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병우 님.
이 분이 누구시냐면 울나라 최초의 안과전문의이자
우리나라에서 최초의 안과병원을 세우신 분임.
그 자체로도 대단하지만 이 분이 한글과 뭔 상관이냐고???
어느날 공병우 선생님의 병원에 한글 학자인 이극로 선생이
진찰을 받으려 온 적이 있음.
이극로 선생은 해방후 북한으로 거주지를 옮긴 관계로 울나라 한글사에서
많이 누락되는 부분이 있지만 절대 한글사에서 잊으면 안되는 분임.
특히 울나라가 일본에게서 독립 못할 때를 생각해서 한글이 잊혀질까 걱정해
소르본 대학의 구술 아카이브에 많은 한국어 녹음본을 남겼음.(울나라 최초의 한국어 녹음본들임.)
어째던 이극로 선생이 진찰 받으려 와서 한글사랑을 전파함.
공병우 선생은 일본에서 공부한 엘리트로 사실 한글에는 별 관심이 없었는데 이극로 선생에게 감화되고
안과병원은 아들에게 넘겨버리고 그 때부터 한글에 전념하게 되심.
이 분이 남긴 업적을 보면.......
국내 최초한글 시력 검정표를 만드셨고
한글 세벌식 자판...그리고
공병우 세벌식 타자기임. 이건 한국전쟁때 중요한 기록을 다 남겼고
한국 문화 유산으로 2대가 지정됨.
당시 일본어 타자기와 중국어 타자기와 비교해 엄청나게 발전한 자판이였음.
그리고 지금도 세벌식이 낫다. 두벌식이 낫다. 이런 논쟁들이 있고...
어째던 공병우 선생이 한글 타자기를 개발하게 되면서
울나라의 한자사용이 현저하게 적어짐.
이후 정치적.....그리고 한문 중시주의자들 때문에 약간 탄압도 받고
5공화국 시절 로비로 인해 한국 자판은 두벌식으로 하라고 해서
지금은 두벌식 자판이 대중화 되었지만 문서의 한글화에 절대 누구보다 빠지지 않는 분임.
덤으로 아래한글 개발할 당시 공병우 선생이 한글 워드프로세서의 중요성을 아시고
많은 후원을 하셨서 순수 한국의 워드 프로세서가 나오게 됨.
공병우 1907~1995
※한글 점자도 이 분이 개선하셨다는데 이 부분은 잘 모르겠음.
전에 몇번 올렸던건데 한글날이라 또 올림.
https://youtu.be/hJSr07mEoe8?si=G6Gq1liOSDKR4RgC 이극로 선생님의 한글음성자료
독립 못할때마저 대비해 문화를 기록하다니 위대
한글날 추천!
저분의 타자기가 아니었다면 한글이 풀어쓰기로 바뀔 수도 있었지
와 위인전이 나와도 전혀 부족함이 없네
공병우 란 이름자를 내가 잘은몰라도 왠지 들어본거 같은데 싶더라니 이런 업적을 남긴분이었구나
한글날 추천!
1등
공병우 란 이름자를 내가 잘은몰라도 왠지 들어본거 같은데 싶더라니 이런 업적을 남긴분이었구나
아직도 서울에 공안과가 있는걸로 알아
서울 도심쪽 역 가다 보면 공안과 광고 있어
80년대 문서들 보면 타자기로 작성한 게 많던데 보면 지금봐도 괜찮긴 하더라
워드 일반화 되기전엔 공문서는 전부 타자기였지 90년대 중후반까지
https://youtu.be/hJSr07mEoe8?si=G6Gq1liOSDKR4RgC 이극로 선생님의 한글음성자료
()도로롱
독립 못할때마저 대비해 문화를 기록하다니 위대
기록의 민족...ㅋ
종로에 공안과 겁자기 생각나서 설마? 했는데 맞네..
감사합니다
와 위인전이 나와도 전혀 부족함이 없네
저분의 타자기가 아니었다면 한글이 풀어쓰기로 바뀔 수도 있었지
근대말에 연구되던 방법이군
추천머거
여러 가지 의미로 초기 우리나라 전자출판 DTP 쪽 발전에도 큰 도움을 주신 셈이지. 아래아 한글, 쪽박사, 날개셋 등등 리플에서 주절주절 풀기 힘들 정도로 긴 이야기지만. 마이크로소프트가 진작부터 퍼블리셔와 워드 통합 쪽을 신경 썼으면 진짜 잡아 먹혔을지도. 젊은 인재들의 한글 워드 소프트웨어 쪽 지원에 아낌없는 지원이 위대한 수준이셨던 분. ㅠㅠ
왜 훈민정음을 직접 만드시고 나약한 세종에게 한글의 위대함과 과학스러움을 설파해주신 신미대사님이 아니시죠?
근데 지금 이 글이랑 무슨 상관임?
공병우의 타자기는 기계식 타자기로 처음으로 모아쓰기를 구현했고... 표준 타자기를 정해야 할 무렵에 시장에서 쓰이던건 세벌식과 다섯벌식이라고 함 그런데 (정치적인건 모르겠고) 둘 다 시장에서 쓰이는건데 하나 편 들어주면 안된다고 네벌식을 새로 만듬 세벌식의 애매한 폰트와 다섯벌식의 불편한 사용법을 합쳤다고 했나 근데 그게 공무원들이 강제로 쓰다 보니까 그럭저럭 사용자가 나오고 컴퓨터 타자 시대가 오면서 네벌식을 기반으로 두벌식을 만들어서 표준으로 지정하고 그게 퍼져서 이렇게 됐다고 했나?
아직도 공안과가 있다지 가히 유적지네 그전에 아들도 안과의사여서 같이 하다가 한글 연구에 빠져서 아들이 도맡게 된거네
공병우 이극로 선생님들 이름 잊으면 안되겠네 혼란스럽던 시기에 이렇게 한글의 현대화에 힘써주시지 않았다면 오늘날 어떤 불편함이 있었을지
세벌식이 속기사들 사용할 정도로 빠르다며
오래 사셨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