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뒤늦게 발더스 게이트3를 손댔다가 두 달이 훌쩍 지나버렸네요.
처음에는 긴가민가했는데 지금은 인생게임이 되어버렸습니다.
다른 세계에서 다른 인물이 되어서 동료들과 모험을 떠나는 것은 대부분의 게이머들이 흥미로워하는 소재이죠.
저는 어릴 때부터 드퀘와 파판을 즐기며 자랐습니다.
성인이 되어서는 와우와 블소, 테라에 푹빠져서 밤을 지새웠었죠.
모르긴 몰라도 제 또래 게이머들 대다수는 저와 비슷하게 RPG라는 장르에 익숙하고 또 사랑하는 유저들일꺼라 생각해봅니다.
빠른 템포의 게임들이 유행인 시절들을 지나며 RPG 게임에서 멀어졌다가
이번 발게3를 하면서 어릴적 그 즐거웠던 시절로 돌아간 기분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초회차 250시간 플레이를 마치며 "나"의 이야기가 완결되는 것을 보니 많은 감정과 생각들이 교차하더군요.
기존에 즐겨왔던 RPG들과 참으로 달랐고 바로 그 차이점들이 이 작품을 진정한 대세 롤플레잉 게임으로 올려 놓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작품을 관통하는 가장 큰 특징은 치밀하게 계산된 불확실한 자유였습니다.
제작자는 잘 설계된 모든 경우의 수를 보이지 않게 깔아두고 유저들을 유혹합니다.
유저들은 무한한 자유속에서 모험하는 듯한 행복한 착각에 빠져들어서 깊게 몰입하죠.
수많은 선택과 결과, 우연과 필연, 계획과 실패들이 교차하면서 나만의 모험을 이루어갑니다.
마치 내가 그곳에 정말 존해하고 모험하는것 처럼말이죠.
발게3의 스타일은 그렇게 까지 친절하게 모든 것을 알려주는 게임은 아닙니다.
시작부터 끝까지 불완전하고 부족한 정보로 플레이어를 당혹스럽게 합니다.
또 모든 상황들은 D&D 시스템 특유의 주사위 굴림이라는 불확실한 확률에 의해 결정됩니다.
주사위를 굴려서 성공과 실패에 따라 모험의 방향은 변화하고 이는 운과 케릭터의 능력치에 의해 또 한번 영향을 받습니다.
그 불안감을 이겨내고 호기심을 충족시키기 위해 플레이어는 끊임없이 조사하고 읽고 탐색하면서 힌트와 정보를 모아갑니다.
때로는 그 조사와 탐색들이 어떠한 큰 사건의 시발점이 되는 경우도 있어 보다 더 놀라운 경험으로 플레이어를 이끌어가기도 하죠.
스토리와 극의 전개도 예측하기 어렵고 선과 악의 구분 또한 모호합니다.
내가 옳다고 행하는 행위들이 때로는 비참한 결과를 가져오기도 하고
그럴 것이라고 예상했던 결과들은 가차없이 뒷통수를 치며 상황을 뒤엎습니다.
아주 작은 결정들이 나비효과가 되어 훗날 큰 결과를 가져오기도 하고요.
어느 동료와 어느 곳에 가서 어떤 행동을 했는지에 따라서도 끊임없이 스토리는 요동칩니다.
이 모든 것들이 플레이어가 적극적으로 통제할 수 없는 불확실한 상황을 만들고
역설적이게도 그 불확실함이 플레이어로 하여금 더 궁금하게하고 더 기대하게하는 확실한 재미를 주는거죠.
모험의 과정에도 상상하는대로 해볼 수 있는 자유가 있고 또 그 자유가 구현되는 결과에도 불확실성이 개입합니다.
예를 들어 플레이어는 건물에 잠입하기 위해 배수구를 통해 들어가 볼 수도 있고
동물로 변해 들어 갈수도 있고 날아서 지붕을 통해 들어 갈 수도 있고
힘으로 문을 열고 들어가 정면 돌파할수도 있습니다.
무엇을 상상하던 그럴싸하게 실현됩니다.
이것은 마치 젤다의 전설 야생의 숨결을 처음할 때 느껴본 감정과 비슷했습니다.
하지만 여기에도 불확실함은 존재합니다. 그 내부에서 발생하는 예기치 못한 우발상황은 항상 있고
상상도 못한 곳으로 이어지기도 하죠 직접 맞닫들이지 않고서는 그것을 외부에서는 쉽게 알 수 없습니다.
다음 장소에 다다르면 저절로 여기에서는 어떤 모험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까 기대하게 되는 것이죠.
적보다 환경요소를 고려해야하는 전투도 흥미로웠습니다.
발게3의 전투는 기존 RPG에서 보던 그런 매턴 같은 방식으로 예상되는 행동 하는 적을 상대하던 전투와는 다릅니다.
매턴 이동거리는 스킬을 통해 더 연장되기도 하고 장애요소에 의해 또 줄어들기도하죠.
이로 인해 적들이 얼마나 이동해올지 아주 예측하기 어렵습니다.
다양한 적들의 스킬과 특성은 일단 겪어 보지 않고서는 대처법을 알기가 힘들죠.
전투 스킬대신 바닥에 기름을 뿌리고 불을 지르거나 물을 뿌리고 번개를 쏘던가
천장의 구조물을 활로 쏴 떨어뜨리거나 문을 열고 닫아 적을 한명씩 고립시킬수도 있죠.
이외에 수많은 방식으로 환경요소를 이용해 전투를 이끌어 갈 수 있고
무엇을 상상하든 하면 된다는 점이 전투에도 적용됩니다.
단 이러한 요소는 적들도 똑같이 사용할 수 있으며
역시 주사위 굴림이라는 변수가 항상 존재하기에 전투내내 그 불확실성으로 인한 긴장감은 계속 유지됩니다.
적절한 밸런스는 파밍이 완성되는 후반에는 조금 무너지긴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요 보스전에서의 재미는 충분했다고 봅니다.
몰입에 기본이 되는 훌륭한 음악과 성우, 케릭터 표정연기에 대한 미친 디테일은 이미 많이 들으셨을텐데요.
첫 NPC의 대면장면에서 클로즈업 된 케릭터 얼굴보니 정말 생동감 넘치더군요.
엄청난 공을 드린 페이스 캡쳐와 성우연기는 웰메이드라는 첫인상을 주었습니다.
상황과 분위기에 맞는 아름답고 멋진 OST들은 게임을 끄고서도 흥얼거릴 정도였습니다.
무대의 기본이 되는 배우와 음악이 이렇게도 몰입에 중요하구나 라는 생각을 다시 해볼수 있었네요.
RPG라면 기본적으로 서사가 가장 중요하다는 것은 다들 동의하실 겁니다.
발게3의 스토리는 정말 흥미롭습니다.
얼핏보면 무슨 판타지 세계에 우주선과 외계인이야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거의 모든 떡밥은 훌륭하게 회수되고 감춰진 비밀들은 적당한 순간에 드러납니다.
주인공 말고도 함께하는 동료들의 네러티브도 훌륭했습니다.
각자의 삶이 스토리의 진행에 따라 드러남에 따라 케릭터성이 더욱 부각되고 케릭터들에게 몰입하게 되더군요.
각 퀘스트들간의 상호작용도 멋졌습니다.
동료들의 스토리, 사이드 퀘스트들이 얼핏 봐서는 상관없어 보이지만
예기치 않게 스토리에 영향을 주고 받으며 유기적으로 상호작용을 하면서 네러티브를 더욱 풍성하게 만들어 갑니다.
이미 큰 줄기 만으로도 훌륭하지만 멋진 곁가지들이 나무 전체를 더 멋지게 만들어 가는 느낌이었습니다.
그렇게 나의 선택에 의해 요동치는 스토리를 보고 있자니 마치 정말 내가 나의 서사를 직접 써내려 가는 각별한 기분이 들더군요.
세상에 완벽한 것은 완벽이라는 단어 밖에 없겠죠.
이 게임에도 단점은 존재합니다.
누군가에게 매력적인 D&D세계관은 뉴비에게는 생소하고 어려운 크나큰 진입장벽이 될 수 있습니다.
저처럼 발게3를 통해 처음 D&D세계관을 경험하는 사람들에게는
수많은 용어들과 개념, 세계관들이 초반 부터 숨을 턱턱막히게 합니다.
이 부분 때문에 상술한 장점들이 오히려 초반에는 단점으로 다가올 수도 있는거죠.
UI가 훌륭한 편은 아닙니다.
기술 한번 제대로 쓰려면 꽤 오랜시간 동안 익숙해져야하는 상황이 발생합니다.
복잡한 UI 의 숲에서 길을 잃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써야하죠.
제 경우 마법사로 플레이를 했었는데 자주 쓰는 스킬만 15가지 정도가 됐었습니다.
필요한 스킬을 잘 찾아 쓸수 있게 되기까지 적지 않은 적응시간이 필요했습니다.
인벤정리도 사실 편하지는 않았습니다.
장르 특성상 수많은 루팅과 그로인한 템들이 넘쳐나게 되는데 아이템 정렬 기능이 강력하지 못해서 템 하나 찾는데 꽤 오랜 시간을 써야했죠.
기술적으로도 문제가 조금 있습니다.
자잘한 버그가 여기저기 있고 특히 그래픽적으로 표현할 것이 많은 도시 지역에서는 그 버그가 좀 더 자주 도드라지게 발생합니다. 시각적으로 모델링이 깨지는 단순한 버그부터 게임 자체가 뻗어버리는 버그까지 다양하죠.
한번은 케릭의 무기가 해제되지 않아 꽤 오랜시간동안 키운 케릭터를 버릴뻔한 상황도 발생했었고요.
초반에 보여주었던 안정적인 프레임 유지는 역시 도시 지역으로 넘어가서 처참히 요동칩니다.
이러한 버그들은 게임의 후반부에서 더욱 도드라지는데 안그래도 템포가 중요한 부분에서 버그가 발생하면 상당히 몰입에 방해가 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무나도 즐겁게 250시간을 보냈고
놀랍게도 엔딩을 보자마자 다른 게임만 아니면 바로 2회차를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수많은 퀘스트라인과 스토리 라인들을 결코 1회차로는 다 해볼수가 없었고
다른 파티 구성으로 다른 장비 세팅으로 다시 모험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분명 또 다른 멋진 모험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거라는 확신이 생겼으니까요.
RPG팬 이라면, 새로운 것에 목말라 있는 사람이라면 이만한 선물은 없을 것이라고 추천드리고 싶습니다.
거의 무한한 가능성이 펼쳐진 무대위에서 자신의 운명을 뒤바꿀 주사위를 한번 던져보시는 어떠실까요.
긴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진짜 GOTY받을만한 게임이었습니다!!!
이 글을 읽다보니 또 하고 싶군요
저도 너무 재밋게하고 있습니다. 1달 동안 했는데 1막 끝나갈려고 하네요. 40대 아저씨가 하기에는 시간이 너무 많이 들어가요ㅜㅜ
멋진 글 잘 읽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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