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직한 목소리. 떨림도 가세된 그 울림에 나는 감았던 눈을 떴다.
파란 머리의 한 소녀가 테이블 맞은 편에 서 있었다. 흔들리면서도 똑바로 향한 소녀의 두 눈동자가, 유난히 뛰었다.
놀라지는 않았다. 이미 기척을 느끼고 있었기 때문에.
슬쩍, 테이블에 기대어 둔 바스타드 근처로 오른손을 옴기자, 커다란 그 눈동자가 힘껏 흔들린다. 전보다 훨씬.
나약하고 유약해 보이는 어린 소녀지만, (대략 15~ 16세로 보이는)
조심해서 나쁠 건 없다. 나로서는 이 낯선 소녀가 그저 거북스러울 뿐이다.
온 몸을 흰 로브로 두른 채 얼굴만 빼꼼히 내 민 모습을 한번 훑으며, 나는 입을 열었다.
"뭔가."
움찔. 소녀가 몸을 한번 떨어 보인다. 그 떨림이 유난히 커, 나는 표정을 굳혔다. 이렇게 겁 많고 유약해 보이는 소녀가 이런 곳에 발을 들였다니. 보폭은 형편없지만, 로브에는 피 한방울 묻지 않은 상태로? 나 조차, 버거운 이 <'리카의 숲'>에?
"그게..."
"꺼져."
"예?"
소녀가 당황한 듯 반문을 한다. 나는, 소녀를 노려보았다. 어느새 내 손에는 바스타드가 쥐어져 있다. 아직 소녀는 그걸 눈치채지 못했는지, 얼 빠진 모습이다. 아니, 이미 눈치채고도 모른척 하는건가?
"자신을 숨기는 녀석과는 대화하지 않는다."
"수...숨기..꺅!"
소녀의 비명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 모습에 나는 웃음을 터트렸다 <큭> 바스타드를 어깨에 걸친 것 하나로 저리도 비명을 질러대다니, 그 과장된 모습에 나는 웃음을 터트리지 않을수 없었던 것이다.
"이 리카의 숲에서 피 한방울 묻히지 않은 로브를 입고 온 대단한 고수분께서, 고작 바스타드 하나 든것만으로 비명을 지르다니. 황송하군."
소녀의 얼굴이 새빨개진다. 나는 그 모습을 외면하고, 테이블에 놓여진 맥주를 마져 마시고는 일어섰다. 그리고 뒤 돌아 주점을 나서려는데 뒤에서 소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재미없군."
흠칫. 등 뒤로 소름이 돋았다. 한기. 강한 자에게서만 느껴진다는
그 날카로운 한기가 내 몸을 훑고 지나갔다. 입술을 비틀었다. 강력한 마력이 뒤에서 느껴지고 있었다.
나는 천천히 뒤 돌아 소녀를 보았다.
거기에는 가면을 벗은 전혀 다른 존재가 서 있었다. 한없이 흔들리던 눈동자는, 눈꺼풀을 내리깔고는 거만한 모습이다.
"모처럼의 유희가 처음부터 어긋나버리다니 그다지 기분은 좋지 않아."
그 말에 나는 입술을 비틀었다.
"리카..."
소녀, 아니 리카가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호오 날 아는군."
"이곳에서 이런 방대한 마력을 풍기고 있다면 뻔한거 아닌가?"
심장이 뛴다. 이런 기분 실로 오랜만이다. 근 2년간 이렇게 흥분된적은 없다.
"드디어 찾았다."
리카가 고개를 갸웃거린다.
"날 찾고 있었나? 희안하군. 인간들 사이에서는 내 존재가 알려지지 않았을텐데."
"아니, 적어도 나는 알고 있었지. 한달전에 100년간의 동면에서 깨어났다는 사실을 왜냐하면..."
'<리카의 심장> 퀘스트를 내가 가지고 있거든.' 뒷말을 삼킨 채 나는 천천히 검을 들었다.
'잃어버린 성지'에서 우연히 찾은 단 하나의 단서로 추적을 시작한지 일년째, 드디어 그 시간의 보상을 받을 날이 왔다.
"자, 종지부를 찍어보자고."
"그게 과연 누굴까?"
"글쎄, 아무래도 보스급 몬스터를 혼자 잡았다 하니, 적어도 랭킹 10위 안에 드는 자이겠군."
"은둔자이거나."
"그런 자를 우리가 잡을 수 있을까?"
"아무리 고수라도 전체가 달려들면 못잡을것도 없지."
"하긴..아무리 고수라도 다굴에는 장사없지."
나는 고개를 돌렸다. 아까부터, 뒤에서 떠들고 있는 녀석들의 면상을 보기 위해서. 까무잡잡한 피부의 중년 기사와, 매부리코의 성직자가 보였다. 슬쩍 검자루를 잡았다 놓았다. 지금 저 들을 손봐준다 해서 나아질건 없다. 더욱이 지금은 조심할 때다. 마을, 그것도 대낮에 PK 질을 했다가는 단번에 이목에 띌것이고, 소문은 퍼져 많은 유저들이 모일것이다.
그런 상황은 당연 코, 기쁘지 않은 상황이고.
"제길."
나는 로브를 매만지며 얼굴을 숨겼다. 벌써 이 중앙 도시 '리르콘'까지 소문이 퍼질 줄이야. 생각보다 더욱 사태가 나빴다. 나는 입술을 깨물었다.
'<리카의 심장> 퀘스트를 깨는게 아니었어."
장시간의 혈투끝에 리카의 목을 배었지만, 돌아 온 건 근 일년간의 고생의 보상이 아니었다. 그건 들이켜야만 독이란 걸 알수 있는 마녀의 와인이었다. 들이키고 나서야 때 늦은 후회를 한다.
<변천사의 눈동자>
감정을 받았어야 했다. '대장장이의 마을'에 갔어야만 했다.
그저 보라색이라, 좋을거라는 생각에 착용했던 유니크 아이템이 사실 유저를 몬스터로 바꿔버리는 '죽음의 아이템'이라는 사실을 알았어야 했다.
<변천사의 눈동자>를 착용하자 놀라운 변화가 일어났다. 눈동자가 붉어지는 마족의 현상이 나타난 것이다. 더욱이 가관이었던 게 내가 아이템을 착용하고 다음 날 다크월드 공식홈피이지에 하나의 퀘스트 공지가 뜬것이다.
퀘스트의 내용 인즉.
<반마족을 섬멸하라.>
-대 예언자 '야우스'가 말했던 '향연의 날'이 다가왔다.
대 마왕의 딸 '리카'가 세상에 나타나 세상을 어둠으로 물들이니
어느 존재도 하늘을 보지 못하고 공포에 떨게 되겠구나.
그러나 시간이 지나도, 아무리 시간이 흘러도 대륙은 조용하고,
향연은 불러오지 않더라.
사람들은, 이대로 야우스의 예언이 빗나가기를 바랬고, 시간에
묻히기를 바랬다.
그리고 사람들의 바램처럼, 레카의 등장은 없었다. 아무리 시간이 흘러도
레카의 그림자는 보이지 않았다.
대륙의 모든 존재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사람들은 '야우스'가
처음으로 '오언'을 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게 아니었다. 예언은 빗나간게 아니었라.
레카는 사라졌지만, 그보다 더욱 강대한 존재가 세상에 나타난 것이다.
레카를 일검에 배고, 인간이기를 포기한 자
마족으로 다시 태어나 세상을 어둠으로 물들이는 자. '이렌드'
그에 의해 대륙 곳곳에 향연이 멈추지 않는다.
<이벤트 퀘스트 -반마족 '이렌드'를 죽여라>
"후우..."
이건 그야말로 운영자의 농간이다. 아니, 어느 미친 게임사가 유저를
몬스터로 만들어, 이벤트에 써먹는단 말인가
이게바로 겜판(게임판타지) 라는 거군요 오오오 앞으로 읽을 재미가 쏠쏠 할것 같습니다 ! ㅇㅅㅇ
진 짜 잘 쓰시네 나 이런거 너무 좋아함
계속 쓰세요 그럼 저도 계속 쓸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