댓글 중에 '진짜 궁금해서 그런데 그럼 스토리가 볼만한 게임 뭐가 있어요?'라는 질문에 댓글을 적었는데 너무 길어져서 따로 글을 팠습니다.
많죠. 많은데.
스토리 매체라는 건 결국 대중문화 컨텐츠입니다. 쉽게 말해서 절대 다수의 지지를 받지 못하는 상대적 오락거리라는 뜻이죠. 모두를 만족시킬 수는 없어요. 때문에 로스트아크 스토리에 만족 못하시는 분들도 계시고 그럭저럭 받아들이는 분도 계시고 편차를 따지자면 끝이 없긴 합니다. 없긴 한데. 이 게임은 19금 게임이라는 말이죠.
19금이 뭘까요. 남녀가 살 섞는 야한 거? 사시미로 배때지 쑤시는 잔인한 거? 이런 것들은 부수적인 장르에 국한 될 수밖에 없습니다. 에로라거나 스릴러라거나. 핵심은 로스트아크에 로그인이 가능한 성인들이 이 게임을 플레이하면서 과연 등장인물에게 감정 이입을 할 수 있느냐, 얼마나 빠져들 수 있느냐에 있습니다.
대중문화 컨텐츠? 모두를 만족시킬 수 없죠. 하지만 상대적 다수를 공감 시킬 수는 있습니다.
마법과 기사의 나라? 익숙하죠. 진보된 기계 공학을 바탕으로 성장한 도시 국가? SF 설정이지만 낯설지는 않아요. 걸리버 여행기? 동화책에서 많이 본 설정인데다 성인 게임이랑 어울릴까 싶지만 우리는 19금이라고 야하고 잔인한 것만 빨아주는 변태가 아니에요. 슈샤이어? 역시 판타지 게임이면 눈 덮인 동네 하나 정도는 나와 줘야죠. 베른은 여왕님이 겁나 예뻐요. (사랑합니다.)
이렇듯 설정 자체는 공감대 형성에 별 문제가 안 됩니다. 록타르 오가르! 호드를 위하여! 우리 사는 세상에 녹색 거인들이 어디 있어요. 하지만 워크래프트에 열광하는 유저들은 이 외침 한 마디에 질질 싸면서 웃통을 찢습니다.
그렇다면 로스트아크의 스토리에 광분하는 유저들이 가장 빡치는 요소가 뭘까요? 바로 양산형 공장에서 양산형 틀에 넣고 양산형 상품으로 양산형 매장에 진열해둔 것 같은 진부해 빠진 유치하고 오그라드는 스토리에 있습니다.
로스트아크의 메인 스토리는 수많은 양판소의 클리셰들을 쉐킷쉐킷 섞어서 만든 게 눈에 보입니다. 섬에 들러서 난관을 헤치고 질질 짜다가 잔치 열고 동료 얻고 섬에 들러서 난관을 헤치고 질질 짜다가 잔치 열고 동료 얻는 육다가 그리는 만화처럼 이 게임의 메인 스토리는 30만 원짜리 유럽 여행처럼 판에 박힌 듯 똑같습니다!
원작자가 자신의 이력을 몽땅 갈아 넣어서 유저의 심장을 찌르는 예리한 비수 한 자루를 벼려냈다! 이딴 거 이 게임에서는 찾아 볼 수가 없습니다!
저희 집에서 가족들이랑 옹기종기 모여서 다 같이 드라마를 보고 있으면 갑자기 아버지께서 다음 장면을 예상하십니다. 우리는 몰입 깨지니까 그런 것 좀 하지 말라고 하지만 진짜 빡치는 건 정말로 아버지께서 예상하신 스토리가 그대로 흘러나온다는 거에요.
하 시바 ㅋㅋㅋㅋㅋㅋ 생각만 해도 빡치네 ㅋㅋㅋㅋㅋ
로스트아크 메인 스토리가 딱 이런 겁니다! 유저의 마음을 찌르는 회심의 한 수? 없어요! 절절 끓는 부성애와 모성애를 자극하는 아름다운 스토리! 서브 퀘스트에 있더라고요. (이런 게 메인 스토리에 있어야할 거 아니야!) 성인 남녀의 공감과 인정을 끌어내는 눈물샘 촉촉해지는 이야기? 없긴 한데 이런 이야기는 순수 스토리 매체에서도 접하기 힘드니까 이해는 할게요. 그런데 이런 시도 자체를 이 작품에서는 찾아 볼 수가 없어요!
스토리를 보면서 하 저 새키 죽여 벌라 하 저 인간 왜 저럼 개답답 아 씨 저것들은 왜 여기서 꽁냥대고 지랄이야 이런 말이 스토리를 따라가는 유저 입에서 줄줄 흘러야 됩니다. 적어도 스토리 매체를 뿌리에 두고 있는 작품이라면 말이죠.
그런데 누가 그러더라고요? RPG 게임에서 스토리는 그냥 곁다리고 결국 게임 성을 봐야한다고. 스토리도 게임성의 일부입니다! 우리 어렸을 때 오락실에서 즐겼던 수많은 게임들? 다 스토리 있어요. 하지만 중요하지는 않았죠. 그때는 그걸로도 충분 했거든요.
하지만 작금의 미디어 매체는 대부분 원 소스 멀티유즈(One-Source Multi-Use)를 기반에 두고 있고, 원 소스 멀티유즈의 기반은 바로 스토리에 있습니다. 이 스토리로 소설 나오고 만화 나오고 애니 나오고 게임 나오고 영화 나오고 드라마 나오고 연극 나오고 이를 바탕으로 굿즈 나오고 특판 나오고 이러면서 돈 버는 겁니다.
2018년 현재 대부분의 문화 컨텐츠를 소모하는 성인들의 눈은 아주 높아졌어요. 클리셰 떡칠한 작품으로는 원 소스 멀티유즈 시대에서 살아남을 수가 없습니다? 플랫폼마다 눈 돌아가게 재밌는 작품을 트럭으로 쏟아내는데 살아남겠어요? 그러니까 로스트아크 스토리가 욕을 다발로 처먹는 겁니다.
개인적으로 마비노기 영웅전 스토리는 나쁘지 않았어요. 물론 스토리 전개를 위해 연출을 희생하거나 연출을 위해 스토리를 덜어내는 부분이 있었던 건 아쉽게 생각합니다만 온라인 RPG 게임에서 그 정도면 선방했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블레이드 앤 소울 스토리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아, 물론 2014년 백청산맥 리부트 전까지를 말하는 겁니다.
물론 이런 작품들에도 클리셰가 없지는 않아요. 하지만 우리들의 심장을 찌르는 반전과 예상치 못한 한 수 정도는 존재했죠. 근데 둘 다 게임이 너무 오래돼서… 이미 알 사람들은 다 알죠. 누구나 아는 반전은 반전도 아니고요 ㅋ
글이 너무 길어졌습니다. 짧게 요약하고 줄이겠습니다.
로스트아크의 메인 스토리는 구조적으로 클리셰가 너무 많이 쓰였습니다. 유저가 ‘어? 이거 어디서 본 것 같은데?’라고 생각하는 모든 요소가 클리셰고 우리 모두가 그걸 적어도 한 번 이상은 느꼈습니다.
볼만한 스토리라는 이야기는 클리셰를 최소화하고 개연성을 살려 전개에 힘을 불어넣은 이야기를 말합니다. 솔직히 띵작을 구분하는 기준은 2차 창작물의 유무인데 로스트아크가 3차례에 걸친 CBT를 진행하면서 2년 3개월의 시간이 흘렀지만 저는 어디서도 로스트아크의 2차 창작물을 본 적이 없습니다.
스토리에 매력이 없다는 뜻이죠.
P.S
‘아 진짜 드럽게 재미없네. 이런 스토리라면 나도 쓰겠다.’라는 생각이 떠오른다면 망작이라는 뜻이고 그 반대라면 띵작이라는 뜻입니다. 판단은 여러분이. ^_^
아 다 썼다. 게임하러 가야지.
이분 스마게에서 데려가야함
전에 작가를 제작 도중에 초빙했거나 그 작가의 노력이 제작 과정에 제대로 반영되지 않았다는 글이 있었는데, 아무래도 그거 둘 다인 거 같아요. 기획이 아니라 제작 단계에서 작가를 데려왔고, 그마저도 제대로 스토리 제작에 참여하지 못했거나 그럴 권한도 얻지 못한 겁니다. 그러지 않고서는 미완성인 부분을 온갖 클리셰로 범벅을 만들어놓고, 사이드퀘마저 돌려쓴 걸 설명할 길이 없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