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구컷이었나?
실제로 얼마 들어가지도 못하고 자귀 부근에 머물렀으니 위치상 그렇긴 한데,
반대로 그 위치를 사수할만큼 방어에 중요한 구역이라, 당연히 그곳에서 격전이 벌어질 만큼의 위치긴 했음
유비가 무력했나?
의외인데 연의상에선 그냥 군사숫자로 밀어붙히는 것에 가까운데
유비가 나름 책략도 짜고 오나라 장수들을 혼란시킨 기록이 나오는 지라
연의완 다르게 역량은 어느정도 증명한 셈
대국적 시야
유비가 감정적인 면에서 일으키고 제갈량과 조운이 반대한 만큼 감정적인 면이 많이 들어간
전쟁임, 즉 좋은 타이밍의 전쟁은 결코 아니었던것.
하지만 유비가 데리고 간 신하들의 숫자를 보아하면 형주수복의 목적도 있었긴 했었던 것 같음
라고 해봐야 결국 위나라가 있는 이상 오나라랑 오랫동안 치고박을수록 둘 다 몰락의 길을 가속했겠지만.
전쟁 후 오나라 또한 힘들었나?
육손의 현명한 판단으로 인한 유비의 침략은 조기에 끝나고
손권의 외교스킬로 조비의 침공을 최대한 늦춘후, 조비가 오를 침공 했을 땐
조비에게 날씨기후의 운이 따라줬음에도 오나라가 위나라를 저지하고
오나라를 지켜내는 데 성공함,
그리고 손권은 황제에 오르게 됨
이후에 삼국지 시대가 정체되고 엔딩이 흐지부지 되서 그렇지
이때가 최전성기였다는건 부정못할 사실
이릉이 끝나고 난 후의 각국의 서술
유비가 반성문을 보냈다는 오나라의 기록과
유비가 백제성에서 대기탔다는 걸 보고 두려워했다는 촉의 기록이 있음
의외로 서로 상충되지 않는 기록이라 둘 다 수용해도 이상친 않음
(패배한 유비가 반성물을 보내는 것도 이상치 않으며,
반대로 위의 침공을 대비해야하는 오나라 입장상 또 한 번 유비가 들어오는건 굉장히 부담스러웠을 가능성이 큼)
사실 적벽처럼 나름 문학적이고 스토리적인 매력이 있는 대전인데
여러모로 팬덤싸움에 묻혀버린게 아쉬운 사건
딱 적절한 의견이네
그냥 추함 상쇄하려는 포장같은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