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과는 사실 디게 다방면으로 시험치는 거였음
단순히 쌈박질 잘 한다고 뽑히는 시험이 아님.
고려 말기에 무과가 설치된 기록을 한 번 살펴보자.
(전략) 一等三人, 取諸家兵書俱通, 且精武藝者, 二等七人, 取粗習武藝, 通兵書者, 三等二十三人, 取或通兵書, 或精一藝者, 永爲恒式.” 從之.
(전략) 1등은 3명인데 제가(諸家)의 병서(兵書)에 모두 통하고 또 무예에도 정통한 자를 뽑고, 2등은 7명인데 무예를 대략 익히고 병서에 통한 자를 뽑고, 3등은 23명인데 병서에 통하였거나 혹은 한 가지 무예에 정통한 자를 뽑으시는 것을 항구적인 법식(法式)으로 삼으시옵소서.” 라고 하니, 〈왕이〉 이를 따랐다.
- 『고려사』권28 선거지2
즉 무과에서 합격하려면 병서, 그러니까 전략전술+부대관리+전쟁사 등이랑 무예 둘 다 익혀야 된다는 거였음.
단순히 무예만 뛰어난게 아니라.
거기다 저기 적힌 병서(兵書)에도 단순히 전쟁 잘하는 법만 적힌게 아니라
옛날 명장들의 고사, 사소한 부대관리법, 벌주는 기준 등등 엄청 다방면으로 다뤄짐
그렇기 때문에 무과에 합격하려면 진짜 빡세게 공부도 하면서 무예도 익혔어야 했음
근데 넌 어캐 붙었냐 진짜?
인간병기 선출시험 근데 저래놓고 결국 지휘관은 문관이잖아..
ㄴㄴ 저건 고려 말기기 때문에 문관이 지휘하지 않음 조선에서도 문관이 혼자 군을 지휘한 기록은 없음. 있어도 단순히 '이름만'올려둔 거임
?? : 불가능을 가능하게 한거면 이순신이랑 동급 아님?
돈주고? ㅋㅋ
문민통제 원칙이 강한거라
합격할 정도만인거지 그 사관학교 졸업했다고 다 장군감은 아닌거처럼
쟤는 진짜.... 질 수가 없는 칠천량에서.....
인간병기 선출시험 근데 저래놓고 결국 지휘관은 문관이잖아..
ㄴㄴ 저건 고려 말기기 때문에 문관이 지휘하지 않음 조선에서도 문관이 혼자 군을 지휘한 기록은 없음. 있어도 단순히 '이름만'올려둔 거임
낚시하는 고양이
문민통제 원칙이 강한거라
소련의 정치장교 같은거야. 무관놈이 딴짓 못하게
군부의 문민통제 정말 현대적이군
아냐 원댓글이 제대로알고있는거임 일단 근세에 이르기전에 동아시아는 대체적으로 상설 무관직이란게 개념화가 덜되었음. 그냥 고위관리가 일터지면 장군임명받아서 싸우러감. 고려시대이야기니까 고려시대로 이야기하자면 고려시대엔 윤관 별무반시절(예종~인종)때 제외하고 무과시험 자체를 안쳤고 그냥 길가다 힘좀쓰는사람있으면 데려와서 '장군'시키는데 하는일은 장교가 아니고 부사관같은 병사 훈련시키고 경비서는게 다였음. 조선시대초만해도 고려시대영향이 남아서 김종서장군만 해도 평소 하던일은 춘추관 감찰 뭐 그런거였음. 최종직위도 좌의정이고.
그런가? 조선중기랑 착각했나보다
그리고 글은 공양왕대 얘기라 실질적으론 조선시대 무과얘기임 ㅇㅇ
돈주고? ㅋㅋ
쟤는 진짜.... 질 수가 없는 칠천량에서.....
중고딘알라서점
?? : 불가능을 가능하게 한거면 이순신이랑 동급 아님?
집안 빽으로, 쉬벌.. 비리야 비리!
합격할 정도만인거지 그 사관학교 졸업했다고 다 장군감은 아닌거처럼
기왕이면 시험 과목에 포술과 산학도 포함시켰으면
지금도 마찬가지 뭐. 시험통과한거하고 실무하곤 다르니까..
음서: ㅎㅎㅋㅋㅈㅅ
원균은 음서로 들어간 놈으 어떻게 통제사까지 올라갔는지가 더 미스테리임
전공조작을 잘해서
고려는 무과 없이 무신 홀대한걸로 아는데 말기에는 도입했구나
근데 저게 공양왕때 기록임. 공민왕대 도입하려던거 실패하고 어차피 조선 생기기 직전이라 사실상 조선때 생긴거라봐도 무방함
ㅇㅎ... 그럼 그전에 거란 - 여진 - 몽골 3트를 무과없이 무슨 수로 막아냈는지 참 ㄷㄷㄷ
무과도 두가지가 아닌가 함. 장군 뽑는 무과. 무관 뽑는 무과.
ㄴㄴ무과는 그렇지 않음 지금으로 따지면 장교를 뽑는 시험이기 때문에 드간 이후에 인사고과나 성과기록을 통해서 갈리게됨
내가 말한 무관드른 금군을 뜻한거였음. 오해시켜서 미안합니다.
원균은 음서도 아니고 고시부정합격이라는 의혹이 강한 쓰레기임 근거도 꽤있고
삼국지로 치면 무력말고 통솔력도 본다는 이야기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