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책: 김훈, 『연필로 쓰기』, 문학동네, 2019.
음식점에 혼자 들어가서 사 먹은 최초의 음식이라고 하면 어릴 적 학교 앞 분식집에서 동전을 내밀고 받은 떡볶이가 떠오릅니다.
초등학생 용돈으로 사 먹기엔 버거운 김밥이나 순대를 뒤로 하고, 그나마도 한 접시 먹기엔 돈이 모자라 종이컵에 떡의 개수를 세어가며 담아주는 컵떡볶이.
한 컵에 딱 하나 들어있는 어묵 조각을 떡과 함께 이쑤시개에 찍어 먹을 때면 매운 음식의 세계에 발을 들이는 두근거림과 스스로 음식을 사 먹는다는 자부심이 묘하게 뒤섞이곤 했지요.
그때의 기억이 워낙 강렬한 탓인지 지금도 “분식집 떡볶이라면 학교 앞 차도의 매연을 양념 삼아 먹어줘야 제맛”이라는 이상한 기준을 버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대기업 프랜차이즈 떡볶이들이 상권을 점령한 요즘도 대다수의 사람은 떡볶이라고 하면 학교 앞 분식점 할매의 손맛을 떠올리니 내 입맛이 유별난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이렇듯 어릴 적부터 모두의 사랑을 받아 온 국민 간식이다 보니 그 수요를 노리고 다양한 떡볶이가 등장합니다.
밀떡과 쌀떡으로 구분하기도 하고, 소스에 물이 많은지 적은지에 따라 갈리기도 하며, 매운 정도나 부재료의 종류에 따라 짜장 떡볶이나 치즈떡볶이, 불닭 떡볶이 같은 특색있는 메뉴도 있습니다.
심지어는 대구의 매운 떡볶이, 부산의 물떡, 제천의 빨간 어묵처럼 지역에 따라 다른 모습을 보이기도 하니 1953년 마복림 할머니가 신당동에서 매운 떡볶이를 처음으로 만들어 팔기 시작한 이후 그야말로 폭발적으로 전국에 퍼진 셈이네요.
다만 나이 지긋한 서울 출신이라면 그 이전부터 있었던 떡볶이를 추억하며 ’족보 있는‘ 음식을 먹었다는 자부심을 느낄지도 모르겠지만요.
“어머니는 서울 토박이, 깍쟁이 여자였고, 서울 사대문 안 청계천 북쪽 고향을 자랑으로 여겼다. 어머니는 간장 베이스 떡볶이가 순 서울식이며 대궐에서 임금님이 드시던 음식이라고 늘 자식들에게 자랑했다. 내가, 임금님은 맨날 이런 것만 드시냐고 물었더니 어머니는 대답하지 않았다.”
- 김훈, “연필로 쓰기 - 떡볶이를 먹으며” 중에서
지금은 고추장소스로 만드는 매운 떡볶이가 대세로 자리 잡았지만, 그 뿌리를 거슬러 올라가면 간장 양념 떡볶이가 있습니다.
1800년대의 요리책인 규곤요람에 떡 병(餠)자에 구울 적(炙)자를 써서 병적법이라는 떡볶이 요리법이 등장하는데, 흰 떡을 기름에 지져 간장 소스와 각종 고명을 넣고 볶아내는 것이 오늘날의 떡볶이와 거의 비슷합니다.
1751년 승정원일기에는 영조임금이 “어머니는 내게 식사를 빨리하라고 하신다. 하지만 어머니는 절편이나 떡볶이(餠炙)도 즐겨 드시는데 나는 이빨이 약해 그것도 먹지 못한다.”라며 불평하는 기록이 있는 것으로 보아 요리 자체는 그보다 훨씬 더 예전부터 먹어왔으리라 생각됩니다.
궁중 떡볶이라고도 불리는 그 이름답게 궁궐이나 양반집에서나 먹을 수 있는 귀한 음식이기도 했습니다.
곡식을 많이 소비하는 떡을 만드는 것도 모자라 당시에는 구하기 힘든 기름에 볶고, 여러 가지 고기나 해산물을 고명으로 곁들였으니 그럴 만도 하지요.
하지만 가난한 집에서는 나름대로 주머니 사정에 맞게 궁중 떡볶이를 만들어 먹기도 했으니, 반드시 고급 재료가 아니라도 즐길 수 있는 미식의 단면이 여기 있습니다.
“어머니는 설에만 떡볶이를 해주셨다. 설에 가래떡과 쇠고기로 떡국을 끓여서 차례를 지내고, 남은 재료로 떡볶이를 만들었다. 떡볶이를 만들 때 어머니는 고기를 늘쿼서 여러 아이들에게 골고루 먹이느라고 가루가 되도록 다졌다. (중략) 궁중떡볶이는 양지머리 고기, 등심, 완자, 석이버섯, 표고버섯, 잣, 은행, 대추, 미나리적을 넣어서 볶아내는데, 다 익으면 삼색 고명을 얹어서 수놓듯이 꾸민다. 내 가난한 어머니는 이 호화찬란한 재료를 구할 길이 없었지만, 간장 베이스로 맛의 토대를 삼고 극소량의 고기 가루를 넣었다는 점에서, 내 어머니의 떡볶이는 경복궁 떡볶이, 창덕궁 떡볶이, 운현궁 떡볶이의 정통성에 희미하게나마 맥이 닿아 있었다.”
- 김훈, “연필로 쓰기 - 떡볶이를 먹으며” 중에서
글을 읽다 보니 궁중 떡볶이가 먹고 싶어져 냉장고를 뒤적거립니다.
떡은 떡볶이 뿐 아니라 떡국이나 떡구이, 간식으로 먹기 좋은 떡튀김 등 다양하게 활용할 수 있기 때문에 언제나 한 봉지 정도는 냉동실에 갖춰 둡니다. 이왕이면 떡집에서 파는 떡국거리를 소분해서 넣어두는 게 좋지요.
여기에 건표고를 물에 불려 썰고, 수육으로 만든 양지도 채를 썰어 줍니다. 달걀지단과 당근채도 미리 준비해둡니다.
이번에 특별히 구입한 것은 은행과 잣. 소금 살짝 뿌려가며 기름에 볶아서 넣어주면 왠지 한층 더 그럴듯한 요리가 됩니다.
여기에 전복을 넣어 고급스럽게 만들기도 하고, 대파나 어묵 등을 넣기도 하는 등 냉장고에 남은 재료 털어먹기 좋은 메뉴입니다.
기름 두른 팬에 양파를 먼저 볶다가 달콤한 냄새가 나기 시작하면 고기와 버섯을 넣습니다.
얼추 볶아졌다 싶으면 떡을 넣고 물을 2~3스푼가량 넣은 뒤 간장과 설탕, 굴소스, 참기름으로 양념합니다.
떡에 양념이 배고 부드러워지면 마지막으로 잣과 은행을 넣고 한번 더 볶아주면 완성입니다.
냉장고에 남은 재료 대충 넣고 만든 떡볶이나 떡국 만들고 남은 재료를 긁어모아 간신히 만든 떡볶이가 온갖 재료를 아낌없이 넣은 궁중 떡볶이에 비하면 맛에 손색이 있을 것은 분명합니다.
하지만 임금님이 별 감흥 없이 씹으며 ’너무 질기다‘고 불평하던 떡볶이에 비하면 간식거리도 변변치 않았던 시절의 저자가 맛보았던 떡볶이는 수십 년이 지나도 마모되지 않고 가슴 속에 남습니다.
“배가 고프지 않아도 사치와 여유로서 음식을 먹는 일은 즐거웠다. 그 즐거움이 가래떡에 담겨서 목구멍으로 넘어왔다. 가래떡에 고기 가루가 붙어 있었고, 고기 맛이 떡에 스며있었다. 간장의 짠맛과 설탕의 단맛이 섞여서, 가래떡은 쌀을 군것질로 바꾸어놓고 있었지만, 그 안에 쌀의 질감은 여전히 남아 있었다. (중략) 맛은 사라지지 않고 마음의 지층 맨 밑바닥에 숨어 있다가 불현듯 솟아오른다. 지나간 맛이 살아나서, 먹고 싶은 미래의 맛을 감질나게 하고, 지금 이 순간의 맛이 지나간 맛을 일깨워서, 나는 지나간 맛과 지금 이 순간의 맛과 다가오는 맛을 구분하지 못한다.”
- 김훈, “연필로 쓰기 - 떡볶이를 먹으며” 중에서
그러고 보니 제가 부모님께 처음으로 만들어 드린 요리 역시 궁중 떡볶이였습니다.
내가 먹고 싶어서 만들었던 요리를 가족들과 함께 나누어 먹은 적은 예전부터 종종 있었지만, 부모님이 드시고 싶은 음식을 만든 것은 대학생 때 궁중 떡볶이가 처음이었던 듯합니다.
감기에 걸린 어머니께서 떡볶이가 먹고 싶다고 하셔서 자극적이지 않은 궁중 떡볶이를 만들었는데 “맵지 않으면서 입에 딱 맞는다”라며 맛있게 드시던 것이 기억에 남습니다. 굳이 한 그릇 남겨서 퇴근하는 아버지께 맛보라고 강권(?)하셨던 것도.
오랜 시간이 지나 푹 퍼진 떡볶이가 얼마나 맛이 있었겠느냐 마는 아버지 역시 달게 한 그릇 잡수시곤 정말 맛있다고 칭찬을 연발하셨지요.
신이 나서 “이게 바로 조선의 임금님들이 먹던 귀한 음식”이라며 이야기보따리를 풀었던 것을 생각하면 맛 칼럼니스트의 자질이 그때부터 얼핏 보였던 것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다만 아직도 확실치 않은 것은 요리도 얼마 해보지 않은 초보자의 떡볶이가 진짜 그렇게 맛있었던 것인지, 아니면 아픈 어머니를 위해 요리한 아들에 대한 기특함 때문에 필요 이상으로 호평을 했던 것인지 하는 점입니다.
십오 년 전의 일이라 이제는 기억도 희미합니다.
아무래도 조만간 찾아뵙고 떡볶이 한 접시 만들어 올려야 궁금증이 해결될 듯하네요.
저랑 비슷한 연배이지 싶군요. 저 역시 어린시절 아마도 100원 내고 컵 떡볶이를 사먹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 탓인지, 최근에 잠시 빠졌던 마라탕 때문에 마라탕 프랜차이즈들을 한번씩 방문하면 초등학교 저학년 아이들끼리 왁자지껄 떠들며 마라탕 먹는 모습을 보면... 아직도 적응이 안되요. 허허 늙었네요.
고기들어간 떡볶이 못참지요 ㅎㅎ
누구나 있을 어린 시절의 궁중떡볶이의 기억은 참 애틋하죠ㅎㅎ 아직 매운 거 잘 못먹을 시절에 (어쩐 일인지 지금도 못먹게됐지만) 궁중팬 한 가득 해주셨던 생각이 나요. 비록 형제에 할아버지 할머니까지 10명 대가족이 나눠먹느라 그렇게 많아도 맛만 보게 됐지만 정말 맛있었어요. 제가 지금 그때 엄마 나이가 됐는데 요리를 잘 못해서 가끔 슬픕니다ㅋㅋㅋ
잘 봤습니다. 글과 함께 읽으니 저도 궁중떡볶이가 먹고 싶어 지네요!
궁중떡뽀끼.. 약 20년전에 학교급식에서 먹어보고 이나이먹도록 한번을 못먹었네요 그립읍니다.
저랑 비슷한 연배이지 싶군요. 저 역시 어린시절 아마도 100원 내고 컵 떡볶이를 사먹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 탓인지, 최근에 잠시 빠졌던 마라탕 때문에 마라탕 프랜차이즈들을 한번씩 방문하면 초등학교 저학년 아이들끼리 왁자지껄 떠들며 마라탕 먹는 모습을 보면... 아직도 적응이 안되요. 허허 늙었네요.
누구나 있을 어린 시절의 궁중떡볶이의 기억은 참 애틋하죠ㅎㅎ 아직 매운 거 잘 못먹을 시절에 (어쩐 일인지 지금도 못먹게됐지만) 궁중팬 한 가득 해주셨던 생각이 나요. 비록 형제에 할아버지 할머니까지 10명 대가족이 나눠먹느라 그렇게 많아도 맛만 보게 됐지만 정말 맛있었어요. 제가 지금 그때 엄마 나이가 됐는데 요리를 잘 못해서 가끔 슬픕니다ㅋㅋㅋ
궁중떡뽀끼.. 약 20년전에 학교급식에서 먹어보고 이나이먹도록 한번을 못먹었네요 그립읍니다.
고기들어간 떡볶이 못참지요 ㅎㅎ
은행 들어간건 첨봐요!!
사진 잘 봤습니다.
잘 봤습니다. 글과 함께 읽으니 저도 궁중떡볶이가 먹고 싶어 지네요!
혹시 김훈 작가 본인이십니까 ㅎ