥터들의 삽질로 인해 작전이 취소되면서 그 존재가 전 세계에 알려졌다. 여담으로 한 기자가 국방부 관계자에게 '델타 포스는 어떤 부대입니까?' 라는 질문에 답변하길 '델타는 항공사 이름입니다.' 라는 우스게소리가 있을 정도였다.
이들의 (일단 알려져있는) 정식명칭은 '제1특전단 델타 작전 분견대(1st Special Forces Operational Detachment - Delta)' 이다. 이 때문에 흔히 '델타 포스'라고 불리는 것이다. 미 육군 특전단(간단하게 말해 그린베레)에는 크게 세가지의 분견대가 있다. A분견대는 실제로 작전을 나가는 작전부대이고(특전팀),[3] B분견대는 A분견대를 지원하는 지원부대이며(특전 지역대 본부), C분견대는 A와 B분견대를 지원한다.(특전 대대 본부) 그린베레의 편제에는 이 세 분견대만 있는데, 아주 가끔 'D분견대' 를 모집한다. (바로 이 D분견대가 델타 포스 대원들을 뽑는 창구 역할을 한다.) 하지만 '델타 포스'는 사실 정식명칭이 아니며 그냥 별칭일뿐이다. 정식명칭은 CAG(Combat Application Group, 전투적용단)였지만 2010년 이후에는 ACE(Army Compartmented Elements, 육군구획요소)로 바뀌었다.[4]
대원 선발을 특수부대나 기타 정예부대의 지원자들에서 다시 걸러내는 작업을 거쳐서 하는지라 [5]세계적으로 한가닥하는 미군 특수부대들 중에서도 손꼽히는 정예부대이다. 미군 내에서 이들과 맞먹는 특수부대는 해군의 DEVGRU를 제외하면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다시 말해서 그냥 세계 최강이라고 생각하면 편하다[6]
델타 포스는 육군임에도 미국 특수작전사령부(USSOCOM) 산하의 육군 특수작전 사령부(USASOC) 소속(그린베레)이 아니라 아니라 합동 특수작전 사령부(JSOC) 소속으로 티어 1으로 구분되는 특수임무부대(SMU)이다. 이것은 날고 기는 미군 특수부대 중에서도 델타 포스가 최고의 부대 중 하나[7]라는 것을 나타내주는데, 왜냐하면 USSOCOM 산하에는 각 군의 특수전 사령부가 따로 있어서 예를 들자면 해군의 SEAL은 해군 특수전 사령부(NSWC)에만 소속되어 활동하는 식으로 운용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령부에 소속된 부대 중 하나라고는 해도 델타 포스 자체는 거의 독립된 사령부 수준의 예산과 자율성을 보장받는다.
대원들의 신분을 철저하게 감추기위해 군의 보수적인 높으신 분들이 보면 "저 양아치같은 놈들은 뭐야?" 라고 할만한 짓은 다 하고 다닌다. 그리고 그런 행동들이 거의 허용된다. 머리를 기르거나 염색하는 것은 기본이며[8][9], 실제 작전을 나갈때 말고는 그냥 근무시간에도 대놓고 사복을 입고 다닌다.[10] 어쩔 수 없이 군복을 입을 때도 신분을 감추기위해 군복에 붙이는 패치를 떼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행동도 군인처럼 하고 다니지 않는다. 영화 블랙 호크 다운을 보면 후트 (중사)가 제75레인저연대 소속 마이크 스틸 대위에게 기지 안에서 배식 도중 '총에 안전장치를 안 걸어놨다'고 지적을 당하는데, 후트는 "제 손가락이 안전장치입니다"라고 대꾸하고 그냥 가버린다(...).[11] 하지만 평소에 이런 짓을 하고 다녀도[12] 실전에 투입되면 명색이 '미 육군 최고의 특수부대원'들인만큼 보여주는 실력은 대단하다고 한다.[13]
3. 창설 과정[편집]
창설과정 항목 작성과정에서 김민수씨의 저서 '델타 포스'(전 2권)와 그림자 전사 특수부대(양욱 저)에서 많은 자료를 인용했음을 일러둔다.
'그린베레'라는 별명으로 유명한 미 육군 특전단은 여러가지 특수작전을 수행 가능한 정예부대이지만, 이들의 주 임무이자 장기는 게릴라전이다. 적 후방에 침투해서, 현지의 불평불만 세력을 규합해 게릴라를 조직해 후방에서 적의 뒷통수를 강타하며, 효율적인 민사심리전을 통해 현지인들의 지지를 얻어내어 궁극적으로 전쟁에서 승리하는 것이 그린베레의 가장 큰 임무이다.[14] 베트남의 정글에서 아프가니스탄의 산악지대에 이르기까지 그린베레는 이런 게릴라전을 수행해왔으며, 그 성과가 매우 뛰어나다는 사실은 아주 잘 알려진 사실이다.
다만 그린베레가 지나치게 게릴라전 수행에만 집중한 나머지 다른 임무들에 상대적으로 소홀한 면이 있다며 비판의 목소리를 내는 사람들이 소수나마 있었고, 후일 델타 포스의 아버지라 불리게 되는 전설적인 특수전 요원인 찰스 베크위스 역시 그 중 하나였다.
3.1. 이단아 베크위스[편집]
육군의 특수전 요원이었던 베크위스는 1962년부터 1963년까지 1년간, 영국 SAS에 교환장교로 파견되었다. 파견 보낸 그린베레나, 파견 가는 베크위스나 그들의 생각대로면 SAS에 미 육군 특전단의 앞선 기술들을 교육해줘야 정상이겠지만, 다들 알다시피 SAS는 서방권 특수부대의 큰형님과도 같은 존재라 오히려 영국군의 앞선 특수전 분야를 배워가기 바쁜 처지가 되어버렸다.[15]
파견근무를 마치고 본국의 제7특전단에 배치된 베크위스는 꾸준히 상부에 영국의 SAS와도 같은 '정예 직접타격(Direct Action) 부대'의 창설을 상부에 건의하지만, [16] 상부에서는 베크위스의 주장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기존의 특전단과 그 임무가 중첩되는 부대를 만들 필요가 없다.' '우리가 SAS보다 못난게 어디가 있어서 영국식 특수부대를 만들어야 하는가.' 같은 차가운 반응만이 돌아왔을 뿐이었다.
3.2. 프로젝트 델타: Detachment B-52 (B-52 분견대)[편집]
베트남에서의 베크위스의 모습 국제 전쟁사를 우화화한 Cat Shit One에서도 베크위스 소령으로 언급된다.
1965년, 베트남에 파견된 제5특전단에 도착한 베크위스는 '프로젝트 델타'라는 이름의 특수 정찰 프로젝트의 지휘를 맡게 된다. 이들은 제5특전단의 직속 부대로서, 사/여단급 작전의 수행에 최소 1주일 이상 앞서서 작전 지역내의 선행 침투 및 정찰, 포격과 폭격 후 BDA, 남베트남군 특수부대와의 연합작전 등의 다양한 임무를 수행하는 부대로, 후일 베트남에서 활약하게 되는 수많은 LRRP[17]의 기틀을 마련한 성공적인 프로젝트로 평가받게 되며, 이런 대성공에 베크위스의 활약이 큰 영향을 주었음은 두말하면 잔소리이다.
프로젝트 델타의 주둔지에 처음 도착한 베크위스는 대원들의 군기불량을 문제로 첫 만남에서부터 30명의 전 대원중 7명을 제외한 전원을 프로젝트에서 퇴출시킨다.[18] 이후 베크위스는 과거 SAS 파견경험을 살린 선발과정을 통해 40명의 대원들을 확보한다. 베크위스는 자신이 선발한 대원들과 함께 여러 임무들을 성공적으로 수행하였으며. 이 과정에서 과거 SAS에서의 경험을 실험해보며 자신의 '미국판 SAS' 창설 계획의 설계도를 그려나간다.[19]
프로젝트 델타에서 '돌격하는 찰리'(Charging Charlie)라는 별명을 얻은 베크위스는 안타깝게도 1966년에 임무수행 도중 부상을 입고[20] 후송되어 본토의 포트 베닝으로 후송되지만, 여기서 다시 한번의 기회를 잡게 된다. 1967년 당시 포트 베닝의 레인저 부대[21]의 지휘관이던 에드워즈 대령이 베크위스의 SAS 개념이 적용된 레인저 대대를 만들어 베트남에 파견하려 한 것이었다. 에드워즈 대령은 그와 같은 구상을 베트남에 가서 웨스트모어랜드 장군에게 직접 건의하지만, 웨스트모어랜드 장군은 그 대신에 LRRP(장거리 정찰대)를 밀어주면서 계획은 다시 수포로 돌아갔다.
3.3. 델타 포스, 탄생.[편집]
베크위스가 델타 포스를 창설할 수 있었던 것은 1975년, 포트 브랙의 JFK 센터[22]에서 근무 도중, JFK 센터의 지휘관인 로버트 킹스턴 소장의 도움을 받게 되면서였다. 베크위스와 킹스턴 장군은 사이가 좋은 편이었던데다, 킹스턴 역시 영국군 공수부대에서의 교환근무 경험이 있던지라 베크위스의 '미국판 SAS' 창설계획에 대한 지지자였는데, 킹스턴은 자신과 친한 육군의 작전/계획 부참모총장(The Army's Deputy Chief Of Staff For Operations And Plans)인 에드워드 마이어 장군을 통해 국방성에 베크위스의 SAS 프로젝트를 소개해주면서 베크위스의 계획에 새로운 전기가 마련된다.
이후 1976년 8월, 향후 델타 포스의 창설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될 사건이 벌어진다. 킹스턴 장군과 베크위스 대령이 보병학교에서 빌 뒤푸이 장군[23]에게 SAS의 우월함과 미국판 SAS의 필요성에 대해 소개하게 되었는데, 뒤푸이 장군 역시 육군 특전단이 지나치게 게릴라전에 쏠려있고, SAS와 같은 직접적인 특수전을 외면한다고 생각하던지라 베크위스의 계획에 찬성하여 후일 델타 포스라 불리게 될 '미국판 SAS'의 창설에 큰 도움을 주며 그 계획을 펜타곤까지 이끌어준다.
특히 뒤푸이 장군은 이 과정에서 베크위스에게 중요한 조언을 하나 해주는데, 이는 새로이 창설될 특수부대가 미군의 그 어느 특수부대도 수행하지 않는 새로운 능력, 즉 대테러작전 수행 능력을 갖추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후 1977년 육군 참모총장을 앞에 모셔둔 프레젠테이션에서 SAS스러운 새로운 특수부대 창설에 대한 긍정적인 반응을 끌어낸 베크위스에게 드디어 새로운 특수부대의 조직과 장비 편제, 그리고 필요 예산안을 준비하라는 요구가 들어오게 되자만, 하필 이때 베크위스의 가장 든든한 후원자였던 JFK 특수전 센터장 킹스턴 장군이 제1특전단의 K분견대[24]로 전출되고, 이후 특수전에 대해선 캄캄절벽인데다 베크위스의 프로젝트에 대해서 이해를 못하는 맥멀 장군이 새로운 센터장으로 부임하게 되는데, 맥멀 장군은 새로운 특수부대의 등장을 달갑잖게 여기는 기존의 특수부대 지휘관들의 말빨에 넘어가 베크위스와 기존 특수부대원들 사이에서 오락가락하는 애매한 태도를 보였으며, 새로운 특수부대가 자신들의 입지를 약화시킬 것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던 레인저나 그린베레의 견제를 받는데다, 육군 참모총장의 공식 부대창설 재가는 떨어지지 않는 불안한 상황이 계속되어 베크위스의 염통을 쫄깃쫄깃하게 만들었다. 특히 베크위스의 속을 박박 긁었던 것이 바로 블루 라이트라고 불리는 제5특전단 예하의 임시 대테러부대였는데,[25] 원래 창설 목적은 델타 포스가 대테러전 능력을 확보할 때까지의 땜빵이었지만 맥멀 장군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고 있는데다 블루 라이트를 델타 포스를 대신하는 정식 대테러부대로 키우려는 움직임이 활발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와 같은 지지부진한 상황은 엉뚱하게도 독일에서의 도움(?)으로 해결이 되는데...
1977년 10월, GSG-9이 독일 적군파에 의해 납치되어 소말리아에 착륙한 루프트한자 여객기에 대한 인질구출작전을 성공했다는 소식이 미국까지 날아온 것이다. 이 소식을 통해 군 상층부에서 대테러전 능력에 대한 필요성을 다시금 절감하게 되면서 베크위스의 델타 포스 창설계획은 다시금 전폭적인 지지를 받게 되며, 이로 인해 1977년 11월 19일, 델타 포스의 본격적인 '가동'에 대해 군 수뇌부의 공식적인 허가가 떨어진다. 베크위스의 15년간의 노력 끝에, '미국판 SAS'이자, 후일 세계 최강의 특수부대로 명성을 드높이게 될 델타 포스가 드디어 탄생한 것이다.
4. 작전사례[편집]
4.1. 1980년대의 특수작전[편집]
아래 항목들에 소개된 몇 가지 작전 이외에도 수많은 작전들이 중남미, 아시아, 아프리카, 중동 등 세계 각지에서 델타 포스에 의해 성공적으로 수행되었으며 또한 동맹국 대테러부대의 기량 향상을 위한 교관으로서의 파견 임무도 자주 다녔다. 한국 육군의 제707특수임무대대가 창설 초창기부터 델타 포스와 긴밀한 관계를 가지고 있던 것도 다 이유가 있다.
4.1.1. 쓰라린 첫 경험 : 독수리 발톱 작전[편집]
Operation Eagle Claw
1979년, 이란에서의 이슬람 원리주의 혁명이 성공하면서 이란 미국 대사관이 이란 혁명수비대에 점거되는 사건이 벌어진다. 대테러전 능력을 언론 플레이 강조하며 입지를 쌓아왔던 델타 포스에게 찾아온 첫번째 실전의 기회였다. 문제는 당시 미군과 정보기관이 좀 많이 개판이었다는 것이었다. 특히 CIA의 경우는 도덕외교를 추구하는 카터 행정부의 삽질로 수많은 인력들이 감축된 상황이라 이란 내에 있는 요원이 단 한명도 없는 충격적인 상황이었다.(...) 그 탓에 델타 포스의 초기 정보수집은 무려 TV 뉴스화면을 통해 이뤄져야 했다.
그 못잖게 심각한 문제는 작전계획 수립단계에서 숟가락을 얹어보려는 각군의 이해관계가 뒤엉켜 점점 복잡해졌다는 점이었다. 그 결과 나온 작전계획은 대충 이러하다.
1단계 : 4월 20일, 07시 30분 델타 포스가 현지에서 도움을 줄 이란인들과 합류한 뒤 수송기 편으로 독일의 프랑크푸르트로 이동한다. 여기서 대사관 구출과 동시에 이란 외무성으로 분산 격리된 인질들을 구출할 그린베레 작전팀과 합류해 이집트로 이동한다.
4월 21일, 이집트에서 최종 리허설과 작전 정보를 갱신한뒤, 24일 오만 근처의 마시라 섬으로 이동, 18시에 작전 병력과 장비를 수송할 3대의 MC-130과 헬리콥터 연료를 탑재한 3대의 EC-130기로 이란을 향해 출발한다.
2단계 : MC-130 1번기는 다른 수송기들보다 먼저 이란 영공에 도착해 수송기의 착륙지점인 LZ '데저트 원' 상공에 도달해 미리 정찰팀이 준비해둔 비컨을 원격 조종으로 작동시켜 위치를 확보하고, FLIR로 주위를 살펴본 뒤 데저트 원에 착륙, 이후 다른 수송기 5대도 착륙해서 델타 포스와 델타 포스의 지원을 담당한 레인저 대원들을 내려 LZ를 확보. 이어 항공모함에서 작전수행에 필요한 8대의 RH-53D 헬리콥터들까지 도착하면 연료를 실어온 EC-130기들이 RH-53S에 대한 재급유를 시작하는데, 이 때, 헬리콥터가 6대 이하라면 작전은 취소함. 필요한만큼의 헬리콥터가 확보된다면 최소한의 작전요원들을 탑승시킨 뒤 일출 1시간 전까지 새로운 은거지점 '데저트 투'로 이동하고, 수송기들은 레인저들을 탑승시킨 뒤 다시 마시라 섬으로 복귀한다.
데저트 투에 도착한 헬리콥터들은 대원들을 내려주고 다른 은거지점 '피그바'에 가서 헬기를 위장시켜 숨긴 뒤 대기. 델타 포스는 이미 현지에 침투해 정보수집 및 은거지 구축을 하고 있던 델타 포스 선발대와 접선한뒤 테헤란 근처의 와디에 도착해 낮 동안 대기.
3단계 : 선발대원 2명이 동이 트기 전에 테헤란으로 돌아갔다가 밤이 되면 1대의 픽업 트럭과 1대의 버스를 타고 델타 대기지점으로 합류. 두 차량중 하나는 6명의 운전수와 6명의 통역을 태우고 작전 기간중 델타 포스를 테헤란으로 수송할 트럭들을 숨겨둔 창고로 이동하며 다른 한 대는 베크위스와 다른 12명의 델타 포스 대원들을 태우고 테헤란 시내에 잠입해 대사관 주변을 정찰.
베크위스가 정찰을 마치고 돌아온 뒤 20시 30분, 델타 포스는 6대의 트럭에 분승해서 테헤란 시내로 강습. 외무성에 억류된 다른 인질들을 구출할 그린베레 작전팀은 버스에 탑승해서 델타 포스와 따로 이동.
4단계 : 미 대사관에 도착한 델타 포스는 3개 팀으로 나뉘어 각 팀의 구역에서 위치를 잡고 작전을 수행. 화력이 취약한 구출부대를 위해 상공에는 AC130 건쉽의 지원이 준비됨. 대사관이 장악되면, 미리 준비하고 있던 헬리콥터들이 인질과 구출대원들을 퇴출시킴.
5단계 : 구출작전이 진행되는 동안, 지프와 오프로드 오토바이를 장비한 75명의 레인저 중대를 태운 MC-130 2대가 건쉽의 호위를 받아 이란군의 버려진 활주로를 강습. 활주로가 확보되면 사우디에서 대기중이던 C-141 수송기가 도착해 구출부대의 도착을 기다림.
구출부대와 인질들이 레인저가 확보한 비행장에 도착하면 C-141기에 탑승해 F-14 전투기의 엄호를 받으며 탈출. 레인저는 구출부대가 타고 온 헬리콥터들을 파괴시킨 뒤 타고 왔던 MC-130편으로 귀환.
... 보다시피 엄청나게 복잡한 작전이다. 거기다 특별한 당위성없이 단순히 각 군의 이해관계에 따라 작전 규모가 커진 부분도 있는데, 대표적인 사례가 앞으로 작전을 대차게 말아먹을 헬리콥터에 관련된 사항들이다. 작전에 사용되기로 한 해군의 RH-53D은 본격적인 특수전용이 아닌 단순한 기뢰 제거용 소해 헬리콥터들이었다. 물론 델타 포스측에서는 이 부분을 걱정했고, 구출작전을 총괄하는 JTF의 공군 특수전력 핵임자였던 제임스 카일 대령은 해군의 소해 헬리콥터 대신 공군 CSAR 비행대의 HH-53 헬리콥터와 파일럿들을 동원하자고 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리고 운명의 작전 개시일. 데저트 원에 무사히 전개한 레인저와 인질구출부대인 델타 포스는 마침 근처를 지나가던 민간 차량들을 정지시키고 인질구출부대인데도 차량 안의 민간인들을 억류시키며 LZ에서 대기했다. 중간에 지나가던 유조트럭 1대가 불타오르고 트럭 운전사는 도망쳐버리는 난장판이 벌어졌지만 그래도 작전은 그럭저럭 순조롭게 진행되었고, 이윽고 다른 수송기 5대도 꾸역꾸역 착륙해서 헬리콥터들을 맞을 준비를 하는데...
...아무리 기다려도 헬리콥터가 안 온다.
한참을 기다리자 그제서야 여기저기서 1대씩 서로 다른 방향에서 털레털레 날아온 헬리콥터는 총 6대뿐이었다. 알고보니 날아오는 도중 모래폭풍을 만났고, 작전을 위해 훈련을 받았다고는 하지만 이런 야간비행, 그것도 특수전 비행에는 익숙치 못했던 헬리콥터 조종사들은 기체 고장문제까지 겹쳐서 제대로 LZ에 오지 못했던 것이다. 그래도 아슬아슬하게 6대가 모였으니 작전을 어떻게든 진행하려는 찰나, 지상에서 1대의 헬리콥터가 추가로 고장나버려 헬리콥터가 부족하게 되었고, 결국 작전은 제대로 시작하기도 전에 취소되어 다시 복귀하게 되는데, 이 과정에서 헬리콥터 1대가 급유를 해주던 C-130기를 들이받아 수송기 승무원 5명과 헬리콥터 승무원 3명이 사망하는 참극이 벌어졌다.
복귀한 뒤에야 헬리콥터들의 상태가 그렇게 개판이었던 이유가 밝혀졌다. 헬리콥터들을 정비한 정비사들은 훈련때부터 함께 해온 이들이 아니라서 이 헬리콥터들이 무슨 일을 하러 가는지도 모르고 통상적인 수준의 정비만 했던 것이었다. 가뜩이나 불안불안한 헬리콥터들이었는데 거기에 결정타를 날린 셈이었다.
결국 델타 포스는 현지의 정보망이 완전히 붕괴된 상태에서도 자체 정찰팀을 침투시켜 구출작전에 필요한 정보를 수집하고 차량과 은거지까지 구축하는 등 상당한 성과를 보여줬음에도 불구하고 '실패한 부대'라는 오명을 뒤집어 써야 했으나, 이런 뼈아픈 실패는 곧 미군에게 중요한 교훈을 남겨주었다.
이글 클로의 대실패를 통해서 얻은 교훈들을 통해 카터 행정부 들어서 거의 씨가 말라가던 특수전 부대의 재정비, 전문적인 특수전 비행대[26]의 창설, 원활한 합동 특수작전의 수행을 위한 통합 특수전 사령부USSOCOM와 합동특수전사령부(JSOC)의 창설 등이 이루어졌으며, 델타 포스는 이후 계속되는 작전들을 통해 억울하게 뒤집어 쓴 오명을 만회한다. 안타깝게도 델타 포스뿐만 아니라 미군 전체가 단단히 벼르고 있던 2차 구출작전은 인질 석방으로 인해 시도조차 못하고 취소되지만...[27]
4.1.2. 그레나다 침공작전[편집]
Operation Urgent Fury (긴급분노작전)
1983년 10월 25일에 벌어진 그레나다 침공작전에는 당연히 델타 포스도 동원되었다. A 스쿼드론은 섬의 세인트 조지 시 시내에 위치한 포트 조지와 정치범이 억류되었을 것으로 추정되던 포트 루퍼트, 그리고 시내의 전화국과 무선 중계국을 강습하기로 되어 있었으며, B 스쿼드론은 리치몬드 힐 교도소를 강습해서 정치범들을 구출하고 포인트 살라니스 공항에 강습하는 레인저를 엄호하기로 되어 있었다. 이 중 A스쿼드론의 작전은 레인저가 공항을 점령한 뒤 공항에 집결하기로 되어 있는 TF-160의 헬리콥터들의 지원이 필요했기에 B스쿼드론의 작전이 먼저 시작되었다.
그러나 문제는 교도소 주변의 대공화기의 존재 여부를 모르고 갔다가 대공포화에 정통으로 걸려들어서 1대가 추락하고 2대가 대파되는 등의 피해를 입으며 강습은 취소되고, 결국 B 스쿼드론은 교도소 강습을 포기하고 두번째 임무였던 공항 강습작전 지원과 추락한 기체의 생존자 구조에 투입된다.
A 스쿼드론은 레인저가 점령한 공항에 수송기편으로 착륙해서 헬리콥터 강습을 시도하지만 이곳들 역시 격렬한 대공사격 탓에 제대로 된 구출작전을 수행하지 못하였으며, 결국 델타 포스와 브랜드 X[28]의 공습유도를 통해 파괴되었다.
이렇게 보면 델타 포스가 삽질을 많이 한 것 같고, 실제로도 사실이다. 다만 그레나다 침공작전은 정규군이고 특수작전이고 구분할 것 없이 제대로 일이 풀린 경우가 거의 없었고, 델타 포스 역시 이런 총체적 난국탓에 고생을 한 것이지만... 이 자리에 있었던 슈워츠코프 장군은 베트남에서부터 생각해왔던 특수부대에 대한 불신이 더더욱 커져갔고, 이는 7년 뒤 여러 특수부대에게 부메랑처럼 되돌아온다.
4.1.3. 아킬레 라우로 호 구출작전[편집]
4명의 팔레스타인 테러범들에게 이탈리아의 여객선 아킬레 라우로 호가 납치되는 사건이 벌어지자, JSOC에서는 델타 포스와 SEAL 6팀의 합동 구출부대를 편성해 구출작전을 준비했고, 바다에서의 구출작전이라는 임무 특성상 구출작전은 SEAL 6팀을 중심으로 델타 포스가 지원을 하는 식으로 준비되었다.[29] 그러나 문제는 구출작전 준비가 제대로 되기도 전에 테러범들이 이집트에 자수해버렸다는 것이었다.(...) 따라서 구출작전은 취소되고 구출부대는 그대로 짐싸서 본국으로 귀환하는가 싶었는데... 이들에게 새로운 명령이 떨어진다.[30]
보잉 737기 편으로 이집트 밖으로 추방되기로 결정됐다는 납치범이 탑승한 여객기를 항공모함 CV-60 사라토가에서 발진한 F-14 톰캣을 이용해 이탈리아의 시고넬라 공군기지에 착륙, 이미 미국인 인질들을 살해한 테러리스트들을 SEAL 제6팀과 함께 체포한다는 새로운 작전이 준비되었다. 한편 튀니지로 날아가던 여객기는 난데없이 F-14 톰캣 전투기에 둘러싸였다. 당황해서 본국으로 교신을 시도하지만 이미 여객기는 미 해군의 EA-6에 의해 F-14를 제외한 어디와도 통신이 불가능한 상황이 되었다. 결국 여객기는 미군의 유도 아래 이탈리아의 시고넬라에 소재한 미군과 이탈리아군이 같이 쓰는 활주로에 착륙했고, 구출부대원들을 태운 수송기 역시 미리 기지에 도착해서 테러리스트들을 체포할 만반의 준비를 갖춘 상태였다. 그러나 여객기 안에 이집트 외교관이 탑승하고 있던 바람에 체포작전이 지체되는 사이, 자국 영토에서 벌어지는 갑작스런 미군의 대규모 주권침해 상황[31]에 빡친 이탈리아 군/경병력이 나타나 난데없이 이탈리아측과의 대치가 벌어지고, 결국 망나니 마친코를 대신해 새로이 SEAL 6팀의 사령관이 된 현장 지휘관 로버트 곰리 대령[32]은 이탈리아측과 협상을 통해 테러리스트들을 이탈리아 측에서 체포해 이탈리아 사법당국에 넘기기로 결정하면서 사건은 일단 마무리되었다.[33]마친코였으면 이탈리아군과 싸웠을지도 다만 이들중 PLO의 핵심 간부 아부 아바스는 다른 1명과 이탈리아에서 빠져나와 이라크로 도피해 미군을 심히 열받게 만들었지만, 결국 2003년, 이라크를 침공한 미군이 아부 아바스를 체포하며 마무리되었다.
4.1.4. 파나마 침공작전[편집]
Operation Just Cause(정당한 명분 작전)
파나마 침공당시 델타 포스가 맡은 임무는 두 가지로, 첫째는 노리에가의 체포였고, 둘째는 파나마에서 반정부활동을 하다 체포되어 파나마군에게 억류된 미국인 인질 커트 뮤즈를 구출하는 임무였다.
4.1.4.1. 노리에가 체포작전[편집]
Operation Nifty Package (니프티 패키지 작전) 훌륭한 포장물(선물) 작전?
노리에가 체포작전. 다만 델타 포스가 노리에가의 은신처를 덮쳤을때 노리에가는 이미 도주한 뒤였다.메이슨과 우즈가 데려갔다 나중에야 파나마 시티 안의 바티칸 대사관으로 도주했음이 확인되었고, 미군은 헬리콥터에 앰프를 싣고 대사관 상공에서 시끄러운 락 음악을 틀어놓으며 노리에가를 압박했다. 결국 노리에가가 다음 해인 1990년 1월 3일에 투항하면서 작전은 종결되었다.
여담이지만, 해군의 SEAL팀도 이 작전에서 두 가지의 임무를 부여받았다. 노리에가의 국외 탈출을 막기 위해 발을 묶는 작전들이었는데, SEAL 2팀은 노리에가의 전용 선박 'Presidente Porras'를 파괴하는 임무를, SEAL 4팀은 푼타 파이틸라 공항을 접수, 노리에가의 전용기인 걸프스트림을 파괴하는 임무를 부여받았다. SEAL 2팀은 해군 특수부대의 기본기인 수중침투능력을 발휘해 팀원들의 사상자 없이 성공적으로 임무를 수행했지만 SEAL 4팀의 경우는 활주로 한가운데에서 파나마군의 매복에 제대로 걸려 4명이 전사(1명은 과다출혈로 전사.)하는 대 참사가 벌어졌다. 이 사건 이전에도 그랬지만, 파이틸라 공항 전투 이후로 M4 카빈에 M203을 장착해서 사용하는 대원들이 많아졌다.
4.1.4.2. 커트 뮤즈 구출작전[편집]
Operation Acid Gambit(매서운 한수 작전)
커트 뮤즈[34]가 수감된 모델로 교도소의 코앞에는 파나마군 사령부가 있었기 때문에 구출작전에 큰 위협이 될 것이라고 판단되었으며, 특히 파나마군이 커트 뮤즈의 구출을 시도할 경우 뮤즈를 살해하겠다고 협박하고 있었다. 파나마군의 눈을 돌리기 위해 TF-160의 AH-6 무장 헬리콥터 2대와 공군의 AC-130이 파나마군 사령부를 공격하여 시선을 끄는 가운데, 델타 포스 구출팀 16명을 태운 4대의 MH-6 리틀버드가 교도소를 강습했다. 교도소 내부와 인접한 파나마군 사령부 건물에서의 산발적인 저항이 있었지만 이를 간단히 제압하며 인질 구출에 성공한 델타 포스는 뮤즈에게 방탄모와 방탄복을 입힌뒤 타고 왔던 MH-6에 함께 타고 퇴출하지만, 퇴출 도중 뮤즈와 다른 4명의 델타 포스 대원들이 타고 있던 MH-6가 추락하는 사태가 벌어졌다.[35]
그러나 기적적으로 헬리콥터에 탄 사람들은 모두 무사했고, 이들은 하나둘 정신을 차리고는 인접 건물에 숨어 파나마군과의 교전에 들어갔다. 이윽고 근처에서 임무를 수행중이던 미 보병사단의 장갑차가 이들을 구출하며 작전은 성공리에 끝났다.
4.2. 1990년대의 특수작전[편집]
전형적인 90년대 스타일의 델타 포스 대원들.
소련도 무너지고 테러와의 전쟁도 없던 시절이라 지금보다는 많이 평화롭던 시대이지만, 델타 포스는 그럼에도 여기저기서 굴렀다.(...)
80년대 특수작전 항목처럼, 여기서도 서술되지 않은 많은 작전들이 있다. 페루 일본 대사관 인질극과 같은 제3국에서 벌어진 테러에 대한 군사고문이라든가, 유고 슬라비아에서의 특수작전 등등...
4.2.1. 걸프전과 스커드 사냥[편집]
1990년, 우여곡절 끝에 쿠웨이트를 침공하며 후세인과 미국의 기나긴 악연이 본격화되고, 곧이어 다국적군이 사우디아라비아에 증파되면서 걸프만은 점점 전운이 감돌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 다국적군의 총사령관이 우리 모두가 이름을 들어봤을 노먼 슈워츠코프 장군이다. 다만 슈워츠코프는 베트남과 그레나다에서 특수부대의 삽질을 똑똑히 목격했던지라 특수부대에 깊은 불신과 혐오감을 갖고 있던 탓에 기껏 사우디에 집결한 각국의 특수부대는 적 후방에서의 소규모 정찰작전이나 화력 유도 등 평범한(?) 임무만을 수행했을뿐, 큰 활약을 하지 못했다. 그러나...
이라크가 이스라엘을 전쟁에 끌어들이기 위해 이스라엘에 스커드를 발사하기 시작했다.
가만히 있다 싸다구를 한대 얻어맞은 꼴이 된 이스라엘은 당장 이라크에 대한 군사행동에 나서겠다며 별렀지만, 이는 미국으로서도 최악의 상황이었다. 기껏 이번 전쟁을 종교 문제에서 분리시키려고 아랍 국가들까지 모아서 다국적군을 만들었는데, 이스라엘이 끼어버리면 다국적군에서 아랍 국가의 대규모 이탈과 종교 전쟁의 성향이 부각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실은 이라크도 이를 노리고 저지른 나름 '신의 한 수'였던 것이다.
이 때문에 미국은 이스라엘을 달래기 위해 이스라엘에 패트리엇 미사일 포대들을 전개하는 한편, 다국적군으로 전개되어 있던 델타 포스와 영국의 SAS에게 스커드 사냥 임무를 맡기게 된다.[37]
델타 포스와 델타 포스의 작전팀에 배속된 CCT 요원들은 이윽고 각 팀의 수색범위 내에서 발견되는 스커드 미사일 발사차량들에 대해 항공폭격 유도는 물론, 그것이 여의치 않으면 타고 있던 차량의 중화기나 대전차 로켓, 유탄발사기, 대물 저격총, 심지어 망치까지 사용하여 가용 가능한 모든 전력을 이용해서 때려부수는데 앞장섰다.
물론 이라크군의 더미에 낚인다거나, 스커드 미사일 발사 준비단계를 대폭 생략하고 냅다 발사하고 도망치는 등의 대응[38] 탓에 SAS와 델타 포스의 스커드 사냥은 전술적으로는 큰 성공을 거두지는 못했지만, 이스라엘의 걸프전 참전을 억제하는 등 전략적/정치적으로는 목표 달성을 이뤄냈다고 할 수 있다.
4.2.2. 소말리아에서의 아이디드 체포작전[편집]
Operation Gothic Serpent(고딕 서펀트 작전)
모가디슈 전투 문서 참조
4.2.3. 1990년대 말 ~ 2000년의 아프간 작전.[편집]
빈 라덴과 알 카에다는 이미 1990년대부터 미국을 상대로 각종 테러를 저지르며거기다 클린턴 사진에다 AK 소총을 난사하는 어그로까지 끌면서 미국의 심기를 건드리고 있었고, 이 탓에 90년대 말경부터 이미 아프간에서는 CIA가 마수드의 군벌과 회합을 가지는 등 빈 라덴을 제거하기 위한 공작이 진행되고 있었다. 하지만 일부 실무자들이 그렇게 갈망하던, 델타 포스를 비롯한 병력을 투입해서 빈 라덴을 체포 또는 사살하려는 계획은 끝내 실현되지 않았는데, 이는 아프간 내부에 대한 정보 부족 등의 여러가지 문제는 물론, 93년의 아이디드 체포작전의 유혈극이 아직도 생생한 까닭에 결국 시행되지 못했다. 대신 해군이 아프간의 알 카에다를 향해 토마호크를 발사했지만, 빈 라덴의 숨통을 끊지는 못하고 오히려 빈 라덴의 화를 더욱 돋구고 말았다.
결국 2000년에 다시 빈 라덴 체포작전을 계획한다. 60여명의 델타 포스(일설에는 델타 포스와 DEVGRU의 합동부대라는 이야기도 있다...) 대원들을 동원해 아프간에 침투시켜 빈 라덴을 잡아온다는 작전으로, 2000년 즈음엔 1998년과 달리 군에서도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던데다 CIA 역시 아프간 내에 상당한 정보망을 구축하고 있던 탓에 작전 성공 가능성도 상당했다.
하지만, 클린턴 행정부는 결국 이 계획도 포기하고, 후임 부시 행정부는 아프간 문제에 대해 클린턴만큼의 개념도 없었다. 어느 정도였는지 알아볼 수 있는 대표적 사례를 하나 살펴보자.
2001년 1월 들어선 부시 행정부는 알 카에다와 같은 비 국가 활동세력을 상대하는 대신 마치 냉전시대의 외교에 더 어울릴 것 같은 정책을 실행하며 다른 국가들의 위협에만 치중했다. 그들은 탄도 미사일 방어를 비롯해 기타 일류 방어체계에 역점을 두고 불쾌한 현실을 보여주는 대테러 분야는 소홀히 했다. 공작원의 관점에서 볼 때, 나는 클린턴 행정부와 차이를 느낄 수 없었다. 어떤 차이점이 있다면, 그것은 새로운 백악관 진영이 알 카에다에 훨씬 더 무관심한 것처럼 보인다는 것이었다.
새 행정부는 알 카에다를 상대하는 우리의 전략을 수정할 것이라고 선언했지만 그것은 다른 많은 문제에 비해 우선순위가 낮은 것 같았다. 무엇을 새로운 전략으로 삼아야 하는지 아무도 내게 묻지 않았다. 알 카에다에 대해 백악관이 특정해서 제기한 것 중 내가 기억할 수 있는 유일한 질문은 알 카에다와 이라크의 동맹에 관한 것이었다. 그것도 대테러센터의 한 분석가가 2001년 여름에 내게 말해서 알게 된 것이었다.
"부통령실에서 오사마 빈 라덴과 사담 후세인의 동맹에 대해 알고 싶어합니다." 그녀는 그렇게 운을 땠다.
"무슨 동맹이라고?" 내가 물었다.
"부통령께서 알 카에다와 이라크 사이의 동맹에 대해 질문했습니다. 그들이 서로 협력하고 있는지, 만약 그렇다면 어떤 방식인지를 물었습니다."
"이번 주에 내가 들은 것 중 가장 멍청한 질문이군."
"부통령께 그렇게 말하기를 바라세요?" 분석가가 물었다.
"어… 그렇지는 않아." 나는 그렇게 대답했다. …(후략)[40]
그리고 그 결과는 믿기 힘든 참혹한 현실이 되어 21세기의 시작을 알렸다.
4.3. 2000년대 이후의 특수작전[편집]
간단히 요약하자면 테러와의 전쟁. 오늘도 델타 포스는 아프간과 이라크는 물론 중동 여기저기, 필리핀 등 세계 각지에서 이슬람 테러단체를 때려잡느라 여념이 없다.
여담이지만, 결국 빈 라덴을 직접 제거한 것은 델타 포스가 아니라 DEVGRU였다. 죽쒀서 물개줬다[41]
2013년 10월 5일에는 1998년 케냐/탄자니아 미 대사관 동시 폭파 테러를 지휘한 알 카에다 상급 지휘관 아부 아나스 알 리비를 리비아 트리폴리의 은거지에서 납치하는데 성공?#, 미 본토로 끌고 와 재판에 회부했다. 여담이지만 같은 시각 해군의 DEVGRU는 케냐 나이로비 동시다발 테러를 저지른 소말리아 알 샤바브 지휘부 체포를 위해 모가디슈로 강습했으나 함정에 걸려드는 바람에 임무에 실패하고 철수하기도 했으며, 이것 때문에 미국의 몇몇 밀리터리 인터넷 사이트 게시판에서는 델타 포스와 DEVGRU 중 누가 더 세냐는 키보드 배틀이 또 벌어지기도 했다.
IS가 미국인 기자 제임스 폴리를 납치하자 2014년 7월 4일 구출을 시도했다. 그러나 인질은 이미 IS가 다른 곳으로 옮긴 뒤였고, 이윽고 델타 포스 대원들과 IS간의 전투가 벌어졌다. 델타 포스는 IS 대원 5명을 사살했으나, 델타 포스 대원 1명 및 요르단인 1명이 부상당하고 작전은 실패했다.[42]
해군의 DEVGRU는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대원들 사진이 공개돼서(물론 얼굴은 가리지만) 대한민국의 군장 매니아들도 2013년 현재 DEVGRU 대원들의 개인장비를 완벽하게 모으는 사람들이 상당수 있을 정도인데 반해, 델타 포스는 2000년대 들어서는 정말 사진 한 장 나오지 않는다. 인터넷상에 델타 포스 사진이라고 나오는 것의 대다수는 그린베레 사진으로 발표된 사진을 오인한 것이다. 그래서 군장 매니아들도 웬만해서 2010년대 델타 포스 재현은 꺼리는 편이다.
2015년 델타 포스에서 IS 고위지도자를 사살했다고 한다.올레
2015년 10월 22일 쿠르드 페쉬메르가[43]소속 대테러부대와 함께 이라크 하위자 인근 구금시설을 급습하여 IS대원 20명을 사살하고 인질 70명을 구출했으나 이 과정에서 델타포스 대원 한명이 숨졌다.
5. 출신 인물[편집]
찰스 베크위스 - 위에서 자주 언급했기 때문에 생략.
폴 하우 - 영화 '블랙 호크 다운'의 샌더슨 중사가 폴 하우를 모델로 한 캐릭터라고 한다. 요즘은 전술사격 강사로도 활동하는듯 한데, 누가 총에 엑세서리를 달고 다니는 것을 가능한 최소화하는 8090 특수부대 출신 아니랄까봐 광학장비를 부착한 총을 쏘는 것을 보기 힘들다.(...) 찰스 베크위스의 사위이기도 하며, 딸 역시 특수부대는 아니지만 공군에 입대해서 AC-130 건쉽의 승무원이 되어 복무중이라고 한다. 특수부대와 굉장히 친한 비행기임을 생각해보면 꽤 의미심장한 대목이다.
래리 빅커스 - 델타 포스 출신의 전술사격 강사. 업계에서 가장 인기있는 강사 중의 하나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위의 애시드 갬빗 작전에도 참여했다고 한다.
마이클 페논 - 델타 포스 출신의 전술사격 강사. 미 해병대 포스 리콘 출신으로 훗날 육군으로 소속을 옮겨, 육군 특전단을 거쳐 델타 포스 대원이 되었는데, 놀라운 사실은 IED에 의해 신체적인 장애를 가지게 되었지만 이를 극복하고 델타 포스 대원으로서의 소임을 다했다는 것이다.
[1] 이런 명칭들조차 논란이 없지 않다. 대외적으로는 일단 델타라고 홍보는 하는데 실제 명칭이 어떻게 바뀌었는지는 ACE일 것이라고 알려져 있다 뿐이지 실제 명칭이 공식적으로는 뭐라고 알려진 바는 없다. 알려지면 그 즉시 코렁탕 배달...
[2] 테러리스트들이 테러를 벌이기 전에 역테러를 가하는 것
[3] 미드 A특공대의 제목 A-Team이 바로 이 A분견대를 뜻한다.
[4] 왜 이런 애매한 이름이 되었는가하면 ACE를 만들기 위한 말장난일 따름이다. 특수전사령부의 상징이 스페이드이기도 하다.
[5] 델타 포스가 창설된지 얼마 지나지 않은 시기에 한 델타 포스 대원이 "저는 82공수사단(특수부대를 제외한 정규 미 육군부대 중에서는 최고의 부대 중 하나)에 있었습니다. 거기서 저는 최고였죠. 하지만 여기서는 항상 다른 친구들 따라가느라 바쁩니다"라고 말했다는 일화가 있다.
[6] 실제로 델타 포스는 서방 특수부대 중 전술사격 실력이 가장 뛰어난 것으로 알려져있다.
[7] 당연한(?) 얘기이지만 JSOC에는 델타 포스만 있는 것은 아니다. 델타 포스와 유사한 목적으로 만들어진 미 해군 특수전 연구개발단(US Special Warfare Development Group 약칭 DEVGRU)이나 공군의 24특수전술대대 등의 최정예부대도 이곳 소속이다. 즉 JSOC에는 델타 포스 대원들과 비슷한 실력을 가진 다른 부대 대원들도 우글거린다는 얘기다.
[8] 사실 이건 필요하면 민간인으로 위장하려는 작전상의 이유도 있다. 영화 블랙 호크 다운 초반에 델타 포스 소속 노만 '후트' 깁슨 중사(에릭 바나 紛)가 신문기자로 위장해 모가디슈 한복판에서 사령부에 정보를 전달해주는 것을 보면 이해하기 쉽다. 위에서 언급된 The Unit에서도 대원들이 민간인으로 위장하는 경우가 많다.
[9] 심지어는 수염이 덥수룩한 경우도 있다. 미군은 콧수염외에는 얼굴의 어떤 모발도 기를 수 없게 되어있다.
[10] 물론 작전에 나갈때도 사복을 입는 경우가 많다. 1980년 이란 주재 미 대사관 인질 구출작전 당시 델타 포스 대원들의 복장은 검게 물들인 야전상의에 리바이스 청바지였다. 그 외의 경우는 앞서 언급한 드라마 The Unit을 참고할 것.
[11] 이것은 물론 영화적 연출이다. 제대로 훈련을 받은 전투원들은 이러지 않는다.
[12] 단, 1980년대에 델타 포스와 비슷한 목적으로 창설된 해군의 SEAL 6팀(現 해군 특수전 연구개발단(DEVGRU))이 하는 짓에 비하면 델타 포스 대원들은 모범생이라는 이야기도 있다. 두 부대 모두 임무가 임무인만큼 두발과 복장의 자유가 인정되지만, 행정상 상위부대인 각군 특수전 그룹으로부터 '두발과 복장이 지나치게 개판' 이라고 욕을 먹은 부대는 DEVGRU뿐이었다고 한다. SEAL 대원들이 특수부대 중에 사고를 가장 자주 치는 것과 얼추 비슷한듯 하다
[13] 이에 관해서는 영국 특수부대인 SAS의 영향도 있다. 자세한 것은 해당 항목을 참조.
[14] 이런 성격은 작전지역의 상황에 따라 조금씩 변형되어 미국의 우방국 특수전 부대에 대한 군사고문의 역할 등을 수행하기도 하며, 한국 육군의 특수부대인 특전사가 제1공수특전단 창설시부터 미 육군 특전단에게 많은 것을 배워왔고, 지금도 정기적인 교류가 이뤄지는 것 역시 이런 배경에서 비롯된다. 혹자는 전두환을 비롯한 특전사 초기 멤버들이 레인저 스쿨 위탁교육을 받았다는 이유로 특전사는 미국으로 치면 그린베레보다도 제75레인저연대와 더 비슷한 부대라고 잘못 알고 있는 이들도 있는데, 이는 사실과 전혀 다르다. 미 육군 레인저 스쿨 과정은 그린베레, SEAL, 해병대 포스리컨, MARSOC, 공군 특수부대 등 각군 특수부대들의 핵심 간부들과 심지어 육군 보병 간부들까지도 두루 위탁교육을 받을 정도로 보편화된 엘리트 군사교육일 뿐이지, 제75레인저 연대라는 특정 부대의 성격과 관련있는 교육이 아니다. 한국의 특전사는 창설시부터 현재까지 쭉 미 육군 특전단(그린베레)의 직접적인 영향을 받아왔고, 양 부대간 위탁교육과 연합훈련을 꾸준히 해오고 있으며, 초창기부터 특전사의 각 여단마다 그린베레 간부들이 연락관으로 파견되어 항시 근무하고 있고, 그밖에 편제, 임무 등도 판박이일 정도로 한국 특전사는 미군으로 치면 정확히 그린베레에 해당하는 부대다.
[15] 미 육군 특전단의 장기라는 게릴라전조차도 실은 50년대에 SAS가 말레이시아에서 성공적으로 수행하였고, 이후 70년대에 오만에서도 교과서적인 대게릴라전을 수행한 바 있다.
[16] 흔히들 델타 포스를 '미 육군의 대테러부대'라고 오해하고 있지만, 대테러전은 델타 포스가 수행하는 임무들 중 하나일뿐이다. 참고로 영국의 SAS가 대테러전 능력을 구축하게 된 계기는 1960년대 말엽에 북아일랜드에서 IRA와 투닥거리게 되면서부터이다. 60년대 초에 영국을 다녀온 베크위스는 대테러전에 대해 뭘 배울 기회 자체가 없었을 것이라는 이야기다.
[17] Long Range Recon Patrol. 장거리 정찰대.
[18] 여담이지만, 흔히들 델타 포스가 굉장히 '빠진'부대로 묘사되곤 하지만, 팀장까지 같이 망나니짓을 하던 SEAL 6팀이 나중에 윗 사람들의 분노를 사서 탈탈탈 털릴때도 별 탈없이 지냈던 것을 생각하면 의외로 지킬 것은 지키는 분위기일지도...? SEAL 6팀과 마친코가 두들겨 맞은 것은 군기불량문제가 제일 컸지만, SEAL 6팀 창설과정에서 그 괄괄한 성격 탓에 상관들과 자주 마찰을 빚은 마친코에 대한 괘씸죄도 큰 작용을 했던 것을 생각해보면, 델타 포스의 창설과정에서 역시 상관들과 크고 작은 마찰이 있었던 베크위스 역시 굉장히 자유로운 델타 포스의 분위기로 SEAL 6팀과 같은 공격을 받을 여지가 충분했다. 그럼에도 이런 부분에서 큰 잡음이 없었던 것을 생각해본다면 그런 부대 풍조는 프로젝트 델타 시절의 이 일화에서 엿볼 수 있는 창설자인 베크위스의 영향 탓일지도...
[19] 프로젝트 델타는 팀 구성조차도 SAS의 팀 구성과 같은 4인 1조의 작전팀을 기본 작전단위로 삼았다.
[20] 이게 그냥 부상이 아니라, 소총탄에 복부관통상을 입고 군 병원에 후송되어 부상을 입은 내장 일부를 비롯한 부분을 수술받았다. 이 때 물을 마시고 싶어도 얼음으로 물을 마셔야 할 수준이었다고...참고로 베트남 군 병원 입원기록이 가장 긴 사람중 하나다.'델타 포스 창세기(월간 플래툰 2003년 3월호)'
[21] 베트남전때까지만 해도 레인저 부대는 지금의 제75레인저 연대처럼 하나로 통합된 단일 부대였던 게 아니라, 여러 야전부대들에서 필요에 따라 소규모의 레인저 부대를 자체 조직해서 운용해왔다.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제75 레인저 연대'라는 단일 부대는 1974년에 비로소 창설된다.
[22] 특수전 센터. 존 F 케네디 대통령은 재임기간 당시 특수부대에 대한 지원을 아끼지 않아 케네디의 이름을 딴 것이다.
[23] 공지전의 시초가 된 단기화력전 개념을 정립한 뒤푸이 개혁을 주도한 인물.
[24] 알기 쉽게 설명하자면 주한미군의 그린베레 분견대
[25] 다이하드 2에 나오는 육군 대테러부대가 바로 이들이다. 실제로는 델타 포스와의 파워게임에서 밀리고 애초에 사라진 부대지만...
[26] 후일 TF-160으로 개칭되며, 이들은 90년대에 다시 160 특수작전항공연대로 개편된다.
[27] 후일 160 특수작전항공연대로 개편되는 특수전 비행단, TF-160의 전신인 TF-158과, 해군판 델타 포스라고 할 수 있는 SEAL 제6팀이 창설된 계기 역시 2차 구출작전을 준비하면서였다.
[28] 공군의 항공 통제반을 특수부대로 개편되는 과정에 있었던 과도기적인 공군 특수부대. 브랜드 X가 발전해서 현재의 CCT로 발전했다고 생각하면 된다.
[29] 물론 선박의 기국이었던 이탈리아도 카니비니에리 예하의 GIS를 대기시켜 놓고 있었다.
[30] 이것때문에 작전 취소 소식을 듣고 돌아가는 비행기 안에서 잠을 푹 자려고 수면제를 먹었던 특수전 대원들이 다시 약을 토하고 난리가 났었다고 한다.(...)
[31] 이탈리아의 입장에서는 엄연히 이탈리아 땅에서 벌어지는 대테러 작전인데 미국이 테러범을 잡느냐는 이유였다
[32] 곰리 역시 미군 특수전계에서 마친코보다 더했으면 더했지 덜하지 않은 레전드이다. 여담이지만 마친코는 개인적으로 라이벌 의식을 가지고 있었던 것 같다. 중령으로 강등되면서 SEAL 6팀 사령관에서 쫓겨나던 마친코는 곰리가 자기 대신 사령관이 되는 것을 막기 위해 백방으로 노력했다... 인수인계도 안 해주고 갔다고
[33] 당시 미군 특수부대는 테러범들이 이송되는 비행기와 호송차까지 추적해가면서 감시했다
[34] 당시 파나마에서 미술상을 운영했지만 실제로는 반 노리에가 세력을 돕는 인물이었다. 특히 노리에가의 연두교서 방송에 맞춰 해적방송을 전파했는데, 분노한 노리에가에 의해 구금당했다.
[35] 이때 한 대원은 헬리콥터의 로터 블레이드에 맞아 중상을 입었다.(그림자 전사, 세계의 특수부대)
[36] 파나마 침공당시에는 M1 에이브럼스나 M2 브래들리같은 크고 무겁고 튼튼하고 강한 차량들이 못 오고, M551 셰리던이나 M113, 해병대의 LAV-25 같은 '가벼운' AFV들이 그 자리를 대신했다.
[37] 다만 이스라엘은 결국 자체적인 특수전 팀을 비공식적으로 이라크에 파견했다고 전해진다. '브라보 투 제로'에서 생포당한 SAS 정찰팀원들을 이스라엘군이라고 의심하던 이라크군의 태도가 영 근거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38] 하지만 이 바람에 스커드의 명중률은 이론치보다 상당히 낮은 수준으로 떨어졌다고 한다...
[39] 사진의 주인공은 대니얼 부시 하사. 슈퍼 61의 추락 당시 추락 헬리콥터에서 기어나와 부상당한 상태에서 응전했던 사람으로, 결국 후송된 뒤 부상악화로 사망한다.
[40] 헨리 A. 크럼프턴 저, '첩보의 기술' (The Art of Intelligence)
[41] 그렇다고 DEVGRU가 날로 먹은 것은 아니다. DEVGRU 역시 넵튠 스피어 작전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작전에서 많은 희생을 치루었기 때문이다
[42] 월남전 당시 북베트남측에 억류된 미군 포로들을 구출하기 위한 작전. 구출부대의 작전과 퇴출 자체는 성공적이었지만 정보가 문제였다. 구출할 포로들이 이미 다른 곳으로 이감되었는데 어떻게 구출하겠나...
[43] 서방권의 무기지원과 훈련으로 이미 단순 민병대 수준을 넘어섰으며 아예 자체적인 특수부대 까지 보유하고 있다.
SAS (Special Air Service : 영국 육군 공수특전단)
1. 개요[편집]
Who Dares, Wins(용감한 자가 승리한다)
- SAS의 부대 구호.
Special Air Service, SAS는 영국 육군 소속의 특수부대이다. 사실상 현대 특수부대의 시초 격으로, 오랜 역사 및 무수한 실전경험, 전 세계를 무대로 작전을 벌이며 쌓은 노하우를 통해 다른 나라 특수부대들의 선생님 노릇을 하고 있으며, 스스로 쌓아올린 전설적인 전과들을 가지고 있다.
2. 역사[편집]
2.1. 제2차 세계대전 당시[편집]
그 시초는 제2차 세계대전이 한창인 1941년 아프리카로 거슬러 올라간다. 사막의 여우 에르빈 롬멜에게 매번 박살나며 막대한 전사자와 노획물자만 넘겨주던 영국군이 어떻게든 반격방법을 찾던 중, 육군 대위 데이비드 스털링이 '요즘 독일군의 공군력이 강력하니, 적 비행장에 직접 낙하산으로 병력을 투입해 항공기들을 직접 공격하면 어떨까?'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스털링은 자신에게 잘못 배달된 낙하산을 갖고 놀다가, 실제로 비행기에서 낙하하다 허리를 다친 뒤 병원에서 요양 중에 그 생각을 떠올렸다.
원래 좀 무모한 기질을 가진 스털링은 영국군 사령관 어친렉 대장에게 직접 찾아가 그 계획을 말하려 했고, 사전 연락도 없이 사령부로 무작정 밀고들어간 덕택에 헌병들에게 쫒기며 여기저기 도망치다 운좋게 중동 파견군 참모장인 리치 소장의 집무실로 들어가게 된다. 스털링은 리치 소장에게 자신의 구상을 열렬히 설명했고, 리치 소장 역시 스털링의 방법을 경청하며 결국 협조를 약속했다.
하지만 실제로는 첫 작전은 참담한 실패로 돌아갔다. 한번도 이런 식의 작전경험이 없었기에 수송기는 엉뚱한 곳에 부대원들을 강하시켰고, 장비와 병력 대부분은 흩어져서 다시는 집결하지 못했다. 예정대로 실제로 진행된 것은 복귀를 위해 대기하던 장거리 정찰대(L.R.D.G)의 트럭 뿐이었는데, 이 트럭을 타고 복귀하던 중 스털링은 다시 새로운 아이디어를 얻었다. 기관총을 여러 정 장착하고 냉각장치를 개조한 미국산 윌리스 지프와 시보레 트럭에 연료, 식량, 무기를 가득 싣고 항해를 하듯 사막을 가로질러 적의 후방을 기습공격하고 다시 차를 타고 복귀하는 계획이 바로 그것이다.
적의 항공 정찰을 피하고 피로를 막기 위해 뜨거운 낮에는 위장한 채 잠을 자고, 야간을 이용해 이동하는 식으로 사막을 멀리 돌아 적진 깊숙히 들어갈 수 있었고, 실제로 작전은 성공해 독일군은 그 이후로 공중전에서 잃는 전투기 숫자보다 SAS에 의해 파괴되는 전투기 숫자가 더 많을 지경이 되었다. 심지어 SAS에게 털려 새로 받았는데 그 날 SAS가 와서 또 박살내버리는 자비심 없는 일들을 저지르기도 했다고 한다.
그러나 여기에 맛들인 영국군 사령부가 특수작전을 너무 확대한 나머지, 정규군의 보조를 맞추는 정도로 생각하고 무리하게 대규모 반격 작전의 일부로 집어넣었다. 때문에 이들 중 상당수는 보강된 독일군 진지들을 뚫지 못하고 전사하는 등 큰 피해를 입게 되었다. 이후, 결정적으로 엘 알라메인 전투에서 정규군을 통한 지상전의 대승리가 영국군 수뇌부에서 비정규전에 집중할 필요를 굳이 못 느끼게 해서 도로 찬밥 신세가 되고 말았다.
그러나 영국이 주도권을 쥔 북아프리카 전장과는 달리 서유럽은 여전히 독일이 차지하고 있었고, SAS는 유럽으로 넘어가서[1] 계속 비정규전을 펼치며 꾸준히 성과를 거두었다.
2.2. 제2차 세계대전 이후~1960년대[편집]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자 잠시 해체되기도 했지만 이미 노쇠할대로 노쇠해진 "늙은 사자" 영국에게는 기존의 대규모 정규군을 존속할 여력이 없었고, 해체된지 2년 만에 영국 본토의 국방의용군(Territorial Army)내에 SAS 21연대가 재창설되었다.
1948년부터 시작된 중국의 지원을 받는 말라야 민족해방군과 말라야 공산당에 의해 시작된 말라야 위기에는 식민지군에서 차출된 "말라야 정찰대(Malayan Scouts)"가 옛 SAS의 노하우를 살려 활약하는데 이들은 곧 SAS 22연대로 변신하게 된다. 이들은 반영 민족주의자들과 공산주의자들에 맞서 싸웠다.[2]
이후 친공민족주의를 표방하는 인도네시아 수카르노 정권이 반외세를 외치며 말레이시아의 공산당을 지원하며 벌어진 인도네시아-말레이시아 전쟁에서도 공산 게릴라로 가장한 인도네시아 정규군과 싸웠다. 최종적으로 정부를 지키고 민심을 돌리는데 성공하며 이는 성공적인 게릴라전의 대명사로 여전히 거론되고 있다.
훗날 월남전에서 미군이 막대한 병력과 물자를 소모하고도 결국 베트남의 민심을 얻지 못해 패배한 것에 비해 큰 교훈이 되었다. SAS는 이 작전에서 FN FAL과 같은 고위력 자동소총이 특수임무에 적합하지 않다고 판단, 후에 영국군 최초로 M16을 도입했다. 이후 M16은 영국군 내에서 아말라이트라는 애칭으로 불리며 SAS의 상징이 되었다.[3]
한편 영연방 국가의 일원 중 하나인 호주에는 SASR이, 뉴질랜드에는 NZSAS가 있다. 이들의 기량이나 활약상은 원조 못지 않으며, 자세한 내용은 각 해당 항목에 서술되어 있다.
3. 대테러 전술의 선구자[편집]
한편, 이들은 60년대 이후로 테러리스트와 대테러전에 관한 개념도 연구하기 시작했으며, 인질구출이나 테러 진압작전의 개념을 만들었다. 특히 북아일랜드에서 IRA와의 시가전 경험을 쌓았다.[4][5]
북아일랜드에서의 실전경험 등을 통해 대테러전에서 최고급의 기량을 쌓았으며, 외국 대테러부대와의 잦은 교류를 통해 대테러전 노하우를 공유, 발전시켜 나갔다. GSG-9의 "마법의 불꽃" 작전 당시 SAS 고문관들이 섬광탄을 제공한 것은 유명한 이야기다.
1980년 이란 대사관 인질사건 당시, 과감한 진압 작전을 통해 테러범들을 제압하고 인질들을 1명 빼고 모두 성공적으로 구출하며 자신들의 존재를 전 세계에 알렸다. 이때 이들이 사용한 장비들과 흑복, 방독면, MP5 같은 특징들은 밀리터리 매니아들에게는 SAS를 상징하는 아이콘으로 자리매김하였고, 그들이 보여준 진압작전 노하우와 장비들은 다른 나라 대테러부대들도 널리 받아들이는, 일종의 유행이 되었다.
영국 지배 하의 홍콩에서 창설된 경찰 특공대 비호대(Special Duties Unit)도 영국에서 초빙된 SAS 교관의 훈련을 통해 탄생했다.
4. 전투력을 입증한 사례[편집]
1970년도에 이란대사관을 점거한 테러리스트를 소탕하고 인질들을 구출한 Operation Nimrod가 SAS의 대표적인 활약으로 뽑힌다.[6]
포클랜드 전쟁 당시에도 여러 작전에서 맹활약했지만, 아르헨티나군의 기관포 진지 앞으로 쭉 펼쳐진 평야지대를 거슬러 올라가 공격하는 임무를 수행하게 되어 큰 피해를 입었다. 한편으로는 영하의 날씨에 고산지대를 행군하고 적의 배후를 습격하는 임무에서 단 한 명의 동사자나 비전투 손실도 입지 않아 이후 다른 나라 군대의 동계작전의 모범이 되었다. 당시 사상최초로 고어텍스 재질의 야외상의와 전투화가 지급되었다고 하며, 꾸준히 휴식과 따뜻한 차로 한국인은 밥심이듯이 영국인은 찻심 체력을 유지해 성공적으로 전투력을 유지했다고 한다.
걸프전에서도 역시 이라크의 스커드 미사일 발사대 추적이나 전략 목표 정찰, 연락선 차단 등의 임무에 투입되었다. 이때, 브라보 투 제로라는 암호명을 띄고 스커드 미사일 감시를 하러 간 일단의 SAS 부대가 어린 목동 소년에게 우연히 발견되어 위치가 발각되자 헬리콥터로 이탈하려했지만, 헬리콥터가 오지 않고 적의 추격이 계속되자 도보로 이라크를 횡단하여 거의 시리아 국경 앞에서 1명은 탈출에 성공하고 3명은 전사, 4명은 붙잡혀 포로가 되는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이때 포로가 되었던 한 대원이 그들의 희생과 작전 전체가 극비로 취급되는 것에 분개, 전역 후 브라보 투 제로라는 책을 써내며 이들의 활약상과 놀라운 희생이 알려지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브라보 투 제로 작전팀의 경우 8명의 인원으로 장갑차를 가진 수백의 정규군과 민병대의 추격을 꾸준히 물리치면서, 너무 먼 사우디아라비아 쪽 국경보다는 가까운 시리아 쪽 국경을 택해, 실제로 시리아 국경에서 몇 km 남짓한 지점까지 도망치는데 성공했다. 다만 무사히 시리아로 도망친 사람은 1명뿐이었다. 도망치는 과정에서 전투와 추위로 3명이 전사하고, 포로가 된 이후에도 몇개월에 걸쳐 무수한 고문과 심문을 당했지만 그럼에도 자신들의 정체를 숨겼다. 이라크군이 이들의 정체에 대해서 알게 된 것은 전쟁이 끝나고 포로교환을 한 이후였다고 한다... 대원들의 기량은 그야말로 일당백이지만, 특수전 장비나 헬리콥터 같은 지원요소가 부족했던 한계 때문에 대원들이 불가피한 희생을 치루었다고 평가된다.
또한 시에라리온에서는 평화유지군으로 파견되었다가 반정부군에 인질로 잡힌 영국군 장병들을 공수부대와 공군과의 협동작전으로 성공적으로 구출하기도 하였다.
2013년 케냐 나이로비의 쇼핑몰에서 일어난 인질극에서 휴가 중이던 SAS 대원 1명이 테러범들과 총격전을 벌이고 인질 100여명을 구출했다고 한다. 그 대원은 12번이나 쇼핑몰을 왕복하며 인질들을 구출했다고 한다. 보안상 이름과 얼굴은 공개되지 않았다.?# 그런데 나중에 이 사람은 SAS 대원이 아니라 전역한 영국 해병대 코만도 대원이었다고 정정 발표되었다. 특수부대원인 건 맞네.
위와 같은 사례를 통해 알 수 있듯이 기량이 매우 높은 특수부대로 각 대원의 신원 자체가 비밀로 다뤄질 정도로, 이들은 영국의 전략적 자산이라고 할 수 있다. 시간을 달리는 프라이스 대위만 봐도 딱 나오지 않는가!!! 그러고보니 이 분도 카메라맨과 같은 SAS 출신인데 자기 혼자서 무서운 야생동물들을 사냥한다.
히틀러는 SAS에 대해서 "그들은 매우 위험한 존재이므로 발견 즉시 사살해야한다."라고까지 말했을 정도였다.
재미있는 것은 제2차 세계대전 중 SAS는 적국인 독일 음악 릴리 마를렌을 상부의 반대를 무시하고 행진곡으로 채택하였는데, 그걸 21세기에 들어서까지도 계속 사용하고 있다.
2014년 영국군 SAS가 북서부 이라크에서 ISIS에 대한 인간 사냥을 시작했다.[7]?# 미리 교신 감청과 무인기 운용을 병행해서 표적들을 확인한 뒤 치누크로 쿼드바이크 팀을 투입하고 AWM, 바렛 M82 저격총과 GPMG 등을 사용해 야간에 목표들을 습격한 뒤 고속으로 도망쳐서 빠져나오는 2차 세계대전 당시에도 쓰인 전통적인 방식의 개량판이다.
"ISIS 테러리스트들이 하늘에서 전폭기를 보면 도주하거나 은신할 수는 있다. 그러나, 우리 SAS는 그들이 보거나 들을 수가 없다. 우리는 다수의 저격수를 투입해서 공포감을 새로운 수준으로 끌어올리고 있다. 그들은 무슨 일이 채 일어나고 있는지도 모르면서 그저 옆의 동료들이 모래 위에 죽어 나자빠지는 광경을 지켜보고 있다. 우리 전술의 목표는 예측이 불가능한 게릴라식 공격으로 IS에게 공포감을 불어넣고 그들의 사기를 꺾어버리는 것이다."
작전이 시작된 지난 4주간의 효과는 꽤 뛰어나서 200여명 이상의 타겟을 사살시킨듯. 장교가 절반밖에 안된다 하더라도 100여명의 장교가 죽었다는건 일대 작전에 상당한 차질을 빚을 수가 있다. 부대를 통솔하기 위해 장교가 존재하는 건데 그 장교가 죽어버리면 아무리 고급 장비를 가지고 잘 훈련받았다고 해도 조직적인 움직임을 보일 수 없기 때문이다.
5. 개판인 군기(...)[편집]
한편, 전시가 아닌 평상시의 훈련 강도와 스트레스가 장난이 아니라서 반대급부로 풀어줄 때는 군기가 거의 개판 5분전으로 흐트러진다고 한다. 물론 전문가들이라 어느 정도 선은 지키고, 쉴 때는 확 쉬고 할 때는 확 하는 식으로 행동한다. 그러나 그 레벨이 다른 군인들이 보기에는 거의 똘끼에 가깝다는 것도 특징이다. 한 예로, 1962년 그린베레 교환 장교로 SAS에서 1년간 훈련을 받았던 미군 장교 찰스 베크위드[8]는 난장판이 된 내무실 바닥에 앉아서 휴대용 가스난로로 차를 끓이던 한 SAS 대원에게 '정리정돈 좀 해야 하지 않겠소?'라고 했다가 SAS 대원의 '나보고 뭘 어쩌란거야!'라는 대답을 듣고 정신이 혼미해지는 경험을 했다.
그러나 그들의 실력과 독특한 훈련군기 등을 접하고는 훗날 1977년 델타 포스가 창설되는데 큰 기여를 한다. 미군 특수부대원들의 군기도 어느 정도는 여기서 영향을 받은 것이다. 사실 베크위스의 사례도 당사자들에게는 별 일 아닐 수 있는 것이, SAS는 대원들간 계급이 없다. 무슨 이야기인가 하면, SAS 대원이 되는 순간부터 계급을 반납하고 SAS 대원(Trooper)으로만 취급하기 때문이다. 물론 복무중 자신의 본래 계급은 그대로 적용되고 실제 진급도 가능하지만 이는 연대 내부에서는 적용되지 않으며, 연대에서 전출된 다음에야 자신의 정상적인 계급장을 가져갈 수 있다. 단 세간에 알려진 것과는 달리 이는 부사관들에게만 해당되는 이야기다. 장교들은 아예 차출 방식이 다르기 때문에 계급 반납이 없다. 대원의 경우 의무적인 연대 내 복무 기한을 마치고 짤 없이 한번 방출된 이후로는 추후 본인 의사에 따라 다시 SAS에 부사관으로 자원할 수도 있다.
이는 무작정 군기를 들여 쉬는 중에도 군인들에게 상시 긴장감을 유지시키는 것보다는 체계적인 훈련과 그에 비례한 정신적 보상이 군사의 숙련도 향상에 도움이 된다는 대표적인 예시이다. 이들이 훈련시간 외에 군기를 집어던진 똘기 가득 찬 행동을 할지언정, 실전으로 변하는 순간 언제 그랬냐는 듯이 인간흉기로 탈바꿈한다. (궤도 강하 타격대? 당장 대한민국의 군대를 좀먹고 있는 똥군기와 비교해보자)
6. 이름을 둘러싼 해프닝[편집]
제2차 세계대전 중에는 SAS라 불렸으나 현재의 정식명칭은 그냥 '제22연대'이다. 21연대와 23연대도 있는데 이들은 전시에 예비군으로 구성될 부대이고, 현역으로 활동하는 것은 22연대다. 때문에 자기네들은 그냥 'The Regiment'(연대) 등으로 부르기도 한다.
진짜 SAS 출신인가 아닌가를 알아보려면 그 사람이 자기네 부대를 '싸스'라고 발음하면 가짜라는 말도 있다(!). 그리고 이름 탓에 사람들이 공군 소속으로 착각하거나, '특수공군연대'라는 해괴한 번역을 당하는 일도 종종 있었다. SAS는 어디까지나 고유명사이니만큼, 미군의 델타 포스처럼 따로 옮기지 말고 그냥 SAS 그대로 쓰는 게 가장 무난하다. SAS가 뭔지 전혀 모르는 일반인들을 위해 굳이 번역을 해야 한다면 기원이나 역할을 고려할 때 '공수특전단'으로 번역하는 것이 가장 적절하다. 영국군 공수부대가 따로 있어 헷갈릴 위험도 약간 있지만, 공수특전단의 "특전단"이란 명칭이 특수전을 수행하는 부대임을 나타내므로 정규전 부대인 영국 육군의 공수연대와 헷갈릴 일은 아마 없을 것이다.
7. SAS 출신 주요 인물 열람(가나다 순)[편집]
7.1. 실존 인물[편집]
?대니 케인(Man vs Wild 카메라맨)
?베어 그릴스(Man vs Wild 진행자, 훈련중 사고로 인해서 의병 전역)
?사이먼 레이(베어 그릴스와 같은 분대 출신의 Man vs Wild 카메라맨)
?앤디 맥넵 SAS에 대한 자세한 묘사를 했다는 이유로 영구제명되었다. (브라보 투 제로의 원작자)
?크리스 라이언
?크리스토퍼 리(여러분들이 잘 아시는 사루만 그 분)[9]
?존 로프티 와이즈먼(서바이벌 가이드 SAS 서바이벌의 저자)
7.2. 가공 인물[편집]
7.2.1. 게임[편집]
?레인보우 식스 멤버 상당수
?레인보우 식스 시즈 - 스모크, 뮤트, 대처, 슬레지
?메탈기어 시리즈
?빅 보스(MSX판 메탈기어에서의 설정)
?제로 소령
?콜 오브 듀티 시리즈
?콜 오브 듀티 4: 모던 워페어
?존 '소프' 맥태비시 - 1~3편 모두 출연.
?시간을 달리는프라이스 대위 - 1~3편 모두 출연. 모티브가 된 인물도 실제 SAS 소속이다.
?월크로프트 - 1편과 3편에 출연.
?그리펜 - 1편과 3편에 출연.
?가즈
?맥밀란 대위 - 1편과 3편에 출연.
?폴슨 - 싱글캠페인 Hunted 초반 블랙호크가 추락했을 때 사망한 인물로 가즈의 대사에서 언급된다.
?맥 - 싱글캠페인 Heat의 후반부 사망한다. 존 '소프' 맥태비시/일지에서도 언급된다.
?아렘 / 바턴 - 싱글캠페인 Heat에서 충원된 인물.
?러브조이 / 뉴캐슬 - 싱글캠페인 F.N.G에서 볼 수 있다.
?콜 오브 듀티: 모던 워페어 2
?사이먼 "고스트" 라일리
?개리 "로치" 샌더슨 - 작중 정확한 국적은 알 수 없으나 SAS 출신으로 추정된다.
?그리드락 / 말린 / 크레인 / 벅 - 존 '소프' 맥태비시/일지에서 언급된다.
?콜 오브 듀티: 모던 워페어 모빌라이즈드
?벨 대위
?워커
?패트릭 오닐
?콜 오브 듀티: 블랙 옵스
?인텔에서 Jonathan(조나단) ■■■■■라는 SAS 요원이 알렉스 메이슨을 제거하기 위해 파견되었다고 나온다. 하지만, 콜 오브 듀티: 블랙 옵스 2가 나오면서 묻혔다.
?콜 오브 듀티: 모던 워페어 3
?마커스 번즈 - 플레이어블 캐릭터
?레드그레이브 / 메이어스 - 싱글캠페인 Mind the Gap에서 볼 수 있다.
?브라보 나인 - 싱글캠페인 Mind the Gap에서 무전만 나온다.
?그랜트 / 호이트 / 보이드 / 히스 / 쿡 / 플러머 / 스튜어트 / 미첼 / 해리슨 - 기타 싱글캠페인에서 볼 수 있는 NPC들.
?워게임 시리즈
?SAS라는 이름 그대로 나오며 대공화기와 막강화력으로 코만도중에 주력으로 애용된다.
7.2.2. 영화[편집]
?스카이폴 - 등장 인물 중 가레스 말로리가 SAS 출신으로 나온다.
?익스펜더블 - 제이슨 스타뎀이 연기한 '리 크리스마스'가 SAS 출신이다.
?킬러 엘리트 - 스파이크(클라이브 오웬), 스티븐 더글라스 해리스, 워릭 스티븐 크렉 소령 등 다수
?더 록 - 메이슨(?) 이라는 이름으로 나오는 간지좔좔 숀 코너리가 SAS출신으로 나온다.
7.2.3. 코믹스 & 애니메이션[편집]
?마스터 키튼 - 다이치 키튼
?초인 로크 - 로크(초인 로크)
8. 대중매체에서의 등장[편집]
8.1. 게임[편집]
?배틀필드 시리즈
?배틀필드 2 확장팩 스페셜포스에서 추가되었다.
?조인트 오퍼레이션 타이푼 라이징 - 캐릭터 모델링일 뿐이다.
?콜 오브 듀티 시리즈
?콜 오브 듀티: 유나이티드 오펜시브
?콜 오브 듀티 3
?콜 오브 듀티 4: 모던 워페어 - 플레이어블 세력으로 싱글과 멀티플레이 모두 등장한다.
?콜 오브 듀티: 모던 워페어 2 - 프라이스 대위와 존 '소프' 맥태비시, 사이먼 "고스트" 라일리 등 SAS 출신 인물들이 태스크 포스 141 소속으로 등장한다.
?콜 오브 듀티: 모던 워페어 3 - 플레이어블 세력으로 싱글과 멀티플레이 모두 등장하며, 모던 워페어에서 등장했던 그리펜과 윌크로프트가 등장한다. 맥밀란 대위는 목소리로만 출연....
?메탈기어 솔리드 - 리퀴드 스네이크 - 정확히는 SIS에서 스파이 활동 도중 SAS에 가담, 걸프전에서 스커드 미사일 발사 트럭을 파괴, 대활약을 했다는 설정이 있다.
?카운터 스트라이크 시리즈
?히든 앤 데인저러스 시리즈 - 게임 자체가 2차대전의 SAS를 주인공으로 한다.
?히든 앤 데인저러스
?히든 앤 데인저러스 2
?워게임 시리즈
8.2. 영화[편집]
?브라보 투 제로
?킬러 엘리트 - 주인공 '대니(제이슨 스타뎀)'가 SAS 대원들을 사고사로 위장해 죽이고 자백을 받아내야만 했다.
[1] SAS와 함께 움직였던 LRDG는 사막 특화형이었던데다 토브룩에서 입은 피해를 회복하지 못하고 해체되고 말았다.
[2] 22연대는 식민지군이었기에 오스트레일리아 중대, 로디지아 중대가 포함되어 있었고 이들은 나중에 분리되어 베트남 전쟁과 로디지아 전쟁에서도 눈부신 활약을 펼친다. 이런 활약 때문에 본토의 21연대를 누르고 22연대가 정규군에 남게 된 것이다.
[3] 다만 이 때의 M16은 대부분 인도네시아군으로부터 노획된 것이 대부분이었고, 이후에는 정식으로 들여오게 되었다.
[4] 그러나 이 과정에서 IRA 간부를 제거한답시고 IRA 간부의 승용차에 폭탄을 설치해놓고서는 죄없는 간부 친척들까지 다 모였을때 "어 테러범 떼거지로 모였네" 하고 폭파시키는 등 여러가지 실수도 있었다고 한다.
[5] 아일랜드인 학살사건으로 가장 유명한 1972년 1월 30일의 "피의 일요일 사건"은 SAS가 아니라 1공수여단이 일으킨 사건이다.
[6] 대중매체에서는 이 작전에 관련된 SAS대원중 한사람을 모티브로 삼아 캐릭터를 디자인했다. FPS게임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다 들어봤을 어느 대위가 바로 그 인물이다.
[7] 프랑스나 영국의 경우, 대외적 으로는 국제적 지위 때문에 분쟁에 개입하는 미국과 달리 여러 이유를 들어가며 미국과 함께 개입하여 자기나라 군부대의 실전 경험을 쌓는다는 느낌이 강하다.
[8] 이후 언급될 델타포스를 창설한 베크위드 대령 맞다!
[9] SAS의 모채인 Long Range Desert Patrol 그리고 영국판 정보사/CIA인 Special Operations Executive에서 근무했다
그리고 [9] 이 부분에 덧붙여서 설명을 하자면
'반지의 제왕'을 한창 촬영하고 있을 무렵의 일입지요.
사루만이 최후를 맞는 장면을 찍고 있었는데요. 피터 잭슨 감독은 사루만이 등뒤에서
불의의 일격을 받는 순간에 단말마의 비명을 내지르라고 연기주문을 했다고 합니다.
그러자, 크리스토퍼 리 옹께서 특유의 장려하고 권위감 넘치는 어조로 감독에게 되묻더랍니다.
'여보게, 피터.
자네는 사람이 등 뒤에서 칼에 찔렸을 때 내는 소리를 들어본 적이 있는가?'
피터 잭슨이 들어본 일이 없다고 말하자...
이어지는 크리스토퍼 리 옹의 말씀.
'글쎄, 난 실제로 들어본 적이 있지.
그렇게 찌르는 법도 알고 있고.'
그러면서 칼이 뒤에서 들어와서 사람의 폐에 구멍이 뚫리게 되면 절규를 지르는 것은 고사하고
나직하게 헐떡거리다가 죽어가게 된다고 차근히 설명을 해주더랍니다.
그 말을 들은 순간...
크리스토퍼 리 옹의 2차 대전 무공을 대충이나마 알고 있었던 촬영장의 피터 잭슨 감독과
스탭들은 꿀 먹은 벙어리가 되었다고 합니다. ~ㅎ
크리스토퍼 리 옹 께서는 그 스타워즈 2,3의 두쿠 백작으로도 유명하신 분이시지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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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궁금해서 크리스토퍼 리 옹의 청년기 전력을 뒤져보니 참 다채롭더군요.
아버지는 무공훈장을 수차례 받았던 예비역 중령, 어머니는 이탈리아 백작 가문의 귀족녀.
퍼블릭 스쿨과 학부에서 고대 그리스어와 라틴어를 전공한 고전 애호가였던 그는 남의
전쟁이었던 소련vs.핀란드의 "겨울전쟁"에 지원입대를 하며 전쟁터에 발을 들여놓습니다.
사격은 썩 잘했지만 스키를 못 타서 핀란드군이 최전선에 보내주지 않았다는 우스개 소릴
했더군요. 195cm인 장신 탓이려나요.
2차 대전이 발발한 후에는 프랑스어, 독일어, 스페인어, 이탈리어를 유창하게 구사하는
출중한 외국어 실력(러시아, 스웨덴, 그리스어도 의사 소통이 가능)을 바탕으로
북아프리카, 이탈리아 등지에서 적 후방을 넘나들며 특수공작을 벌였던 영국 공군의
정보장교였다고 합니다.
본인도 북아프리카에서 훗날 특수부대의 대명사로 유명해진 SAS의 전신인 장거리 정찰팀
(Long Range Desert Patrol)에 배속된 사실은 시인했습니다. 하지만 세부적인 사항에 대해서는
'국가 비밀 엄수법에 사인을 했다'는 농담 아닌 농담을 하면서 입을 열지는 않았더군요.
'나는 가끔 SAS에 배속되서 활동했었어요.
그러나, 우리는 그때나 지금이나 나중에나 구체적인 작전에 대해 언급 하는 것은
금지되었지요.'
자존심이 하늘을 찌르는 일본 경찰이 제대로 임자 만났네요! 내일 편도 기대되네요.
하다하다 그 추억의 '시티헌터'가 나올 줄이야. 작가님의 지식은 어디까지 가시는 건지 무서울 따름 입니다.
자존심이 하늘을 찌르는 일본 경찰이 제대로 임자 만났네요! 내일 편도 기대되네요.
기대하셔도 좋을 겁니다. 내일 올라올 글은 유머와 감동을 동시에 넣었으니까 말입니다.
하다하다 그 추억의 '시티헌터'가 나올 줄이야. 작가님의 지식은 어디까지 가시는 건지 무서울 따름 입니다.
김상중 주연의 그 시티헌터를 아시다니...... 그 드라마 진짜 재미있는 드라마이기도 하고 원작자조차도 진짜 시티헌터 비기닝 그 자체라고 극찬을 한 드라마이기도 합니다. 컨트리볼매니아 님도 진짜 대단하십니다. 그 드라마에서 이광수도 꽤 재미있게 나왔었는데.......
전 만화를 먼저 봐서 말입니다. 요즘은 죠죠의 모험 '4부'가 끌립니다.
저도 만화로 먼저 보게 된 작품이 시티헌터였습니다. 해적판으로 나올 때부터 진짜 재미있게 봐서.......
네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닙니다. 제 글을 이렇게 관심을 가져주셔서 오히려 제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