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격 딱지하는 소설 링크 모음
"힛, 후힛. 히히힛."
애리는 사진 한 장을 한참 들여다봤다. 그 얼굴은 이내 참 징그럽고 기분나쁘게 뒤틀렸고 말이다.
그 손에 들린 것은... 지민이 4강 진출을 확정짓던 순간의 사진.
아마추어, 그것도 고등학생 사진 동아리의 사진치곤 아침 일찍부터 경기장에 가서 준비한 보람이 있었다.
"지민이 걔 얼마 전에 3학년 선배한테 고백받았다?"
"...진짜?"
딱히 요즘 일도 아니다. 중학교 3학년 말기부터 지금까지. 지민은 고등학교를 다니는 내내 늘 다른 학생들의 주목을 받았다.
밝고 활기찬 성격에, 어릴 적부터 가게에서 일해오다보니 발도 넓었다. 진학 전에도 이미 안면을 튼 사람도 많았고. 듀얼 실력은 중학교 졸업 직전부터 상승세를 타더니 이제는 같은 학년 안을 넘어 학교 전체로 봐도 손에 꼽을 정도.
특히나 2학년부터는 애리가 옆에서 덱 구축부터 코디까지 찰싹 붙어다니며 케어해주다보니 미모도 물이 확 올랐다.
게다가 지금의 지민은 교대표 8강까지 무난하게 통과하고 4강을 이미 확정지은 상황.
말 그대로 학교의 슈퍼스타나 다름없다.
"그래서?"
"당연히 찼지~ 뭘 기대했어?"
"하긴, 그럴 거 같았다. 지민이 걔 이상형은 자기보다 듀얼 잘하는 남자랬지?"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지.
지민은 연애보다 듀얼에 더 관심이 많았다. 그 선배랑 그렇게 친하지도 않았고, 결정적으로...
"정 포기 못하겠으면 이긴 쪽 말 따르자고 하더니 그냥 듀얼로 개박살을 냈더라."
...자기랑 겨룰 실력도 안되는 남자에게 넘어갈 정도로 지민은 쉬운 여자가 아니었다.
내 또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윤수는 피식 웃어넘겼다. 그러다 문득 무언가 떠올랐다.
지민이보다 강할만한 남자애가 학교에 한 명 있다. 바로...
"야, 그럼 남해가 고백하면?"
"응? 남해?"
대충 넘겨도 될 질문. 하지만 에리는 갑자기 그런 질문을 들으니 자기도 궁금해졌다.
남해라면 어떨까?
지민이랑 친분은 충분하지. 실력? 남해라면 실력도 박빙이네. 에이, 그렇지만 걔네는 서로 호감이 없잖아? 근데... 정말 없나?
에리의 생각은 거기서 확신을 잃었다. 남녀사이에 친구는 없다는 말도 있잖아?
아니, 그리고 정말 아무런 감정이 없는데 그렇게까지 사이가 좋을 수 있나? 정말 지민이 남해가 고백해도 밀쳐낼까?
그럼 지민이 남해한테 고백받게 되면 받아줄 수도 있나?
그 다음엔? 뭐, 다를 게 있나? 아, 있겠네. 한창 때 청소년들이니까.
뭐 손도 잡을 수 있을 거고, 손만 맞댈까. 다음 진도는? 포옹해주나? 그러면?
애리의 눈동자가 바늘구멍만큼 줄어들고는 이리저리 춤추듯 요동쳤다.
윤수는 온갖 감정이 내비치는 그 눈동자를 보고 급히 애리 코앞에서 박수를 짝짝 쳐 시선을 끌어모았다.
"얌마 정신 차려."
"앗."
"애리 너 방금 고장났던 거 아냐?"
"너무 끔찍한 생각을 해서 그만."
방금 애리는 지금 불쾌하고 기분 나쁘고 끔찍한 기분이 확 올라왔다. 그러다가 문득 의식의 흐름이 이상한 데까지 흘러갔다.
지금 2학년 애들을 실력 순으로 나열해본다면 지민이가 1등이고, 2등은 남해겠지. 그 아래로 금선, 윤수, 비룡... 낙랑이도 듀얼은 되게 잘하는 편이지.
맨날 책 읽으러 사라지는 조용한 걔도 있지. 백주은. 걔는 얼굴도 반반하고. 하지만 지민이랑 승부가 될 애라면 남해 뿐이려나.
그러면 남해 얘만 어떻게 한 번 넘어트려보면 '어느 방향으로든' 잘 풀리지 않을까.
"윤수 너, 남해한테 이기고 싶지 않아?"
"어? 음... 뭐, 그렇지?"
"그러면..."
애리는 뭔가 떠오른 듯 윤수의 귀에 뭔가 속삭였다.
그리고 같은 시각,
"아무리 생각해도 말도 안된다고."
평소처럼 점심을 먹고 학교 안을 빙빙 돌던 남해가 말했다.
8강 4경기에선 결국 미아가 승리하고 4강에 진출했다. 남해는 그 듀얼이 아무리 돌아봐도 석연찮았다.
"저격하려고 넣었을 수도 있지."
"아니, 그게 말이 안되는 전제라니까? LT유스가 그렇게 주먹구구로 돌아가는 동네 대회 같아?"
LT유스는 결승전을 제외한 모든 매치업에서 덱 리스트를 미리 제출한다.
정말로 미아가 그 한 번의 저격을 위해 덱에 다크 포스를 넣었다? 그럼 본선 올라올 때부터 이미 다크 포스가 들어있었다는 이야기다.
말도 안된다. 그러고서 8강을 왔어도 상대가 초중을 안 꺼내던가, 이쪽의 메멘토가 밴 당했다면 아무 의미가 없어진다.
4강으로 올라가고 나면? 덱에 폐지 하나 끼우고 듀얼하는 셈이다.
"그딴 카드 넣은 덱 들고 출전해서 그걸 그 타이밍에 뽑아? 말이 돼?"
"근데 그거 너 맨날 하는 짓이잖아."
그 말에 남해는 말문이 막혔다.
그래, 말도 안되는 이야기다. 하지만 이미 일어났다면 그건 엄연한 현실이다.
어쩌면 미아 누나가 엄청나게 잘 설계를 했을 수도 있지. 아니면... 음험한 방법을 썼던가.
"어, 음... 그... 그런가."
그 때, 원형의 눈에 뒷뜰 한 쪽에서 뭔가 한참 이야기하던 애리와 윤수가 눈에 들어왔다.
"니들 뭔 일 있냐?"
원형이 애리와 윤수에게로 다가왔다. 남해도 원형을 따라 이쪽으로 다가왔다.
먼저 둘을 본 윤수가 손을 간단하게 흔들며 반응했고 애리도 고갤 돌려 시선을 그 방향으로 향했다. 호랑이도 제말하면 온다더니 이야기를 꺼내자마자 올 줄은.
"별 거 아니야. 그냥 지민이 이야기."
"아~ 그 사진? 진짜 잘나오긴 했더라."
원형과 남해도 사진 동아리가 찍은 그 사진을 반 채팅방에서 봤다. 사진에 대해서 잘 모르는 둘이 보기에도 깔끔하고 멋지게 잘 찍힌 사진이었다.
"근데 브로콜리는?"
언제나 둘이랑 같이 다니는 준오가 보이지 않았다. 원형은 어색하게 굳은 표정이 됐다. 남해가 학교 쪽으로 고갤 돌리고 한숨을 푹 쉬었다.
"하... 얘 가방 들고 째다가 넘어져서 양호실 갔다..."
"뭐? 왜?"
"얘네 둘이 하루이틀이냐?"
"아니 걔 혼자 급발진한 거 아니냐?"
남해도 어이없는지 이야기하는 동안 헛웃음이 새어나왔다. 원형도 나름대로 자기를 변호하려 했지만 윤수는 원형의 말을 그냥 한귀로 스윽 흘려버렸다.
셋의 눈치를 보던 애리는 잠시 대화가 끊긴 순간 셋의 사이로 슥 끼어들었다.
"남해야. 이렇게 딱 넷이 모인 거, 태그 듀얼 해볼래?"
"태그 듀얼?"
"응!"
남해는 다른 친구들의 얼굴을 한 번씩 봤다. 딱히 하고싶지 않다는 눈치도 없었고, 남해도 굳이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남해가 고개를 끄덕이자 애리가 윤수를 데리고 뒤로 물러났고, 얼떨결에 원형은 남해와 묶여버렸다.
"좋아! 이렇게 2:2로 태그야!"
"저기, 내 의견은 안 물어?"
"자, 듀얼 준비!!"
애리는 원형의 말을 무시하고 D-패드의 블루투스 기능을 연결했다. 한 명씩 D-패드가 연동되며 구동음이 울렸다.
-...룰
-...[링크 스탠다드]
-...[태그 듀얼]
-세트 완료! 듀얼 스텐바이!
D-패드에서 전자음이 울렸다.
삐빅 소리와 함께 네 명의 D-패드에 턴 순서가 출력됐고, 순서의 확정과 함께 네 명의 덱 맨 위에서 각기 카드가 다섯 장씩 뽑혀나왔다.
""""듀얼!!""""
첫 턴은 애리. 다섯 장의 패를 유심히 살피던 애리는 그 중의 한 장을 가볍게 뽑아들었다.
"좋~ 아! 내가 제일 먼저다! [음향전사 기타스], 펜듈럼 존에 세팅!"
애리가 자신만만하게 뽑아든 카드는 [음향전사 기타스]. 지민의 매니저다운 첫 픽이었다.
원형이 슥 남해를 쳐다봤다. 남해는 대답 대신 고개를 가로저었다.
"반대편에는 [음향전사 기타리스]를 세팅! 그럼 간다! 펜듈럼 소환!"
애리가 힘껏 팔을 휘두르자 애리의 등 뒤에서 포퐁-! 하고 연막탄이 터지며 세 명의 소녀가 연달아 자리로 착지했다. 가장 어린 한 명을 뺀 둘은 안정적으로 자리에 착지했다.
[도도레미코드 큐티아/Lv1/100/400]
[파도레미코드 팬시아/Lv4/1600/400]
[솔도레미코드 그레이시아/Lv5/2100/1400]
세 번째 소녀만 영 착지가 불안했다. 그래도 어떻게든 넘어지지 않고 버틴 큐티아의 표정이 확 밝아지자 애리의 덱에서 카드가 연달아 뽑혀나왔다. 연달아 도레미코드 몬스터들의 연주가 이어졌다.
"그 다음엔 기타리스의 효과로 좌우를 비우고 [도레미코드 엘레강스] 패에서 발동! 패의 엔제리아를 엑스트라 덱에 넣고 좌우의 펜듈럼 존에 쿨리아와 드리미아를 세팅!"
그레이시아로 서치한 마법 카드를 애리가 내자 또 새로운 연주가 울렸다.
"그리고?"
"패에서 기타리스를 일반 소환해서 드리미아를 패로 올리고, 자기 효과로 특수 소환! 이제 팬시아로 엘리티아를 엑스트라 덱에 넣고... 큐티아, 드리미아를 링크 마커에 세트!"
두둥, 두둥-!! 찌이이이잉-!! 드럼 소리 다음에 귀를 찢는 일렉기타. 남해에겐 익숙한 소리다. 2링크에 이런 연주라면...
"링크 소환, 스테이지 온! [헤비도레미코드 일렉드럼]!"
[헤비메탈포제 엘렉트럼/Lnk-2/1800/↙↘]
"저거 메탈포제 아니었냐...?"
"도레미라고 쳐줘라."
원형은 엘렉트럼을 이상한 눈으로 쳐다봤다. 남해의 말에 대충 흐름을 이해하고 곧 그만두긴 했지만. 그 사이 애리의 가느다란 손가락 끝이 연달아 D-패드를 터치했다.
"일렉드럼의 효과로 파괴한 쿨리아를 패에 더하고 일렉드럼의 효과로 한 장 더 드로우!"
-나애리/패 1장 → 3장
엘렉트럼의 주변에 악기들이 가득 전개됐다. 드럼 비트에 맞춰 기타리스의 기타 리프도 필드를 가득 채웠다.
팬시아의 아코디언과 그레이시아의 색소폰이 화음의 사이를 아름답게 메웠다.
이 비트도 남해는 익숙했다. 남해 뿐 아니라 원형과 윤수도 아는 연주였다.
"자! 앙상블 타임! 레벨 4 [파도레미코드 팬시아]와 레벨 3 [사운드 워리어 기타리스]에 튜닝, 그레이시아와 일렉드럼은 링크 마커로! 모여든 선율이 함성을 불러낸다!! 레벨 7 [사운드 워리어 록스]와 링크 3 [그랜도레미코드 쿨리아], 온 스테이지!!"
[사운드 워리어 록스/Lv7/2500/1500]
[그랜도레미코드 쿨리아/Lnk-3/2700/↙↓↘]
파앙-!! 연주의 하이라이트에서 새로운 몬스터 두 장이 등장했다. 애리는 자신의 플레잉이 많이 만족스러운지 한 손으로 턱을 괴고 고갤 끄덕였다.
"음, 음. 록스의 효과로 엑스트라 덱의 기타리스를 패에 넣고, 기타스와 쿨리아를 세팅한 다음 턴 종료야."
-나애리/패 2장
-나애리&어윤수/LP 8000
"내 차례다. 드로우!"
원형은 애리에겐 딱히 빚이 없다. 하지만 록스는 이야기가 좀 다르지. 한참 록스를 쳐다보던 원형이 패에서 카드 하나를 뽑아들었다.
"패에서 [R-ACE 임펄스]를 일반 소환!"
[R-ACE 임펄스/Lv3/1500/1500]
"저 카드!"
"여기서 임펄스의 효과 발동, 상대 필드에서 가장 공격력이 높은 효과 몬스터는 필드에서 효과를 쓸 수 없다!”
임펄스의 소화기 끝이 쿨리아를 향했다. 분사음과 함께 소화포말이 쿨리아를 덮쳤다.
덮지는 못했다. 쿨리아의 연주에 소화포말이 사방으로 퍼졌으니까.
"쿨리아의 효과 발동! 그렇게 둘 줄 알아?"
"야 나도 예상했거든! 필드의 상대 몬스터가 효과를 썼으니 임펄스의 효과를 체인, 자신을 릴리스해서 덱에서 기계족 R-ACE 몬스터를 특수 소환한다!”
"멈춰! [하루 우라라]!"
"소방차는 원래 빨간 불에 안 멈춰. [무덤의 지명자]나 받아라!"
윤수와 남해는 말없이 눈치만 봤다. 둘의 치열한 체인 승부는 5체인까지 올라가서야 멈춰섰다.
모든 체인 처리가 끝나고, 원형의 필드에서 사이렌 소리가 울렸다. 원형의 옆에 솟아오른 하이드런트가 원형을 감싸듯 [ALERT!]라는 글씨가 입력된 푸른 화상을 연달아 다섯 개나 출력했다.
다섯 개의 화상이 임펄스와 함께 스르르 사라졌다. 필드에 불티가 흩날리기 시작했다.
원형은 사이렌 소리와 함께 심장 소리도 커지는 기분이었다. 주위를 덮은 벚꽃잎이 순식간에 불타 하얀 재가 되었다.
애애애애앵-!!
-“헤드쿼터, 하이드런트, 임펄스, 엔진! 레스큐 온!”
“뜨거운 영혼! 끓어오르는 피! 무한의 꿈! [R-ACE 터뷸런스], 롤 아웃!!!"
-“출동 시스템 온! 레스큐 포메이션, 터뷸런스, 고! 고!”
[R-ACE 터뷸런스/Lv9/3000/3000]
불티가 순식간에 화악 걷히며 커다란 소방 머신이 필드를 가득 채웠다. 원형은 자신만만한 미소를 짓고 록스에게 삿대질했다. D-패드에서 [Battle Phase] 패널이 빛났다. 터뷸런스의 차체 전방에 설치된 머신이 양 팔을 록스에게 향했다.
"여기에 필드 마법 [R-ACE 헤드쿼터]를 발동. 그럼 우선 배틀이다! 터뷸런스로-"
띠링-! 원형의 D-패드에 블루투스 알림음이 들렸다. 원형은 D-패드를, 그 다음엔 고갤 들어 남해를 쳐다봤다.
너무 당연하게 록스를 공격하려던 원형은 남해의 눈빛에 다시 필드를 확인했다.
이미 효과도 쓰고, 퍼미션도 없는 록스를 공격해서 얻을 어드밴티지는 적다. 반면 다른 두 몬스터는 견제 효과를 하나씩 갖고 있다.
개인적인 감정을 빼고 생각하면 공격할 대상은 명확하다.
'그러네.'
[도도레미코드 쿨리아/Lv8/2700/2500]
링크 쿨리아의 효과로 특수 소환된 펜듈럼 쿨리아도 작게나마 견제 효과가 있다.
지금 세팅된 기타스의 스케일은 7. 따라서 공격력 2100 이하의 몬스터는 쿨리아의 견제 범위에 들어온다.
록스에 대한 감정과 별개로 당장의 위험도는 록스가 다른 둘에 비할 바가 아니다.
"그렇다면 펜듈럼 쿨리아를 공격이라고!"
터뷸런스의 차체 전방에 설치된 머신이 양 팔을 쿨리아에게 향했다. 팔 끝에서 발사된 물대포 두줄기에 쿨리아는 순식간에 산산조각났다.
-나애리&어윤수/LP 8000 → 7200
"좋아, 이제 터뷸런스의 몬스터 효과 발동!"
"[유령토끼]."
그동안 가만히 있던 윤수의 선언에 원형이 아연실색한 표정으로 그 방향을 쳐다봤다.
터뷸런스는 순식간에 잿더미가 되어 사라졌고 원형의 필드에는 4장의 세트 카드가 그 자릴 대신 채웠다.
"아, 아직이라고. 나에겐 일반 소환 기회가 한 번 더 있어."
원형은 식은 땀을 삐질거리면서도 억지로 웃으며 패 하나를 더 뽑았다. 바닥에 붉은 원판이 생겼다.
이윽고 그 원판이 열리며 소화전 하나가 철커덕 올라왔다.
[R-ACE 하이드런트/Lv1/0/0]
"하이드런트가 있으면 말이지, 한 차례에 한 번 세트한 카드를 그 차례에 발동할 수 있거든. 세트한 [RESCUE!]를 발동해서 터뷸런스를 살리면..."
"[저택 와라시]."
하이트런트 주위에 재와 먼지가 가득 떨어졌다. 마치 낡고 버려진 소화전 같은 모습으로 하이드런트는 빛을 잃고 축 처졌다.
원형이 흔들리는 눈빛으로 남해를 슥 돌아봤다. 남해도 어쩔 수 없다는 표정으로 답했다.
어쩔 도리가 있나, 입술을 비죽 내밀고 원형은 패에 그나마 남은 한 장을 더 뽑았다.
"카드 한 장을 세트하고 턴 종료."
-최원형/패 1장
-최원형 & 강남해/LP 8000
원형이에겐 미안하지만 둘의 경계대상은 원형이 아니라 남해다.
윤수도 애리도 남해의 차례가 오기 전에 승부를 봐야한다고 암묵적으로 동의하고 있었다.
게다가... 남해는 아직 패트랩 한 번을 던지지 않았다. 어쩌면 패에 쥔 저 카드 전부가 하나라도 통과되면 필드를 박살낼 전개 파츠일지도 모른다.
"내 차례, 드로우!"
그렇다면 더 시간 끌 필요도 없고 망설일 것도 없다. 윤수가 패에서 카드를 한 장 뽑은 그 순간 윤수의 주위로 잠시 돌풍이 몰아쳤다.
"패에서 [조화의 패] 발동! 패의 [드래그니티-파랑크스]를 버리고 덱에서 두 장을 드로우한다!"
콰앙-!! 그리고 착지의 충격파로 돌풍을 걷어내며 둑스가 나타났다. 마치 처음부터 저 위에서 모든 걸 지켜봤던 것처럼.
"용기사단의 지휘관 [드래그니티-둑스], 지금 여기 배치!"
[드래그니티-둑스/Lv4/1500/1000]
둑스가 장교의 예장을 빛내며 한 팔을 쭉 치켜들었다. 딱-! 하고 손가락 튕기는 소리와 함께 팔랑크스가 필드로 날아들었다.
어느새 나타난 팔랑크스가 둑스를 향해 잽싸게 날아왔다.
"둑스의 효과로 묘지의 [드래그니티-팔랑크스]를 장착한다!"
팔랑크스가 속도를 줄이며 둑스 왼편에 착지했다. 둑스가 손을 뻗은 그 때, 팔랑크스의 균형이 무너졌다.
그리고는 발 아래에 생긴 회오리 속으로 빨려들어갔다.
"그렇게는 못 두지 임마. [트위스터]다!"
-최원형 & 강남해/LP 8000 → 7500
일반 소환권을 써버린데다 팔랑크스까지 날아간 드래그니티다. 더 이상 할 수 있는 게 있을 리 없지.
원형은 윤수를 보고 한방 먹었냐는 듯 웃었다. 그러고 있자니 윤수도 남해도 빤히 원형의 얼굴을 쳐다봤다.
"너... 도 그런 거를 쓰냐? [코즈믹 싸이크론]이나 [트윈 트위스터]나 뭐... 더 좋은 카드 없어...?"
"응? 아, 어제 동생들이랑 듀얼 하느라고 넣고서 안 뺐나봐."
"그럼 그냥 처음부터 그거 써서 P존 견제했으면 카운터도 안 당하지 않았겠냐?"
원형은 남해의 말에 잠시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렸다. 그리곤 시선을 외면하며 스윽 윤수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어, 음. 그럼 뭐. 너 할 거 있냐? 없지?"
"있는데."
윤수는 아무렇지 않게 패 하나를 더 뽑았다. 그에 맞춰 쿨리아와 록스가 배경음악을 연주하기 시작했다.
원형도 뭔가 잘못되었다는 것은 금방 파악했다.
"패에서 [종언룡 카오스 엠페러]를 펜듈럼 존에 세트."
"아니 야 근데 그건 뭔데!!"
"응? 제외된 거 샐비지 수단."
원형의 눈이 방금 전처럼 마구 흔들렸다. 남해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윤수 본인조차 이 용도로 쓰려고 넣었을 카드는 아닐 거다.
그런데 정말 우연히 펜듈럼 덱을 쓰는 애리와 시너지가 생겨버린 거겠지. 단지 그 순간이 하필 지금이었을 뿐.
"그럼 펜듈럼 스케일 1과 7 사이의 몬스터를 펜듈럼 소환! 용기병들을 이끄는 고참병, [드래그니티-프리머스 필러스] 특수 소환!"
[드래그니티-프리머스 필러스/Lv5/2200/1600]
남해의 기억 속 드래그니티에선 절대 안 쓰던 카드다. 하지만 윤수는 고점만 보고서 투입했을 저 카드를 적재적소에 꽤 잘 썼던 기억이 있지.
카드와의 유대가 실존하는 이 세계의 메타는 또 다른 법이니.
프리머스 필러스는 손에 든 채찍을 팽팽하게 잡아당기고 휘익-!! 하고 크게 휘파람을 불었다.
"프리머스 필러스를 대상으로 자신의 효과 발동!"
"야, 야! 진짜 아니! 나 아직 카드 더 있어! 세트 카드 [EXTINGUISH!] 발동! 이제 그 카드를 파괴-"
"-할 수 없어. [레드 리부트]. 그럼 이제 프리머스 필러스에 [드래그니티-쿠제]를 장착."
-나애리&어윤수/LP 7200 → 3600
막 불이 다시 켜진 하이드런트의 전원이 강제로 차단됐다. 공중에 띄워진 녹색 패널도 순식간에 붉게 물들며 파스스 사라졌다.
이렇게 되면 남해와 원형에게 남은 몬스터는 공격력 0의 하이드런트 혼자. 반면 애리와 윤수 필드에는 이미 록스와 쿨리아만 합쳐도 5000이 넘는다. 아직 세트한 [EMERGENCY!]가 있으니 한 번의 방어는 가능하겠지만...
'세트한 4장 중 레스큐랑 컨테인은 이걸로 막혔고, 이머전시만 주의하면 뭐...'
터뷸런스로 세트한 카드의 정보는 공개되는 만큼 남은 두 장의 세트 카드는 윤수 역시 알고 있다.
원형은 허망한 눈으로 덱을 문질거리다가 대충 뽑은 카드를 대충 패드에 꽂아넣었다.
그러니 당장 들이받을 필요는 없다. 필러스의 앞으로 자신이 불러낸 비룡이 착지했다. 필러스가 비룡의 고삐를 꽉 쥐고 그 등에 탔다.
이윽고 비룡은 빛으로 휩싸였고, 돌풍과 함께 순식간에 팽창했다.
"둘을 소재로 링크 소환! 건국의 창날을 쥐고 날아올라라, [드래그니티 나이트-로물루스]!!"
[드래그니티 나이트-로물루스/Lnk-2/1200/↙↘]
'설마하던 [용의 계곡]을 서치해주는 몬스터라...'
남해가 2학년 1학기 때 [여섯 무사의 군대장]만큼이나 충격 받았던 몬스터. 설마하던 [용의 계곡] 서치 카드라니.
윤수의 덱에서 카드 한 장이 밀려나왔다. [용의 계곡]도 강하지만 지금은 아마 [질풍의 드래그니티]리라. 덱에서 싱크로 소재를 끌어오는 무시무시한 카드다. 슬슬 이정도면 구상화를 덱에서 놓는 룡성의 군대장이나, 몬스터를 꽉 찰 때까지 전개해주는 룡성 스피더도 나와야 맞는 것 아닌가?
남해의 예상처럼 윤수의 필드에 질풍이 몰아치며 로물루스를 닮은 비룡 유생과 커다란 망토를 두른 장교가 필드에 나타났다.
"레벨 4 [드래그니티-세나트]를 레벨 2 [드래그니티-레무스]에 튜닝, 레벨 6 [드래그니티 나이트-하룬]을 소환하고 묘지의 쿠제를 장착,
이 쿠제를 레벨 4 취급으로 둑스에게 튜닝해서 [드래그니티 나이트-벌처]까지 싱크로 소환!"
[드래그니티 나이트-하룬/Lv6/1200/1900]
[드래그니티 나이트-벌처/Lv8/2000/1200]
기수와 비룡 두 쌍이 새로 윤수의 필드에 구름을 일으키며 모습을 드러냈다. 이것으로 필드에 대형 몬스터가 하나 둘도 아닌 다섯.
공격력 합계는 이미 8000을 넘었지만 윤수는 방심하지 않았다. 아니, 그럴 수가 없었다. 아직도 남해가 서있는 상황이니. 남해도 저 몬스터들이 끝이 아니라고 확신했다.
"벌쳐의 효과로 묘지의 쿠제를 장착. 쿠제를 분리해 레벨 4 취급으로 레벨 6 하룬과 튜닝. 여기에 묘지의 레무스 역시 부활시켜 레벨 8 벌처와 튜닝!!"
두 마리의 비룡은 저 높이 날아올라 구름 속으로 사라졌다.
그리고 구름 속에서 전에 본 것보다도 더 커진 금빛과 은빛 드래곤 한쌍이 포효와 함께 그 안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드래그니티의 선조, 전설속 신룡이 여기 강림한다! 싱크로 소환, 레벨 10 [드래그니티 나이트-아스칼론], 그리고 [드래그니티 나이트-아라드와]!!"
[드래그니티 나이트-아스칼론/Lv10/3300/3200]
[드래그니티 나이트-아라드와/Lv10/3300/3200]
아스칼론과 아라드와가 날개를 살랑일 때마다 필드에 바람이 화악 일어났다.
남해도 알고 있는, 2학년 1학기 때 윤수를 결국 교대표 본선으로 올려준 히든 카드들.
아스칼론의 목에 탄 둑스도 뿔을 꽈악 쥐고 고갤 돌려 윤수를 돌아봤다. 여기가 승부처다.
"오..."
"하룬의 효과로 자신을 아라드와에게 장착. 이제 아스칼론의 몬스터 효과 발동, 필러스를 코스트로 하이드런트를 제외한다!"
"세트 카드 발동, [EMERGENCY!]! 하이드런트를 릴리스해서 터뷸런스를 소환하겠어!"
"상관 없어, 이번엔 쿠제를 제외해서 터뷸런스를!! 에골리의 벼락!"
꽈릉-!! 하이드런트가 있던 자리에 금색 벼락이 내리쳤다.
하이드런트는 잽싸게 맨홀 아래로 사라져 공격을 피했고, 그 옆에 불티를 확 일으키며 터뷸런스가 등장했다.
안심할 새도 없이 터뷸런스 역시 벼락을 맞고 잿가루로 변해 필드에서 사라졌다.
남해가 슬쩍 눈을 돌려 원형을 보니, 원형은 넋나간 표정으로 뭔가 중얼거리고 있었다.
"하... 진짜... ...옷... 됐다..."
"그럼, 배틀."
[Battle Phase] 패널이 반짝, 빛났다. 그 신호에 모든 몬스터들이 전투 태세를 갖췄다.
남해는 눈을 이리저리 굴리다가 원형의 패를 한 번 D-패드로 확인했다. 그 순간 남해의 눈이 빛났다.
제일 먼저 로물루스와 록스가 공격을 끝냈고, 그 다음 아스칼론이 한껏 숨을 들이쉬었다.
"여기까지다! 3사로, 조준! 이제 아스칼론으로 상대 플레이어를 직접 공격!!"
"그렇게 둘 순 없어. 패에서 [크리보르]의 효과 발동!"
-"크리크리!"
크리보르가 잽싸게 원형의 앞으로 날아왔다. 스스로 방패막이가 된 크리보르는 아스칼론의 공격을 몸으로 막았다.
하지만 역부족이었는지, 아라드와의 옥염에 서서히 크리보르의 실루엣이 희미해져갔다.
"아라드와의 효과 발동, 묘지의 벌처를 제외해서 크리보르의 효과를 무효로 하겠어."
윤수는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사라지는 크리보르의 모습을 지켜봤다. 이미 크리보르의 등장은 예상 안이었다. 그럼 더는 나올 변수는 없겠지.
띠링. 원형의 D-패드에 남해가 보낸 블루투스 신호가 울렸다.
"너 지금 실수한 거야!"
크리보르가 자신의 앞을 막아섰을 때, 원형의 표정이 바뀌었다.
"상대 몬스터의 효과가 발동했으므로, [R-ACE 인트루더]의 효과 발동!!"
애앵-! 애앵-!! 애앵-!!! 사이렌 소리와 함께 화염 폭풍이 아라드와의 옥염을 모조리 걷어냈다.
화염 폭풍 속에서 상처투성이 크리보르를 안은 인트루더가 올라왔다.
그리고, 인트루더를 콕핏 위에 태운 채로 폭풍을 걷어내고 터뷸런스가 다시 필드로 돌아왔다.
방금 전까지라면 터뷸런스를 설령 세웠다고 해도 게임이 끝났을 것이다. 하지만 크리보르가 준 이 기회 하나를 포함하면 더는 아니었다.
"헤드쿼터의 효과로, 지금 터뷸런스의 수비력은 500 상승!!"
- R-ACE 터뷸런스/D 3000 → 3500
"어, 어?"
윤수의 표정이 순식간에 굳었다.
로물루스의 공격력 1200, 록스의 공격력 2500... 지금 아라드와는 3300이니 터뷸런스를 뚫을 수 없다.
그렇게 공격을 포기하면 4300의 아스칼론으로 터뷸런스를 파괴하고...
'엔제리아, 엘리티아, 큐티아, 드리미아, 팬시아, 그레이시아, 뷰티아까지... ...일곱 장."'
쿨리아의 공격력은 2700. 그리고 엑스트라 덱의 펜듈럼 몬스터가 일곱 장이므로 700 오른 3400.
따라서 줄 수 있는 데미지의 총합은...
-강남해 & 최원형/LP 7500 → 400
"야!! 패에 그게 있으면 말을 해야지!!"
"말 했으면 쟤들이 대비를 했겠지! 아니, 근데 너는 내 패도 안 보고 뭐했는데?!"
"어, 그런가? 아니, 아니! 그래도!"
이렇게 되면 입장은 뒤집힌다. 패트랩과 견제 수단이 윤수와 애리에겐 하나도 남지 않았다.
그리고 지금 남해는 패를 거의 그대로 보존한 채로 턴을 받을 수 있게 됐고.
오히려 지금은 윤수가 방금 전의 원형처럼 완전히 멘탈이 터져버렸다. 윤수는 한 손으로 입을 가리고 동공을 이리저리 바쁘게 굴려댔다.
"와. 아... 미친 거 아니야..."
남해의 차례가 오기 전에 끝낸다는 생각에 집중했다. 그래서, 만일 남해의 차례가 정말 왔을 때는 생각하지 않았다.
크리보르를 예상했기에 공격도 공격력의 역순으로 했다. 아라드와도 그래서 준비한 카드다. 그래서 크리보르'가' 미끼일 거라고는 생각 못했다.
끝끝내 아라드와의 공격을 버티지 못하고 터뷸런스의 콕핏이 붉게 빛났다. 그럼에도 인트루더가 크리보르를 끌어안고 바닥에 내려갈 때까지는 어떻게든 형상을 유지했다. 인트루더가 내려온 후에야 터뷸런스는 완전히 폭발하며 무너졌다.
어떻게 해야하지?
천구의 성각인은? 불가능해.
엑스트라 몬스터 존엔 쿨리아가 있다. 메인 존의 천구는 능동적으로 효과도 쓰지 못하는 하자품이다. 쿨리아가 천사족이니 소재로 써서 치울 수도 없어.
레무스를 종언룡으로 회수해서...
그래봐야 패에서 버릴 코스트가 없다. 용의 계곡을 이제와서 확보해도 정크아드에 불과하다.
-어윤수/패 없음
-나애리 & 어윤수/LP 3600
그래도... 그래도 아라드와로 한 번의 방해는 가능하다. 상대 필드에 남은 몬스터도 없으니... 아직은 모른다. 정말 모른다.
윤수는 속으로 중얼거리며 턴을 마쳤다.
턴을 받은 남해는 카드를 뽑기 전에 원형을 한 번 쳐다봤다. 띠링, 소리에 원형은 D-패드를 봤다가 남해에게로 고갤 돌렸다.
"원형아. 네가 보기엔 나 듀얼 잘하는 거 같냐?"
"응? 어... 나보단 잘하지?"
"그럼 나 믿어줄 수 있냐?"
남해의 눈빛은 굉장히 진지했다. 그리고 또렷했다.
가벼운 친선 듀얼이 아니라 그때 담임 선생님과의 듀얼처럼. 적어도 지금은 진심이다.
"...당연하지!"
까짓 거. 어차피 지금도 다 진 승부, 남해 덕분에 버티기라도 한 거 아닌가.
원형이 씨익 웃으며 시원한 목소리로 대답해주자 남해도 자신감이 생겼다.
그 대답을 들은 후 남해는 한 번 심호흡을 하고 가슴팍에 성호를 작게 그렸다. 그러고서야 카드를 드로우했다.
좋아, 가자.
"먼저 세트 카드 [ALERT!] 발동! 회수한 [R-ACE 인트루더]를 일반 소환한다!"
"어, 뭐? 저걸 세트했다고?"
애리는 당연히 네 번째 세트 카드는 [REINFORCE!]겠거니 짐작했다. 그런데 둘 다 아닌 얼러트의 발동이 의아했다.
원형은 방금 전처럼 스윽 다른 셋의 시선을 외면했다.
남해는 상관 없었다. 오히려 전부터 원형에게 보여주고 싶던 게 있었으니까.
"지금 내 엑스트라 존은 비어있으니 [참기 시그마]를, 그리고 시그마를 대상으로 [참기 아디온]을 특수 소환!"
시그마와 아디온이 연달아 필드로 소환되었다. 시그마가 들어올린 검을 옆에서 아디온이 자신의 검으로 맞대 십자 표시를 만들었다.
챙-! 소리와 함께 두 몬스터가 데이터화했다.
의식 소환을 사용하는 건 봤지만 저 덱이 싱크로 소환을 하는 건 남해를 뺀 나머지 셋에겐 처음이었다.
전자음과 함께 데이터들이 뭉치며 몬스터의 모습이 구체화됐다.
"싱크로 소환, 레벨 8 [에니그마스터 팩비트]!"
[에니그마스터 팩비트/Lv8/2900/2500]
팩비트가 손 안에 정육면체로 된 데이터들을 가득 끌어모았다. 그 다음 주먹을 꽉, 쥐자 팩비트의 옆에 뭔가가 생겨났다. 저건...
"...소화전?"
"팩비트의 효과로, 패 한 장을 버리고 묘지의 하이드런트를 필드에 지속 함정 카드 취급으로 놓겠어. 이제 팩비트로 버린 [도트스케이퍼]를 특수 소환. 체인 있어?"
다른 셋은 이게 뭔 일인가 둥둥 떠있는 복셀 하이드런트를 유심히 쳐다봤다. 남해는 체인을 기다리며 가만히 있었다.
그리고 아무도 체인이 걸리지 않자 남해는 D-패드를 눌렀다.
"체인 없으니 세트 카드 발동, 아라드와를 파괴하겠어!"
콰아아아-!! 원형이 레드 리부트의 디메리트로 덱에서 세트했던 그 카드였다. 아라드와를 향해 굵은 물대포가 작렬했다.
안간힘을 쓰며 버텨내려 애쓰던 아라드와는 결국 산산조각나고 말았다.
윤수는 D-패드를 확인하고 상대쪽 필드로 시선을 돌렸다.
"이때 아라드와의 효과가...!"
"발동 안할 걸?"
남해의 말대로였다. 남해는 씨익 웃으며 검지를 들어 하이드런트를 가리켰다.
그 다음엔 검지를 접고 엄지를 펴서 자신 옆의 [EXTINGUISH!]도 가리켰다. 가장 먼저 상황을 깨달은 건 애리였다.
"저기에... 하이드런트가 서있어도 그게 되는 거였어?"
"그렇더라고. 그러니까 파괴된 아라드와의 유언 효과는 불발이야."
원형은 꼭 콜럼버스의 달걀이라도 본 표정이 됐다. 그 표정 그대로 굳은 채 허공에 떠있는 하이드런트를 한참 쳐다봤다.
남해는 후우, 하고 한 번 호흡을 고르고는 다시 D-패드를 눌렀다. 팩비트와 도트스케이퍼가 분해되며 데이터 스톰이 화악 일었다. 안에서 나타난 푸른 마법사가 지팡이 끝을 바닥에 타악-! 찍었다. 다시 한 번 데이터 스톰이 일어나며 마법사의 머리 위에 도트스케이퍼가 다시 소환됐다.
도트스케이퍼는 이번엔 마이크로 코더를 촉매삼아 분해됐다. [스플래시 메이지]의 등 뒤에 링크 게이트가 열렸다. 안에선 [코드 토커 인버트]가 나타났다.
"인버트의 효과로 패의 [파이어월 디펜서]를 소환하고, 패에서 소재로 쓴 마이크로 코더의 효과로 사이바넷 카드를 하나 서치!"
스플래시 메이지의 머리 위에서 파이어월 디펜서가 날개를 한껏 펼쳤다. 스플래시 메이지와 디펜서가 코드로 변하며 [트랜스코드 토커]가 나타났고, 그 뒤에 스플래시 메이지와 [파이어월 가디언]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러곤 남해는 카드 하나를 패에 넣었다.
"후, 하."
남해는 그 다음 잠시 손을 멈추고 심호흡을 했다. 그리고 가슴팍에 성호를 그렸다.
해보자, 나를 믿어보자. 다른 애들도 다 하는 건데 나라고 못할 이유 없잖아. 남해가 D-패드를 몇 번 터치하자 필드에 링크 게이트가 새로 열렸다.
"트랜스코드의 효과로 소생한 스플래시 메이지에, 파이어월 가디언과 인트루더를 링크 마커에 세트! 소환 조건, 몬스터 둘 이상!"
탱, 탱, 탱... 탱!! 십자 모양으로 마커 네개에 불이 들어왔다. 공기가 달랐다. 윤수는 뭔가 심상치 않다고 직감했다.
링크 게이트를 향해 파이어월 가디언이 날개를 접고 날아들었다. 생각도 못한 풍압이 필드를 휩쓸었다. 커다란 날개를 펼치며 처음 보는 링크 몬스터가 모습을 드러냈다.
"휘몰아치는 폭풍 속, 한줄기 가능성을 붙잡아라, 링크 4 [파이어월 드래곤]!"
[파이어월 드래곤/Lnk-4/2500/←↕→]
"오, 와... 그, 그런 카드도 있었어 너? 처음 보는데?"
"링크 특화 덱이라면서 줬던건데 링크 4 몬스터도 당연히 있어야지! 파이어월의 효과 발동, 상호 링크의 숫자 만큼 카드를 패로 되돌린다! 상호 링크 수는 지금 둘, 그러니 아스칼론과 쿨리아 두 장을 패로!"
파이어월 드래곤 발밑의 링크 마커 둘이 빛났다. 빠찍-!! 하는 방전 소리와 함께 아스칼론과 쿨리아가 흑백의 모노톤으로 변했고, 이내 두 몬스터의 모습이 데이터화 되며 사라졌다. 그리곤 [Battle Phase] 패널에 불이 들어왔다.
"배틀!!"
윤수와 애리의 라이프는 3600. 그리고 지금 둘의 필드에 남은 몬스터들의 공격력 합계는 3700.
그리고 남해의 몬스터들의 공격력 합계는 7100. 아슬아슬하게 이쪽을 끝내기엔 모자란 차이다.
제일 먼저 코드 토커 인버트가 창을 쥔 팔을 뒤로 쭉 뺀 다음, 있는 힘껏 창을 로물루스를 향해 던졌다. 한순간에 로물루스가 창끝에 관통당했다.
창 다음에는 인버트였다. 녹색 유성처럼 변한 인버트가 록스를 쾅 들이받았다.
"패에서 속공 마법, [사이바넷 크로스와이프] 발동! 인버트를 릴리스해서 록스를 파괴한다!"
"뭐...?!"
더는 남해의 공세를 막아설 수단이 없다. 파직, 파직... 하는 불티 소리와 함께 파이어월 드래곤이 한껏 에너지를 충전했다. 트랜스코드 토커에게서 에너지를 받은 파이어월 드래곤이 이윽고 애리와 윤수를 향해 에너지를 방출했다.
"이 승부, 내가 가져간다!"
-나애리 & 어윤수/LP 3600 → 0
삐이이이이익-!! 애리와 윤수의 D-패드에서 승부 종료를 알리는 버저음이 울렸다.
이걸 졌네. 결국 졌네. 윤수는 아쉬움을 삼켜야 했고 애리는... 최대한 괜찮은 표정을 유지하려 애썼다. 분함으로 떨리는 몸과 자꾸 무너지려 하는 눈썹은 어쩔 수 없었지만.
"그래야 내 라이벌이지!"
남해는 등 뒤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그 방향을 돌아봤다.
어느새 나타난 지민이 옆쪽에 적당히 자리잡고 듀얼을 구경하고 있었다. 눈이 마주치자 지민은 이쪽을 향해 손을 높이 들고 흔들었다. 대답 대신 남해도 손으로 브이를 그리며 제스처로 반응했다.
"근데 남해야."
"왜."
"점심시간 5분 남았어."
지민의 말에 태그 듀얼에 참여한 넷은 거의 동시에 시간을 확인했다. 그 사이에도 또 1분이 지나갔다. 원형이 바로 고갤 돌려 윤수를 쳐다봤다.
"야 다음 수업 뭐냐"
"니네 반은 모르지."
"야 남해야 다음 수업 뭐였지?"
"담임."
"뛰어!!"
그 말을 남기고 원형은 긴급 출동하는 소방차처럼 뛰쳐나갔다. 남해 역시 잠시 다른 애들의 눈치를 보다가 급하게 그 뒤를 따랐다.
윤수도 다른 둘에게 간단히 인사를 하고 다른 방향으로 떠났고, 애리는 지민과 함께 방금 듀얼에 대해 이야기하며 학교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
어느새 오늘의 수업도 전부 끝났다.
대회에 관한 문제로 학교에 남은 남해랑 금선을 뺀 친구들은 전부 하교길에 올랐다.
"야, 너 왜 그러냐."
"응? 아니... 뭐... 생각 할 거 좀 있어서..."
원형은 하교길에도 그 듀얼이 계속 생각났다.
자기 덱인데도 남해보다 아는 게 적었을 줄이야. 그렇지만 진짜 새로운 사실이었다. 하이드런트를 꼭 소환할 필요 없이, 마법/함정 존에 놓기만 해도 효과가 적용된다니.
그러면... 다른 방향으로도 쓸 수 있지 않을까? 이번의 지속 함정이 아니라 장착 마법 같은 건? 아니면... 또는...
뭔가... 확신은 안 서지만... 꼭 방향성을 잡은 것만 같다.
"아아아아아아... 아. 끝났다..."
남해는 교무실을 나서며 기지개를 쭉 폈다. 그리고 D-패드를 열고서 카드 하나를 꺼내 확인했다.
파이어월 드래곤.
"이런걸 쓰는데 1년씩 걸렸단 말이지..."
지민은 1학기에 이미 아폴로우사를 썼다. 아니, 지민까지 안 가도 그 키 작은 전교 부회장도 아스트람을 썼다. 남부 교대표의 걔는 어떻고? 그냥 링크 4도 아니라 에이스를 진화시킨 링크 4 몬스터였다.
사실 이 카드가 어떤 카드인지, 얼마나 중요한 카드인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이 카드를 보고 있으면 원래 세계가 생각난다. 남해가 기억하는 단 셋 뿐인 원래 세상에서도 본 링크 몬스터다. 그때 본 것과는 효과가 조금 다르긴 해도 분명 일러스트로 보나 효과로 보나 그 카드가 확실하다.
정말 원래 세계에서 본 그 카드가 맞다면... ...이 카드를 처음 봤던 원래의 세상으로 다시 돌아갈 수 있을까. 올바른 길로 향할 수 있을까. 나는 괜찮을까.
파이어월 드래곤의 카드는 그 말에 대답하지 않았다.
"지민이 넌 좋아하는 사람 있어?"
"응?"
"그러니까~ 좋아하는 사람 있냐구~"
낙랑은 애리의 이야기에 호기심이 동했다. 지민은 애리가 재차 물어보는데도 별 반응이 없었다. 지민이 너무 미지근한 반응을 보이자 애리는 이번엔 좀 더 직설적으로 물어보기로 했다.
"딱히 없는데."
"그럼 남해는?"
지민은 그 질문에 한 번 남해는 어떤지 생각해봤다. 그리고 옆의 낙랑도 같은 생각을 해봤다.
남해? 남해는 어떤 애더라. 솔직히 키가 큰 편은 아니지만... 듀얼할 때 눈빛이 진짜 멋있어. 걱정이 생기면 의지도 되고 무슨 일이 생기면...
하나씩 남해에 대한 생각을 짚어보니 남해가 조금씩 다르게 보였다.
"글쎄~?"
"설마 좋아해?!"
낙랑은 바로 방향을 돌려 학교로 발걸음을 재촉했다. 애리와 지민은 낙랑이 왜 저러나 싶어 학교로 돌아가는 낙랑을 쳐다봤지만 굳이 붙잡진 않았다.
그랬구나, 그랬었어, 그랬던 거야.
나 그랬던 거구나!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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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작가입니다.
일주일 만에 올릴 줄 알았건만 3주 가까이 걸렸군요 ㅁㄴㅇㄹ... 현실탈출... 필요하다...
흠흠. 오늘은 이번 에피소드 대신 잠시 등장인물의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지민의 컨셉은 [주인공]입니다. 물론 이 소설의 주인공은 남해 맞아요.
하지만, 남해가 여기 떨어지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이 작품이 좀 더 정통파 유희왕 창작물이라면 주인공은 어땠을까? 그런 방향을 드러내는 캐릭터에요.
이름에 '유' 자 들어가지, 에이스 공격력 2500이지, 이성에게 큰 관심 없고 듀얼 그 자체를 즐기는데다 정령안까지 있습니다. 에이스도 훨씬 선해보이는 인상이구요.
사용 테마도 가제트-히어로-섬광룡-마인-오드아이즈까지.
오히려 이렇게 두고보면 남해는 이질적이기 그지없습니다. 유 자도 안 들어가고 에이스는 가이저 2600 용연 2900으로 2500에도 3000에도 100씩 어긋난 스탯이에요. 대놓고 인상도 악역이고요. 히든 카드는 어떻죠? 더블 튜닝 몬스터잖아요?
하지만 남해는 원래라면 저기서 듀얼하고 있을 수 없을 캐릭터니까요. 남해는 50편 가까이 연재한 지금도 집에 돌아가고 싶어하고 있어요. 아마 '주인공보다 주인공스러운 요소가 많은 캐릭터'라는 속성은 뭐 지민의 비중이 흐려질지언정 계속 유지될 거 같네용.
다음 화는 없듀입니다. 4강 1경기는... 22년도에 이미 로그를 써둔지라, 어쨌든 다음화만 투고하면 빠르게 투고할 수 있... ...도록 노력해보겠습니다. 후기도 뭔가 더 쓰려고 했는데 결국 반의 반도 못 풀었네요. ㅁㄴㅇㄹ. 다음화에서 또 뵈어요.
준오는 이거 3시즌에서 쓸 플랜은 있는데 그 전에는 앞날이 많이 불투명하네요. 뭐 2시즌도 이제 슬슬 마무리가 보이기 시작하니, 열심히 달려서 준오도 듀얼 더 시켜주는 수밖에요.
저도 언젠가 글쟁이로 복귀하고 싶긴 한데 오리카를 많이 쓰는 입장이라 언제쯤이라야 쓸 수 있을지 하나도 몰?루겠네요
초반부를 보니 이거 남해를 두고 여자들의 기 싸움이 벌어지는군요. 드디어 남해에게도 봄이... 오는 걸까요?
애리는... 남해에겐 관심이 없는데용...?
그렇군요... 그래도 언젠가 남해에게 봄이 오기를 바랍니다. 남해도 예쁘고 참하고 마음씨 좋고 듀얼 잘 하는(제일 중요) 여친이 생기기를...
역시 애리는 좀 더 노골적으로 레즈력을 드러냈어야 됐군요. 앞으로는 감안하도록 하겠습니다.
이번에도 잘 봤습니다 빅5전의 범골을 방불케하는... 지는 알 수 없지만 어쨌든 매끄러운 콤비플레이네요 분명 천년 픽이 틀림없는 준오도 기대해보면 좋겠지요
준오는 이거 3시즌에서 쓸 플랜은 있는데 그 전에는 앞날이 많이 불투명하네요. 뭐 2시즌도 이제 슬슬 마무리가 보이기 시작하니, 열심히 달려서 준오도 듀얼 더 시켜주는 수밖에요.
저도 언젠가 글쟁이로 복귀하고 싶긴 한데 오리카를 많이 쓰는 입장이라 언제쯤이라야 쓸 수 있을지 하나도 몰?루겠네요
일단 씁시다 그래야 뭔가 도출됩니다 저도 이 소설 처음 구상하던 건 10년도 더 전입니다만 이렇게 쓰니까 뭐라도 나오고 있는걸요
저... 굉장히 열심히 쓰셨고 듀얼 내용도 만족스러웠는데, 이런 말은 하고 싶지 않았지만 아무래도 로그에 오류가 있는 것 같습니다. 바로 남해의 패 매수인데.... 상대 턴 종료 후, 현재 남해는 크리보르를 전턴에 사용했고 다른 패트랩은 없었으니 드로우 후 패는 5장. 패의 시그마와 아디온 특소로 패는 3장. 애니그마스터 팩비트를 소환 후 코스트로 1장(도트 스케이퍼) 버렸으니 패 2장. 인버트 소환에 패의 마이크로 코더 사용(-1), 롤백 서치(+1) 후 패의 팬텀을 소환(-1)했으니 남은 패 1장. 롤백 사용으로 시그마 복귀, 패 0장. 파이어월 소환 후 팬텀 효과로 크로스와이프 서치 후 패 1장을 버려야하는데 패가 크로스와이프 1장 뿐. 그럼 팬텀 코스트로 버릴 패 1장은 어디서 나온 걸까요....? 정리하면 남해의 패: 시그마, 아디온, 도트 스케이퍼, 코더, 팬텀, 크리보르(전턴 사용) 혹시라도 제가 잘못 파악했다면 지적 부탁드립니다.
크아악 파이어월 데뷔하는 로그라고 동글도토리를 팬텀으로 갈아치웠더니 바로 오류가 퇴근하면 바로 고치도록 하겠습니다
ㅁㄴㅇㄹ... 팬텀을 디펜서랑 가디언으로 교체했습니다. 이제 오류 수정됐을 거에요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