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애니메이션사 굴지의 명작'이라는 타이틀을 얻으며 수많은 크리에이터와 아티스트들에게 어마어마한 충격과 영향을 준 작품이다.
Steins;Gate와 영화 케이조쿠, 스즈미야 하루히의 극장판 엔들리스 에이트와 마법소녀 마도카☆마기카 등
현재까지도 수많은 애니메이션과 영화에 영향을 주었으며 업계에서도 '이런 작품을 만들고 싶다'는 열망을 가지게 된 사람들이
우후죽순 생겨난 명작이라고 평가되고 있다.
당장 몇몇의 포토만 봐도 알 수 있듯 색감이나 작화, OST 등 차마 80년대 작화라고는 믿을 수 없는 연출을 구성하고 있다.
또한 꿈 속을 표현한 듯 몽롱하고 환상을 뜻하는 남색과 곤색을 너무나 자연스럽게 표현해내
당시 지브리의 미야자키 하야오에게서 많은 호평을 얻었다.
미야자키 하야오는 평생 다른 사람 작품을 칭찬한 것이 손에 꼽을 정도로 깐깐한 사람인데
완벽하다고 칭찬한 몇 안 되는 작품에 이 작품이 들어있다.
당시 시끌별 녀석들 기획과 키티 필름의 프로듀서인 오치아이 시게카즈와 오시이에 따르면,
극장판 제 2 작의 각본은 원래 원작자인 타카하시 루미코에게 스토리가 제출되어야 했지만,
각본이 완성되지 않아 미루고 미루다가 결국 제출을 못했다.
이유는 최초 각본은 지금은 포켓몬의 초대 각본가로 알려진 각본가인 슈도 타케시였다.
슈도 타케시는 라무의 기억상실을 주제로 초안을 썼는데
오시이 마모루가 이 핑계 저 핑계를 대면서 "미안하다 못 쓰겠다." 하고 거절을 해버렸다고 한다.
그럼에도 슈도는 오시이를 처음 봤을 때부터 "아 이 인간은 내 각본을 쓸 생각이 없구나."
라는 걸 직감했기 때문에 별로 화가나지 않았다고 한다
각본 단계에서 엎치락 뒤치락하는 사이에 시간이 부족해지고 그런 마당에 오시이가 제시 한 것이 본작의 원안이였다.
(이는 전작을 경험한 오시이가 자사의 기획을 통과하는 시간 벌이를 마련하는 전략이라는 추측도 있다.)
오치아이는 자신에게 올라온 콘티가 당초의 설명과 전혀 다른 점에 경악하고 수정 지시를 걸었다.
하지만 시간적으로 맞지 않았고, 영화는 완성에 이르게 된다.
오치아이는 "콘티를 보고는 키티를 그만두고 싶어졌다.(웃음)"
며 당시 자신이 놓여 있던 입장과 심경을 회상하였다
오시이 감독은 본작을 완성한 후 "시끌별 녀석들 (1981) 치프 디렉터에서 강판됨과 동시에 스튜디오 피에로를 퇴사했다.
TVA 시리즈가 진행되는 도중 메인 스탭이 교체되는 것은 이례적인 일이었다.
후년의 인터뷰에서 '시끌별 녀석들 2 뷰티풀 드리머'가 높은 평가를 받게되었고
감독으로서 좋은 의미에서도 나쁜 의미에서도 자신감이 붙기 위해
독립했다고 말한다.
이후 오시이의 행보는 상당한 침체기를 겪는데,
1986년 자신이 총괄을 맡아 도쿠마 쇼텐과 아마노 요시타카를 끌어들인 야심작 천사의 알은
난해한 내용으로 흥행참패를 해 일대 쪽박을 찼고(...)
당분간 애니메이션계에 발을 못 들이게 되자 반다이에 큰소리쳐 제작비를 얻어낸 실사영화 붉은 안경 역시
제작환경부터 퀄리티까지 난해함과 저퀄, 흥행참패의 삼위일체를 보여준지라
1988년 패트레이버 OVA로 빛을 보기까지 4년간 꽤나 곤궁하고 어려운 시기를 보내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