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론부터 말하면 녹색으로 표시된 이 20~22곳을 탐사하면 나올 가능성이 높다.
바로 칠천도.
1597년 7월, 졸장 원균의 무능으로 판옥선 100여 척과 거북선 전부를 잃은 칠천량 해전지다.
왜란 당시 조선수군이 겪은 패배는 거의 이때가 유일하기에 과거부터 거북선 탐사는 이어져 왔다.
70년대엔 문화재 관리국이, 8~90년대엔 해군이, 00년대엔 경남이 탐사를 했으나 지금 알다시피 성과는 없었다.
작성자는 당시의 탐사지가 궁금했기에 정보공개청구를 통해 발굴자료를 받아보고자 했다.
16년 전이라 당시 부서가 폐쇄되거나 파기 되어서 남아있는게 거의 없더라.
그래도 나름 당시 관계자 연락처를 수소문 해가며 정보를 모았다.
우선 비용은 약 7억원이 들었고, 탐사기간은 1년이었다.
칠천도 해역 1584만 제곱미터를 탐사했고, 4군데에서 유물이 발굴되기는 했다만 백자, 숟가락 등 거북선이나 해전과는 상관없었다.
그나마 16세기 물건이란게 연관있으려나.
경남이 보존하고 있던 자료는 이게 다였다. 막막하던 찰나에 방송국 덕을 봤다.
2009년 sbs에서 당시 칠천량 해역 탐사지점을 표기한 방송분이 있었던거다.
당시 탐사대가 예상지점으로 파악한 곳은 총113곳이었다.
그중에서도 해저지표면에 있던 것들은 해양쓰레기(장난감 공, 폐그물, 고무신 등)였고, 해저지층 속 57곳 중 35곳 역시 해양쓰레기였다.
결국 깊이 2~12m 지점에 있는 이상물체 22곳이 거북선 등 당시 해전유물이 매장되었을 가능성이 높은데, 불행히도 예산과 시간 모두 소진되어 탐사는 중단된다.
솔직히 사비를 들여서라도 탐사하고 싶긴하다.
여기서부턴 잡담
사실 올해 초부터 유게에 거북선 글만 쓰다시피 했다. 거북선 빌런이라 불러도 된다.
그런데 어쩌다가 이렇게 십여년전 자료까지 뒤져가며 거북선에 매달리게 됐냐면...
첫번째 이유는 이 사람 때문이다.
이순신 음모론 중 하나인 "노량해전 생존 후 은거"를 주장한 사람이 서울대 물리학자 '남천우' 박사이다.
해당 음모론을 제시하고, 전공도 역사가 아닌 물리인 점에서 알 수 있듯이 비전문가다.
그뿐만 아니라 사극에서 보면 거북선이나 판옥선 등을 서서 노 젓지 않던가? 그것도 이 남박사가 퍼뜨린 오류다.
실제 실록을 보면 '병선(전투함)은 앉아서 노를 젓기에 방향을 바꾸기 어렵다'는 보고가 있다.
그럼에도 남박사는 '서서 젓는 노가 조선식, 앉아 젓는 노가 서양식'이라는 이분법적 사고를 적용했다.
게다가 남박사는 '목선은 비중이 낮아 물에 가라앉지 않는다. 따라서 거북선도 침몰하지 않는다'라는 주장도 했는데 정작 목선들은 통일신라 시대 1척, 고려시대 13척, 조선시대 1척 등 물 속에서 잘만 발견된다.
이런 남박사의 주장이 틀리길 바라는 사적인 감정 때문이라도 언젠간 거북선이 발견되길 바란다.
두번째 이유는, 화제가 되었던 이순신 피규어 기억나는가?
고증을 잘 살린 피규어라고 인터넷에서 극찬을 받았었는데 한번은 자료 수집을 위해 아티스트 분에게 연락을 드렸더니 정말 의외의 이야길 하셨다.
"거북선이나 판옥선은 평저선이 아닐 것이다. 당신(작성자)은 거북선, 판옥선 직접 본 적 있느냐. 평저선 구조로 항해나 해전이라니 말도 안된다."
그때부터였어요. 거북선을 언젠가 직접 발굴되길 바랐던게...
마지막 이유는 내 목표를 세워준 곳이 국립해양유산연구소이기 때문이다.
1970년대 한국 최초의 해저발굴 계기가 된 '신안보물선'을 시작으로, 앞서 말한 고선박 15척을 발굴한 곳도 이곳이다.
가장 최근에는 벽파진해전이나 명량해전에 쓰인 것으로 보이는 총포인 '소소승자총통'을 발견하는 성과를 거두기도 했다.
언젠가는, 민족의 상징이자 가장 유명한 전통선박 거북선이 세상 밖으로 나타나길 기대한다.
거북선 판옥선이 평저선 아니라는 건 도대체 뭔 소리야;;; 우리나라 선박역사를 혼자서 다시 쓰는 이야기인데
솔직히 충격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