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패가 나왔다는 얘기를 듣고 감사한 마음으로 다시 잡아봤습니다
간만이지만 감상에 큰 변화는 없었네요
스토리 자체는 완성도가 있습니다. 진엔딩을 보고 나서는 충분히 좋았다고 생각할 정도로요
다만 거기까지 이르는 과정 자체가 루프란보다 끔찍하리만큼 열화된 게 문제입니다
가장 큰 문제는 하납니다. 던전 자체가 지루하다는 거
루프란은 딱히 지루할 틈이 없었어요. 소인국에서 벗어나면 지하가 나오고, 지하를 벗어나면 정원이 나오고, 정원을 벗어나면 탑이 나옵니다. 계속 배경이 바뀌어요.
배경만 달라지는 것도 아닙니다. 각 던전에는 등장인물이 있고, 스토리가 있고, 떡밥이 있습니다. 심지어 그걸 바탕으로 메인스토리가 진행되고요.
그 모든 떡밥을 충실하게 쫓아온 플레이어는 후반부에 자연스레 모든 진상을 깨닫게 됩니다. 덤으로 각 세계에서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도요. 아스토룸의 소인들은 어떻게 생겨났는가, 메룸은 왜 그렇게 생겨먹었는가, 페눔의 더럽게 큰 식물은 뭐였는가 등등..
나스 키노코가 깊은 감명을 받았다고 말할 정도의 스토리텔링이라 할 만 하지요
그럼 갈레리아는 어떠냐 하면, 이 장점이 정말이지 단 한 개도 남아있지 않습니다.
날텍스? 압스? 찬셀? 아파르트만?
그냥 던전입니다. 그게 다예요.
떡밥이야 여기저기 있긴 하지만 굳이 그곳일 의미가 없고, 구조며 이름을 바꿔먹거나 추가해도 아무런 상관도 없습니다. 플레이어가 던전을 돌아다니며 흥미를 느낄 요소가 거의 없어요
물론 스토리의 차이가 있으니 루프란처럼 만들라는 건 말도 안 되는 얘기지만 이 정도로 무가치하게 만들 이유까진 없잖습니까?
심지어 그런 주제에 독기니 물이니 플레이타임을 늘리는 요소는 열심히 추가해 놔서 더더욱 지루하게 느껴집니다.
2부로 넘어간 시점의 짜증이나 EX던전의 노답스러움은 많이들 언급하는 문제이니 생략하더라도 그렇다는 겁니다. (그래도 스팀 버전은 좀 나아지긴 했더군요)
심지어 스토리를 호평했습니다만 이건 어디까지나 전체를 놓고 볼 때 그렇다는 얘기입니다
풀어내는 방식에는 제법 문제가 많아요.
엄밀히 말해, 갈레리아가 던전 내 스토리텔링을 포기한 것 자체는 문제가 아닐 수도 있습니다
진짜 문제는 그걸 포기해놓고도 메인스토리 후크 자체가 엉망이라는 거예요
루프란의 드로니아는 미궁에 명확한 목적이 있었습니다. 그 목적성과 거기에 따른 갈등이 스토리에 동력을 부여하고, 유저의 흥미를 유도합니다
갈레리아 1부의 유리카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얘는 그냥 일하러 온 거고 거기에 수상쩍은 백작이랑 이 시점에선 누군지도 모르겠는 노인네 하나가 하라는 대로 끌려다니는 것뿐이에요. 심지어 '에헤헤' 가 밈이 될 정도로 답답한 성격은 덤입니다.
그 지루한 스토리로 1부는 떡밥만 줄줄줄 늘어놓다가 끝납니다
2부에선 조금 풀어주긴 하지만 여전히 답답해요
본격적으로 스토리가 탄력을 받는 건 칼체비타 직전 무렵인데 이미 후반부에 해당합니다
심지어 '음, 좋았네' 결론이 나려면 진엔딩 쯤은 가야합니다. 그 엿같은 EX던전을 뚫어야 한다는 뜻이죠
장담컨대 웹소설, 아니, 라노베쯤 되어도 이딴 식으로 스토리 늘어놓으면 뒷권을 장담할 수 없습니다
초회차 때는 너 돈 썼잖아? 클리어 안할 거야? 수준의 배짱튀기기에 감탄밖에 안 나오더군요..
뭐, 이렇게 떠들었음에도 갈레리아는 충분히 좋은 작품입니다.
후크가 아쉽다는 거지 서사 자체는 깔끔하게 회수했고, 전투 자체도 충분히 재미있습니다
DRPG와 동화풍 스토리를 좋아하신다면 충분히 수작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요
그럼에도 이렇게 아쉬운 점만 언급하는 이유는 전작인 루프란이 충분히 명작이었기 때문입니다
왜 이렇게 장점을 못 살리고 단점만 키운 건지 모르겠을 정도로요
갈레리아에서는 여러모로 차기작 떡밥이 언급되고 있는데, 차기작은 부디 초심을 더 찾았으면 좋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