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책
일본서 실용-대중화
100여종 출판… 연 13조 원 시장으로
31권 백과사전-50㎏ 전집이 CD 한 장에
CD판 「고지엔」(広辞苑)은 3만여 장 팔려
값은 보통 책과 비슷
요즘 일본 서점가의 베스트셀러판에 ‘종목’이 하나 늘었다. ‘픽션’, ‘논픽션’, 그다음에는 ‘전자책’. ‘일렉트로닉 북’의 직역인 이 책들은 말 그대로 전용 전자 북 플레이어(또는 CD-ROM)를 통해서만 읽을 수 있는 CD(콤팩트디스크)판 책들. 이 ‘전자책’들이 올해 들어 일본 출판계에서 실용화와 대중화의 단계에 들어서 ‘출판계의 전자 혁명’을 일으키고 있다.
“전자책? 그게 뭔데”라는 질문에 가장 간단한 대답은 레코드점에서 팔고 있는 CD판과 똑같은 CD판에 ‘음악’ 대신 ‘책’을 입력한 것.
올봄부터 헤이본샤(平凡社)가 본격 판매를 개시하는 ‘신(新) 백과사전’의 경우 종래 31권의 무거운 책들이 직경 12㎝의 콤팩트디스크 한 장 안에 모두 수록됐다. 폭 40㎝, 높이 1.6m, 무게 50㎏인 전집이 무게 15g, 두께 1.2㎜의 천연색 CD판 ‘한 장’ 속에 들어간 셈이다. 백과사전의 CD화는 세계 최초. 판매예정가 25만 엔은 종이로 된 종래의 전집을 사는 것보다 1만 엔 싸다.
이처럼 대부분의 CD 한 장에 들어 있는 책의 분량은 종이로 만든 통상의 책으로는 수십권. 따라서 종이책 한 권과 CD 한 장을 단순 비교하기 곤란하기 때문에 별종의 ‘장르’로 분류하는 서점이 늘고 있다. 이들 전자책은 전자제품점에서도 팔기 때문에 판매된 책 수를 서점에서만은 파악 불능. 이 때문에 ‘숨겨진 신종 베스트셀러’라는 별명까지 나오기도 했다. 3월 현재 판매중인 것만 100여 종을 돌파했다. 매상으로 따져 연 2조 3천억 엔(13조 원 상당)의 엄청난 시장으로 급성장한 것.
숨겨진 베스트셀러
이렇게 잘 팔리는 이유는 간단하다. 대용량이기 때문에 책으로 사는 것보다 싸고 검색이 간편하다. 또 그림-음성까지 나온다. 따라서 사전류, 가이드, 어학 교재가 많은 편. CD 한 장을 팔면 책 수십 권을 파는 것과 같기 때문에 출판사 측도 수지가 맞는다. 일본 전자책의 효시 격인 이와나미(岩波) 서점의 ‘고지엔’(広辞苑) CD판은 현재까지 3만 장이 팔렸다.
NHK편 재료별 ‘오늘의 요리 500선’의 경우를 보자. 일식, 양식에서 한국 요리까지 ‘주문’대로 요리가 나온다. ‘검색어를 입력하세요’라는 컴퓨터의 주문에 따라 ‘재료는? 소고기’ ‘종류는? 한식’ ‘조리방법은? 굽기’까지만 입력하면 ‘숯불구이’의 자세한 조리방법이 화면에 나온다.
닛케이(日経)가 펴낸 ‘닛케이 기업파일’은 일본의 2,500개사의 모든 재무제표와 정보가 들어 있다.
다양한 시리즈 나와
기노쿠니야(紀伊国屋) 서점이 낸 아사히(朝日) 신문의 ‘천성인어·사설’판은 아사히 신문의 유명 칼럼인 ‘천성인어’(天声人語)와 최근 5년분의 사설을 싣고 있다. 가격은 한 달 신문대도 안 되는 2,500엔. 이 서점은 또 12만 명 수준의 일본 정치, 경제, 사회 문화인의 신상명세와 연락처를 수록한 ‘키 퍼슨’ 시리즈로 인기 상승 중이다.
약업시보사(薬業時報社)의 ‘필 북 ver 3.1’(4,300엔)은 1만 종류의 의사 처방약과 약국에서 취급하는 2,500종의 대중약 데이터와 약리작용, 부작용, 복용법, 주의사항 등을 수록했다. 이 외에도 ‘25만어 의학 용어 대사전’, ‘35만어 과학기술용어 대사전’, ‘도쿄 맛있는 음식점 가이드’ 등이 최신 인기작들로, 이루 예를 다 들 수 없을 정도다.
소니(Sony)는 이같은 수요에 맞춰 ‘데이터 디스크맨’이라는 이름의 전자책 전용 플레이어를 내놨다. 손안에 들어오는 일종의 전자책 전용 소형 컴퓨터. 이 ‘데이터 디스크맨’ 구입시 같이 주는 콤팩트디스크 한 장에는 일어 사전, 일영사전, 한자 사전 등 산세이도(三省堂)가 출판한 6개 사전이 들어 있다. 영어 ‘다이너소어’를 입력하면 ‘공룡’이라는 사전 설명과 공룡의 그림이 뜬다. 이 소니의 ‘데이터 디스크맨’ 판(8㎝)만도 올해 100종을 넘어섰다. 한국 출판계도 ‘전자책 출판시대’에 눈을 뜰 때다.
〈도쿄=부지영(夫址榮) 기자〉
전자책이 나온지 오래됬지만 아직도 종이책의 아날로그감성을 이기지 못하고 있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